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애예술인 인터뷰, 오티즘 감각으로 창작하는 화가 이규재
화가 이규재. ©이규재
오티즘 이해하기
“자폐성발달장애입니다. 검사 결과를 종합해 보면 인지기능 중 공간지각력이 매우 높게 나오는 것을 보니 교육이나 학습 습득 효과가 높을 것이고….”
뭐라, 뭐라 이어지는 의사의 설명이 아득히 멀어져 들리지 않는다.
자폐, 자폐 스펙트럼, 오 티즘, 발달장애라는 확진을 받은 그날의 충격과 현기증은 아직도 깊이 엄마 가슴 바닥에 새겨져 있다. 그날부터 장애아들을 키우는 엄마가 되어야 했다.
그 당시는 오티즘에 관한 정확한 정보나 부모 교육이 많지 않았던 시절이었고, 주변에서 자폐인을 만난 적도 없는 엄마는 오티즘이라고 진단받은 아들이 성인이 된 모습이 어떤 모습일지가 무엇보다 제일 궁금했다.
다른 엄마들은 진단을 받으면 특수교육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러 다니기 바쁘다던데 엄마는 집 근처 복지관을 오가며 복지관에 다니는 성인 자폐인들의 모습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왜 그것이 그토록 궁금했는지 모르겠지만 규재를 유치원에 등원시키고 곧바로 복지관으로 가서 현관 입구 의자에 앉아 성인이 된 자폐인 살펴보기를 3주 정도 했다. 그러고 나니 조금, 아주 조금 자폐인의 성인기에 대해 이해가 되었고 아들 규재에 대한 교육 계획을 세울 수 있었다.
작품 '별나무입니다 별 주으러 오세요'. ©이규재
자폐아 교육은 치밀하게
규재가 초등학교에 입학해서 특수학급 학생이 되고 통합교육이 시작되었다. 지금도 통합교육의 현실은 제도적으로나 환경적으로나 사회 인식 등이 많이 열악한 상태인데 하물며 20여 년 전인 그때는 어려운 점들이 너무나 많았다.
그 힘든 환경 속에서 전투하듯 온 힘을 쏟아 특 수학급을 끌어가던 특수교사 선생님들의 섬세한 지도로 규재는 조금씩 학교에 적응해 갔다.
규재는 일대일 개별 수업은 가능했지만 원반에서 이루어지는 학급 수업에는 잘 적응하지 못하고 수업 중간에 벌떡 일어나 교실 안을 돌아다니기 일쑤였다. 착석 훈련을 시키려고 생각해 낸 방법은 종합장을 수업마다 마련해 주고 수업 시간에 선생님 말씀을 듣고 생각나는 그림을 그리라는 미션을 준 것이다.
학교에 파견되어 있던 보조 인력 선생님이나 공익요원은 다른 학생에게 지원을 하고 있었고, 규재는 지원 없이 혼자 학급 수업을 해야 했기 때문에 수업에 따른 맞춤교육 지원은 기대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오로지 착석만이라도 가르치고 싶어서 생각해 낸 궁여지책이었다.
작품 '봄을 기다리는 겨울숲'. ©이규재
규재가 좋아하는 그림 그리기
매일 아침 등굣길에 규재에게 똑같은 말을 반복한다.
“규재야, 수업이 시작되면 교과서 꺼내 서 진도 맞게 페이지를 열고 넌! 종합장을 꺼내서 네가 좋아하는 공룡이나 동물 을 그리던지 아님, 선생님 말씀 중에 귀에 쏙 들어오는 단어가 있으면 그걸 예쁜 글씨체로 열 번씩 적어 내려가, 알았지? 알겠어? 엄마가 뭐하라고 했어? 다시 말 해 봐?”
다행히 규재가 손을 움직여 꼬물꼬물 선을 이어가는 선 잇기 놀이나 종이접기를 좋아하는 성향이 반복된 종합장 훈련으로 선이 면이 되고 색이 되고 형태로 발전하게 되었다. 게다가 오티즘의 특성인 좋아하는 일에만 몰두하는 현상이 잘 어우러져서 초등학교 6년은 종합장과 함께 규재 스스로가 자신이 그림을 그리며 느낄 수 있는 즐거움에 대한 감정학습 습득이 이루어지는 시기가 되었던 것 같다.
이런 규재의 학교생활을 눈여겨보던 특수학급 선생님으로부터 그림이 독특하고 예쁘니 미술공모전에 나가 보라는 권유를 받았는데 그땐 오티즘 아들을 키우는 고단한 엄마에게 해주는 위로의 응원으로 알고 ‘어휴, 그림이 저런데 무슨요… 집에는 그림이 낼 만한 게 없으니 학 급에서 그린 거 있으면 선생님께서 흉하지 않은 것으로 제출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라고 말했다. 이것이 규재 그림이 세상으로 나간 첫 번째 나들이였다.
