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 24: 6. 난리와 난리의 소문 - 마 24: 8. 재난의 시작(1)
마 24: 6. 난리와 난리의 소문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
주의 재림과 이 세상 종말의 두 번째의 징조는 전쟁이다.
요한계시록 6장의 일곱 인의 환상 중 두 번째 인은 붉은 말의 환상인데, 그것은 큰 칼 곧 전쟁을 상징하였다.
요한계시록 8, 9장의 일곱 나팔의 환상 중 여섯째 나팔은 유브라데 강 주위에서의 큰 전쟁, 곧 ‘2만만’ 즉 2억명의 군사가 동원될 전쟁에 대한 환상이다.
또 요한계시록 16장의 일곱 대접의 환상 중 여섯째 대접은 유브라데 강이 말라 동방의 왕들이 들어옴으로 세계적 연합군이 형성되고 아마겟돈(므깃도 언덕)에서 마지막 큰 전쟁이 일어나는 환상이다.
1]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우리는 먼저 난리에 대하여 생각해보아야 한다.
가정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시작되었다.
* 창 1: 27 -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 창 2: 8 -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 창 2: 18, 21-24 – 18 여호와 하나님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하시니라. 21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니 잠들매 그가 그 갈빗대 하나를 취하고 살로 대신 채우시고 22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에게서 취하신 그 갈빗대로 여자를 만드시고 그를 아담에게로 이끌어 오시니 23 아담이 이르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부르리라. 하니라. 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이러한 축복된 가정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분리될 때 다툼이 시작되어 평온함이 사라지게 된다. 이러한 현상이 난리의 시초가 된다.
가정의 불화는 사회로 더 나아가서 나라의 분쟁으로 발전한다. 이것이 전쟁이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한 시도 전쟁의 위협과 공포에서 벗어난 적이 없었다. 곧 전쟁은 가까이에서 멀리서 늘 되풀이되어 전개되고 그때마다 인류를 공포와 전율의 도가니로 몰아넣곤 한다.
역사가 시작되고 지금까지 하루도 멈춘 적이 없이 전쟁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러한 전쟁은 세상의 종말에는 더욱 심하여 나라와 나라, 민족과 민족이 피를 흘리는 전쟁이 처처에서 일어날 것을 예고하고 있다. '난리'는' 전쟁', '전투', '다툼', '충돌', '알력'을 뜻하는 것으로 세상 끝날에는 처처에서 싸움과 전쟁이 있을 것을 의미한다.
2]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현대인은 고도로 불안한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이 세상에 전쟁이 발생하겠지만 전쟁만으로 종말은 아니다.
마 24: 7. 전쟁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
역사상 수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지만, 20세기에 일어난 두 차례의 세계적 전쟁은 가장 처참한 전쟁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약 천만명의 군인들과 수많은 민간인을, 그리고 제2차 세계대전은 약 1,700만명의 군인들과 셀 수 없이 많은 민간인을 희생시켰다. 아직도 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또, 중동 지역에서는 이스라엘 나라와 이슬람 국가들 간의 갈등이 여전하다.
만일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난다면, 그것은 중동에서부터일 것이라고 흔히 말하며, 그 전쟁은 아마 화생방 무기들(화학-생물학무기들, 핵무기들)을 동원한 인류 역사에서 가장 처참한 전쟁이 될 것이다.
주의 재림과 이 세상 종말의 세 번째 징조는 기근이다. 요한계시록 6장의 일곱 인의 환상 중 세 번째 인은 검은 말의 환상인데, 그것은 흉년을 상징했다. 근대에 들어와 기근은 세계적으로 더욱더 심해진 것 같다.
주의 재림과 이 세상 종말의 네 번째 징조는 무서운 전염병이다. 요한계시록 16장의 일곱 대접의 환상 중 첫째 대접은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나는 환상이며,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해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하는 환상이다. ‘헌데’와 ‘종기’는 원어에서 같은 단어(헬코스e{lko")이다.
1]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역사상 세상에는 무수히 많은 크고 작은 전쟁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모든 전쟁 중에서도 20세기에 치룬 두 차례의 세계적 전쟁은 처참한 대전(大戰, Great War)이었다.
