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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inem-Crack A Bottle
방학을 맞아 한국에 돌아온지도 두 달이 다 되어갔다.
8월 중순에 개학인데 무슨 생각인지 정아는 안신우를 아직 만나보지도 않았다.
그를 만나러 온 거였으면서 연락도 하지 않다니 옆에서 보는 나로서는 답답한 일이었다.
“콘서트 가자.”
“무슨 콘서트?”
“안신우 꺼. 다음 주 토요일이야. 두 장 예매했어 이미.”
나는 굳어져 있는 정아에게 주머니에서 티켓 한 장을 꺼내 손에 쥐어주었다.
정아는 도대체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건지 기뻐보이기는 커녕 겁에 질린 눈빛이었다.
“너 안 보고 싶어?”
“다른 애랑 가면 안 돼? 나 다음 주 토요일 날 과외 있어.”
“과외 취소하고 가면 되잖아. 몇 번 있는 콘서트도 아니고, 예매하기도 엄청 어려웠단 말이야.”
한숨을 푹 내쉬더니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는 그녀였다.
돌아가기 거의 이주일 정도가 남은 시점 콘서트가 열렸다.
안신우가 얼마나 유명한지는 콘서트 장의 사람 수를 보고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꺄악 꺄악 거리는 여중생들부터 맨 앞 줄 스탠딩 석에서 굵은 목소리로 소리를 지르고 있는 20대 30대로
보이는 듯한 남자들까지.
콘서트는 단 5분 만에 매진되었다고 한다.
(평소에 클릭질을 좀 잘하는 덕분에 다행히도 예매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았다.)
수십 개 쯤 되보이는 조명은 곧 안신우가 설 큰 무대를 화려하게 비추고 있었다.
정아는 화장실에 잠시 갔다 오겠다고 하며 자리를 잠시 비웠다.
사람들 사이를 뚫고 지나가려면 여간 고생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리고 그녀는 10분 후 창백한 낯빛으로 돌아왔다.
그 짧은 시간 안에 얼굴이 누렇게 떴다.
“속 안 좋아?”
“응......... 아침에 밥을 잘 못 먹었나봐.”
“토했어?”
“조금.”
그를 보기가 그토록 긴장되었나 보다.
나는 정아의 마음을 이해할 수는 없었지만 정아가 오랜만에 보는 그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의 노래는 지겹도록 수없이 반복해서 들으면서도 그의 사진이나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모습은 절대 안 보는 그녀였다.
어쩌면 정아는 그가 어떻게 바뀌었는가를 보고 싶지 않았는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사람도 조금씩 변하기 마련이니까.
그리고 4년이란 시간은 누군가를 변화시키기엔 충분했다.
나는 잔뜩 불편해 보이는 정아의 손을 꽉 잡고 콘서트 막이 열리기만을 기다렸다.
어느 순간 콘서트 장의 모든 불이 꺼지자 사람들은 속닥거림을 멈춘 채 숨을 죽였다.
그리고 곧이어 ‘이------------------------’ 하고 아주 큰 싸이코적인 하이톤이 울려 퍼졌다.
나는 귀가 아파서 얼굴을 찡그렸는데 사람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 함성을 내질렀다.
무대 위에서 눈을 부시게 하는 폭죽이 터져 나오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만 팔천 개의 눈동자가 그 남자 하나만을 향했다.
존재 하나만으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뒤흔들 수 있는 사람은... 안신우였다.
데뷔 3년 만에 신인상부터 시작해 모든 상이란 상은 다 갈아치운 힙합계에 한 획을 그은 사람.
하지만 싸이코적인 퍼포먼스와 거친 언행으로 처음엔 온갖 질타란 질타는 받은 사람.
연예인은 착한 이미지를 갖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을 뒤집어 버린 사람.
수많은 스캔들과 루머에 휘말리면서도 눈 한번 깜짝 안한 사람.
Look, if you had one shot, or one opportunity
그는 관객을 향해 비아냥 거리듯이, 껄렁껄렁한 랩으로 시작을 하고선 씨익 웃었다.
