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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을 다녀온지 벌써 1주일이 지나가네요.
개인적인 일이 바빠 후기가 많이 늦었습니다.^^;;
일반 벚꽃보다 보름 정도 늦게 피는 겹벚꽃(왕벚꽃) 절정에 마추어 급~번개로 공지하여
봄에는 갖은 겹벚꽃으로 꽃절을 이루는 서산 개심사를 포함하는 아라메길 1코스를 걷고 왔습니다.
서산 아라메길 1코스는 종착점인 해미읍성까지 18km로, 유기방가옥~여미리 비자나무~선정묘
~여미리 미륵불~유상묵가옥~고풍저수지~서산마애여래삼존상~보원사지~개심사~해미읍성을
경유하는 자연경관과 문화유적이 풍부한 코스입니다.
전날에 비해 기온이 급상승하여 30도를 육박하는 더운 날씨에 땀도 흘리고 걷기도 제법 힘들었지만,
아라메길 곳곳에서 만나는 명품 유적과 아름다운 길이 함께 여서 수고를 감내할 수 있었던거 같습니다.
일정이 늦어져 예정했던 문수사를 방문하지 못한 아쉬움은 다음 길로 미루어 놓습니다...
(선두 리딩을 하며 핸폰 사진을 찍다보니 부족하나마 개인사진을 많이 찍어드리지 못함을 양해 바랍니다.^^)
아침, 저녁 서늘하던 봄기운은 사라지고 초여름 마냥 갑자기 후끈해진 요 며칠 사이 철쭉, 연산홍이
활짝핀 서초구청 만남 장소에서 회원님들과 반가운 눈인사를 나눕니다.^^
1코스 출발점인 서산 유기방 가옥에 도착했습니다.
중간 휴게소도 한번 경유했는데 도착시간이 오전 08시50분...
2시간도 채 걸리지 않는 이동시간도 마음에 듭니다.
각자 자유롭게 가옥을 둘러보기로 합니다.
저는 본채를 둘러보기 전 입구에 있는 허름한 폐가에 먼저 눈길이 가네요.
빨간 프라스틱의자가 왠지 생뚱맞은 ~~^^
옛 모습이 그대로 남아 있는 촌가인데, 관리를 안하는 듯 사라져가는 모습이 아타깝더군요.
틈이 벌어진 흙벽에, 보기 드문 나무 찬장도 그대로 남아있어 비록 폐가지만 정이 갑니다.
오래도록 잘 버텨 주기를 바라는 마음을 남기고...
기와집 본채로 향합니다.
구경 전 간단 공부 먼저~~~ㅎ
▶유기방 가옥
*서산 유기방 가옥은 1919년에 건립된 일제 강점기 한옥으로서, 아주 오래된 가옥은 아니지만, 배치와 평면의 원형이
잘 남아있는 가랍집 등이 현존하고 있어 문화적.학술적 가치를 인정 받아 충남 민속문화재 제23호 지정되어 있습니다.
*현재 소유자/관리자는 유기방입니다만, 아들인 유완호 내외가 거주하고 있으며, 주변의 유상묵, 유기정 가옥과 일가입니다.
이 세 가옥들은 특히 야산을 뒤로 하고 'U'자형으로 두른 담장과 가옥 배치가 유사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유기방 가옥이 무엇보다 주목을 받는 건 500평 대지를 가득 메운 수선화입니다.
대문을 들어서기 전 기화로 담장을 두른 연못이 인정적입니다.
물을 채우는 중인지 수도 꼭지가 누드 분수마냥 시원한 물줄기를 날리고 있네요.^^
기와의 둥근 선과 기와로 쌓아 올린 곡선이 단정한 아름다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기와집에 이르러 더 가까이에 또 옛 촌가가 하나 더 눈에 뜁니다.
이곳 역시 사라져가는 촌가 모습을 그대로 가진 옛집이였습니다.
▶위의 유기방 가옥 해설글에서 '가랍집' 이 현존하고 있다고 해서 뭘까 궁금해 찾아보니
가랍집은 '호지집'이라고도 하는데, 머슴이 사는 살림채라고 합니다.
