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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를 마칠 때마다 방청객에게도 의견, 소감, 조언을 이야기할 기회가 주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질문자들의 소감까지 들어본 후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자, 고구마 캐러 갑시다.”
이어서 스님은 곧바로 작업복을 입고 산 아랫 밭으로 고구마를 캐러 갔습니다. 밭에는 고구마 줄기가 무성하게 덮여 있었습니다.
고구마를 캐는 일보다 줄기를 걷어내는 일이 훨씬 더 큰 일이었습니다. 수분기 가득한 고구마 줄기는 사람의 힘으로 들기에는 너무 무거웠습니다.
일단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한 고랑씩 걷어내기 시작했습니다. 행자님들은 몇 걸음 앞으로 나아가더니 이내 곧 신음소리가 터져 나왔습니다.
“아이고, 허리야!”
“줄기가 왜 이렇게 무거워요?”
한 줄을 다 걷어내고 나니 걷어낸 줄기를 어떻게 트럭까지 실을 수 있을지 더욱 막막했습니다.
“포클레인으로 줄기를 걷어내면 어떨까요?”
묘당 법사님의 제안에 스님이 동의하자 묘당 법사님이 포클레인을 몰고 밭에 도착했습니다.
고구마 수확을 돕기 위해 자원봉사자들도 곧이어 밭에 도착했습니다. 김제동 씨도 작업복을 입고 밭에 도착했습니다.
“스님, 일 좀 도와드리려고 왔습니다.”
“어서 와요. 감사합니다.”
김제동 씨와 자원봉사자들이 낫으로 고구마 줄기를 쳐내는 일을 해주었습니다. 힘을 많이 써야 하는 일이어서 그런지 김제동 씨도 결국 한 마디를 했습니다.
“이 일은 진짜 힘드네요. 밥을 먹었으면 그래도 밥값은 해야 하는데, 아직 밥값만큼은 일을 안 한 것 같아서 뭐라 말은 못 하겠고... 스님이 하실 말씀을 제가 미리 했습니다.” (웃음)
아무 말 없이 옆에서 숨을 헉헉 몰아쉬며 일하고 있는 스님에게 김제동 씨는 또 한마디를 덧붙였습니다.
“스님, 일을 너무 무리해서 하시는 거 아니에요?”
“밥 먹고 살려면 이 정도는 일을 해야죠. 맨날 놀면서 밥 얻어먹는 중이 되면 안 되잖아요.”
“스님께서 그렇게 말하실 줄 알았어요.” (웃음)
고구마 줄기를 낫으로 다 쳐낸 고랑은 곧이어 포클레인이 지나가며 고구마 줄기를 깨끗하게 긁어서 모았습니다. 포클레인이 집게로 드는 고구마 줄기의 무게는 사람 열 명이 들어도 못 들 것 같았습니다.
“역시 기계의 힘이 무섭군요.”
어렵지 않게 수확을 마칠 수 있겠다는 희망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줄기 걷어내기가 순조롭게 진행되자 스님은 고랑 사이에 깔아 놓은 잡초 매트를 제거하는 일을 했습니다.
잡초 매트가 제거되면 포클레인이 고랑 사이를 지나가며 고구마 줄기를 한꺼번에 걷어내었습니다. 한 곳에 모아진 줄기는 다시 포클레인이 집게로 집어서 트럭까지 운반했습니다.
“고구마 줄기는 소 키우는 동네 어르신께 가져다 줍시다.”
동네 어르신의 축사에 가서 고구마 줄기를 가득 부었습니다.
“양이 꽤 많네요. 고맙습니다.”
동네 어르신은 많은 양의 고구마 줄기를 보고 아주 기뻐했습니다.
고구마 줄기를 다 걷어내자 붉은 황토가 환하게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고구마를 캐기 시작했습니다. 고구마 캐는 일을 자원봉사자들이 도맡았습니다. 한 사람이 쇠스랑으로 땅을 찍어서 흙을 뒤집으면, 자두 빛 고구마가 쑥쑥 나왔습니다.
“우와, 고구마가 정말 커요.”
제법 큰 고구마가 나올 때마다 탄성이 나왔습니다. 어떤 곳은 고구마가 아주 작았습니다.
“에이, 고구마가 너무 작네요.”
