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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처를 찾아서
전화벨이 울린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또 무슨 전화일까? 다행히 위협적인 전화는 아니었다. 송파정신보건센터 민정은 선생님 전화다. 안경 너머로 응접실 벽에 걸린 시계를 본다. 9시도 안 되었다.
"공린씨, 오늘 오시기로 하셨죠?"
"네."
" 10시 40분까지 오세요."
"네."
"그럼, 이따 뵈요."
"네."
네, 네 하다가 끊는다. 뾰족하게 할 말도 없다. 원래 10시 30분까지 였는데 날 위해 늦추어준걸까? 10시 40분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면 10시에 나가면 되는데.
그렇지 않아도 오늘 기관 견학을 가기위해 일찍 일어나 준비를 했다. 아침을 김밥으로 간단히 먹으니 시간이 많이 남는다. 무슨 정신장애자들 입소시설인가를 간다고 하던데 어딘지 정확히 모른다.
이제 무엇을 할까? 컴퓨터를 켠다. 스피커 구매부터 해야지. 엄마가 오늘 기관 견학비로 10000원을 주셨다. 회비가 5000원이니 5000원이 남는다. 옥션 무료배송 Best 5종 스피커가 5200원이었는데. 그렇지만 어제 BEST 5종 스피커를 구매하려고 했는데 구입이 안 되었다. 옵션도 다 구매해야 구매가 되는 모양이다. 그냥 국민은행 체크카드로 구입하는게 편할 것 같다. 어짜피 우리은행에는 100원도 남아있지 않다. 그냥 엄마에게는 적당히 개기지, 뭐. 국민은행에 돈이 얼마 남아 있을까?
인터넷 뱅킹으로 들여다보니 7000원이 좀 넘게 있다. 무료배송되는 것을 피해 최저가를 찾는다. 3800원짜리가 있다. 클릭해보니 옵션이 없다. 배송비 2500원. 이보다 더 싼 것을 찾기 힘들 것 같다.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신용카드 체크 박스에 클릭하고 카드사를 국민은행으로 지정한다. 결제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안전결제(ISP) 서비스가 설치되지 않았다는 메세지가 뜬다. KB카드는 쓰질 않아 설치가 안 된 모양이다. 엄마가 국민은행에 넣어둔 돈을 쓰는 것을 금지하셔서 KB카드는 쓰지 않은지 오래되었다. 국민은행 통장은 엄마만 쓰신다. 연금이나 휴대폰 요금이 그 통장에서 나간다.
안전결제(ISP) 서비스를 설치해야 한다. 에러가 났다. 인터넷 익스플로어가 오류 메세지와 함께 종료되었다. 처음부터 다시 한다. 옥션에 들어가 로그인을 한다. 스피커를 써서 검색하고 최저가 순으로 정렬하여 죽 찾는다. 스피커 연결선만 잔뜩 뜬다. 인기순으로 정렬하여 죽 찾는다. 비싼 것만 있고 3800원짜리는 눈에 띄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처음에 발견한 방법데로 찾아야지. 5200원짜리 Best 5종 스피커로 들어가 다른 인기상품 코너를 클릭한다. 죽 찾아 내려간다. 없다. 2 페이지로 넘어간다. 드디어 찾았다.
'이번에는 제대로 되어야 할텐데...'
주문하기 버튼을 클릭하고 결제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안전결제(ISP) 서비스가 설치되는 화면이 뜬다. Active X 콘트롤을 설치해야 한다는 화면이 나오고 install 화면이 나오고 어디에 설치하겠느냐는 화면이 나온다. 플로피 디스크(A:)를 지정한다.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된다. 그래도 긴장된다. 이 컴퓨터란 놈은 어떻게 된 건지 사용자가 긴장하지 않으면 말을 듣지 않는다. 아무리 제대로 해도 에러가 나온다. 제대로 컴퓨터를 사용하는 것도 꽤 스트레스다. 그래서 정보화 시대에 적응하는 사람과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이 나오는 모양이다.
스피커를 주문하고 주문배송조회 버튼을 클릭한다. 오늘 주문한 스피커 밑에 어제 받은 미니클립스피커 항목이 뜬다. 구매하기 버튼을 클릭한다. 구매후기를 적어달라고 박스가 뜨는데 확인 버튼까지 나오질 않는다. 컴퓨터란 놈은 항상 이 모양이다. 구매하기를 완료하는 것을 포기하고 X표 종료버튼을 누른다. 어짜피 시간이 지나면 자동으로 구매하기가 되니까.
'기도문을 외워야 하는데...'