마이크를 잡은 그는 마치 온 세상이 자기만의 것인 것처럼 무대를 휘젓고 돌아다녔다.
그의 음악이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강하게 울려 퍼졌다.
드럼 비트에 몸을 흔들며 손을 허공에 흔드는 그를 따라 모든 사람들이 리듬을 탔다.
콘서트가 시작한지 단 삼 분만에 그는 이미 분위기를 휘어잡고 있었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야 그의 치솟는 인기 비결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의 카리스마는 압도적이었다.
게다가 흠잡을 데 없는 랩과 그에 따른 몸의 유연한 움직임들은 나로서 계속 감탄하게 만들었다.
약간 낡아 보이기까지 하는 헐렁한 회색 티셔츠를 입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잘 만들어진 몸은 밖으로 그대로 비춰졌다.
멀리서였지만 손을 흔들 때마다 움직이는 두꺼운 팔 근육에 정신을 놓고 말았다.
그의 강한 인상과 완벽하게 다듬어진 몸은 이미 나 뿐만이 아닌 많은 여자들을 긴장시키고 있었다.
가장 싫어하는 스타일인, 툭 건들면 내려앉을 것 같은 그의 힙합 청바지조차 지금 이 순간은 멋있어 보였다.
텔레비전으로 봤을 땐 모자 밑으로 쓴 하얀 두건도 그토록 촌스러워 보였는데 막상 콘서트장에 와보니
사람들이 그 두건에 열광하는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여성 매거진에 유일하게 10주 연속으로 뽑힌 가장 섹시한 남자...
모 인터넷 사이트 설문조사에서 남자들이 닮고 싶어하는 사람 4주 연속 1위....
여대생들이 뽑은, 결혼은 싫지만 연애는 하고 싶은 남자 1위.....
이유 없이 뽑힌 게 아니었다.
His palms are sweaty, knees weak, arms are heavy
There's vomit on his sweater already, mom's spaghetti
He's nervous, but on the surface he looks calm and ready
To drop bombs, but he keeps on forgettin
What he wrote down, the whole crowd goes so loud
He opens his mouth, but the words won't come out
He's choking, how everybody's joking now
The clock's run out, time's up over, bloah!
Snap back to reality, Oh there goes gravity
Oh, there goes Rabbit, he choked
He's so mad, but he won't give up that
Easy, no
He won't have it , he knows his whole back's to these ropes
It don't matter, he's dope
He knows that, but he's broke
He's so stagnant that he knows
When he goes back to his mobile home, that's when it's
Back to the lab again yo
This this whole rhapsody
He better go capture this moment and hope it don't pass him
그는 관객들을 향해 손가락질을 하며 또박또박 한 글자씩 발음했다.
정확하게 들려오는 단어 하나 하나가 귀에 강하게 인식되었다.
그리고 귀를 타고 들어간 그의 목소리는 밑으로 내려가 내 심장까지 울렸다.
발 끝부터 머리 끝까지 소름이 돋았다.
이제까지 가 보았던 콘서트 중에서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매 콘서트마다 적어도 육천 명의 관객을 모으는 그가 이해가 되었다.
“나 잠깐만 화장실 좀 다녀올께.”
첫번째 노래가 끝나기도 전에 정아는 다시 또 안 좋은 표정으로 내 어깨를 만지곤 자리를 떴다.
정아의 힘 없는 뒷모습과 무대를 강렬하게 압도하고 있는 안신우의 모습이 대조적이었다.
이 둘은 고등학교 때 어떤 관계였을까 문득 궁금해졌다.
정아 말로는 단순한 짝궁이었다는데, 그의 얘기를 할 때의 정아의 표정으로 봐서는 그렇지 않아 보였다.
깜깜한 뒷편으로 정아의 모습이 사라지고 나는 다시 그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고등학교 때 자신이 이만큼 클 것이라는 것을 알았을까?
두번째 노래가 끝나도 돌아오지 않는 정아가 걱정되기 시작했다.
