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미사 강론
송영진 모세 신부 ・ 13시간 전
URL 복사 이웃추가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미사 강론>
(2026. 5. 29. 금)(요한 12,24-26)
<불사의 희망>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요한 12,24-26).”
1) 구약성경 지혜서에 있는 다음 말을
순교자들에게 그대로 적용할 수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처럼 보이고,
그들의 말로가 고난으로 생각되며, 우리에게서 떠나는 것이
파멸로 여겨지지만, 그들은 평화를 누리고 있다. 사람들이
보기에 의인들이 벌을 받는 것 같지만, 그들은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들은 단련을 조금 받은 뒤 은혜를
크게 얻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들을 시험하시고, 그들이
당신께 맞갖은 이들임을 아셨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용광로 속의 금처럼 그들을 시험하시고, 번제물처럼 그들을
받아들이셨다. 그분께서 그들을 찾아오실 때에
그들은 빛을 내고, 그루터기들만 남은 밭의 불꽃처럼
퍼져 나갈 것이다(지혜 3,2-7).”
순교는 ‘불사의 희망’과 믿음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내세와 영원한 생명을 안 믿는 자들의 눈에는 순교자들이
어리석은 사람들로 보이겠지만, 진짜로 어리석은 자들은
‘안 믿는 자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만, 또 허무하게 사라질 것들만 욕심내고
집착하면서 하루살이처럼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희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보이는 것을
희망하는 것은 희망이 아닙니다. 보이는 것을
누가 희망합니까?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희망하기에 인내심을 가지고 기다립니다(로마 8,24-25).”
만일에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하고, 그게 이 세상의
전부라면, 믿음과 희망은 쓸모가 없습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세상이 존재하고 있음을
믿고 있고, 그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어 누리기를
희망하고 있습니다.
그 믿음과 희망이 고난을 참고 견디는 이유이고, 힘입니다.
2) 순교는 육신의 목숨을 바쳐서
영혼의 영원한 생명을 얻는 일입니다.
“정녕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사람이 제 목숨을 무엇과
바꿀 수 있겠느냐?(마태 16,25-26)”
따라서 순교는 모든 것을 바쳐서 모든 것을 얻는
일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순교자들이 박해자들에게 목숨을 빼앗기는 것으로
보이지만, 사실은 하느님께 목숨을 바치는 것입니다.
<또 순교자들이 목숨을 ‘버리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데,
버리는 것이 아니라 바치는 것입니다.>
순교는 수동적으로 ‘당하는’ 일이 아니라,
능동적으로 실행하는 일입니다.
그래서 위대한 일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지금 겪는 일시적이고 가벼운 환난이 그지없이 크고
영원한 영광을 우리에게 마련해 줍니다. 보이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우리가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보이는 것은
잠시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합니다. 우리의 이 지상
천막집이 허물어지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건물 곧 사람
손으로 짓지 않은 영원한 집을 하늘에서 얻는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이 천막집에서 우리는 탄식하며, 우리의
하늘 거처를 옷처럼 덧입기를 갈망합니다(2코린 4,17-5,2).”
3) 야고보 사도는 신앙인의 ‘인내’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 여러분, 주님의 재림 때까지 참고 기다리십시오.
땅의 귀한 소출을 기다리는 농부를 보십시오. 그는
이른 비와 늦은 비를 맞아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립니다. 여러분도 참고 기다리며 마음을
굳게 가지십시오. 주님의 재림이 가까웠습니다(야고 5,7-8).”
곡식이 익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농부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열매를 얻을 때까지 참고 기다리는 것은
신앙인이라면 누구나 하는 일이고,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은 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할 수 있으니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순교만 놓고 생각하면, 모든 신앙인이 다 순교자가 되어야
하는 것도 아니고, 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순교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 일입니다.
순교는 옛날이야기만은 아니고, 오늘의 우리 일입니다.
그리고 순교는 이론이 아니라 현실입니다.
초인적인 모습으로 순교한 분들의 영웅적인 이야기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신앙을 증언하고 복음을 선포한
분들의 작은 이야기들도 생각해야 합니다.
지금 자신이 신앙인으로서 실행하고 있는 작은 일들이
쌓여서 위대한 열매가 된다는 것을,
즉 영원한 생명이 된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누구든지 작은 씨를 심는 것과 같은 작은 일로 시작하고,
진행하다가, 끝까지 가서 보면, 사람의 생각을 초월하는
위대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미사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