고구마 크기를 보며 일희일비하는 사이에 벌써 한 줄을 다 캐냈습니다. 캐낸 고구마는 곧바로 두둑 위에 올려놓고 햇빛에 말렸습니다. 나란히 누워서 일광욕을 하는 고구마들이 아주 탐스러워 보였습니다.
“참 먹고 하세요.”
휴식 시간에는 방금 삶은 고구마와 아침에 만든 김장 김치가 나왔습니다. 고구마 위에 김치를 얹어서 먹으니 맛이 일품이었습니다.
해가 산 너머로 뉘엿뉘엿 넘어가고 있을 무렵 스님이 봉사자에게 양해를 구했습니다.
“저는 4시부터 의료인 정토회 즉문즉설이 있어요. 먼저 일어나 보겠습니다. 마무리를 잘 부탁해요.”
스님은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고, 김제동 씨와 봉사자들은 해가 질 때까지 고구마를 모두 캤습니다.
씻고 나서 가사와 장삼을 수한 후 오후 4시 정각에 방송실에 자리했습니다. 의료인 정토회의 지난 활동을 소개하는 영상을 함께 보며 의료인들을 위한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250여 명의 의료인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인사말을 했습니다. 정토회에서 의료인의 역할과 비전이 무엇인지 이야기한 후 곧바로 질문을 받았습니다.
사전에 다섯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분인데 가래를 흡인하거나 험한 상처를 치료할 때 더럽다는 생각과 답답한 마음이 자꾸 일어나는 것이 고민이라며 스님의 조언을 구했습니다.
중환자실에서 임종하는 분이나 험한 상처를 보는 게 힘듭니다
“저는 중환자실 병동에서 근무합니다. 저희 병원에서는 환자분이 위독해지시면 중환자실로 전동을 합니다. 그러다 보니 임종하시는 분도 많이 보고, 상처가 심하거나 몸의 모양이 기괴하게 변형된 경우도 종종 봅니다. 임종하시는 분들을 어떤 마음으로 보내드려야 할까요? 그리고 가래를 흡인하거나 험한 상처를 치료할 때 내 안에서 가끔 더럽다는 생각이 일어나고, 그런 상처를 해결할 수 없다는 답답한 마음도 듭니다. 어떤 마음으로 환자분을 대해야 할지 알고 싶습니다.”
“그럴 수 있습니다. 질문자가 특별한 게 아니라 우리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들 수 있어요. 그러나 그 일이 직업인 사람은 매일 하는 일이 그 일인데 그 일이 어렵다면 그 직업이 자기에게 맞지 않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 직업 말고는 할 수 있는 다른 직업이 없다면 어떡하겠어요? 그 일이라도 해서 먹고살아야죠.
그 일이 직업이라는 말은 그 일이 일상이라는 거잖아요. 산에 가서 나물을 채취해서 시장에 파는 사람이 그 일을 힘들다고 하면 어떻게 그 일을 직업으로 하겠어요? 의사들 중에도 항문 전문 병원에서 일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분들은 출근해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하루 종일 남의 항문만 들여다봐야 됩니다. 이비인후과 의사들은 매일 환자의 목과 코만 들여다보고 살아야 됩니다. 매일매일 그 일만 하는데 그걸 힘들어한다면 직업을 그만둬야 하지 않을까요?
장례를 치르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매일 장례를 치르는 게 일상이에요. 중환자실에서 근무하는 간호사는 매일 하는 일이 돌아가시는 분을 보내드리는 겁니다. 그런데 그 일을 하는 것이 너무 가슴 아프다면 다른 업무로 바꿔야죠.