컴퓨터 프로그램들을 깔아야 한다는 생각이 떠오른다. 내 문서에 깔아야 하는 프로그램들을 넣어놓고 시간이 없어서 깔지 못하고 있다. 전에 깔다만 제트오디오 프로그램이라도 깔아야지. 제트오디오616프리미어버전만들기.txt 파일을 연다. 2번 제트오디오 Basic을 까는 데까지는 하고 표시를 해놓았다. 다운받은 zip 파일을 푼 제트오디오.JetAudio.6.2.1KO_PRE 폴더 안에 있는 JetAudio 폴더안에서 Manaul, Real, Skin, Vism, WMEngine 폴더를 프로그램 폴더 안에 있는 JetAudio 폴더 안에 복사해 넣어야 한다. Program files 폴더를 뒤져 보는데 JetAudio 폴더를 찾을 수가 없다. 전에 하다가 말아서 그런가? 처음부터 다시 해본다.
JetAudio.6.2.1KO_PRE 폴더 안에 있는 JetAudio 폴더를 Program files폴더 안에 복사해 넣는다. JAD616_BASIC_KOREA 파일을 설치한다. 제트오디오.JetAudio.6.2.1KO_PRE 폴더 안에 있는 JetAudio 폴더안에서 Manaul, Real, Skin, Vism, WMEngine 폴더를 프로그램 폴더 안에 있는 JetAudio 폴더 안에 복사해 넣는다. JAD6201_VX_COWON_v6701버전으로 업데이트한다. 유료 프로그램인 JetAudio616프리미엄 버젼을 공짜로 사용하기 위해서는 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한다. 지금 재부팅하겠냐는 질문에 아니오 라고 대답한다. 프로그램을 몇 개 더 깔고 종료를 할 생각이다.
전에 Windows XP 업그레이드 버젼을 살 때 같이 산 CDspace를 깐다. CD space 설치하기 버튼을 눌렀더니 제품 번호를 입력하라고 나온다. 등록하기 버튼을 눌러 사이트로 가 회원 가입을 하고 정품 인증키를 입력하고 제품 번호를 받는다. 순조롭게 CD space를 설치한다. 정품 소프트웨어 공짜로 쓰기가 점점 힘들어졌다. 예전에는 CD space도 그냥 쓸 수 있었는데...
시간이 아직 남았다. zip 파일이나 iso 파일로 된 프로그램은 빼고 간단하게 설치할 수 있는 exe 파일로 된 프로그램을 깐다. 우선 눈에 띄는 공학용계산기(PEMCalc2000) 프로그램을 깐다. 실행시켜 tan()을 눌러 본다. 어린이 씽크와이즈와 백신 removeit_pro를 깐다. 백신을 upgrade 시키고 한 번도 깔아보지 않은 주소 변환기를 깐다.
시간이 다 되었다. 아차, 문돌이 밥 주고 배설시키는 일을 잊었다. 할 수 없다. 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걸어가려고 했는데...'
초인종마저 울린다. 그제 이사온 402호 인터넷을 달러 왔다. 다행히 그건 빨리 끝났다.
3315 버스에서 내리니 10시 35분이었다. 시간에 딱 맞게 왔다. 밑으로 내려가 횡단 보도를 건넌다. 센터로 들어가 눈이 마주친 선생님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곧장 프로그램실로 들어간다. 많이들 모여 있다. 부모들도 꽤 많다. 이 견학이 가족교육의 일환으로 가는 거라고 한다. 쭈빗 거리다가 빈 자리에 가 앉는다. 옆에 앉은 복 있게 생긴 아줌마가 같은 버스를 타고 왔다며 반갑게 인사를 한다. 대충 네, 네 대답한다.
"공린씨, 왔어요?"
민정은 선생님이 명단을 손에 들고 반갑게 인사한다.
"공린씨, 회비."
회비를 낸다.
"녹차 한잔 가져다 줄까요?"
앞에서는 어떤 선생님이 전체를 향해 발표하고 있다.
"10시 50분에 출발할 거예요."
버스가 왔으니 이제 나가면 된다는 말에 일어선다.
"갑자기 우르르 나가지 마시고 차례차례 나가세요."
버스에 오르자 맨 앞자리가 빈 것이 보인다.
'앞이 터져 있는 것이 좋지.'
맨 앞자리에 혼자 앉는다. 좀 쓸쓸한 기분이 든다. 좀 있으니까 선생님 한 분이 앉는다. 39인승 버스다. 좌석이 하나 모자른다. 젊은 선생님 한 분이 계단 위 보조의자에 앉는다. 차창 밖 풍경이 지나간다.
"아저씨, 곧장 식당으로 가주세요."
"곧장 식당으로 가는 거예요?"
"네. 배고프잖아요. 저는 XX동, XX동을 담당하는 이수민이라고 해요. 센터에 온지는 얼마 안 되었어요. 작년 11월에 왔어요. 성함이?"
"저는 삼전동 사는 박공린라고 해요."
"많이 못 뵌 것 같은데 센터에 자주 오지 않으시나 봐요? 등록은 오래 되셨어요?"
