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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설|박성현(시인·문학평론가) 127
추천사
권혁웅 (한양여대 교수·문학평론가)
스타트렉에는 순간이동 장치가 나온다. 낯선 행성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대원들은 임무가 끝나면 모선에 이렇게 말한다. “나를 전송해줘(Beam me up)”. 그러면 빛이 내려와 그들을 옮겨준다. 시에도 순간이동 장치가 있으니, 은유가 그것이다. 은유는 사물을 발견하고 명명하고 옮겨준다. 은유는 사물을 찾아내고, 그것에 빛을 비추며, 마침내 그것을 다른 곳으로 옮긴다(‘metaphor’란 수레바퀴의 다른 이름이다). 박민서의 시는 은유의 수사학 사전과도 같다. 시인이 사이다병을 일러 “풀숲에 버려진 은하, 텅 비어 있다”(「사이다병」)고 적을 때, 그 발견은 얼마나 유쾌한가?(시인은 일부러 상표를 적지 않았으나, 이 병은 ‘칠성’ 사이다병이 분명하다) 그 명명은 얼마나 정확한가? 그리고 그 차원 이동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시집 어느 곳을 펼쳐봐도 이런 발견들이 반짝인다. 독자를 더 높은 곳으로 옮겨주는(beam up) 그런 반짝임이다. 이 발견이 한 편의 시로 확장될 때에도 시인의 손길은 경쾌하고 투명하다. 시편마다 그런 서늘한 솜씨가 느껴져서 어느 한 편도 그냥 지나치기 어렵다. 한 번의 붓질로 그림을 완성하는 화가가 있고 한 번의 손길로 비단을 베어내는 검객이 있다더니, 시인 중에도 이런 고수가 있었구나. 시집을 덮고 생각한다. 분명 가슴을 베였는데 이 산뜻한 기분은 뭐지?
책 속으로
박민서 시인은 사물을 직관하되,직설하지 않는다. 그의 문장은 숲을 에두른 겨울빛처럼 은은하게 사물들을 감싸는 것인데, 숲의 여린 나무들처럼 순백의 시선으로 비를 불러낸다. 말의 입자와 파동에 녹아든 흔적들을 섬세하게 부축하면서 언어를 시의 반열에 올려놓는 것이다. 이른바 ‘물결의 시학’으로 명명할 수 있는 그의 시는, 바라봄과 성찰의 사이를 진동하면서 문학의 시원과 본질에 다가선다. 그의 문장에 이끌리기는 쉬우나 벗어나기는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무엇보다 시인은 사물의 구체적인 현상을 살피면서도 그 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지 않고, ‘물결’이라는 추상으로 돌려세운다. 물결은 스스로를 주장하지 않는다. 때와 장소,그리고 대상에 따라 그 호흡과 흐름, 방향을 달리하며 그 실체에 적극적으로 스며든다.물결에는 모든 형태의 사물이 가능성으로서 존재한다. 추상과 구체의 이율배반이 물결의 속성이며 오로지 변신으로서 스스로를 벗겨내는 형식만이 그 내용을 이룬다. - 박성현 시집 해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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