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우리를 위해 빌어주소서
1코린 15,51~57; 요한 6장 37〜40
원주의료원 장례식장; 2024.10.31.; 이기우 신부
우리는 오늘, 이화준 보니파시오, 이화진, 이화균 베드로, 김은희 율리안나, 유영예, 허옥봉 아네스, 이길자 레지나, 정훈, 이주호 루피노, 이민호 바오로 신부, 이유호, 이인호 가브리엘, 이규호 바오로, 박혜영 아네스, 김은하 가브리엘라, 탁혜인, 이유나, 정통규, 정민규, 김효은 등 유가족들의 어머니이시자 할머니 또는 외할머니이신 김춘자 안나 할머니를 추모하고자 이 미사를 봉헌하고 있습니다. 평생 사랑을 베풀어주신 고인을 떠나보내는 슬픔 속에 잠겨계신 유족들에게 하느님의 위로를 전해 드립니다. 고인께서 천수를 다 누리고 세상을 떠나는 분이라 할지라도, 세상에서는 호상(好喪)이라 하겠지만 육친간의 정을 끊어내는 아픔은 사람이 위로하는 말만으로는 위로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께서 친히 위로해 주시기를 기도하고자 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함께 가까이 지내던 분이 죽으면 “돌아가셨다.”고 말합니다. 어디로 가는지에 대해서는 깊이 생각해 보지도 않고 그렇게 말합니다. 그리고 좋은 곳으로 가시기를 기도하며 추모합니다. 그러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죽은 후에 가는 그 좋은 곳이 어디인지 모릅니다. 그저 막연히 다시는 슬픔도 없고 고통도 없는 데라고만 추측할 뿐입니다. 불자(佛子)들은 그 좋은 세상이 극락세계라고 믿고 있고 죽은 이들의 장례예절을 정성껏 바칩니다. 그들에게 이 가르침을 주신 부처님께서는 성현이시지만 어디까지나 하느님이 아닌 사람입니다. 그러니 그분이 주신 가르침에는 막연한 희망이 깃들여 있을 뿐입니다. 유림(儒林)들은 사후의 세계를 믿지도 않으면서 죽은 조상들의 제사에는 온갖 정성을 다 기울였습니다. 2백여 년 전 천주교인들은 조상 제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온갖 고초를 겪어야 했고 제사는 오로지 천주님께만 바쳐야 한다고 믿었다는 이유로 박해를 받아야 했습니다. 지금은 연도를 바치며 죽은 이들을 위해 정성을 다하는 천주교 상장례를 부러워합니다.
불자의 시조이신 부처님이나 유림의 시조이신 공자님께서 성현이시지만 어디까지나 사람이었던 것과 달리, 그리스도 신앙인들이 구세주로 믿는 예수님께서는 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천지창조 이전부터 창조주 하느님 곁에서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므로 사후에 우리 인간들이 가게 될 내세를 직접 겪으신 분이십니다. 다른 어느 누구도 죽음은 물론 사후 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채 죽음에 대해서 추측성 희망사항을 가르쳤을 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살다가 오신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입만 열면 열심히 아주 구체적으로 알려주셨습니다.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하고, 이웃을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치셨습니다. 아무나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뜻입니다. 또 죽은 후에는 누구든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행한 행적에 대해 엄정한 심판을 거쳐야 한다고도 가르치셨습니다. 얼마나 사랑을 베풀었는지 예외없이 따져 보시겠다고도 예고하셨습니다. 특히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베푼 사랑이야말로 심판의 잣대임을 알려주셨습니다.
고 김춘자 안나 할머니를 위해 기도하고자 이 미사에 참례하고 계신 신자들에게도 죽음과 심판, 천국과 연옥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상기시켜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성사생활을 하는 이유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맞이하기 위해서입니다. 성사야말로 주님의 재림이며 발현입니다. 그러므로 성사생활을 하는 신자들은 살아서 이미 천당을 맛보고 있는 셈입니다. 주님께서 계신 곳이야말로 천당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살아있는 동안 성실한 성사생활을 하다가 죽음이 임박하여 병자성사까지 받고 죽은 후 장례기간 동안 신자들의 연도를 통해 남아있던 죄와 허물까지도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용서를 받고 나서 장례미사까지 받으며 노자성체를 영하고 세상을 떠났으면, 예수님께서 교회에 위임해 주신 권한에 따라서 천당에 들어간 것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심판을 삼일장 동안 받은 연도의 은총으로 무사히 통과했다고 보아야 한다는 뜻입니다.
모레 장례미사에서 사제는 고별식을 통해 이런 찬미 기도를 고인을 위해 바칠 것입니다.
† 오소서, 하느님의 성인들이여, 마주 오소서
이 교우를 지극히 높으신 주님 앞에 바치소서.
이 교우를 부르신 그리스도님, 이 교우를 받아들이소서.
천사들이여, 이 교우를 아브라함 품으로 데려 가소서.
주님 그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교회에 위임된 거룩한 권한으로 장례미사의 주례사제는 고인을 하느님의 성인들과 그리스도와 아브라함의 도움으로 영원한 빛이 비추이고 영원한 안식이 기다리고 있는 천국으로 보내드리는 것입니다.
교회에 위임된 그 막강한 권한이란 또한 막중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 수제자 베드로에게 천국의 열쇠를 맡기시며 이렇게 위임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내가 명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가르쳐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으리라. 너희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 풀 것이요,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맬 것이니라.” 그러니 교회에 위임된 거룩한 권한으로 장례미사의 주례사제는 고인을 성인들이 기다리고 예수님께서 계신 천국으로 보내드린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교우 여러분! 삼일장 동안 고인을 위해 연도를 열심히 바쳐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장례미사 후에는 천국에 들어가신 고인께서 오히려 남아있는 우리를 위해 전구해 주시기를 청하시기 바랍니다. 사심판과 연옥의 기간은 삼일장 기간이면 족합니다. 하느님의 자비하심을 믿으십시오. 언제까지나 이미 천당에 올라가신 고인들을 연옥으로 끌어내리시렵니까?
예수님께서는 “아버지 나라에는 있을 곳이 많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사람이 다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뜻이기도 하겠습니다만, 천주교 신자들이 천당에 들어갈 생각보다는 굳이 연옥부터 무기한으로 가려고만 드는 데 대한 경고로 들리기도 합니다. 저마다 천당은 겁이 나서 미루고 연옥에만 머물려고 하니, 천당이 텅텅 비었다는 뜻으로 알아들을 수도 있는 말씀입니다. 하느님 나라, 즉 천당에 들어갈 수 있도록 지금부터 천당의 생활양식으로 살아가십시오. 우리가 미사 중에 듣는 복음 말씀이 다 현세의 하느님 나라를 위한 길잡이입니다.
고 김춘자 안나 할머니께서 천국에 들어가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영원한 생명으로 부활하시어 우리를 위해 빌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이 기도의 지향으로 유가족 여러분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고인의 장례를 잘 치르시고 기일과 명절 때는 물론, 평소에도 고인의 영혼과 기도로 통공하시기 바랍니다. 내일이 바로 이 통공의 신비를 기리는 모든 성인 대축일입니다. 통공이야말로 믿는 이들의 특권이자 은총입니다. 죽음은 믿는 이들에게 있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삶으로 옮아감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