"네."
잠시 침묵이 흐른다.
"버스 빌리는데 얼마나 들어요?"
"성수기와 비수기가 다른데요. 이번에 하루 30만원이요."
"어떻게 해서 빌렸어요?"
"인터넷에 버스 대여라고 치면 죽 나와요. 이 차는 홍익관광에 속했어요."
"30만원이면 별로 비싸지 않네요. 택시 대여도 하루 10만원은 들지 않나요?"
"비싸지 않은 거예요? 하긴 택시도 대여할 수 있나요?"
"전에 제주도 갔을 때 대여할 수 있다고 들었어요."
"어디 어디 견학하는 거예요?"
"먼저 가는 곳은 화성에 있는 사랑밭 재활원이고요. 그 다음에 태화 샘솟는 집에 갈 거예요."
"둘 다 입소 시설이예요?"
"사랑밭 재활원은 입소 시설이고요, 태화 샘솟는 집은 집에서 다니는 곳이예요."
"음식점이 화성에 있어요?"
"네."
"음식점은 어떻게 알았어요."
"인터넷으로요. 인터넷 없으면 아무 것도 못해요."
예전에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들끼리 한 달에 한 번 같이 영화 보던 동별 모임이 생각난다.
"요즘도 동별 모임 해요?"
"요즘은 동별 모임은 안 하고 동아리 모임이 있어요. 같이 영화도 보고 다이어트에 관심있는 사람끼리 운동도 하고. 저도 다이어트에 관심이 많은데 너무 먹는 것을 좋아해서 못하고 있어요."
너무 꼬치꼬치 캐묻는 것도 실례일 것 같아 창 밖을 본다. 좀 있으니 아침에 깔았던 주소 번역기가 생각난다.
"아침에 주소 번역기라는 프로그램을 깔았어요. 그 프로그램은 한글로 주소를 입력하면 영어 주소가 나와요. 이름 같은 것도 한글로 넣으면 영어로 나와요."
"어머, 그런 것도 있어요?" "프로그램 별거 별거 다 있어요. 얼굴이 나오는 것도 있어요. 입력을 조절해서 내가 원하는 얼굴을 만들 수 있어요."
"자기 얼굴도 만들 수 있어요?"
"자기 얼굴을 내가 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아 아직 못 만들어요. 눈화장하는 프로그램도 있어요."
"컴퓨터 잘 하시나 봐요. 하루가 심심하지 않겠어요."
"그냥 혼자 놀 정도는 해요. 하루가 금방 가요."
이수민 선생님이 칭찬을 해온다. 아마 직업상 특성이겠지.
"성격이 참 사교적이신 것 같아요."
"네."
난 내성적이다. 하지만 사교적이라고 말해도 좋을 것이다. 내 주민등록상 생일인 1970년 2월 20일 사주에는 내가 친구를 좋아한다고 나왔으니까. 엄마는 내 생일이 1970년 2월 28일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아빠는 자기가 직접 출생신고를 했는데 아무 실수도 없었다고 했다. 그리고 앞으로 사교적이 되면 될 일이다. 내가 친구 많고 사교적인 사람을 좋아하는 걸로 봐서 나도 사교성이 있을지 모른다.
"날씨가 참 좋은 것 같아요. 햇빛도 뜨겁지 않고."
"네. 하지만 오늘 저녁 때 비온다고 했어요."
저런, 우산을 가져오지 않았는데. 구름이 낀 것은 좋지만 비가 온다면 문제가 다르다. 제발 오늘 일정이 끝날 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이수민 선생님은 나이가 꽤 들어 보인다. 내 옆에 앉는 것으로 봐서 책임자인 것 같다.
"나이가 어떻게 되세요?"
"얼마나 될 것 같아요?"
"43?"
"거의 맞추었어요."
거의 12시에 버스는 멈춘다. 식당은 3층에 있는 등촌 샤브샤브 집이다. 나는 제일 앞자리에 앉았기 때문에 거의 제일 먼저 내린다. 엘리베이터에 제일 먼저 들어가 open 버튼을 누르고 있는다. 좌석도 제일 안쪽에서 두번째 자리에 앉는다. 불 위에는 냄비가 올려져 있고 그 왼쪽에는 칼국수 사리가 오른쪽에는 복음밥용 밥과 달걀과 야채가 있다.
조그만 항아리에서 집개로 김치를 꺼내 가위로 잘라 접시에 놓는다. 내 대각선으로 왼쪽 앞자리에 앉은 회원 아가씨가 그랬기 때문이다. 난 왜 이렇게 봉사정신이 없을까 자책하며 좋은 일은 본받는다.
그 회원 아가씨가 내 대각선으로 오른쪽, 자리의 맨 끝으로 당겨 앉는다. 냄비가 끓고 그 아가씨가 한 국자씩 퍼서 준다. 내가 퍼서 먹고 싶지만 꼭 참고 주는데로 먹는다. 미나리와 버섯을 먼저 먹는다.