별도로 살림을 하는 집이라는 점에서 살림을 따로 하지 않는 하인들의 공간인 행랑채와는 다르다합니다.
그렇군요. 이 집이 현존하는 지붕을 개량한 '가랍집(호지집)'이였군요.^^
이제 담과 집이 중첩되는 선이 굵게 느껴지는 기와집으로 시선을 옮겨 봅니다.
서산지역 전통 양반가옥으로서 뒤에 야산을 그대로 살린 배치가 특징이라고 하더니 언덕배기에 비스듬히 얹힌거 같으네요.
회원님들은 벌써 기와집 언덕배기까지 돌아보고 계십니다.
창호 문양이 독특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찬별님 뒤따라 안채로 들어갑니다~~^^
먼저 담장으로 엿보기 ^^
야산을 뒤로하고 ‘U'자형으로 토담을 두른 후, 동측에 사랑채공간과 서측에 안채공간을 토담으로 구분하였습니다.
안채 공간입니다.
지금은 유기방의 자녀가 이 집에 거주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백이 집 가운데서 높게 자라 시야를 가리네요. 의미가 있는건지...?
어쨌거나 아직 제법 탱탱한 동백꽃 사이로 대청을 슬쩍 들여다 봅니다.
마루에는 사진틀과 액자들이 걸려있는 모습이 어릴 때 보던 시골집 같으네요.
토담 아래 박석을 놓은 장독이 양쪽으로 있네요.
이 댁은 온 가옥을 두른 수선화로 유명한데 이미 다 지고,
지금은 늦게 핀 튜율립과 목단이 화사하게 맞이해 줍니다.
저는 여기 행랑채(?) 의 자연스런 까만 댓돌과 쪽마루가 정겹고 반갑게 눈에 띄더군요.
잠깐 저기 앉아보는 여유를 갖고 싶었는데, 시간에 쫓겨서....tt....
안채 뒤면에서 사각기둥을 통해 마당을 내려다 보는 느낌도 색달랐습니다.
굴뚝에는 질항아리를 올려 놓았습니다.
'굴뚝개자리' 형태가 특이하다는데 어느 것을 말하는지 모르겠네요...??
지금부터는 가옥을 돌아보는 회원님들의 모습을 담아 보았습니다.^^
이제 뒤켠으로 들어와 유명한 'U'자형 흙담을 담아 봅니다.
꽃은 시들었지만, 담 밑에서 수선화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안쪽에서 보는 토담의 코너링(?)이 대단합니다.
이제 밖으로 나가 살펴보겠습니다....^^
마찬가지로 질항아리를 얹은 굴뚝이 보이고, 비스듬한 경사를 살린 토담이 깔끔하니 둘려졌네요.
토담 중간에 층을 두어 입체적인 느낌이 더 강합니다.
기와를 얹은 속모습이 저렇군요. 마치 무너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토담에 잇대어 보여지는 밭고랑의 부드러운 기와담 유선에서 주인의 마음이 보이는듯 합니다.
경사진 야산은 소나무숲 아래 수선화가 빼곡하니 심어져 있습니다.
조금 언덕진 곳으로 오르니 토담 모습과 마을을 바라보는 가옥 배치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지난 주까지도 왠만큼 꽃이 보기 좋았을 듯 합니다.
개화기가 되면 사진을 찍는 사람, 관광객들이 혼잡을 이룬다고 합니다.
한바탕 관광객들이 훝고 지나간 자리 곳곳에 뭉개진 수선화들도 보이고...
꽃은 지었지만 푸른 초장을 거니는 것만으로도 좋네요~
사람들이 많은 철에는 가옥 입구에서 먹거리도 만들어 판매한다고 합니다.
이제부터 모델분들을 모십니다~~~^^
여기선 담을 살려보고~
이곳에서 기와선을~~~
이번에는 긴 각선미를 기대하며~~ㅎ
그리고...