그녀의 빈 자리를 보고 있으니 마음이 허해졌다.
설마 계속 토하고 있는 건 아니겠지 생각하며 핸드백을 챙겨 급하게 화장실로 뛰어갔다.
“정아야! 너 여기 있어?”
화장실 안에는 칸막이가 끝없이 늘어져 있었다.
확실히 콘서트 규모도 크다 보니 이런 곳의 화장실도 다른 곳에 비해 확연히 넓었다.
나는 쩌렁쩌렁 울리는 내 목소리에 순간 움찔하며 대답 없는 그녀를 찾아 계속 돌아다녔다.
칸막이 하나하나를 지나가며 밑으로 대충 훔쳐봤지만 그 어느 곳에도 없었다.
별 이상한 상상이 다 들어 심장이 쿵 가라앉았다.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해 받지만 전원이 꺼져있다는 여자의 목소리만 들려 왔다.
나는 아예 밖으로 나와 정아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날이 어둑어둑해져서 멀리 있는 무채색 건물들도 흐려 보였다.
지금 이 상황에 그녀를 찾는 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다.
시계를 보니 벌써 20분이나 지나 있었다.
중요한 노래들을 놓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우선 그녀를 찾는 게 급했다.
여기 온 목적은 안신우라는 사람보다 이정아라는 사람 때문이었으니까.
근처 건물의 경비아저씨에게 가 물었지만 아저씨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그런 아가씨는 보지 못했다고 했다.
밤은 더욱 깊어갔다.
걱정에 불안에 노심초사하고 있는 와중에 잠바 주머니에 넣었던 핸드폰이 울렸다.
“정아니!!”
“나 지금 밖인데.. 너 아직도 콘서트장에 있어?”
정아였다.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커졌다.
“너 어디 있어! 나 지금 너 한참 찾아 돌아다니고 있었잖아! 전화도 꺼 놓고! 어디야!”
“약국 들렸다가 약 사서 먹고 지금 버스 정류장 앞에 벤치에 앉아 있어.....”
“어디 버스 정류장!”
“거기서 조금 멀 거야. 미안한데 나 그냥 집에 갈게. 나 걱정하지 말고 너라도 콘서트 즐겨.”
“야 이정아!”
“내일 전화할게.....”
힘없는 정아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속이 얼마나 안 좋았으면 콘서트 도중에 집에 가야만 했을까.
나는 터벅터벅 다시 콘서트장 안으로 걸어갔다.
아직도 뜨거운 열기는 그대로였다.
정신 나간 듯이 소리지르고 있는 사람들에게 갑자기 이상한 거리감이 느껴졌다.
멍하니 정신을 놓고 있는 데, 그 때 들려오는 그의 목소리는 꺼져있던 내 마음의 불씨를 다시 살려주었다.
사람들이 그토록 열광하는 그의 새로운 히트 곡이었다.
Oooh! Ladies and gentlemen, the moment you've all been waiting for
In this corner, weighing 175 pounds, with a record of 17 rapes, 400
assaults, and 4 murders
The undisputed, most diabolical villain in the world, Slim Shady!
반사회적인 가사, 듣고 있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말투....
그의 입술이 쉴틈 없이 움직였다.
그가 사람들을 향해 몸을 구부려 손을 잡아주자 앞에 있는 사람들은 다들 환호를 지르며 그 쪽으로 모여들었다.
희미한 보라색 조명이 그의 짧은 머리 위로 비춰졌다.
마치 지금 이 모든 게 매끄럽게 연결되는 것이 아닌 딱딱 끊어져서 보여졌다.
머리가 지끈거리며 아파왔다.
So crack a bottle, let your body waddle
Don't act like a snobby model
You just hit the lotto
Uh oh uh oh, bitches hopping in my Tahoe
Got one riding shotgun and no not one of them got gloves
Now where's the rubbers? Whose got the rubbers?
I noticed there's so many of them and there's really not that many of us
And ladies love us and my posse's kicking up dust
It's on till the break of dawn and we're starting this party from dusk
그의 거친 목소리가 왱왱거리며 잡음에 섞여 들려왔다.