"샤리 지금 넣어야 하지 않아요?"
"야채 먼저 먹고요."
그냥 해주는데로 받아 먹는게 편하다. 빨리 칼국수를 먹고 싶은 마음을 누르고 꾸역꾸역 먹는다. 아가씨가 한 국자씩 더 퍼준다. 넙적하게 썬 익은 감자가 보인다. 하나를 집어 먹는다.
드디어 사리를 넣는다. 끓기를 기다리는 마음이 초조하다. 버섯 + 칼국수 + 볶음밥 메뉴는 내가 롯데 수영장에 다니는 길에 있는 큰 음식점에서 오랫동안 보아온 메뉴다. 먹고 싶었지만 한 번도 먹어 본 일이 없다.
칼국수를 집개로 집어 한 그릇씩 준다. 난 밀가루 음식 특히 칼국수, 수제비를 좋아한다. 맛있게 먹는다. 먹고 나니 배가 불러온다.
옆 좌석엔 선생님이 앉아 있다. 그 앞, 내 대각선으로 왼쪽 자리도 선생님이 앉아 있다. 거기는 음식이 남는 모양이다. 우리 테이블에 앉은 남자 회원에게 국수 좀 먹어보라고 권한다. 내 앞자리와 오른쪽 옆자리에는 남자 회원이 앉아있다. 앞자리에 앉은 회원은 좀 지적으로 생긴 내가 좋아하는 타입이다. 오른쪽에 앉은 회원은 좀 성질이 예민하고 까다롭고 내성적으로 보이는 내가 좋아하지 않는 타입이다. 옆 테이블 칼국수는 맵지 않은 국물이다. 우리 칼국수는 얼큰한 국물이다. 옆 테이블 칼국수도 먹고 싶지만 이미 비만인 내 몸을 생각하고 참는다. 볶음밥도 먹어야 하니까.
"이제 밥 볶아야 하지 않아요?"
그 아가씨가 말한다.
"볶음밥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고 아저씨가 만들어 주시는 거예요."
보니 국물에 버섯이 좀 있다. 집어 먹고 싶지만 게걸스럽게 튀는 것이 꺼림직해 참는다. 그 버섯이 어떻게 될까, 버려지지는 않을까 걱정스럽다.
벨을 눌러 아저씨를 부른다. 아저씨는 냄비의 국물을 큰 다른 그릇에 옮겨 담고 냄비와 밥과 야채와 달걀를 담은 그릇만 가지고 간다. 좀 있으니 바닥에 복음밥이 편편히 깔린 냄비를 들고 온다. 그 아가씨가 한 국자씩 퍼준다. 냄비에 볶음밥이 눌어 붙어 있다. 복음밥이 입안에서 녹는 것 같다.
심심하니 국물을 퍼먹고 있는데 선생님 한 분이 버섯이 좀 있다고 마저 먹으라고 권한다. 우리 냄비의 국물을 담은 다른 그릇을 본 모양이다. 그제야 허락을 받은 것처럼 당당하게 버섯을 먹을 수 있다. 원래 그런 식으로 먹는 것인 모양이다.
어머니 한 분이 일어서서 콜라를 마시겠느냐 커피를 마시겠느냐 물어 본다. 난 콜라라고 대답했다가 커피로 바꾸었다. 난 어렸을때 커피를 무척 좋아했다. 커피가 몸에 나쁘다고 해서 잘 먹지 않지만 어짜피 콜라도 몸에 나쁘니까. 이수민 선생님이 일어나 어머니가 서빙하시게 하고 선생님들은 뭐하는 거냐고 채근한다. 이수민 선생님이 리더인 모양이다.
어떤 아저씨가 일어나 발표를 한다.
"우리 아이들도 힘들지만 우리도 얼마나 마음이 아프고 힘듬니까? 이렇게 좋은 자리를 마련해 주었으니 우리도 즐기고 새 힘을 얻읍시다."
'무슨 마음이 그렇게도 아픈 걸까? 당사자인 회원들보다 더 아플까? 그렇게 마음이 아플 것 없이 좀 더 아이들에게 지지와 사랑과 이해를 주었으면 좋았을텐데.'
"센터가 거여동으로 이전을 한다고 하니 거울이나 화분이라도 선물하여 조그만 성의를 보입시다."
'그런 것은 부지런히도 하지. 돈으로 때우는 일은.'