빛과 하나되는 시간을 담으며...^^
30여분 만에 바삐 돌아보기에는 뭔가 남는 아쉬움이 있는 곳입니다.
다음 수선화 필 때 여유있게 다시 와봐야겠다는 분들도 더러 계시네요.
<<서산 여미리 비자나무>>
유기방 가옥 수선화 언덕에서 내려오다 왼쪽으로 난 오솔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비자나무입니다.
우리는 길이 있는지 모르고 비포장(^^) 언덕을 기어 올라갔다는...ㅎㅎ
수령 300년이 넘는 멋진 수형의 비자나무입니다.
올라오신 몇 분들과 인증샷을 남기고....
▶서산 여미리 비자나무
이 나무는 이 마을 여미리 전주이씨, 속칭 '예민 이씨'와 관련이 있는 나무입니다.
예민이씨 가문의 李澤이 약340년 전에 제주도의 비자나무를 가져와 심었다고 전해집니다.
비자나무는 전라도의 백양산, 내장산에 자생하고, 제주도에 대군락을 이루고 있는 수종입니다.
이 나무는 고목에 그 세력이 왕성하고 수형이 매우 뛰어나며,
중부지방 이북에서 자라는 드문 예로 면나무로 지정된 귀중한 나무입니다.
빛이 강해 사진에 좀 뿌연기가 돕니다만,,,
우람한 모습에서 신령한 느낌 마저 들었습니다.
나무를 돌고 있는 저 분과 비교해서 두께가 얼마나 두꺼운지 가늠이 되시지요? ^^
유기방 가옥에서 이렇게 잘 다음어 놓은 산책로를 따라 오면 된답니다.
이 곳에서 가옥 모습이 더 잘 조망되네요.
저도 언젠가 시간을 내어 여유롭게 쉬어가면 좋겠다 하는 마음 한 점 남기고 자리를 이동합니다.
GPS 트랙이 안내하는대로 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마을 한 가운데 우뚝한 저 나무도 범상치 않은 수령일거 같은데요...
마을이 한적하니 참 조용합니다.
언덕에 지어진 정자 쪽으로 올라 건너편으로 내려오면 '선정묘'가 보입니다.
정자까지 와서 동선을 살펴보니,
결국 유기방 가옥 ->비자나무 ->정자->선정묘->여미리 미륵불->유상묵 가옥까지 산책로로 연결되어 있었네요..ㅎ
<<선정묘>>
선정묘에 도착하니 경쟁자 없이 끝없이 뻗어 올라가는 날씬한 소나무가 압권입니다.
이 나무가 한 앵글에 담기던가요?
애쓰시는 들바람님 뒷모습도 역시 압권(^^)이였습니다...ㅎㅎ
잘 꾸며진 선정묘 마당입니다.
▶선정묘
조선의 제2대 왕인 정종의 4남 선성군을 기리는 사당입니다.
조선시대 왕자와 그 배위를 기리는 사당으로써 그 사례가 드물기에 귀중한 장소입니다.
선성군은 부왕의 뜻에 따라 정쟁에 휘말리지 않으려고 일시적으로 불가에 출가하는 등 권력을 멀리한 채
유유자적한 생활을 했고, 3명의 부인에게서 9남3녀를 두었으며 당시로서는 고령인 68세에 사망했습니다.
후일 자손들이 크게 번창했다고 하는데, 현재 매년 봄에는 전국에 있는 후손들이 모여 제사를 지냅니다.
낮은 담벽을 통해 안쪽의 사당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해가 중천으로 오르며, 기온이 많이 올라가기 시작합니다. 낮 최고 기온이 30도까지...
아직 본격적으로 걷기 시작도 안했는데....앉을 곳만 보이면 자동으로 착석~~ㅎ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
선정묘를 떠나 유상묵 가옥으로 이동 중 먼저 만나는 석불입상입니다.
보는 순간 투박한 느낌이 좋았던 석불입니다.
목은 부러졌던 것을 복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서산 여미리 석불입상
고려시대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는 석불은 지방화된 양식을 보여주는데 높이3.1m의 화강암입니다.
