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예세상 카페지기이신 삼도헌교수님의 페북에 올려진 글을 가져와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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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 한글 현판에 관한 논쟁을 보면서··· (조금 길지만 보시고 고견을 말씀해 주세요)
1. 왜 광화문 현판인가
지난 달 광화문 광장에서 방탄소년단(BTS)이 펼친 공연을 세계인이 지켜봤다. 이 공연의 뒷 배경이 됐던 광화문. 그 광화문의 상징물인 ‘광화문 현판’이 요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주지하듯이 현판은 어떤 공간을 상징하는 명칭을 나무에 새겨서 걸어놓은 것이다. 각 개인에게 이름이 있듯이 현판도 건축물의 중심에 그 건물의 이름과 그 건물이 상징하는 의미를 담아 걸어놓은 상징물이다. 대부분의 현판 글씨는 그 시대를 대표하는 명필이 썼고, 간혹 국왕의 친필 등 그 건물의 주인이나 그 건물을 상징할만한 인물이 썼다.
때문에 비석과 현판은 서예문화에서 무척 중시하는 편이다. 중국의 심장부 자금성 건청문에는 한자와 만주어가 병서되어 있다. 청나라가 중국의 마지막 황제국가가 되면서 그들이 남긴 유산이다.
이처럼 어떤 현판에는 치욕의 역사가 남아있고, 어떤 현판에는 승전의 역사가 담겨있다. 두 가지 모두 부인할 수 없는 역사이고, 역사를 어느 한 부분만 취사선택할 수는 없다.
다시 광화문 현판으로 화제를 돌려보자.
광화문에 한글 현판을 ‘새로 달자는 주장’과 ‘새로 한글 현판을 다는 것이 문화유산의 훼손이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그런데 이런 해묵은 갈등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어제는 맞고 오늘은 맞지 않다”, “어제는 맞지 않고 오늘은 맞다” 이런 주장은 정권이 바뀔때마다 왜 반복되는 것일까.
문화유산을 두고 벌어지는 이러한 논쟁은 누구를 위한 논쟁인가. 정권을 위해서인가. 문화유산을 위해서인가. 우리 모두 이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인 광화문현판은 여러 번 수난을 겼었다.
먼저, 광화문 현판의 수난사에 대해 간단히 살펴보자.
2. 광화문 현판 수난사
*임진왜란 때 - 경복궁 전체의 소실로 고종 때 중건
*일제강점기 때 - 경복궁 정문인 광화문을 궁의 동쪽으로 옮기고 그 자리에 조선총독부 청사를 세움
*6·25 때 – 화재로 광화문과 광화문 현판 전소
*1968년 - 박정희 전 대통령이 원래의 위치에 광화문을 재건하고 ‘광화문’ 한글 현판 설치- 친필로 쓴 한글 현판부착(한글 전용 5개년 계획의 원년)
*2006년 - 노무현 정부 – 박정희 친필 광화문 한글 현판 교체- ‘광화문 제자리 찾기’ 명분으로 광화문과 함께 철거.
(유홍준 문화재 청장은 한글 현판이 독재자의 글씨라고 교체 제기, 정조 임금의 글씨를 집자해 현판을 바꾸기로 방침을 결정,
이때 서예세상에서 서단의 의견을 수렴*해 문화재청장에게 아래와 같이 전달함, 이후 광화문 현판 교체 건은 흐지부지 됨)
*(2010년 8월 2일~8일, 다음카페 서예세상 당시 회원 2만명, 투표 참관자 2천여명. 투표설문과 결과는 아래와 같았다.
1. 160년 전 고종때 중건할 당시 임태영의 한자 현판 복원 사용에 동의 34%,
2. 40년전 광화문 콘크리트로 바뀔 때 박정희 전 대통령이 쓴 한글 현판 사용 동의 14%,
3. 한글 창제한 세종대왕의 용비어천가 등 한글을 집자한 현판 새로 제작 동의 38%,
4. 현대 서예가의 한자 현판 새로 제작 동의 7%,
5. 현대 서예가의 한글현판 새로 제작 동의 5%,
6. 기타 의견 댓글로 제시 0%
위의 투표결과와 서예인들의 입장을 당시 문화재청장에게 송부하였고, 두 주 뒤에 “본 청에서는 각계의 의견을 수렴하고 있다”는 취지의 공문을 받았다.
*2006년 발굴조사로 광화문 복원 시작-2010년 일부 우선 복원
*2010년 이명박 정부 – 광화문 복원, 1865년 경복궁 중건 때 공사 책임자 훈련대장 임태영의 한자 글씨 ‘光化門’ 흰 바탕 검은 글씨로 교체. 석 달 만에 현판에 균열이 생기면서 부실 제작 논란 제기, 일본 와세다 대학 소장 ‘경복궁 중건일기’ 참조 검정 바탕 흰 글씨-일본의 작은 현판 사진을 디지털 복제하여 시공.
