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의 전조' 감상하기
'순수의 전조' 감상하기
시인은 자연세계란 자연자체가 상실한 순수의 비전에 대한 전조가 있을 때에 다시 살아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리하여 이 시의 제목은 이러한 주제를 강하게 표현하고 있으며, 순수란 말은 타락이전의 인간을 의미한다. 첫 번째 4행은 세상을 다른 방법으로 보는 주제이다.
‘천국’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꽃’에 의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들꽃’이란 자유로운 사랑을 상징한다. 따라서 천국은 사랑을 통해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세상은 지성을 통해서 볼 수 있고 상상력이란 천국과 세상을 연결시키는 다리이다. 같은 맥락에서 인생도 인간도 비인간화된 세상에서 ‘무한’을 볼 수 없는 것이다. 이 시인의 다른 시인 ‘천국과 지옥의 결혼’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여기에서 ‘인식의 문이 깨끗해지면,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즉 ’무한‘이 인간에게 나타나게 된다고 하였다.’ 이는 인간 스스로가 인식의 문을 닫았기 때문이며, 그 결과 인간은 자기 동굴의 갈라진 틈으로 모든 사물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시는 한 쌍의 對句가 연속되어 있으나 특별한 순서가 없이 씌어졌으며, 출판 이전에 수집된 것이다. 이 對句간의 상호 연결된 주제는 우주적인 상호의존성으로서 그 주된 생각은 완전히 다른 차원의 상응하는 존재가 서로 조화를 보인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외눈이 아니라 두 눈으로 세계를 보는 것에 지혜나 비전(전조)이 있다는 것이다.
‘전조’란 표징이며 다가올 것에 대한 예표이다. 고대에는 이러한 ‘전조’가 종교지도자들이 해석할 수 있는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이 시인은 가장 작은 생명인 한 알의 모래나 들꽃일지라도 우리의 존재나 우주의 진리를 알아내는 열쇠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아주 작은 피조물이나 생명체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은 곧 인간성을 말살하게 되어 우리 자신을 파괴하는 불행한 결과를 초래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하늘로 하여금 울게 하거나 분노케 한다는 것이다. 이는 이 시의 독자가 이러한 연결을 이해할 수 있는 상상력과 능력을 가져야함을 전제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