커피를 마신다. 고급 커피인지 맛이 좋다. 무언가 회원들과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가 않는다. 선생님들이 1시에 출발한다고 그때까지 화장실도 다녀오고 산책도 하려면 하라고 한다. 그 아가씨가 화장실 간다고 가방을 들고 일어 난다. 다시 안 올 것처럼 가방을 들고 일어서는 것이 마음에 걸린다. 내 옆자리에 앉은 회원이 일어나 나간다. 내가 사랑을 주지 않아서 그런 건가? 아니면 저런 타입은 원래 저런 걸까? 커피를 다 마실 때쯤 그 아가씨는 돌아 온다. 안심이 된다. 항상 그랬듯이 나도 화장실에 가서 양치질을 한다.
버스에 오르니 내 자리에 어떤 여자 회원이 버티고 앉아 있다. 내 자리가 좋아 보인 모양이다. 뒷자리는 통로쪽 자리가 비어 있다. 창가쪽 자리에는 인상이 비교적 좋은 할머니가 앉아 계시다.
"여기 앉아도 돼요?"
"그래요."
차가 출발한다.
"이런 견학에 자주 오세요?"
"네. 이런 견학이 자주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정도."
'그렇게 자주? 놀러 다니기 좋겠군. 배우기도 하고.'
"전 이런 견학 처음이예요."
"그래요? 우리 애는 50인데 몇 살 이예요? "
"한국 나이로 40이예요."
"한국 사람 아니예요?"
"한국 사람이에요. 만으로 39세예요."
"여긴 왜 오셨어요?
"회원이예요."
"전혀 그래 보이지 않아요. 이상 없어 보여요. 결혼하셨어요?"
"아직 안 했어요."
"우리 딸도 40인데 아직 안 했어요."
한 번 말문이 터지자 하소연이 쏟아진다. 하소연하는 인상은 별로 좋아 보이지 않는다.
"빨간 약 먹어요?"
"아뇨."
"우리 아이는 상태가 나빠 빨간 약 먹어요. 변비가 심해요."
"약의 부작용 때문인가봐요."
"약을 많이 먹어요. 한 움큼씩 먹어요."
"네."
"어린애 수준이예요. 수준이 점점 낮아져요."
"네."
"아무 일도 안 하고 집에만 있으려고 해요."
"네."
뒷머리가 갑자기 아프다. 난 대화를 그만 두고 앞을 본다. 무슨 해결책이 있을까? '한아이'나 '딥스'에 나오는 경우는 특수한 경우다. 보통의 정신장애자들은 평생 병을 가지고 정신장애자로 살 수 밖에 없다. 그런 것은 병이 아니라 장애인 것이다.
운전사 아저씨가 휴대폰으로 길을 묻고 있다. 아까 음식점에 갈 때도 휴대폰으로 길을 물어서 갔다. 일부러 내비게이션을 안 쓴다고 한다. 내가 보기에는 변명갔다. 좁은 길로 들어섰다. '사랑밭'이라는 바위로 만든 이정표가 보인다. 도착해서 버스에서 내렸을때는 비가 오고 있다. 안내하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나와 있다. 뛰어서 건물 입구로 간다.
강당으로 간다. 깨끗한 건물이다.
"작년에 리모델링했어요. 강단은 새로 지은 건물이고요."
의자 위에는 재단인 경산복지재단을 소개하는 팜플렛이 놓여있다. 하나 집어 들고 맨 앞 중앙에 앉는다. 중앙 위쪽에 다정마을의 개원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있다. 노인복지시설이라고 한다. 마중 나왔던 사회 복지사 이아름 선생님이 자기 소개를 한다. 사랑밭 재활원을 안내하는 소개는 배은희 선생님이 할 모양이다. 더 직급이 높은 모양이다.
마이크가 약간 울린다. 반장 아저씨가 트집을 잡는다.
"마이크가 울려요. 육성으로 해주세요."
'강사 길들이기겠지. 고통을 줌으로서 우월감을 느끼는. 그렇게 못참을 정도로 울리는 것은 아닌데.'
"알겠습니다. 만인이 원하시면 그냥 육성으로 하겠습니다."
"흔히 문의하시는게 있는데요. 사랑밭은 노후를 평생 편히 보낼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이곳은 사회복귀훈련시설입니다. 1년에서 3년 정도 훈련 받고 사회에 복귀하기 위한 곳입니다. 이곳은 정신장애우들이 동네사람으로 적응하고 재활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결국 정신장애자들을 위한 영원한 안식처는 없는 것이다. 재활의지를 갖지 못한 정신장애자들이 설 자리는 아무 데도 없다. 사회는 모두 재활과 성장, 생산만을 외치니까.'
"평생을 스케치해드릴 수는 없지만 약을 잘 드시지 않아서 자꾸 재발하는 사람들에게는 도움이 되실 거예요."
'그래, 아마 그정도 도움은 될 것이다.'
슬라이드가 시작되며 설명이 이어진다.