1970년대 현 위치에서 1km 쯤 떨어진 용장천에 묻혀 있던 것을 주민들이 발견하여 옮긴 것이라 합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냇가에서 5km 쯤 상류지역에 2구의 불상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떠내려온 것이라고 하는데 분명하지 않다고 하네요.
든든한 소나무가 있어 석불은 외롭지 않을 거 같습니다...
소나무 위용도 만만치 않습니다.
<<유상묵 가옥>>
석상 옆으로 숲속 오솔길을 통해 유상묵 가옥으로 통하는 길이 짧게 있습니다.
가옥의 특징을 보여주는 경사면 언덕에 흙담이 숲이 열리며 모습을 드러냅니다.
▶유상묵 가옥
1925년 유상묵(구한말 종5품)이 명당이라 전해지는 현재 위치에 서울의 운현궁을 본떠서 건축하였다고 전해집니다.
이 가옥은 서산지역에 남아있는 전통적인 양반가옥으로 건축학적, 역사적으로 보존가치가 있어 민속자료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오래된 고택은 아니지만, 고택을 둘러싸고 있는 정갈한 황토빛 담장이 참 아름답습니다.
먼저 다녀온 유기방 가옥과 일가이며 비슷한 건축 양식을 담고 있습니다.
^^~~
낮은 야산을 배경으로 집이 들어앉아 있습니다.
담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며 한 바퀴 돌아봅니다.
여기는 자목련이 아직도 개화 전이네요..
기와지붕과 멋스럽게 어울립니다.
이곳에서 언덕을 그대로 살린 U자형 토담이 제대로 보입니다.
언덕도 살리고,
깜지곰님도 살리고....ㅎ
세 분도 모습도 살리고, 살리고 ~~ㅋ
돌담이 낮은 곳에서 가옥 내부를 살짝 들여다 봅니다.
'ㅡ'자형의 사랑채와 'ㄱ'자형의 안채가 나란히 배치되어 있고, 두 공간은 행랑채와 담장으로 구별된대요.
여기도 스러져 가는 폐가가...
이 집도 '가랍집'..??
무성한 수풀과 잎 넓은 머위대에 싸인 질항아리 장독대가 무언가를 말해 주려는 듯...
집 전면 담은 시멘트로 쌓았네요...
하수 구멍이 왜 눈에 들어오는지...^^
둘러보고, 사진 찍고....
떠나실 생각을 아니하시네요...ㅎ
'얼른 오세요~'를 연발하며 버스로 향합니다.
유난히 소담하게 피었던 민들레...
거기에 양파밭 매는 아낙네를 넣어 봅니다...
유기방 가옥에서 출발하여 숲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 주차장을 향해 도로를 걷는 중...
도로에서 조금 전 지나온 답사처가 다 보이는군요.
선정묘도 멀리 보이고...
▶서산 아라메길
대절버스로 고풍저수지를 지나 용현계곡으로 이동합니다.
아라메길 1코스는 총18km입니다만, 국보급, 보물급 문화재와 유적이 많이 있는 길이여서
눈으로 마주치고, 걸어 지나만 가기에는 아까운 황금답사 코스입니다.
그래서, 도로구간인 여미리~고풍저수지 구간 약7km는 차량으로 이동하여 용현계곡입구에서 시작해
부족한대로 답사시간을 만들어 서산마애삼존상과 보원사지에서 문화해설사 설명도 간단하게 들었습니다 ^^.
용현계곡입구입니다.
이곳에서부터 오늘 아라메길 1코스 걷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됩니다.
▶서산 아라메길
오래 전부터 명산 대접을 받았던 가야산 앞뒤에 있는 10개 고을을 조선의 실학자 이중환은 자신의 저서
'택리지'에서 "내포"라고 불렀는데 서해안을 끼고 있어 바닷물이 내륙 깊숙이까지 들어오는 지형이라 그런 이름을 지었다는군요.