의사들이 온갖 방법으로 치료하다가 더 이상 치료 방법이 없어서 호스피스 병동으로 온 거잖아요. 만약 환자가 오늘 죽으면 오늘 끝나는 일이지만, 죽는 것이 한 달 연기가 되면 한 달간 더 돌봐드려야 되고, 두 달 연기가 되면 두 달간 돌봐드리는 일이 질문자가 해야 할 일이에요. 거기에 내 의도로 상황을 변화시킬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어요. 그냥 죽 떠먹을 일이 있으면 죽 떠먹이고, 목에다가 음식 넣어줄 일이 있으면 넣어주는 것이고, 주사 놓을 일이 있으면 주사 놓아주는 것이고, 의사가 진통을 완화시키는 진통제를 놓으라고 하면 진통제를 놓는 것이고, 돌아가시면 장례식장으로 옮기는 일을 해야 하는 것이고, 이런 일들을 그냥 일상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질문자에게 주어진 일은 죽기 전에 그분들을 편안하게 하는 게 아니에요. 지금 숨넘어가는 사람에게 누가 몇 마디 말을 한다고 해서 어떻게 마음이 편안해지겠어요? 꿈도 야무져요. 저도 그런 곳에 가면 아무 말을 안 합니다. 그냥 손만 꼭 잡아줘요. 그런데 가족들은 저를 만나면 무슨 신통방통이 생기는 줄 알고 ‘아이고, 우리 어머니 죽기 전에 스님이 한 번만 방문해주세요.’ 이런 요청을 하죠. 그럴 때 대부분은 반야심경을 외워주거나 다라니를 해준다면서 난리를 치는데, 저는 그런 행위를 일절 안 합니다.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손만 꼭 잡고 있다가 옵니다. 제가 가는 게 필요하다고 하니까 가는 것이고, 손을 잡아 달라고 하니까 손을 잡아 주는 거예요. 제가 다라니를 외운다고 그분의 마음이 편할지, 안 편할지 그걸 제가 어떻게 알아요? 그러나 만약 그분이 평소에 아미타불을 늘 부르는 분이었다는 걸 알면 ‘보살님, 우리 같이 아미타불이나 부릅시다’ 이렇게 하는 겁니다.
내가 뭘 해줄 수 있다는 생각은 굉장히 위험한 생각입니다. 내가 손잡아 주는 건 할 수 있어요. 그런데 그분이 살고 죽는 건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분에게 주사를 놓아주는 건 내가 할 수 있어요. 그렇게 가벼운 마음을 갖고 뭐든지 필요한 일을 해주면 됩니다. 주사 놓아줄 일이 있으면 주사를 놓아주고, 옷을 갈아입힐 일이 있으면 옷을 갈아입혀 주고, 똥을 치울 일이 있으면 똥을 치워주는 거예요.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지만 그분이 숨넘어갈 때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줄 수 있는 위로의 말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건 자기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있는 겁니다. 그냥 함께 있어 주고, 물으면 대답해주고, 손잡아 주고, 그런 정도만 하면 됩니다. 이렇게 내가 할 수 있는 것만 하면 되지 그 이상을 하려고 하기 때문에 질문자가 힘든 거예요.
가래라든지 똥이라든지 이런 걸 더럽게 느끼는 거야 어떡하겠어요. 그러나 하루, 이틀도 아니고 늘 해야 되는 일이라면 생각을 좀 바꾸셔야죠. 그래서 불교의 가르침이 필요한 것 아니에요? 불교에서는 ‘불구부정(不垢不净)’이라고 가르치잖아요.
똥통에 사는 구더기는 똥이 더러운 줄 몰라요. 저는 어릴 때 화장실에서 똥을 누다가 이 사실을 깨달았어요. 똥통에서 구더기가 막 기어 올라오다가 계속 떨어지는데 어린 마음에 너무 안 된 거예요. 저렇게 힘들게 움직여서 다시 떨어지는 걸 보니까 너무 불쌍해 보여서 전부 건져내어 하얀 사발에 옮겨 주었습니다. 그런데 전부 다시 기어 나와서 똥통으로 들어가더라고요.
똥통이 더럽다는 건 제 생각이었습니다. 똥통은 내가 보기에 더럽지 구더기는 그곳이 삶의 터전이에요. 우리가 지금 아름다운 곳이라고 생각하는 곳도 우리에게만 아름답지, 저 하늘 위에서 내려다보면 우리도 어떤 오물통에 빠져서 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미녀라고 부르는 사람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아름다워 보이지만 현미경으로 피부 땀구멍 속을 확대해 보면 그 안에 세균이 바글바글 합니다.
똑같은 것도 보는 각도에 따라서 다 다르게 보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르고, 각도에 따라 다르고, 원근에 따라 다 다르게 보입니다. 가래를 받아내거나 똥오줌을 받아내는 것도 지금까지의 고정관념에서 보면 더럽지만,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어요. 매일 해야 될 일이니까 한 생각 바꾸셔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불구부정(不垢不净)’이라고 말씀하셨어요. 본래 깨끗하고 더럽다 할 건 없다는 뜻입니다.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래가 생깁니까? 몸을 해치기 위해서 가래가 생깁니까?”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생기는 거죠.”
