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전 스님의 본생담으로 읽는 불교 9. 마투포사카 본생
장님 어머니 봉양한 코끼리왕…덕성 근본은 ‘효’
길 잃은 산림관 구해줬지만 도리어 왕에게 붙잡혀가
자신에게 해 입히는 존재라도 보호하는 ‘불해’ 실천
자신 버리는 보살의 난행으로 불해의 미덕까지 지켜
‘본생경’ 455번째 이야기인 마투포사카의 본생. 인도 아잔타 석굴 17굴에 그려져 있다.
부처님께서 오신 음력 사월 초파일은 양력으로는 보통 5월이며 가정의 달이다. 그러나 부처님 고타마 싯다르타는 출가하였으므로 가족과 이별하고 나라를 떠난 분이다. 그렇다면 부처님은 진정코 가족을 버리고 나라를 잊은 사람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깨달음을 얻으신 후에 카필라성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만나고 가족과 친척들을 만났으며 천상에 올라가 어머니에게 설법하셨다. 종래에는 아내와 아들을 포함한 많은 석가족들의 출가를 받아들여 진리의 눈을 뜨게 해주었으며 나라의 멸망을 막으려고 세 번이나 마른 나무 아래에 앉으시는 노력을 다하셨다.
더욱이 아주 먼 과거생에서부터 어머니를 봉양해온 부처님의 삶은 모든 도덕과 덕성의 근본이 효도임을 주장하는 동아시아의 유교적 전통과도 일맥상통한다. 부처님께서 기원정사에 계실 때 어머니를 봉양하는 비구에 대해서 “어머니를 봉양하는 비구에 대해 성을 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시면서, “옛 현인은 축생으로 태어났을 때에도 왕이 맛난 음식을 주어도 어머니를 떠나서는 이레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고 여위어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셨다.
그 이야기가 마투포사카 본생으로, 사마 본생과 동일한 인연으로 설해진 본생담이다. 이것은 ‘본생경’ 455번째 이야기로서 산치 제2탑의 기둥에 문양화되어있고, 아잔타 석굴 17굴에 벽화로 그려져 있다.
옛날 범여왕이 바라나시에서 나라를 다스릴 때, 히말라야 설산에 온 몸이 새하얗고 아름다운 한 코끼리가 8만의 코끼리를 거느리고 있었다. 코끼리왕은 그 어머니가 장님이어서 맛난 과일을 부하들에게 주어 어머니에게 보냈다. 그러나 부하들은 그것을 저희들끼리 먹어치웠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코끼리왕은 코끼리 무리들을 버리고 어머니를 모시고 챤두라 산기슭의 어떤 못가에 있는 굴속에 어머니를 모시고 가서 봉양하였다.
그 때 바라나시의 어떤 산림관이 이레째 길을 잃고 방향을 정하지 못해 큰 소리로 울고 있었다. 그 하얀 코끼리는 그 소리를 듣고 “저 사람은 길을 잃었다. 그러나 내가 있는 이상 절대로 저 사람이 길을 잃도록 하지 않으리라”하고 큰 코끼리가 나타남으로 인하여 두려워하는 그를 잘 설득해서 등 위에 앉히고 사람 사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그러나 이 산림관은 애초부터 이 코끼리가 있는 곳을 왕에게 알릴 생각으로 나무와 숲에 표시까지 해두었다. 마침 바라나시왕의 코끼리가 죽었으므로 왕이 타고 다닐만한 적당한 코끼리를 찾고 있었다. 왕은 코끼리 조련사를 산림관에게 딸려 보냈다.
코끼리 조련사와 산림관은 히말라야로 와서 그 코끼리왕이 연못에 들어가 먹이를 먹고 있는 것을 보았다. 코끼리왕은 그들을 보자 위험을 감지하고 다음과 같이 생각했다.