제1차 세계대전은 1914년에 오스트리아-항가리가 세르비아를 침공함으로써 발발하여 4년간 계속되었다. 영국, 프랑스, 러시아, 미국 등의 연합군이 마침내 오스트리아-항가리와 독일 등을 패배시킴으로 전쟁은 그쳤으나, 전쟁으로 인해 군인들만도 거의 천만 명이나 희생되었다.
제2차 세계대전은 1939년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함으로써 시작되었는데, 독일, 이태리, 일본의 세계정복 야망에 대항하여 영국, 프랑스, 소련, 미국 등의 연합국이 싸우므로 1945년 마침내 연합국이 승리하였다.
온 세계에서 벌어진 이 대전으로 죽은 민간인 수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았고 군인들만도 약 1700만 명이 희생되었다.
2차 세계대전 후 세계는 서방세계와 공산 진영으로 서로 대립하였고 아직도 그 갈등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공산주의자들이 세계 적화(赤化, 공산화)의 꿈을 버리기 전까지는 그러할 것이다.
한편,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아랍 간의 종교적 갈등이 남아 있다. 그러므로 현대인은 고도로 불안한 전쟁의 위험 속에 살고 있다.
2]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주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세 번째 징조는 기근이다. 요한계시록 6장의 일곱인의 계시 중 셋째 인은 검은 말의 환상으로 그것은 흉년을 상징한다.
'기근'은 옛날부터 있어왔다. 근대에 들어와 세계적으로 더욱더 심해진 것 같다. 월드 북 백과사전(The World Book Encyclopedia)에 의하면, 1870년대에 남부 인도에서 약 5백만 명이 기근으로 죽었고, 중국에서는 9백만 명 이상이 죽었다. 1929년과 30년에는 중국의 황하강의 홍수로 인한 기근으로 약 2백만 명이 죽었다. 1943년 인도 동부 벵갈에 대 기근이 있었다.
제2차 세계대전 후 150만 명 이상이 기근으로 죽었다. 1960년대 이후 아프리카의 소위 사하라 사막 남부 사헬 지역과 남부 아프리카, 특히 에티오피아 등에 심각하여 수백만 명이 죽었다. 1995년 4월 28일자 조선일보에 의하면, 세계은행은 지구상에서 매일 7억 5천만 명이 굶주리고 있다고 보도했다.
주의 재림과 세상 종말의 네 번째 징조는 온역이다(전통본문). 전통 사본에는 '온역들과'라는 말이 들어 있다. '기근들'이라는 원어(리모이 λιμοί)와 ‘온역들’이라는 원어(로이모이 λοιμοί)는 글자 모양이나 발음이 비슷하다.
온역은 악한 전염병을 가리킨다.요한계시록 16장의 일곱 대접의 계시에서 첫째 대접은 악하고 독한 헌데가 짐승의 표를 받은 사람들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에게 남을 예언했다. 다섯째 대접은 짐승의 나라가 어두워지며 사람들이 아파서 자기 혀를 깨물고 아픈 것과 종기로 인하여 하늘의 하나님을 훼방할 것을 예언했다.
여기 '헌데'와 '종기'는 원문에서 같은 말(헬코스 ἓλκος)이다. 역사상 수많은 전염성 혹은 비전염성 질병들이 있었지만, 의학이 발달된 오늘날도 병원들은 각종 환자들로 붐빈다. 고혈압, 당뇨, 암 등은 무서운 현대적 질병들이다.
현대의 도덕적 부패와 음란, 그리고 특히 동성애로 인하여, 매독과 임질 등의 성병이 유행하고, 아직 치료약이 없는 에이즈(AIDS, 후천성 면역 결핍증)의 확산은 매우 위협적이다. 유엔 에이즈계획(UN AIDS)에 의하면, 2002년 7월 현재 에이즈 바이러스(HIV) 감염자수는 세계적으로 4천여만명이며, 향후 20년간 약 7천만명이 에이즈로 사망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주의 재림과 이 세상 종말의 다섯 번째 징조는 지진이다. '지진'들도 징조의 하나이다. 요한계시록 6장의 여섯째 인은 큰 지진과 천계에 큰 변동이 일어날 것에 대한 예언이다.
요한계시록 11: 13에는 두 증인의 승천 후 큰 지진이 나서 성 10분의 1이 무너지고 7천명이 죽을 것을 예언했다. 요한계시록 16장의 일곱째 대접의 계시는 큰 지진이 있어 큰 성 바벨론이 세 갈래로 갈라지고 큰 우박이 있을 것을 예언한다.
