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버스터 정국이 나흘째로 접어듭니다.
24시간 시청하지는 못하지만 직장에 나가지 않는 육아휴직자 입장이다 보니 하루에 몇시간 정도는 꾸준히 시청을 하고 있습니다.
맨날 무능하다고 까대던 야당 의원들이지만 이번 필리버스터 정국을 통해서 꼭 그렇지만은 않았구나 싶은 생각도 들고 그동안 언론을 통해 주목받지 못하던 꽤 괜찮은 정치 신인들도 수면 위로 많이 떠올랐죠.
그동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중앙정보부와 국정원의 추악한 역사도 알려지는 기회가 되고 있구요.
(물론 아몰랑 1번 지지자들에겐 해당 없겠지만요...)
여튼 필리버스터 제도가 없었더라면 이번에도 역시 날치기와 날치기를 막으려는 몸싸움, 양비론으로 도배되는 언론, 역시 정치인들은 다 똑같다며 빠르게 퍼지는 정치혐오증 레파토리가 반복됐을텐데 신선한 충격입니다.
아마 대한민국 정치사에 엄청난 의미로 남겠죠.
그러나 그러한 의미, 긍정적 평가와는 별개로 결국 테러방지법은 통과될 것입니다.
3월말 임시국회가 열리면 더이상의 필리버스터는 허락되지 않고 바로 표결에 돌입합니다. 그럼 뭐.. 새누리당이 원하는 대로 되겠죠.
근데 생각해보면 새누리당 현역 의원들의 입장도 그리 간단치 않겠다 싶거든요.
이번 필리버스터를 통하여 만천하에 드러났듯이 테방법은 집권당 국회의원에게 결코 유리한 법이 아닙니다.
국정원에게 절대반지를 안겨주고자 하는 법이고 국정원의 권력 강화는 곧 대통령의 권력 강화를 의미하죠.
우리야 뭐 제대로 3권분립이 자리잡히지 않은 나라이긴 합니다만 3권분립 국가에서 대통령과 행정부의 권력 강화는 입법부의 약화를 의미합니다. 테방법과 관련지어 생각해보자면 집권당의 국회의원조차 국정원 사찰 대상에서 빠져나갈 수 없다는 뜻이죠.(물론 테방법이 없는 현재도 암암리에 다 하고 있긴 하지만 이제 그걸 합법적으로 하겠다는 것이니...)
실제로 MB 정부 시절 민간인 사찰 사건이 터졌을 때 여당 국회의원 다수가 사찰 대상 목록에 있었습니다. 주로 MB와 척을 졌던 친박계들이었죠. 현직 댓통령도 포함되어있었구요.
지금도 그렇게 하고 있을진대 테방법이라는 날개가 국정원에 달리게 되면 여당 국회의원도 잠자리가 편할리 없습니다.
- 난 김무성에게 줄을 섰는데 혹시 친박계에서 대통령이 나오게 된다면??
- 난 친박인데 혹시 김무성이 대통령이 된다면?
- 최악의 경우 혹시 야당으로 정권교체가 된다면??
저처럼 정치 문외한도 충분히 예측 가능한 리스크인데 현직 국회의원들이 저런 걱정을 안할리 없습니다.
다만, 친박이 공천권을 틀어쥔 현 상황에서 테방법에 반대하면 바로 이번 총선에서 나가리 신세를 면치 못하기 때문에 댓통령에게 충성을 바치는 형국 아닐까 소설을 써봅니다.
즉, 정알못의 입장에서 소설을 써보자면...
청와대 : 테방법 통과시켜서 국정원과 청와대가 국가 운영의 마스터키를 틀어쥐고자 함. 나아가 총선과 대선에 손을 댐으로써 미니멈 대통령 퇴임 후의 안전보장, 맥시멈 영구집권 혹은 수렴청정을 하는 것이 최종 목적. 세월호 사건에서 봤 듯이 딱히 국민들의 목숨 걱정을 안해주는 정권인데 설마 테러때문에 사람들 죽을까봐 책상까지 쳐가면서 저러진 않겠죠.