‘나는 힘이 세어 천 마리 코끼리도 당적할 수 있다. 그리고 만일 내가 성을 내면 왕국의 군사를 태우는 모든 짐승들을 다 무찌를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성을 낸다는 것은 내 덕을 손상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칼에 맞아 죽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성내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결심하고 코끼리왕은 머리를 숙인 채 꼼짝 않고 서 있었다. 코끼리조련사는 코끼리왕을 잡아 바라나시로 돌아갔다. 코끼리왕의 어머니는 왕이나 왕자가 자신의 아들 코끼리를 타면 두려움 없이 적을 쳐부술 수 있음을 잘 알고 있었으므로, 아들이 오지 않자 왕의 관리들에게 잡혀갔음을 알았다. ‘더 이상 아들 코끼리에게 그 이파리들을 먹히지 않아도 되는 나무들만 무성하겠구나’하면서 비탄해하였다.
코끼리 조련사는 코끼리 몸에 향을 뿌리고 훌륭하게 장식한 뒤 온갖 빛깔의 천막을 둘러친 집에 데려다 놓았다. 왕이 와서 그에게 맛있는 음식을 주었으나 코끼리왕은 먹지 않았다. 먹기를 권하는 왕에게 코끼리는 대답했다.
“그 여자는 참으로 가엾게도/ 장님인데다 봉양할 이도 없이 /챤드라 산기슭에서 슬퍼하면서/ 나무 그루터기를 발길로 차리.” 왕이 “그 여자란 네게 누구냐?”하고 물었다.
“대왕님, 그이는 바로 내 어머니입니다. 장님인데 또 봉양할 이도 없어 챤드라 산기슭에서 슬퍼하면서 나무 그루터기를 발로 차는 그 여자는.”
왕은 이 말을 듣고 코끼리를 놓아주었다. 그리고 결박에서 풀려난 코끼리는 어느새 원기를 회복하여 어머니가 있는 산으로 돌아갔다. 그리고 그는 맑고 시원한 못으로 가서 코로 그 물을 빨아들여 그 어머니 몸에 뿌려 주었다. 어머니 코끼리는 비가 내리므로 다음 게송을 읊었다.
“때도 아닌데 비를 내리는/ 이 우매한 천신은 누구냐/ 나를 모셔 받들던/ 내가 낳은 내 아들은 떠나갔거니.”
아들 코끼리는 “아들이 돌아왔습니다”하고 외치니 어머니는 그제서야 알고 왕에 대해 감사하였다.
바라나시왕은 아들 코끼리의 덕을 기뻐하여 못에서 멀지 않은 곳에 마을을 만들어 그 모자(母子)에게 영지로 주었고, 코끼리상을 만들고 해마다 코끼리의 제전(祭典)을 거행하였다. 코끼리왕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에 카란다카라는 은둔처에서 살고 있는 히말라야의 오백 선인에게 그 영지를 주었다.
이 법화를 마치고 사성제(四聖諦, 고집멸도)를 설하자 어머니를 봉양하던 그 비구는 수다원과를 얻었다. 그때의 왕은 아난다요, 그 어머니 코끼리는 마하마야요, 어머니를 봉양한 코끼리는 바로 부처님이었다.
이 이야기는 어머니를 봉양하는 효도를 다한 내용인 동시에 효의 미덕을 실천해 나가는 과정도 인상적이다. 코끼리왕은 어머니를 봉양해야 했기 때문에 산림관과 코끼리 조련사를 물리치고 잡혀가지 않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고 순순히 잡혀간다. 자신에게 해를 끼치려는 자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으려고[불해 不害=아힘사] 한 것이다. 이 불해는 남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는 단순한 불해가 아니라 자신을 해치려는 자들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 불해이다. 이것이 자신을 버리는 보살의 난행(難行, 어려운 행)이다. 더욱이 효라는 덕목을 위해서 불해라는 미덕을 훼손하지 아니한 것이다.
그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그렇게 하기 위해 마음의 변화를 일으키는 것, 즉 화를 내는 것조차 하지 않기 위해 머리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은 것이다. 어떤 미덕이 고귀하고 중요한 만큼 그 과정도 아름다운 것이 부처님의 많은 생에 걸친 삶이었다.
이러한 미덕이 몸으로 익혀지고 가슴에 스밀 때, 탁발로써 어머니를 봉양하던 비구는 사성제가 설해지자 성인(聖人)의 과(果)를 증득하게 된 것이다.
[1632호 / 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