콘서트 장의 모든 사람들은 하나가 되어 똑같이 허공에 손을 흔들었다.
얼굴부터 시작해 몸이 서서히 뜨거워졌다.
조명 때문인가 싶어 손을 이마 위에 올려 무대를 봤지만 달라지는 건 없었다.
Back when Andre, the giant, mister elephant tusk
Picture us, you'll just be another one bit the dust
Just one of my mother's son who got thrown under the bus
Kiss my butt lick my wonder cheese from under my nuts
They disgust, me to see the game the way that it looks
It's a must, I redeem my name n haters get murked
Bitches lust man they love me when I lay in the cut
Missed the cut the lady give a raidy some paper cut
Now picture us It's ridiculous you curse at the thought
Cuz when I spit the verse the shit gets worse and worse cause your soft
If I could fit the words as picture perfect, works every time
Every verse, every line, as simple as nursery rhymes
It's elementary the elephants have entered the room
I venture to say with the same repetition is true
Not to mention back with a vengeance, so here's the signal
Of the bat symbol The platinum dude is back on you hoes
관객들을 바라보는 그의 눈빛엔 선과 악이 공존했다.
어떤 메세지를 전해주려 이런 노래들을 부르는 걸까 싶었다.
어떻게 보면 진지한 것 같기도 하고 어떻게 보면 심하게 장난스러워 보였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 ‘장난스러움과 진지함을 구별하려고 하면 내 음악은 재미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래서 그러는 건지 일부러 헤갈리게 감정을 실어 말하는 것 같았다.
지금 이 노래도 어떤 생각을 하면서 부르는 건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다들 이렇게 소주 일곱 잔 반을 먹은 만큼 그의 노래에 취하는 걸 보면
확실히 그의 음악은 어딘가 잡아끄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사회에서 소외된 자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
자신의 낮은 학력 불우한 가정환경 등등을 오히려 드러내며 맘껏 비웃어 보라 했다.
거친 말투와 행동으로 험난한 청소년들이 폭력을 저지르도록 선동하지만 자신은 폭력 따위는 저지르지 않는다 했다.
노래로 자신의 가족들을 비하하는 것에 대해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않았다.
코미디언부터 정치인 그리고 심지어 같은 랩퍼들의 패러디를 서슴없이 했다.
그런 거침없는 음악 때문에 방송 출연 정지를 먹었지만 상관 없다며 항의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비난에도 불구하고 그만큼의 인기를 또 다시 끌어냈다.
사생활을 드러내는 데 거리낌 없어 모든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그의 모든 말 행동 하나하나에 온 국민이 주목했다.
모 방송국에서 그의 삶을 담은 다큐멘터리가 나온 후 영화를 제작하겠다는 제작사들이 넘쳐났다.
가요계가 불황이라는 말을 거짓이라고 증명이라도 하는 듯이 그의 앨범 판매량은 백만 장을 넘어갔다.
나오지도 않은 다음 앨범 선주문만도 육십만 장이었다.
그의 등장, 존재 그 자체가 모든 이에게 충격적이었다.
***
이 근방에서 가장 유명하다는 클럽답게 사람들이 가득이었다.
어두운 조명 밑으로 사람들은 신나게 몸을 흔들어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신경 쓰지 않는 다는 듯 각자 음악에 심취해 리듬을 탔다.
“너 정말 안신우 안 만나고 갈거야?”
내가 답답한 듯 술을 들이키며 소리를 벌컥 지르는 연우를 보며 나는 피식 웃었다.
‘그 녀석이 나를 다 잊어버렸을 것 같아’ 라고 말해야 하는데 그 말이 쉽게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그냥 애매모호한 관계로 남겨 두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특별한 관계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하기 싫었다.
다시 만나도 그가 날 반겨하지 않으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 굉장히 자존심 상할 게 분명했다.
“올해 한국에서 보낼 수 있는 마지막 날인데 술이나 잔뜩 마시자.”