새눌당 : 국정원에게 절대 권력을 넘겨주는 것이 좀 찜찜하긴 하나 그건 나중 문제일 뿐.. 어쨌거나 지금은 당장 공천 받고 20대 국회에 입성하는 것이 목표이므로 무조건 댓통령 편에 서야 함.
총선이 끝난 후 20대 국회에서 테방법을 처리해야 하는 상황이였다면 녹록치 않았겠죠.어차피 총선도 끝났겠다, 여당 의원들이 자기 목에 칼을 채우는 법을 순순히 찬성해 줄 리 없으니까요. 청와대와 국정원도 그걸 알기 때문에 어떻게든 총선 전에 급하게 통과시키려 직권상정이라는 무리수까지 써가며 저러는 것이고 심지어 선거구획정과 묶어서 테방법이 처리되지 않으면 총선도 치르지 못하는 데드락을 걸어버렸다고 추측합니다.
여튼 앞으로 테방법과 관련하여 예상되는 결론은 이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1. 현재 필리버스터 정국은 3월10일까지 쭉 이어지고 다음 임시 국회에서 표결에 붙여진 후 그대로 통과 -> 최악의 시나리오. 현재 가장 가능성 높음
2. 필리버스터 정국 이후 여야 합의를 통해 문제가 되는 독소조항 몇 군데를 수정한 후 통과 -> 차악의 결과이며 역시 가능성이 꽤 높음.
3. 갑자기 정신을 차린 정의화 국회의장이 직권상정을 취소함 -> 꽤 괜찮은 그림이지만 가능성 희박함.
4. 새누리당 국회의원들이 선거운동을 위해 국회를 비우고 각자 지역구에서 활동하는 동안 기습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중지하고 안건 상정. 정족수 부족으로 자동 폐기 -> 새눌당 의원들이 현재 국회를 비울 생각이 없으므로 가능성 없음. 그냥 희망사항.
5. 필리버스터 후 테방법 역풍 분위기가 일어남. 다음 회기에서 갑자기 새눌당 의원들이 총선에서의 역풍을 두려워한 나머지 반대표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눌당 총선 참패 -> 최상의 시나리오이지만 드라마에서나 가능한 현실성 0%의 시나리오.
여튼... 잘 모르겠습니다. 현재로서는 최악의 시나리오가 펼쳐질 거라 예상되긴 합니다만 최선은 아니더라도 최악은 피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또 뭐가 있을까요? 우리 자녀가 살아갈 이 나리의 모습이 그저 암담하기만 합니다.
ps 1. 글을 쓰고 있는 27일 오전 6시 현재 정청래 의원의 발언이 이어지는 중입니다. 이 시대의 참 필리버스터러 정청래 의원이 개그감 빼고 진지하게 나오니 포스가 엄청나네요.
ps 2. 정청래 의원 바로 앞 순서는 추미애 의원이었습니다. 판사 출신 법률 전문가 답게 테방법에 대해서 법리적 차원에서 하나 하나 따져줬는데 기가 막히더군요. 그 동안의 의원들이 '테방법엔 독소 조항이 많은 악법이다~~!!' 라고 외쳐왔다면 추미애 의원은 '아놔, 이건 너무 허접해서 법도 아니다. 뭐 이런 거지같은 법이 있냐?' 라는 분위기였네요. 노통 탄핵건 때문에 아직도 추미애에 대한 안좋은 앙금이 있긴 합니다만 추의원의 필리버스터 초반 30분은 압권이었습니다. 새벽이라 놓치신 분들은 초반 30분정도 찾아서 보시면 놀라운 얘기 많이 들으실 겁니다. 중반부에 나오는 JP 이야기, 후반부에 나오는 박박씨 사연도 몰입도가 엄청나더군요.
ps 3. 그 동안 국정원과 그 전신인 중정은 정권에 충성하기 위해서 그간 자국민을 엄청나게 희생시켜왔고 개미목숨만도 못하게 대해왔습니다. 혹시라도 테방법이 통과되지 못하고 암초에 걸린다면 여론을 돌리기 위해서라도 그간 많이 봐왔던 '간첩조작사건' 정도가 아니라 '테러조작사건'을 크게 터뜨리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너무 나간 소설인가요?