서산은 10개 내포 문화권의 한 곳으로, 서산 아라메길은 가야산 자락을 걷습니다.
아라메길은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를 합친 이름으로 '서산의 아름다운 산과
바다가 어우러진 풍경을 함께 둘러볼 수 있는 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강댕이골 미륵불>>
용현계곡 입구에서 걸음을 시작해 200m 남짓 걸으면 왼쪽에 무심히 스쳐갈수 있는 미륵불을 만납니다.
강댕이골 미륵불이라는 이름이 붙은 이 석불은 돌무지 위에서 강댕이골을 바라보고 있는데
부처라기보다는 장승같은 모습입니다. 소박한 솜씨지만 이곳에 살았던 민초들의 염원을 담고 있겠지요...
본격적으로 아라메길 1코스 걷기입니다.
왼쪽에 용현계곡을 두고 단풍나무가 터널을 이루는 도로를 따라 이동합니다.
'인바위'랍니다.
보원사터와 서산마애삼존불 앞을 지나 흐르는 용현계곡입니다.
고풍저수지로 흘러가는 계곡으로 이곳 사람들은 '강댕이골'이라고 부릅니다. 오래 전 보원사에 있던
커다란 강당 때문에 이 골짜기 이름을 강당골, 이곳 사투리로 강댕이골로 부른다고 합니다.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강댕이골에 놓인 다리를 건너 ...
몇 단의 계단을 차례로 올라야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을 만날 수 있습니다.
계곡에서도 제법 벗어난 높은 위치에 있고, 발견되어 정비되기 전에 이곳은 밀림처럼 숲이 우겨져 있었을터,
더구나 석상은 계곡을 등지고 있어 일부러 찾으러 다녀도 찾기가 어려웠던거 같습니다.
☞ 왜 이런 오지였을 곳에 불상을 만들었을까요?
6세기말 백제는 한강유역을 신라에 뺏기면서 중국으로 가는 육로가 차단되어 바닷길을 이용해야만 했는데,
당진, 태안 등지가 교역항이 되고, 이곳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 부여로 가던 길목으로 서산마애여래삼존상은 6세기 당시 이곳이 불교문화가 융성했던
모습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합니다.
그 당시 뱃길로 중국까지 가는 위험하고 힘든 여정이기에 무사히 잘 다녀오라고 사찰도 세우고,
불상도 모신 것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이곳 불상은 근엄한 표정보다는 밝고 온화한 미소를 담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합니다.
날씨는 맑고,,,
도착한 시간이 10시 30분 경,,,
화강암에 반사되는 햇살은 이전 보았던 어느 때보다 불상을 밝고 환하게 밝힙니다.
삼존상이 가장 환한 미소로 맞는 시간은 11경, 얼굴에 그늘없이 환한 미소로 보이는 시간이래요.
저희도 가장 좋은 시간에 왔다고 해설사님이 그러시네요.^^
"일년 중 가장 아름다운 미소는 가을해가 서산을 넘어간 직후에 보이는 잔잔한 모습입니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아, 정말..........................................
지금은 밝고 해맑은 온화한 모습~~~
종교 여부에 상관없이.....
아름답습니다~~~
☞ 빛의 방향에 따라 미소의 종류가 달라진다는데....
같은 시간대에도 정면에서, 측면에서도 살펴보면 또 다른 느낌이 전해져 온답니다.
오전에는 밝고 평화로운 미소를, 정오에는 근엄한 미소를, 저녁에는 은은하고 자비로운 미소로..
그래서, 약간 오른쪽에서 찍어 보았습니다.
특히 사진 왼쪽의 보주를 들은 제화갈라보살입상은 측면에서는 조금 날카로와 보이지만
오른쪽에서 바라보면 특유의 미소가 더 잘 보인대요.^^
문화해설사님께 (간단히) 설명을 요청드렸습니다.
▶ '서산 용현리 마애삼존상'
* 이 불상의 정확한 명칭은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으로 국보 제84호입니다.
'마애'라는 말은 갈 마, 절벽 애를 써서 석벽에 새겼다는 의미입니다.