“어이 이정아. 너 그러다 내일 비행기도 못 탄다?”
“어차피 밤 비행기니까 아침에 자면 돼.”
“쯧쯧. 그러다 또 오후 세시에 일어나서 허겁지겁 짐 챙기는 거 아니야?”
“걱정 마세요 아가씨.”
앞에 있는 땅콩과 다른 몇 개의 안주를 먹어가면서 연우와 둘이서 도란도란 얘기를 하고 있는데
귀에서 익숙한 음악이 들려왔다.
나는 아주 짧은 몇 초간 움직임을 멈춘 채로 가만히 있었다.
그런 나를 눈치챘는지 연우는 얼굴을 찌푸렸다.
“안신우랑 너 도대체 무슨 관계였는데! 나한테도 안 말해주고!”
“우리 춤이나 추러 가자.”
나는 안 가겠다는 연우의 손을 끌고 기어코 스테이지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그의 음악에 맞춰 천천히 몸을 움직였다.
그러고 보니 그가 예전에 클럽에서 일한다고 했었던게 기억이 났다.
다른 남자들이 조심스럽게 내 옆으로 다가오는 게 보였다.
나는 그들의 시선을 즐기며 계속 춤을 췄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이 순간을 즐기고 싶었다.
So crack a bottle, let your body waddle.
Don’t act like a snobby model.
You just hit the lotto.
O-oh o-oh, bitches hopping in my Tahoe .
Got one riding shotgun and no not one of them got clothes
Now wheres the rubbers? Whose got the rubbers?
I noticed there’s so many of them
and there’s really not that many of us.
Ladies love us, my posses kicking up dust.
Its on till the break of dawn and were starting this party from dusk.
그의 목소리가 허공에서 잡힐 듯 말 듯 했다.
그만큼 그와 나는 가까이지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다.
이제 와서 부딫치기엔 너무나 다른 인생을 살고 있었다.
눈을 자꾸 가리는 머리카락을 손으로 뒤로 넘겼다.
요 근래 운동을 안한 탓인지 조금씩 숨이 찼다.
가쁜 숨소리가 입술 사이로 흘러나왔다.
서서히 음악이 중반부에 치닫고 있을 때쯤 뒤에서 누군가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그 남자는 천천히 내 허리를 두 팔로 가뒀다.
7cm 하이힐을 신었음에도 불구하고 내 머리는 남자의 어깨까지밖에 오지 않았다.
남자와 둘이 춤 춰 보는 건 오랜만이기에 나는 이 느낌을 깨고 싶지 않아 계속 남자의 춤에 맞췄다.
클럽에 많이 다녀 본 듯 그는 꽤 잘 추는 편이었다.
이런 것에는 익숙치 않아서 나는 곧 그의 리드에 이끌려 갔다.
그는 내 어깨를 잡고 나를 돌려 그를 마주보게 했다.
회색 비니를 깊게 눌러쓴 그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몸을 흔들었다.
지금 이 순간 스테이지에 둘 밖에 없다는 기분이 들었다.
음악은 서서히 끝나가고 있었다.
마지막 드럼 비트가 울려 퍼지고 나와 그는 자연스럽게 멀어졌다.
“누구야? 둘이 잘 추던데?”
곧이어 다른 빠른 테크노 음악이 시작되었다.
연우는 씨익 웃으며 눈짓을 했다.
“그래?”
“다들 너랑 그 남자만 계속 쳐다보던데? 입을 쩍 벌리고.”
“에이 설마.”
“진짜라니까! 너 못 느꼈구나?”
춤 추기도 벅차 죽겠는데 연우가 자꾸 말을 거는 바람에
스테이지로 올라간지 15분 만에 체력이 다 바닥나 버렸다.
대학 막 들어가서 클럽 다녔을 때는 두 시간 연속으로도 출 수 있었는데,
책상 앞에 앉아서 여섯 시간씩 공부하기 시작하니까 체력이 많이 줄었다.
나이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하튼 조금 춰도 피곤한 건 확실했다.