*2016년 미국 스미스소니언박물관 소장 사진(1893년 이전 촬영) -검정 바탕 금색 글씨, 경복궁 중건하면서 남긴 ‘영건일기’(營建日記) 사진 자료를 토대로 제작된 현판 사진 발견
*2018년 문화재청 고증 오류 인정.
*2023년 현판을 검정 바탕에 금색 글씨로 수정, 현재 현판임
*2024년 윤석열 정부-유인촌 문체부 장관-한글 현판으로 교체 제기-최응천 국가유산청장 “문화유산의 원형 유지 원칙”에 맞지 않는다고 반대
*2026년 이재명 정부-최휘영 문체부 장관-광화문 3층 한문 현판 그대로 두고, 2층에 한글 현판 추가로 쌍현판 설치 제기-허민 국가유산청장 “적극 지원할 생각” 다만, 종묘 앞 개발은 “수백 년간 유지해 온 역사 문화 경관과 가치를 직접적으로 위협할 것”주장
(최휘영 장관이 3층 누각에 한자 현판과 2층 누각에 한글 현판을 달자면서 예로 든 “중국의 자금성에도 두 가지 서체로 된 현판이 있다”는 발언은 자금성 건청문을 예로 든 것 같다. 건청문은 한자와 청나라를 지배한 만주족이 한자와 만주어를 같이 올려 놓은 것(사진 5 참조)인데 만주족이 지배했다는 표식을 담은 현판이다. 이 현판과 한글 현판을 새로 제작하자는 취지와는 맞지 않다. 아마 잘못 예로 든 듯하다.)
이처럼 광화문 현판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교체가 제기되어 왔다. 문화유산을 전리품처럼 여긴 것일까. 국민의 의사는 형식적인 공청회를 거치고 정권의 방향에 맞춰 교체가 제기되곤 했다.
3. 이번 교체에 관한 각계 견해
*장유승 성균관대 한문학과 교수-“뭔가를 빼는 것뿐 아니라 더하는 것도 손상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현판을 새로 다는 행위는 이 분야에 조금만 전문성이 있어도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심각한 변형”, “10여 년간 전문가 심의를 거쳐 원형 보존으로 합의된 사안을 전례 없는 방식으로 뒤집는 이유가 궁금”
*최종덕 전 국립문화유산연구소장- “없었던 과거를 창조하는 것은 현재를 사는 우리가 과거에 개입하고 옛 사람의 행위를 부정하는 것이자 역사를 왜곡하는 것”
이강민 한국예술종합학교 건축과 교수-“동일한 명칭의 현판을 상하로 나란히 게시하는 방식은 유례를 찾기 힘든 형식”
*김슬옹 세종국어문화원 원장- “한글의 아름다움과 자부심을 담을 가장 상징적인 자리가 바로 광화문”
*이대로 한말글문화협회 대표- “오늘날 문화유산 원형 보존보다 활용으로 흐름이 바뀌었다”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대표-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대규모 토론회와 공청회를 통해 각계각층의 의견을 듣고 수렴해야”
이처럼 각계의 의견은 다양하다. 초점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의견은 분명하게 갈린다. 시대에 두는냐, 사람에 두느냐, 문화유산에 두느냐...
4. 페친 여러분의 의견은
어떤 사람은 소모적 논쟁이 지속되니 이참에 한글, 한문, 영어 등을 담아 모두 표기하면 될 것 아니냐고 무책임한 말을 한다. 그것이 가장 여론을 수렴하는 길이라면서. 또 어떤 이는 디지털 시대에 맞춰 전광판을 설치하여 여러 언어를 바꿔서 주기적으로 나타나게 하면 될 것이라고 영혼없는 말을 한다.
이것도 옳고 저것도 옳다는 의견은 의견이 아니다.
그렇다면 페친 여러분의 고견은 무엇일까요?
사진순서(위에서 아래로)
1.현재 광화문 현판 - 조선말 임태영 훈련대장 한자 글씨.
2. 노무현 정부 때 철거된 박정희 전대통령이 1968년 광화문을 재건하고 친필로 쓴 한글 글씨 현판.
3.100년 전 광화문.
4. 현재 광화문.
5. 중국 자금성 건청문 현판.
첫댓글 제 생각에는 현재의 임태영 현판을 그대로 유지해도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글로벌하게 전세계인이 한글을 좋아하고 많이 배우는 추세인지라
보조적으로 한글현판을 달면 더 좋겠다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