첫댓글 편파언론으로 야당에 긍적적 효과는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MBC에서 걱정(?)해주는 역풍도 없이 끝날것 같습니다...필리버스터 없었으면 어쩔수 없이 단상 점거등 폭력국회로 언론에서 좋아할 그림이 많이 나왔을텐데 그런건 없어서 참 좋네요...아무리 깔려고 해도 그림이 안나오니 안절부절하는 방송국들의 모습이 많이 보이더군요...ps.3번 테러조작사건 정말 일어날것도 같습니다...제2의 총풍...
국회의원 개개인으로 릴레이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는 것에는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나 정치관심도가 적은 대중이 현재까지 야당을 욕하는 이유가 무능 혹은 단체행동의 미약함이었습니다. 결국 필리버스터 외에 당차원에서 무엇을 해내는가 가장 중요하다고 봅니다. 필리버스터만으로 끝나면 답이 없습니다. 지금까지 봤을 때 새누리당은 이해를 위해 그 길이 틀리더라도 집속하여 몰아부치는 스타일이라면 더 민주이전의 야당은 계파간 갈등으로 통일된 목소리를 만들기 힘들었던 상황이었으나 더민주당으로 새출발하면서 계파정리가 많이 됐으니 이제는 당차원에서 뭔가를 확실히 보여줘야합니다.
제 생각에는 결국 될 듯 합니다. 기적적인 상황이 아니라면 아직도 관심이 부족하죠...
뮌가 여론을 들끊게할 한방이 있어야한다고 봅니다..솔직히 현실적으로 주위 사람들 거의 필리버스터 모릅니다..;;;; 인터넷하는 우리들이야 좀 알지..;;;;(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별 중요한 법안 아니라 생각하고 관심도 없는 사람들도 있죠..)
어제 국회보면서... 정말 심각하다고 느꼈는데, 제 주위사람은 가족들 먹여살리기에 바빠서 관심조차 없네요 ㅜㅜ
1번이 매우 확률이 높습니다.
이번 정부 들어서 청와대가 밀어부친 것이 안된 것이 없습니다.
국민의 눈치는 전혀 보지도 않으면서 거기에 더해 자기들의 원하는 바에 국민, 청년을 내세워서 밀어부치고 결국은 성사합니다.
오래 살지 않았지만 이만큼 눈치안보고 적반하장에 안하무인에 불도저같은 정부는 처음 봅니다.
여론을 전혀 겁내지 않기 때문에 먹혀들 방법이 없습니다.
40% 콘크리트 때문에 독도 정도 팔아먹어도 아무 문제 없을 것 같습니다. 살다살다 아예 눈치 안보고 나쁜 짓을 눈앞에서 하는 놈들을 보네요. 솔직히 전두환 정권때보다 더하죠. 여당에 엄청난 타격을 줄만한, 대통령 탄핵 얘기 나와도 할말 없는 메가톤급 이슈가 벌써 몇 개째인대 사과하는 척 조차 안하고 적반하장이라니요. 이거 뭐 필리버스터에서 어떤 명문을 고 노 전태통령급으로 연설해도 이슈가 안될겁니다. 광화문에 십만이 모여도 콧방귀도 안뀌는 정부라 야당이 잘하고 있는대도 역부족이에요. 그런 의미에서 안어벙 아쉽네요. 이 노선을 전부터 안이 가져가고 이번에 상당한 연설만 했어도 차기자리 굳혔을텐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