유럽 EKF′s Autistic Children′s Drawing Contest에서 대한민국 학생으로 입상하여 인사동 쌈지길에서 기념전시가 열렸다. 5학년이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규재가 처음으로 자기 이름이 걸린 그림 앞에서 어리둥절하 여 긴장하던 모습이 생각난다.
작품 '슬풀플땐 하늘을 보세요'©이규재
중2병도 미술로 치유
중학생이 되고 중2병이라는 사춘기가 왔을 때, 규재 스스로가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현실을 느끼기 시작하며 ‘이규재는 꼴찌다. 국어도 꼴찌, 수학도 꼴찌, 달리기는 넘어지고 또 꼴찌….’ 라면서 고개를 푹 숙이고 혼잣말로 중얼중얼 반복했다.
꼴찌라는 단어를 학급 친구에게 들었는지 책으로 습득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스스로 힘들어 하는 것을 옆에서 보고 있는 엄마도 함께 침울해지는 날들이었다.
그래도 그림을 그리는 일에는 싫증내지 않고 계속 집중했는데 우연히 제2회 장애인창작아트페어에 출품한 작품 3점 중 2점이 판매되는 믿을 수 없는 소식을 접하며 규재의 꼴찌 중얼거림은 바뀌기 시작했다.
“이규재는 꼴찌다. 국어도 꼴찌, 수학도 꼴찌, 달리기도 꼴찌… 그런데 이규재는 화가다, 상 받았지, 전시했지… 이규재는 작가님이지.”
작품 '은하계 여행'. ©이규재
규재는 그림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알아 가는 자존감과 누군가와 소통하고 싶은 인간으로서의 욕구를 채워 가고 있었다. 인간 누구에게나 있는 인정받고 싶은 인정 욕구가 아들에게도 존재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달은 엄마의 장애감수성에 대한 무지가 미안했고 부끄러웠다. 그 후 꾸준히 전시 활동과 그림 그리기에 집중하며 고등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교감 선생님이나 담임 선생님이 미대 진학을 권유하기도 했지만 엄마가 보는 규재의 그림은 입시 미술교육으로 다져진 기술 높은 그림도 아니고, 그렇다고 미술교육을 받으러 화실에 다녀 본 적도 없어서 미적 공식이 전혀 지켜지지 않은 그림이라 입시라는 허들을 넘을 수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틀에 갇힌 주입된 교육보다는 규재만의 독특한 시선이 위트 있게 표현되는 자유로운 그림이 규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것 이라는 판단이었다.
규재는 고등학교를 졸업 한 후 서울문화재단의 12기 입주작가로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작품 '우리나라 예쁜 숲'. ©이규재
규재와 엄마는 함께 성장중
현재 규재는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서울시향) 소속의 미술작가로 활동 중인데 얼마 전 규재 가 작가로서 작지만 기쁜 결실이 있었다. 「동그라미별」이라는 동화시집을 출간했는데 새로운 창작예술의 시도로 큰 호응을 받았다. 강기화 동화시인이 규재 작품을 보고 영감을 받아 짧은 시로 창작을 한 것이다.
규재는 갓 나 온 「동그라미별」을 손에 쥐고 한참을 쳐다보며 뭔가를 기억하려는 듯 오랫동안 책을 들고 있었다. 이번 작업을 통해 규재가 작가로서 한 뼘 만큼 성장한 듯하다.
출간한 화집 '동그라미별' 표지. ©이규재
올해 규재가 25세가 되었고 전시 경험이 쌓이면서 자기 작품에 대한 애정도 깊어지고 작품 설명도 제법 익숙해졌다. 2년 전 엄마에게 갑자기 찾아온 암 때문에 규재는 많이 당황스러워 했다.
병원 생활로 인한 엄마의 부재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불안해하며 그 좋아하는 그림에 손 도 안 대고 집중력이 떨어지는 상태가 되었었다.
그 일로 엄마는 규재의 청년기, 장년기 그리고 노년기로 이어질 미래에 대해 다시 생각을 정리하게 되었는데 그림을 잘 그린다고, 좋아한다고 그림에 대부분의 시간을 집중하는 지금까지의 생활 패턴은 잘못된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부모가 곁에 있을 때처럼 그림 활동이 부모 사후에도 유지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림이라는 특기보다 더 먼저 선행되어야 하는 것은 자신의 일상을 스스로 꾸려 가며 누릴 수 있는 주도적 일상생활 자립이 우선되어야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규재가 여태까지 그림에 과몰입하며 다소 고립되었던 시간을 줄이고 지역사회 활동 경험을 위해 작은 도서관에서 보조사서로 아르바이트를 하며 문화센터에서 볼링이나 배드민턴 동호회에도 참여하도록 하였다. 물론 활동지원사와 함께하는 지역사회 활동이지만 주변 분들의 응원 덕분에 모두가 함께 누리는 일상의 소중함과 즐거움을 알아 가는 중이다.