“그래요.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래가 생기는 거예요.
종기에서 고름이 나는 것은 살려고 고름이 나와요? 죽으려고 고름이 나와요?”
“살려고 고름이 나옵니다.”
“세균 하고 싸운다고 고름이 나오는 겁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은 더럽다 하더라도 의학 지식이 있는 질문자는 ‘이게 다 살려고 하는 결과물이다’ 이렇게 생각해야 합니다. 그분이 살아나기 위한 결과물이 고름입니다. 똥오줌도 마찬가지예요. 똥오줌을 잘 눠야 살아요? 못 눠야 살아요?”
“잘 눠야 살아요.”
“똥오줌을 너무 더럽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똥오줌을 못 누는 것은 밥을 못 먹는 것보다 훨씬 더 괴롭습니다. 똥오줌을 누는 것이 먹는 것보다 더 중요해요. 어릴 때는 그걸 더럽다 했지만 조금만 더 공부를 해보면 그게 다 사는 과정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일부러 좋아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그게 더러워서 나한테 괴로움을 줄 정도는 넘어서야 됩니다. 관점을 이렇게 가져 보세요.
무조건 좋게 보자는 게 아닙니다. 진실을 보자는 거예요. 사실은 그게 사는 행위예요. 치료를 할 때도 이렇게 생각을 가져보세요.
‘이 분이 지금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가래가 생기는구나’
이런 관점에서 바라보면 조금 더 편안하게 치료에 임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는 분에 대해서는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 도저히 안 되면 근무 장소를 바꾸어야 합니다.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주사라도 한 대 더 놓아드려야지. 돌아가시기 전에 내가 기저귀라도 한 번 더 갈아드려야지.’
이런 정도로 생각해야 합니다. 질문자가 사람이 죽는 것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하느님도 못 해요. 하느님이 할 수 있다면 사람이 안 죽어야죠. 그러니 관점을 조금 바꾸어서 좀 더 편안하게 접근했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질문에 대해 답변을 다 하고 나니 벌써 약속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마지막으로 스님은 의료인들이 정토행자로서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여러분들이 힘들다 하지만 그래도 아침에 출근할 직장이 있고, 가서 돌볼 사람이 있고, 내가 가진 재능이 쓸모가 있다는 것만 해도 굉장히 감사할 일이에요. 그리고 여러분들의 직업은 다른 직업에 비해서 돈도 벌지만 인사도 함께 듣는 직업 아니에요? 다른 작업은 다 돈을 줘야 인사를 듣지, 돈을 받으면서 인사를 듣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의사와 간호사는 돈도 받으면서 ‘선생님, 살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주사를 놓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하고 인사를 받잖아요. 이런 직업은 몇 개 안 돼요. 여러분들은 남이 필요한 일을 좀 도와주고 돈을 벌고, 약을 지어줘서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돈을 번다는 겁니다.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의료 행위를 하면서 폭리를 취하는 건 맞지가 않습니다. 최소한의 이익만을 얻어도 사실은 괜찮다고 볼 수 있어요. 왜냐하면 고맙다는 소리를 듣고 살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을 가진다면 저는 의료인 여러분들도 조금 더 행복하게 직업 활동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아픈 사람을 갖고 돈벌이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의사, 변호사 이런 전문직은 과잉 보수가 주어지는 직업군 중에 하나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서 여러분들이 조금만 더 욕심을 줄이고 내가 가진 기술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도록 쓰이는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한다면, 여러분들의 생활비는 저절로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여러분들이 무보수로 한번 근무해 보세요. 아마 보시금으로도 보수가 나올 겁니다. 제가 이렇게 무보수로 강연을 해도 보시금으로 살 수 있는 것과 똑같아요. 그러니 너무 이익에 집착하지 말고 조금이라도 자신이 가진 재능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사홍서원으로 의료인 즉문즉설 법회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8시 30분부터는 온라인 일요 명상을 진행했습니다. 지난주에 영어로 올라 온 질문에 대해 답변을 한 후 40분 간 명상을 하고, 실시간 채팅창에 올라온 소감을 읽고 밤 10시가 다 되어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내일은 오전에 전법 활동가 법회를 하고, 오후에는 정토회 기획위원회 회의를 하고, 저녁에는 공동체 지부 전법 활동가들과 공청회와 안거 후 각 위원회와 공청회를 할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