큰 지진의 힘은 약 1억 8천만 톤의 폭탄(TNT)과 같으며, 그것은 최초의 원자폭탄의 약 만 배의 힘이라고 한다. 월드 북 백과사전에 의하면, 역사상 대 지진들과 사망자수는 다음과 같다.
주후 526년 시리아 안디옥(지금의 터어키) 25만 명,
1268년 소아시아 실레시아 6만 명,
1290년 중국 북동부 10만 명,
1556년 중국 중앙부 사안키 83만 명,
1667년 코카시아(소련 남서부) 8만 명,
1693년 이태리 카타니아 6만 명,
1730년 일본 혹가이도 13만 7천명,
1737년 인도 칼커타 30만 명,
1755년 포르투갈 리스본 6만 명,
1783년 남부 이태리 5만 명.
20세기에 들어와서는 대지진들이 더욱 빈번해졌다. 20세기에 5천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지진들은 28개 이상이 되며, 그중 2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것은 20개나 된다. 5만 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큰 지진만 꼽아보면,
1908년 이태리 멧시나 7만 5천명,
1920년 중국 중앙부 간서 20만 명,
1923년 일본 도쿄 - 요코하마 14만 2천8백 2명,
1932년 중국 중앙부 7만 명,
1935년 인도 쿠에타(지금은 파키스탄 지역) 6만 명,
1970년 페루 침보테 6만 6천7백 9십 4명,
1976년 중국 북동부 헤베이 24만 명 등이다.
최근의 큰 지진으로는 1988년 아르메니아 2만 5천명 이상,
1990년 이란 서북부 카스피해 인접지역 2만 5천 내지 4만 명,
1995년 일본 고오베 5천 4백 명, 러시아 사할린도 네프트골스크 2천명 이상 등이다.
2003년 이란 밤 지역 4만여 명 사망,
2005년 파키스탄 카슈미르 부근 약 4만여 명 사망,
2008년 5월 중국 쓰촨성 약 10만 명 사망 추정,
2010년 1월 아이티 약 14만 명 이상 사망 추정 등이다.
기근은 전쟁의 산물로 영과 육의 많은 굶주림과 기갈을 뜻한다. 앞으로 세상은 인구의 기하급수적인 팽창으로 식량 문제는 더욱 심각해질 것이다. 지금도 아프리카 대륙의 여러 나라에서는 하루에도 수많은 사람이 굶주림에 견디다 못해 아사하는 사람들이 부지기수다. 이러한 기근의 문제는 종말에 가까울수록 더욱 심각할 것이다.
지진이 자주 발생한다. 지진은 하나님의 진노로 땅이 진동하고 균열하여 많은 인명을 상하게 하는 종말적 심판의 징조이다.
마 24: 8. 재난의 시작 -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
이러한 징조가 나타나지만, 이것이 환난을 알려주는 전조의 현상이다.
이러한 전조의 현상이 지구촌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다.
1]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이렇게 전쟁들, 기근들, 온역들, 그리고 지진들의 징조는 오늘 시대가 주의 재림이 매우 가까운 시대임을 암시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에 불과하다.
(1) 무엇보다도 믿는 자를 환란에 넘겨주어 그들을 죽게 한다.
이는 종교적 박해를 의미한다. 성도들은 신앙으로 말미암는 고난이 있다. 초대 교회에 많은 성도가 신앙 때문에 박해받아 순교까지 당했다.
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세계 도처에서 이유 없이 많은 성도가 배신과 증오와 미움의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그러나 주의 재림이 임박할수록 더욱 그러할 것이다.
(2)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을 받는다.
장차 성도들이 예수의 이름 때문에 미움과 박해를 받음이 필연적임을 의미하고 있다. 옛날이나 오늘이나 그리스도인은 애매한 이유로 미움과 핍박을 받아 왔다.
예수의 이름은 생명이요 구원이다. 그러므로 세상의 죄인들이 싫어할 수밖에 없고 저주할 수밖에 없다. 주의 재림이 날로 가까워지는 말세에 사는 우리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고 고난을 당하는 것을 오히려 영광으로 알고 참고 견디는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
그러므로 예수를 따르는 자는 그의 고난의 십자가를 짊어질 마음의 각오와 결심이 필요하다. 세상을 향한 애정을 버리지 않고는 예수의 제자가 될 수 없고, 예수의 이름으로 고난과 핍박을 받지 않고서는 값진 구원의 기쁨을 누릴 수가 없다.