그리고 엄마는 아들을 통해 어깨너머로 배운 오티즘 예술의 실체와 엄마가 전공하고 강의하던 교육심리이론을 접목해서 오티즘만의 고유성을 알리는 예술운동을 바르게 확장하고 싶어서 ‘아트블리스’라는 미술전시기획컨설팅 회사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감사하게도 엄마를 격려해 주시는 분들이 많다. 함께웃는재단의 조아라 총장 님의 무한신뢰로 오티즘엑스포 때마다 갤러리 기획을 맡겨 주시고, 한국자폐인사랑협회 김용직 회장님의 전폭적인 믿음과 지지로 협회의 미술공모전과 세계자폐인의 날 기념전시, 그 밖의 미술지원사업의 관리감독을 맡겨 주시고 있다. 맡겨진 모든 일에 엄마는 전력을 다하며 책임을 완수하려고 노력한다.
작품 '해피트리'. ©이규재
엄마가 기획하는 전시에서 규재는 아들이기에 제외시키고 다른 신진작가가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작가 발굴에 힘쓰고 있다. 이규재 엄마가 아닌 김은정으로 장애예술인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을 하면서 힘든 적도 많았지만 올해 세계자폐인의 날을 맞아 장애예술인의 인권 향상에 힘쓴 공으로 보건복지부 장관상을 받았다. 그동안의 활동들이 헛되지 않았음을 인정받은 것 같아서 큰 위로가 되었다.
오티즘의 신경다양성은 훌륭한 예술적 자산이다. 부모 사후에도 규재와 오티즘 작가들 모두가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면서 지역사회에서 일상을 누리며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제도적 시스템을 만들어 가는 것이 엄마로서는 큰 숙제이다.
장애예술인에게 필요한 조력과 지원은 단지 시혜적 복지 차원이 아닌, 당당히 예술인으로서의 권리이며 국가적 책무인 것을 다시 한 번 강변하고 싶다.
작업중인 화가 이규재. ©이규재
이규재
서울문화재단 잠실창작스튜디오 12기 입주작가
서울필하모닉오케스트라(서울시향) 소속 미술작가
서울옥션 블랙랏 작품 등재(2022)
「동그라미별」 화집 출간(이어YO출판, 2024)
2024년 미디어아트 이규재 개인전(SKT 본사 T타워)
2022년 이규재 개인전 Feel Free_보이는 대로 느끼는 대로(대학로 이음갤러리)
이규재 초대전 청년을 말하다(서울시 운영 하이서울유스호스텔 아트월갤러리)
이규재 초대개인전(해외교류작가회)
그룹전
2024년 제주바람전(서귀포 예술의전당), JEJU기부전 봄, 피어나다(서귀포 이중섭미술관창작스튜디오), 面과 形態의 어우러짐 (국립정신건강센터 갤러리H), 새해 새아침전(인사동 리수갤러리) 2023년 서울아트쇼(코엑스 A홀), 아트노마드(유나이티드갤러리), 心象_마주한 시선(KIST 본관 로비갤러리), 아트:광주:23(김 대중컨벤션센터), 청와대 춘추관 특별전시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청와대 춘추관), 제21회 한국섬유미술가회기획전 공감과 소통전(KCDF갤러리 인사동), 러쉬아트페어 특별전(국립수목원 산림박물관 특별전시실), 그림이 있는 연주회(국립중앙박물관 용극장), 서울시 초청 앙코르전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서울시청 시민청 갤러리), 꽃, 틔움전(경기도청 행정도서관 갤러리), 세계 자폐인의날 기념전 세상을 밝히는 명작전(서소문성지 역사박물관), 벗이미술제 수상작전(벗이미술관), 세계 27인의 작가전 뉴욕 기획전 a_Mazed inner Beauty(208 Bowery, New York City), 국립수목원 협업 멸종위기나무 NFT 발행 우리나무 구상나무 (업비트), 세계 27인의 작가전 a_Mazed inner Beauty(성수동 팝업스토어) 2022년 기획전 제주바람전(서귀포 예술의전당), 인천시지원기획전 아름다운 가치(더리미미술관), 특별전 국민 속으로 어울림 속으로 청와대 춘추관), 초대그룹전 한류인기작가전(한국미술역사관), 뱅크아트페어(인터컨티넨탈호텔), 어반브레이크 아트페어 (코엑스 B전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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