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으름은 참 고쳐지지 않는 병입니다. 카페 간판을 日記로 달아놓고 月記를 쓰고 있으니... 저 원래 그런 눔입니다.
^도쿄에 살고 나서 처음으로 12월달을 맞았습니다. 정신 놓고 살다가도 12월이다, 연말이다, 하면 숙연한 척 '한 해 동안 뭘 했지'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되나 봅니다.
^도쿄 시내를 걷다 보면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오고 있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썩 요란한 편은 아니지만 장식을 내건 곳도 있고 불빛 깜박이는 곳도 늘어가고 있습니다. 백화점 같은 곳에서는 크리스마스 선물 준비하라는 광고가 많더군요. 제가 사는 신주쿠에 있는 이곳 동네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인이 한국인인 야키니쿠집 입구나 햐쿠엔샵(100엔 균일 가게), 콤비니(편의점)에서는 크리스마스 캐럴을 자주 들을 수 있습니다.
^한참 전 한 일본인과 대화를 나누다 서로 놀란 적이 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휴일이예요?' '크리스마스가 휴일이 아니예요?' 앞에 것은 일본인이 한 말이고, 뒤에 것은 제가 한 말입니다. 한국에서는 '달력에 빨간 날'인데 일본에서는 아니었던 것입니다.
^평생을 종교와는 무관하게 살아온 제가 크리스마스가 한국에서는 휴일인데 왜 일본에서는 휴일이 아닌지 따져볼 생각은 없습니다. 제가 살던 신도시의 한 아파트 단지에서 밤에 베란다에 나가 담배를 피면서 불밝혀진 십자가수를 세다가 지친 기억이 있습니다. 일본에 온 이후로는 십자가를 본 기억이 별로 없습니다. '아마 이런 차이가 크리스마스를 휴일로 정하고 아니고의 차이로 나타났겠지' 정도로만 생각하렵니다.
^다만 이 일을 계기로 일본 달력의 빨간 날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기자 생활을 하면서 휴일과는 인연을 끊고 산 지 오랩니다. 아시는 분은 아시겠지만 기자들은 빨간 날과 대체로 친하지 않습니다. 신문사가 토요일 쉬기는 하지만(그것도 제가 처음 입사했을 때는 '휴일 없는 신문'이라고 해서 하루도 쉬지 않고 신문을 찍은 적도 있습니다) 뉴스가 있는 곳을 늘 따라다녀야 하거든요. 특히 스포츠 기자들은 남들 쉴 때 더 바쁘죠. 일본에 특파원으로 온 후로는 정도가 더 심해졌습니다. 재택 근무 및 출장 위주로 일을 하다보니 휴일이 머릿속에서 가물가물해 진데다, 기사 마감이 없는 토요일엔 왜 그리도 구대성 등판 경기며 안정환 박지성 등이 뛰는 J리그 경기가 꼬박꼬박 열리는지...
^어쨌든 동네 슈퍼에서 얻어온 내년도 캘린더에서 일본의 공휴일을 훑어봤습니다. 1월 1일은 원단(신정이죠, 양력을 쓰는 일본의 설입니다), 1월 13일은 성인의 날, 2월 11일은 건국기념일, 3월 21일은 춘분, 4월 29일은 녹색의 날, 5월 3일은 헌법기념일, 5월 5일은 어린이날, 7월 21일은 바다의 날, 9월 15일은 경로의 날, 9월 23일은 추분, 10월 13일은 체육의 날, 11월 3일은 문화의 날, 11월 23일은 근로감사의 날, 12월 23일은 일왕 탄생일.
^한 가지 덧붙이자면 일본에는 대체휴일이 있습니다. 즉 11월 23일이 근로감사의 날이지만 이날이 일요일이어서 다음날인 24일 월요일이 대체휴일이 되는 겁니다. 대체 휴일이라. 한국의 학생들 및 샐러리맨들에겐 꿈같은 얘기죠.
^며칠 전엔 취재차 시미즈 S펄스에서 뛰고 있는 안정환을 만났는데 '크리스마스에 경기를 다 하느냐'고 볼멘 소리를 하더군요. 12월 25일엔 일본 축구 왕중왕 대회격인 '일왕배 토너먼트'의 8강전이 열립니다. 시미즈가 8강에 올라가면 이날 경기를 벌여야 하는 거죠. 애처가로 알려진 안정환 선수는 크리스마스날 집을 비워야 한다는 사실로 아내에게 미안해 하는 눈치였습니다.(지금은 유럽의 축구 시즌인데 유럽에선 휴일인 크리스마스에 축구 경기가 열리지 않나 보죠? 이탈리아 리그에서 활동했던 안정환이 이런 얘길 하는 걸 보면요)
^예수님 태어난 날과 석가모니 탄생일이 모두 휴일인 나라도 있고, 크리스마스는 휴일이 아니어도 국왕 탄생일이 휴일인 나라도 있습니다. 재밌지 않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