징조와 기근의 비밀
하나님의 말씀 : 마 24 장 6 - 8 절
6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하지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7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8 이 모든 것은 재난의 시작이니라.
서 론
마지막 때가 되기 전에 이 세상에 나타나는 현상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말씀이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예수님이 메시아이심을 하늘로부터 오는 이적을 통하여 증명해 달라고 요구하였다. 이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 마 16: 2-3 - 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저녁에 하늘이 붉으면 날이 좋겠다. 하고 3 아침에 하늘이 붉고 흐리면 오늘은 날이 궂겠다. 하나니 너희가 날씨는 분별할 줄 알면서 시대의 표적은 분별할 수 없느냐?
본 론
1. 징 조
1) 감람산의 가르치심에서 나타난다.
* 마 24: 3 - 예수께서 감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조용히 와서 이르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마태복음 24장은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스승의 답변으로 마태복음 24장과 25장은 3절의 내용에 의하여 이해하고 해석하여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24장은 스승 종말장이다.
마태복음 24장 4-28절의 내용은 세상 끝에 나타나는 징조요, 29,30절은 주의 재림 징조이다. 그러므로 이 세상의 끝의 징조를 통하여 우리는 임박한 재림에 앞서 극심한 대 환난이 있으며, 그 환난 후에 주림의 재림이 성취됨을 믿는다.
다시 말하면 예루살렘의 멸망으로 최초의 성취를 보았으며 멀리는 주님의 재림 직전의 일들임을 암시하고 있다.
안토니 A. 후크마(Anthony A. Hoekema)는 마태복음 24장 3절의 교훈에 대하여 예수님이 사용하신 교육방법은 예언적 원근 통시법(prophetic foreshortening)이라 할 수 있다.
즉 시간적으로 멀리 있는 사건과 가까운 사건들이 마치 두 경우가 밀접한 것처럼 통괄적으로 말하는 경우라고 한다. 다시 말하면 멀리서 보면 하나의 산으로 보이지만 가가이 가서 보면 여러 개의 산이 겹쳐져 있음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
2) 바리새인들의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태복음 16장 2-3절에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인들은 주님을 만날 때마다 하늘로부터 온 표적을 보여주시기를 요청하였다. 본문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답변이다. 하늘의 기상변화는 징조로서 분변할 줄 알면서 약속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에 대하여 책망하시는 주님의 의도를 살펴볼 수 있다.
3) 예레미야의 예언에서 나타나고 있다.
* 렘 8: 7-9 - 7 공중의 학은 그 정한 시기를 알고 산비둘기와 제비와 두루미는 그들이 올 때를 지키거늘 내 백성은 여호와의 규례를 알지 못하도다. 8 너희가 어찌 우리는 지혜가 있고 우리에게는 여호와의 율법이 있다 말하겠느냐? 참으로 서기관의 거짓의 붓이 거짓되게 하였나니 9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두려워 떨다가 잡히리라. 보라. 그들이 여호와의 말을 버렸으니 그들에게 무슨 지혜가 있으랴.
예레미야 선지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철새보다 못하다고 책망하고 있다. 왜냐하면 철새들은 계절을 따라 산을 넘고 바다 건너 자기가 살았던 옛집을 찾아오건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그들을 부르신 하나님에게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서 ‘정한 시기’의 징조적 의미를 알아야 한다. 새들도 ‘올 때를 지키거늘’ 이라는 말씀의 배후에는 자연계의 조류들도 정한 시기를 알고 그 때가 되면 준비하거늘 내 백성은 그렇지 못하다는 강한 역설적인 표현을 담고 있다.
4) 징조의 특징과 수직성
(1) 특징
예수님이 감람산에서 가르치셨던 종말의 교훈에서 징조의 특징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 징조들은 서로 연결되었으며 초자연적이거나 초역사적, 광범위적, 강력적인 특성을 나타낸다.
하나님이 세상 종말의 징조를 자기 백성들에게 보이실 때에 앞에서 말한 5대 특성이 나타나므로 징조가 발생하면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분별할 수 있도록 암시되어 있다.