* 재료는 화강암으로, 백제시대 만들어졌습니다.
거친 화강암에 이렇게 세밀하고 풍부한 표정을 담은 백제인들의 놀라운 솜씨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 환하게 웃고 있는 가운데 본존 부처상과 양 옆 협시보살을 하나의 바위 면에 도툼하게 솟아오른 '돋을새김' 입니다.
* 장쾌하고 넉넉한 미소를 머금은 가운데 본존불은 시무외여원인을 한 입상으로 석가여래로 보고,
천진난만한 소년의 미소를 품은 사진 오른쪽의 협시불은 앉아있는 반가사유상 모습으로 미륵보살로 보는데,
따뜻하고 부드러운 미소를 간직한 사진 왼쪽 협시불은 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서 있는 입상 형태로
보는 견해에 따라 제화갈라보살, 또는 관세음보살이라는 해석이 갈리고 있습니다.
☞ 불상에서 특히 눈에 띄는 점은 먼저,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미소입니다.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낌입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1)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2)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이 불상은 2)번의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라고 합니다.
☞ 광배의 세곳에 조각된 작은 부처를 찾아 보세요~
왼쪽으로 10시방향,,그리고 위로 12시방향 오른쪽으로 1시방향 정도(1시는 그늘이져 희미하네요)
☞ 눈동자가 보이고, 옷고름 매듭이 두번 꼬인 것도 다른 점.
☞ 그리고 다른 특징은 연꽃무늬 위에 발 모양이 드러난 점 이라고 합니다.
발견 후 처음엔 보존하기 위해 보호막을 치기도 했는데 습기가 차고 이끼가 끼는 바람에
지금은 보호막을 걷어내고 이끼를 하나하나 제거했다고 합니다.
1400년을 버텨온 유물인데 앞으로도 버텨낼 것이라는 믿음이 있다는 문화해설가님 말씀.
☞ 불상의 방향은 동동남 30도, 동짓날 해 뜨는 방향으로 서 있어 햇볕을 풍부하게 받아들이고,
마애불이 새겨진 돌이 80도로 기울어져 있어 비바람이 정면으로 들이치지 않아 미학적 우수함에
과학적 치밀함도 더해 감탄을 자아내게 한답니다.
☞ 또한 상체가 앞으로 기울어진 모습은,,, 대중을 온화한 미소로 내려다보며 대화하는 듯한
친근한 일체감을 보여주기도 한답니다.
각자 편한 모습으로....
열심히 설명을 경청하고 계시는 모습 또한 아름답네요~^^
아름다운 백제의 미소에,
아름다운 발도행 미소가 더해 집니다...^^
▶서산 마애여래삼존상에 전해져 오는 일화입니다.(자료 펌)
1959년 4월 부여박물관장을 지낸 홍사준선생이 보원사터의 유물조사를 하던 길에 존재를 알게 되었다고 한다.
주변사람들에게 부처가 새겨진 바위를 보았냐고 물었더니
한 나뭇꾼이 말하길...
"부처님이나 탑 같은 것은 못봤지만유, 저 인바위에 가믄 환하게 웃는 산신령님이 한 분 새겨져 있는디유,
'양 옆에 본마누라와 작은 마누라도 있시유,
근데 작은 마누라가 의자에 다리 꼬고 앉아서 손가락으로 볼따구를 찌르고 슬슬 웃으면서 용용 죽겠지 하고 놀리니까
본 마누라가 장돌을 쥐고 집어 던질 채비를 하고 있시유."
하고 말해주어 마애삼존불상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들바람님은 세 분 중 어느 미소와 닮으셨을까요? ....ㅎㅎ...^^
밝고,
온화하고,
유쾌하게 까지 보이던 신비한 미소에 매료되었던 시간이였습니다.
잠시 휴식을 취하고 ....
