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라지꽃밭
이윤학
접어놓은 껌 종이를 펴 냄새를 맡곤 하는 소녀에게
도라지꽃이 피어난 꽃밭 앞에 쭈그려 앉은 소녀에게
아직도 집 떠난 엄마 냄새가 나냐고 물으려다 말았다
이곳은 두 마리 분의 개똥을 내다 버린 공터였다 말을
못하는 막내 이모를 위해 돌아가신 할머니가 만든 도라지
꽃밭이었다 흰색 보라색 낮 별들이 무슨 죄를 짓고
하늘에서 추방된 곳이라 소녀에게 말할 수 없었다
새카만 말들을 만드는 벌을 받는 곳이라 말할 수 없었다
까맣게 탄 소녀의 얼굴이 눈물범벅이 되었다
한순간만 기억나는 뙤약볕이 이 세상에 존재했다 활짝 핀 낮 별들이
붉은 눈을 비비며 우는 소녀와 태양뿐인 하늘을 지켜보았다
시집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2021. 간드레 시 01
이윤학 시인
1965년 충남 홍성 출생. 동국대 국문과 졸업. 1990년 《한국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시힘 동인. 시집 『먼지의 집』 『붉은 열매를 가진 적이 있다』 『나를 위해 울어주는 버드나무』 『아픈 곳에 자꾸 손이 간다』 『꽃 막대기와 꽃뱀과 소녀와』 『그림자를 마신다』 『너는 어디에도 없고 언제나 있다』 『나를 울렸다』 『짙은 백야』 『나보다 더 오래 내게 다가온 사람』 장편동화 『왕따』 『샘 괴롭히기 프로젝트』 『나는 말더듬이예요』 『나 엄마 딸 맞아?』 등을 펴냈다.
김수영문학상. 동국문학상. 불교문예작품상. 지훈문학상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