(2) 수직성
재림에 대한 징조의 발생이 수평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수직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여러 가지 징조들이 동시 다발적으로 드러나게 된다.
문제는 이와 같은 징조들이 어떤 것은 역사 속에서 반복하여 자연적 발생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징조의 순서에 대하여 궁금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5) 징조의 목적
주님이 가르치신 징조의 목적은 무엇일까? 저자는 징조는 신앙의 영적 성장으로 주님의 재림을 준비하여 신부로 단장할 수 있도록 하는데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하면 주님의 재림을 고대하는 제자들에게 교회의 기둥으로 성장함과 동시에 알곡 성도로 성숙되게 하려는데 있다.
(1) 믿음을 위하여
* 요 4: 48, 53 - 48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표적과 기사를 보지 못하면 도무지 믿지 아니하리라. 53 그의 아버지가 예수께서 네 아들이 살아 있다 말씀하신 그 때인 줄 알고 자기와 그 온 집안이 다 믿으니라.
출애굽 때에 홍해가 갈라지는 표적이나 광야의 만나, 반석에서 나온 물의 목적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믿게 하려 하심이다.
이와 같이 초림 때에도 예수님의 이적과 기사와 표적은 자신이 구약에 약속된 메시아이심을 유대인들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데 있다.
재림 때에도 성경에 예언된 종말의 모든 징조도 성도들로 하여금 주님의 재림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갖도록 하는데 있다. 이처럼 모든 징조는 믿음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불가항력적인 요건들이다.
(2) 교회의 봉사를 위하여
* 마 24: 45-47 - 45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46 주인이 올 때에 그 종이 이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이 복이 있으리로다. 4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의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헨리 디이슨(Henry Thiessen)은 성경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과 전망 속에서 우리에게 봉사에 대한 최대의 자극을 던져주고 있다. (마 24: 45-51, 눅 19: 13, 고전 3: 11-15, 고후 5: 10,11)
우리는 그런 약속과 전망 가운데서 봉사의 거룩한 목적과 계획을 볼 수 있다. (행 1: 8. 15: 13-18, 롬 11: 22-32)
임박한 종말의 징조를 발견한 성도들은 더욱 열심을 다하여 주의 일에 힘쓰며 봉사하고 충성하며 헌신하기를 쉬지 않게 될 것이다.
즉,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히 10: 25)’는 히브리서 기자의 권면을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3) 빛의 자녀로 살게 한다.
* 살전 5: 1-6 - 1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2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알기 때문이라. 3 그들이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임신한 여자에게 해산의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갑자기 그들에게 이르리니 결코 피하지 못하리라. 4 형제들아 너희는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둑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우리가 밤이나 어둠에 속하지 아니하나니 6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정신을 차릴지라.
바울 사도의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빛의 아들들과 어두움의 아들들을 구별하여 부르는 호칭으로부터 구분하여 엄격한 분리를 살펴볼 수 있다.
따라서 종말의 징조를 보이는 것은 빛의 아들, 낮의 아들을 위한 진심어린 심정으로 오직 깨어 근신하여야 할 것을 권면하는데 있다.
2. 징조에 대한 반응
1) 무관심한 교회
* 계 3: 20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지도 아니하고 덮지도 아니하는 미지근한 신앙으로 작금의 현대교회와 흡사하다.
주님이 문 밖에서 서서 문을 두드리고 계시지만 문을 열어 맞아드리지 못하는 무관심한 교회였다.
2) 광신적인 교회
* 살후 2: 1-2 -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영으로나 또는 말로나 또는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라.
본문은 데살로니가 교회가 주님의 재림에 대한 소문을 듣고 과민하게 반응하여 마음이 흔들리거나 두려워하는 광신적 반응을 나타내었다.
우리는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고 할지라도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의 말에 귀를 기우리고 내일 주님이 오실지라도 오늘은 내게 맡겨진 임무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성도들이 되어야 한다.
3) 충성스런 교회
* 계 3: 11 - 내가 속히 오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계 3: 8)을 지켜나간 교회(계 3: 10)였다. 무엇이 이런 칭찬을 듣게 하였는가?
그들은 작은 능력으로 땅 끝까지 이르러 복음을 전파한 사역을 감당한 교회였다. 그러므로 바른 종말을 삶의 방편으로 삼아 충성 봉사하는 성도들에게는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