아직 쌩쌩한 연우를 스테이지에 남겨 두고 혼자 내려왔다.
혼자 멀뚱히 테이블에 앉는 것은 뭐해 밖으로 잠시 나갔다.
바람좀 쐴 까 하는 맘에서였다.
진득한 여름 밤바람이 느껴졌다.
습기가 차 뭔가 시원하지는 않은 느낌이었다.
괜히 나왔나 싶어 다시 들어가려는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뒷모습이 보였다.
“임마, 좆 까....”
“진짜라니까? 너 내가 거짓말 안하는 거 알지!”
“나 담배 하나만 던져 줘.”
“옛다.”
“너네 오늘 몸 좀 풀었냐?”
“난 아직 시작도 안 했어.”
“오늘 물 좋던데.”
“존나 좋아. 근데 아까 부킹했던 애들 있지? 걔네 빼고.”
“크크 맞아 맞아.”
건물 계단에 앉아 대화하고 있는 네 명의 남자들이었다.
대화에서 자연스럽게 욕이 섞여 나왔다.
나이가 몇인데 도대체 욕을 쓰나 그저 한심할 뿐이었다.
그 가운데에는 아까 봤던 회색 비니를 쓰고 있던 남자가 있었다.
담배를 입에 꼬나물고 픽픽 연기를 뿜어내고 있었다.
내가 그들을 쳐다보는 것을 느꼈는지 그 중의 한 명이 나를 보았다.
“어 아까 그 아가씨!”
“어 진짜 진짜?”
순식간에 구경거리가 된 듯했다.
당황스러워서 들어가려고 발걸음을 돌렸는데 그 회색 비니와 눈이 마주쳤다.
아까는 너무 눌러쓰고 있어서 눈을 볼 수가 없었는데,
이렇게 보니......
“너...................”
그는 손가락을 뻗고는 멍한 표정으로 날 가리켰다.
그리고는 담배를 길가에 던져 버리고는 일어서서 천천히 내게 걸어왔다.
“그냥 닮았다고만 생각했는데........... 너였을 줄이야..........”
공인이어서 행동 하나하나를 조심해야 할 그가 여기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되었다.
마침내 내 앞에 선 그는 믿지 못하겠다는 듯 날 쳐다봤다.
“너 나 기억하지?”
나는 그가 나를 기억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더욱 놀라울 뿐이었다.
막상 이렇게 마주보니 입이 열리질 않았다.
춥지도 않은데 온 몸이 굳어져 버렸다.
“이정아 맞지?”
나는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옛날에는 내가 더 말을 많이 했던 것 같은데 상황이 뒤바껴 버린 느낌이었다.
그는 너털웃음을 짓고는 다시 나와 눈을 마주쳤다.
여전히 흐리멍텅한 두 눈동자.....
하지만 전체적으로 느껴지는 강한 인상.....
“그대로구나. 너.......”
내 중얼거림에 그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는 듯 눈을 깜빡였다.
“무슨 말 부터 해야할 질 모르겠네. 하하......”
“마찬가지야.”
“안신우..........”
반가워?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너 유명해 졌더라?
그동안 어떻게 지냈니?
가족들은 잘 지내니? 지금 어디 사니?
여자친구는 있니?
수많은 질문들이 그저 입가에만 맴돌았다.
“꼭 다시 한 번 만나고 싶었어..........”
이 지독한 우연에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그 한 마디 뿐이었다.
첫댓글 소설은 끝났지만 이둘의 이야기는 이제 시작인거 같아요 ^^ 지와니님 글실력은 역시 변하지 않으신듯 ♥깔깔
괜찮아요 신우번외써요>_<! 재밌어요, 재밌어.. 에헤 이번에 정아를 사고내보세요 =ㅅ=.. 죄송합니다; 아무튼 신우번외 써주세요!
밑에서 보구 번외편 보러왔는데 역시 재미있네요!!!!!!!!!!!!지와니님은 소설 진짜 잘쓰시는거같아요~~~앞으로도 기대할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