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은사역의 어린 왕자
사람을 안다는 것은 어느 만큼이어야 할까.
평생 인생길을 같이 한 92세 내 어머니가 요즈음 쏟아내는 이야기를 들으면 우리는
누구와 산 것일까 의문스럽다. 자식도 잘 모르겠고 30년 넘게 한 동네에서 산 이웃도
까마득히 모르겠으니 이제는 누구든 더 알려고도 하지 않고 그냥 소통하는 만큼만
나누려고 한다. 내가 정한 가치만큼 행동하고 살기로 하고 사니 신간이 편하다.
나를 싫어하거나 좋아하거나가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좋고 나쁨이 내 인생을
가지고 흔들지 않는다. 거짓됨도 보이고 숨은 친절도 보인다. 당기고 다가갈 일이
없다. 껍데기에 대고 속내를 보이기도 싫고 문 닫은 가슴에 대고 웃는 것도 허무하다.
틈새로 빛이 보이면 오히려 그만큼으로도 좋다 나는. 내 친구와 이웃은 내 안에 상주하는
성령이다. 나는 그 친구의 속삭임대로 행동하려고 노력할 뿐이다. 그냥 좋다.
설 전에 한가할 때 제주로 3박 4일간 여행을 다녀왔다. 아들네 가족과 우리부부, 세대별로, 성별로
나뉘어 공감하며 충분히 교감하여서 만족스럽게 지내다가 왔다.
설 당일에는 차례 미사를 마치고 점심만 먹기로 했다. 며느리는 친정으로 보내고
아이들이 놀기를 바라니 아들 보호자와 딸네 가족은 저녁을 같이 먹게 되었다.
나는 관습으로 만들던 음식을 모두 없앴다. 반찬으로는 더덕과 오이, 달래를
매콤하게 초무침 한 것과 콩나물, 거기다가 두릅 몇 개를 준비했다. 입맛을 개운하게
하는 반찬이다. 한우고기와 어울리는 갖은 야채로 부추와 쪽파, 참나물은 생 것으로,
깻잎절임과 양배추 데친 것은 쌈용으로 마련했다. 거기다가 매생이 굴 떡국으로 상을
차렸다. 가짓수를 줄이고 실속있고 준비하기 편하게 했다. 수고대비 만족도가 훨씬 높았다.
오미자청에 담근 연근을 고기에 올리면 식감이 좋다. 아프지 않고 고단하지 않게 명절을
보냈더니 다음날에도 회복할 필요가 없어졌다.
영상온도라는 기상통보를 보고 봉은사역으로 걸어서 갔다. 지하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봉은사부터 들렀다. 홍매 두어송이가 벙글었고 연등꽃은 화려하기 이를데 없다.
제주의 홍매와는 달리 피기가 힘들다는 보고다. 꽃들의 송신 속도가 무섭게 빠르다.
벌써 올 들어 내가 좋아하는 홍매를 두 번이나 만났으니 이 또한 홍복이다. 나는 색감으로도
행복이 오락가락 한다.
이번에는 봉은사역 2번 입구로 들어간다. 백화점과 코엑스몰, 9호선 지하철로 이어지는
중심 광장에는 발걸음 소리가 섞이고 누군지도 모를 사람의 어깨가 부딪치고, 볼 의지가
없더라도 마주치는 얼굴을 스쳐 보아야 하는 장소가 된다. 알 듯 모를 듯 얼굴을 보면서
사람을 느끼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늘은 번잡하지 않다. 거의 빈 상태다.
나는 이미 입구에서부터 김포공항으로 가던 날의 설렘을 기억에서 불러냈다. 지하도에서
공항까지 이어지는 길이라 미리 공항을 느끼는 곳이다.
그곳에는 임도현 작가의 조각작품이 있다. 세 개의 스텐레스 조형물이 한적하게 자리를 잡고
조명을 받는다. 제목이 ‘인 in 人’이다. 작품이 나를 부른 것처럼 만남과 소통을 다루고 있다.
가운데의 정면 두상은 골격만 스텐레스로 만든 것인데 나에게 묻는다.
“내가 누군 줄 아시겠어요? 그냥 사람이란 것은 알 수 있겠지요?”
“녜, 그렇지요. 아무 개성도 없는 그냥 사람 맞아요.”
“저 옆 사람은 아시겠어요? 좀 더 구체적이지만 골격이 가려져서 친밀감도 커졌지요?
과묵해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눈은 떴어요.”
“그렇군요. 누구든 그 자리를 지날 때 눈을 떠야 하니까요.”
아 나는 그 사람의 조형물 속에 빛을 넣어서 사람 안에서 빛이 새어나오도록 하고
싶어졌다. 뜬 듯 만 듯한 눈이다.
“다른 편의 사람은 어떤가요?”
“옆 모습의 윤곽만 사람이군요. 볼륨감도 없어요. 이마를 거쳐 잘 생긴 코선을 지나
뾰족뾰족한 입술 윤곽을 거쳐 턱선을 지나면 사람을 느껴요. 그러나 그것은 그냥 선입니다.”
정말 생각과 느낌이 전달되지 않는 사람들이 부딪치는 곳이지만 다양한 사람의 기억과
현실적 감정이 그곳에서 쏟아져 나오기도 할 것이란 생각이다.
괜히 트집 잡히기도 하고, 이유없이 실실 웃기도 할 것이고, 나처럼 사막에서오아시스를 찾은
듯 몰입하며 작품과 대화를 나누기도 할 것이다. 현대를 살아가는 도시인들의 표상이
거기에 작품으로 나와 있다.
나도 현대를 사는 도시인이다. 그 작품에는 주름이 보이지 않지만 나의 얼굴에서는 주름이
보이고 내 몸에는 온기가 흐른다. 스텐레스와는 다른 살아있는 기운이 흐른다. 작품은 항구히
변하지 않지만 나는 변한다. 소멸로 가고 있다. 작품에 빛을 넣고 싶다는 욕구가 생긴다.
다시 2번 출구로 나와 걷는다. 커피빈 찻집에서 새나오는 커피향이 내 안의 분위기를 살려낸다.
향기의 힘에 얹혀 경기고등학교 울타리를 끼고 오르막 언덕길을 걷는다. 어느새 등줄기에
진득하게 땀이 밴다. 오늘도 영육간의 운동은 성공이다.
결국 짧은 인생을 건강하게 살려고 노력하며 글을 쓰는 것이 길게 사는 길이다. 도시의 지하도,
그 사막에는 어딘가에 우물이 숨어있다. 나는 목이 마르도록 걷다가 우물을 찾아 목을 축이고
돌아오는 길이다. 길은 우중충힌데 마음 풍경은 노을 빛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