"사랑밭 재활원은 처음에 정신요양시설로 1981년에 설립되었읍니다. 1999년 법이 제정되면서 국내 최초로 사회복귀훈련시설로 바뀌었어요. 정원이 250명이었는데 50명으로 줄였습니다. 시설을 운영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인원이 많은 것이 운영하기에 편해요. 20세 이상에서 50세 미만의 정신장애인으로서 본인이 입소에 동의한 사람만 받습니다. 1년이 원칙이고 2번까지 연장하실 수 있습니다. 수급권자는 무료이고 그 이외는 한 달에 161,100원씩 받습니다. 지금 남자 35명, 여자 15명이 있습니다."
오래 있어 봤자 3년까지 밖에 있을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한다. 3년이 지나면 자기 길을 개척해 세상으로 나가야 하는 것이다. 취업률은 35%정도 되는 모양이었다.
"사례팀과 관리팀을 합쳐 직원은 모두 17명입니다. 주요 활동은 우선 사회적응훈련이 있습니다. 시장가고, 버스 타고, 미술관이나 어디를 가는 것도 정신장애우에게는 어렵죠? 그런 것 훈련합니다. 그리고 일상생활훈련이 있습니다. 퇴소를 앞둔 분들은 스스로 독립생활을 할 수 있게 요리도 배웁니다. 그리고 금전관리, 은행 ATM기기에서 돈 찾는 거라든지, 금전관리가 가장 중요하죠? 관공서 이용하는 법도 배웁니다. 직업재활훈련도 있습니다. 직장을 다 구해드릴 수는 없지만 구직활동하는 연습이라든지 하는 것을 배웁니다. 같이 구직활동하여 취업을 해보기도 하고요. 지역사회연계활동도 있습니다. 노인시설에 봉사도 가고요, 많이는 못하지만 마라톤도 하고, 지역봉사단이 오면 그들과 함께 프로그램도 하고요. 교육 및 견학 활동도 있습니다. 지금 슬라이드에서 보시는 것은 소방교육훈련입니다. 여가생활도 훈련합니다. 여가 생활이 가장 중요하죠? 정신장애우들은 여가가 많이 남죠? 그 시간 동안 아무 것도 안 할 수 없으니까요. 가족지원사업도 합니다. 홍보활동도 합니다. 홈페이지에 한 번 들어와 보세요."
설명을 요약하는 내가 못마땅한지 내 옆에 앉은 반장 아저씨가 계속 킁킁 거리고 눈치 준다. 이제는 무시가 된다.
설명이 끝나자 견학이 시작된다. 강당은 1.5층 이고 1층은 활동실이다. 복도 중앙에 하나 양 옆에 하나씩 있다. 활동실 한 곳에서는 회원들이 모여 무슨 프로그램인가를 하고 있다. 맞은 편 끝에는 식당과 조리실이 있다. 점심시간이 지나선지 아무도 없이 비어 있다.
2층은 남자 숙소이다. 3인 1실을 쓴다. 계단 바로 보이는 첫째방은 당직실이다. 여기서 선생님들이 항상 당직을 선다. 중간쯤 화장실과 세면실이 있다. 세면실에는 세탁기가 있고 안 쪽에 샤워실이 있다.
둘러보는 부모들이 쑥덕거린다.
"같이 있는 한 방 친구가 마음이 맞아야 하겠네. 마음이 안 맞으면 어떻게 해?"
3층은 여자 숙소이다. 여기는 2인 1실을 쓴다. 여기도 구조는 비슷하다. 단지 널찍한 응접실이 있고 응접실에 쇼파가 놓여있다. 계단에 들어가자 마자 있는 응접실 옆 방엔 이불들이 쌓여있는 방이 있다. 벽 계시판에 청소 구역을 알린는 유인물이 붙어 있다.
다시 강당으로 간다. 의자가 없어졌다. 강당이 텅비어있다. 탁구대만 두개 놓여있다.
"의자를 다 치웠네요. 여기서 탁구도 합니다. 영화도 보고요. 영화관에서 보듯이 볼 수 있어요."
질문 시간이다.
"이런 프로그램 받아 봤자 무슨 소용이 있어? 하루 종일 프로그램만 받으면 지루하지 않아?"
반장 아저씨의 말이다. 하지만 옳은 말이다. 프로그램 아무리 받아봤자 중증 정신장애자가 일반 보통사람처럼 사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정신장애자들은 평생 남의 도움이 필요한 것이다.
"한 프로그램만 계속 받는 것은 아니고요, 한 시간씩 프로그램을 바꿔가면서 합니다."
"종교 생활은 할 수 있어요."
"네. 할 수 있읍니다. 실제로 성당에 다니는 분도 계시고요. 주일 예배, 수요 예배 다 볼 수 있습니다."
"교통이 불편하지 않아요?"
"네. 교통은 좀 불편한데요. 그래도 시내까지 10분만에 갈 수 있는 버스가 이 앞까지 옵니다. 여기가 근린 공원으로 개발이 돼서요. 공원도 이용할 수 있습니다. 산책도 할 수 있고요."
