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군의 날을 맞이하여, 남한과 북한이 살벌하게 대치하고 있는 것이 안타깝다.
같은 민족으로 불과 헤어진지 70년이 조금 넘었다.
여당은 윤석열과 한동훈의 우정이 권력 앞에 깨어질 것 같다.
북한과 남한, 윤석열과 한동훈의 우정이 아쉽다.
관포지교의 慧眼이 아쉽다.
관포지교 [管鮑之交]는,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의 사귐을 뜻한다. 중국의 관중(管仲)과 포숙아(鮑叔牙)의 우정이 퍽 두터웠다는 중국의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관포지교’는 포숙의 양보와 관중의 배려가 주제다.
포숙은 자신에게 돌아올 재상 자리를 관중에게 양보하여 제나라를 부국강병으로 이끌었다. 그런데 이 과정을 잘 살펴보면 관중의 깊은 배려가 감지된다.
관중은 소백(환공)을 암살하려 했다. 관중이 날린 화살이 천만다행으로 소백의 허리띠를 맞혔고, 소백은 기민하게 화살에 맞은 척 말에서 떨어졌다.
관중은 돌아와 공자 규에게 암살에 성공했다고 보고했고, 규와 일행들은 며칠 동안 축하 파티를 벌였다.
그 틈에 포숙과 소백은 제나라 수도 임치로 입성하여 국군 자리에 올랐다.
애초 포숙은 공자 소백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관중은 백성들의 마음을 얻고 있는 소백이 장차 국군 자리에 오를 것으로 확신하고 포숙에게 소백을 모시게 하고, 자신은 총명하긴 하지만 음흉한 규를 모셨다.
군자의 성품을 가진 포숙이 규를 모시게 되면 무사할 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늘 자신에게 양보만 하는 포숙에게 관중이 베푼 첫번째 배려였다.
관중은 자신의 화살에 맞은 소백의 생사를 확인하지 않고 돌아올 정도로 엉성한 성격이 아니었다.
또 소백이 죽었다 해도 그렇게 며칠 동안 술판을 벌일 정도로 한가한 상황이 아니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포숙이 모시는 소백이 무탈하게 국군 자리에 오르게 관중이 배려한 결과였다.
자신의 목숨을 걸고 포숙을 배려한 것이다. 관중의 두번째 배려였다.
관중의 이런 배려를 알았기에 포숙은 소백을 설득하여 관중을 재상에 임명하게 한 것이다.
관중은
“날 낳아주신 것은 부모지만 날 알아준 사람은 포숙이다”
라는 말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했다.
포숙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양보와 배려는 둘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