다시 보물 찾으러 갑니다~~^^
자연이 만든 보물 아름다운 꽃을 먼저 찾았습니다.^^
서산 아라메길에서 보물찾기는 2-2편에서 계속 됩니다.~~~~ㅎ
첫댓글 참 볼것많은 길이예요. 유기방 가옥의 수선화 심으신 장본인의 수선화 철학은 대단하시더라고요. 지금도 온 마을을 수선화로 만들기 위해 노력하시더라고요. 84호 삼족불도 귀히 뵙니다. 감사합니다. ^^
아라메길 전 코스를 완보하면서도 유기방 가옥 쪽은 이번에 처음 들렸는데 참 좋았어요.
84호 삼존불도 그 어느 때보다 밝고 화사한 미소에 자리 뜨기가 힘들었답니다~~^^
일주일 목빠지게 기다린 후기 역시나!!! 입니다.
토로님 글로 마애란 의미 처음 알았는데 그옛날 절벽에 세긴 불심이 두글자에서 절절하게 전해옵니다.
토로님후기로 많은 지식 얻고 "아는 만큼 보인다"처럼 다녀온 길들이 더 소중하고 아름답게 느껴집니다.
바쁜중에 많은 기록 남겨주신 수고와 열정에 감사 드립니다.
문화유적에 관심 많으신 찰랑님 역시나 꼼꼼히 읽으셨군요.
작성하는데 시간은 좀 걸렸지만, 가끔 꺼내 보면 그 느낌을 기억해 낼수 있어 좋아요.
또 어느 길에서 뵐수 있을까나요?~~ㅎ
"일주일 목 빠지게 기다린 후기"에 한 표 꾹 누릅니다. 심려(깊을 심,생각할 려)ㅎㅎ가 돋보이는 기록 날짜!! 신토로님 홧팅 !!!
게시판으로 후기 옮겨 놓기 3일 전에 사진을 다운 받아 놓았는데 알아채셨군요..ㅎ
개인 일이 있어 집중해 작성할 시간이 안되어 짬짬이 하다보니 시간이 걸렸습니다.
친구분들과 좋은 추억 만드셨길 바랍니다~~^^
좋은 길 걷고 오셨네요.
개인 일정이 있어 참석은 못했지만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토로님 사진에서
몇 번 갔던 기억을 더듬어 봅니다.
옛날에는 찾는 사람들이 그닥 없었는데
요즘 지역마다 걷기 길이 많이 생기면서
좋은 곳은 많은 분들이 찾는 거 같아요.
더러는 옛 모습이 지워지기도 하고..
유씨네 가옥들의 특징인 U자형 토담이 겨울 설경은 또 다른 느낌이랍니다.
타박이님도 여러 계절을 다녀오셨군요.
저는 유씨네 일가를 돌아보는 것은 처음이였는데
왜 사람들이 다시 찾는지 알겠어요.
저를 비롯 몇몇 분도 재방문 의사가 있으셨거든요 ^^
겨울 토담의 유선 역시 멋지군요.^^
수선화가 한창일 때 모습..^^
우리 방문이 1주일 정도 이른 빨랐다면 수선화 꽃밭을 보았겠지만....
그러면 또 겹벚꽃은 너무 일렀겠지요?...ㅎㅎ
한꺼번에 욕심 부리지 말고 천천히 나누어 보는 여유도 가져야봐야 할텐데요....^^
계절의 여왕답게 5월엔 많은 꽃들이 피어나죠.
맨 밑에 '광대수염' 자세히 들따 보면 재미난 모습을 하고 있답니다.
84호 삼존상 보고 내려오는데 햇살을 온통 받으며 피어 있더군요.
앞에서 리딩하다 보니 사진만 겨우 후다닥 찍고,,,,
언젠가 기회 되면 찬찬히 살펴볼게요~~^^
이 아이 혼자서 지지않고 피어 있었어요.ㅎ
녀석 기다린 보람이 있었겠는데요^^
와우~ 깜지곰님 눈썰미 대단하신데요...
저는 담장에 정신 팔려 꽃은 다 지었거니 하고 자세히 살피지도 않았드래요~~~ㅎ
좋은 사진들 즐감합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