"운동은 할 수 있어요?"
"있읍니다. 실제로 운동장도 있어요. 다정마을이 생기며 좀 줄긴 했지만 운동장도 있어요."
아직도 비가 온다. 버스까지 뛰어서 간다. 그 할머니는 좀 뒤 다섯번째 줄 쯤에 앉아있다. 내가 좀 늦게 나온 것이다.
"다 좋은데 교통이 불편하구만."
버스가 달린다. 와이퍼가 왔다 갔다 한다.
"직업훈련 받아 보셨어요?"
할머니는 말이 없다. 하긴 받아받자 번듯한 직업 구하기 힘들다.
점점 서울에 가까이 온다. 옆 할머니는 자고 있다. 3시 30분 쯤 태화 샘솟는 집에 도착한다. 바로 앞까지는 못 가고 오르막길 중간까지 올라갔다. 오르막길을 제일 먼저 막 뛰어 간다. 빨간 벽돌색 건물이다.
"어떻게 오셨어요?"
"송파 정신보건센터에서 왔는데요."
"아! 이리 따라오세요."
다른 사람이 도착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같이 간다.
"2층 정보 도서실로 안내해 드려요."
정보 도서실에는 양 옆으로 책장이 있고 책이 빼곡하게 놓여있다. 역시 맨 앞에 앉는다. 안내해온 선생님이 비디오 틀어주고 가려고 한다. 센터 이전할때 거울이라도 선물하자고 주장하던 반장 아저씨가 내 옆에 앉아 선생님을 붙잡는다.
"자기 소개라도 하셔야지 그냥 가시면 어떻하나요?"
'또 강사 길드리기군.'
"안내팀이 있거든요. 나중에 다 같이 하려고 그랬는데. 저는 김수화이라고 합니다."
비디오를 틀어주고 나간다.
"태화 샘솟는 집은 환영받는 곳입니다."
"참여하는 곳입니다."
"설레임이 있는 곳입니다."
"삶의 소중함과 일하는 기쁨을 얻는 곳입니다."
"의미있는 어울림이 있는 곳입니다."
홍보 영상과 현실은 항상 간격이 있다.
비디오가 끝나고 안내팀 3명이 들어온다. 선생님은 아까 들어왔던 김수화 선생님이고 나머지 2명은 회원이다. 뚱뚱하고 체격 좋은 남자는 박영운이라고 하고, 좀 샤프하고 분위기 있게 생긴 남자는 이남성이라고 한다. 회원인 박영운씨가 설명을 한다. 좀 알아 듣기 힘들지만 성의가 있고 그 많은 내용을 기억한다는 것만으로도 놀랍다.
"태화 샘솟는 집은 클럽하우스 공동체입니다. 1986년 처음 시작한 사회복지시설 입니다. 아시아 최초의 클럽하우스입니다. 클럽하우스는 본래 미국에서 시작했어요. 이곳에서는 서로 존중해 줍니다. 제가 관장 선생님보다 나이가 좀 많은데 저에게 형님이라 부릅니다. 여기서는 자발적으로 함께 일합니다. 제가 설거지도 잘 하는데요, 사람이 없으면 제가 설거지도 하고 그럽니다."
이남성씨가 부연 설명한다.
"클럽하우스는 정신장애우들이 먼저 시작한 겁니다. 병원에서 퇴원하고 갈 곳이 없는 몇몇 장애우들이 모여 병원 계단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는 것을 어떤 사회복지가가 보고 이 사람들에게 있을 집을 마련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여 생긴 겁니다."
"여기는 인권상도 탔고요. 회원들이 사회에 나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돕습니다."
번갈아 가며 설명을 이어간다.
"여기서는 일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학습도 중요하지만 모든 회원들이 어떤 부서에 속해 운영에 참여하여 일을 합니다. 부서는 일단 1층에서 근무하는 부서가 있습니다. 1층 카페에서 판매도 하고요. 샌드위치도 만들어 팝니다. 방문하는 사람이 있으면 안내도 합니다. 출퇴근 관리나 전화도 받고요." "후원 홍보부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샘이라는 월간지, 매일 나오는 소식지, 일년에 한 번 나오는 소식지를 만듭니다. 바자회도 합니다. 모금함도 만들고요. 후원자 관리, 후원자 개발, 그것을 위한 이벤트, 홍보를 합니다."
"취업부가 있습니다. 여기서는 취업장 개발, 관리, 관리라기 보다 격려죠. 문자도 보내고 열심히 하라고 합니다. 전세계적으로 봤을 때 우리나라가 취업률이 높고 임금도 잘 받는 편입니다. 우리는 무조건 최저임금 이상을 받습니다. 3D업종에서 저임금으로 혹사당하고 그런게 아닙니다. 여기서는 취업장을 개발하면 1주일 정도 선생님이 먼저 가서 일을 해봅니다. 그래서 너무 힘들지는 않는가 회원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알아보고 회원이 가서 일을 합니다."
"교육연구부가 있습니다. 이곳에서는 교육과 연구를 하는데요. 다른 곳에 이런 클럽하우스를 만들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3주 훈련이 있습니다. 그 훈련을 이곳에서 담당합니다. 태화 샘솟는 집이, 클럽하우스가 뭐가 좋은지 연구도 이곳에서 합니다."
"영양관리부가 있는데요. 하루 이용하는 회원이 70에서 80명 되는데 이 회원들의 식사를 대접하는게 무척 큰 일이겠죠? 3일은 영양관리부에서 하고 이틀은 각 부서에서 돌아가면서 합니다. 음식을 만드는 것은 무척 힘들지만 회원분들이 맛있게 먹었다고 격려해주면 무척 뿌듯합니다."
질문하는 시간이다.
"여기 들어오는데 돈 내야 하나요?"
"물론입니다. 처음 입회비가 5만원이고요. 활동비가 1년에 30만원입니다."
"아무나 들어올 수 있나요?"
"외래 약물치료를 받는 사람만 들어올 수 있습니다. 치료가 끝나 약을 끊은 사람들은 들어 올 수 없습니다. 주치의와 연계하여 치료하고 있습니다."
"매일 하나요?"
"네. 월요일에서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합니다. 토요일에는 한달에 3번 주말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밖에서 많이 나가고요, 비가 오거나 할 때는 여기서 합니다."
"적응 못하면 어떻해요?"
"일주일에서 열흘 적응기간이 있습니다."
"적응 못하면 나오지 말라고 해요?"
이 질문은 김수화 선생님보다 박영운씨가 먼저 대답한다.
"보호자와 회원과 관장님이 모여서 대화합니다."
이남성씨도 빠지지 않는다.
"위협적인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으면 나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부서회의에 참여하고 한 달에 한 번 전체 회의에만 참석하면 재활하겠다는 의지가 생길 때까지 기다립니다."
"여기 와서 아무 것도 안 하고 졸거나 남 하는 것만 보거나 하기만 하면 어떻해요?"
"선생님들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라고 권유하기는 하지만 억지로 시키지는 않습니다. 실제로 취미활동 하는 것처럼 다니는 분도 있습니다. 등 떠밀어 억지로 시키지는 않고 본인의 자발적인 의지가 생길 때까지 기다려 줍니다."
"제가 다른 데를 보냈는데 못하는 거예요. 하고 싶은데 일이 없다고 하더군요."
"적응하는게 중요합니다. 여기서 적응하려면 친구를 빨리 사귀는게 중요해요. 친구도 빨리 사귀고 직원 선생님도 사귀고 그러는게 중요합니다."
이런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모두들 성공 이야기, 긍정적인 이야기만 듣고 싶어 한다.
"몇 시부터 몇 시까지 하는 건가요?"
"9시에 시작합니다. 그러나 일찍 오시는 분을 위하여 8시에 문을 엽니다. 9시 30분에 부서회의가 있고요, 10시부터 부서활동을 합니다. 마치는 시간은 5시입니다."
박영운씨가 한 마디 한다.
"좀 늦게 와도 괜찮습니다."
큰 선심 쓰는 것 같다.
김수화 선생님이 부연 설명을 한다.
"너무 본인 마음데로 하는 것은 안 되지만 직원에게 전화해서 늦게 온다고 이야기하고 하면 늦게 와도 괜찮습니다."
"학습은 지원하지 않나요?" "검정고시를 친다거나 하시는 분이 있는데 자원 봉사자를 통해 1대 1로 지원합니다."
질문이 끝나자 이남성씨가 당부를 한다.
"이렇게 가족분들이 많이 오셔서 참 좋은데요. 가족분들에게 한 마디 부탁하고 싶습니다. 사회복지사 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있으면 상태가 좋아집니다. 긍정적인 말도 많이 듣고 격려도 받고 해서 상태가 좋아지는데 가족이 이해를 못 하고 무시하거나 하면 도로 원상태가 됩니다. 집에 가서 내가 이런 이런 일을 했어 하고 말할 때 너가 그런 일도 하냐 라든지 그 정도도 못하면서 이런 반응을 보이시면 타격이 큽니다. 건강한 사람은 금방 털고 일어나지만 우리 같은 정신장애우들은 정말 말한데로 그대로 됩니다. 가족의 지지가 가장 중요하고요, 본인의 의지가 그 다음으로 중요합니다. 낮에도 지지를 받고 밤에도 지지를 받으면 성장할 수 밖에 없습니다."
"취업은 어떻게 하나요?"
박영운씨가 나선다.
"취업장이 17개 있습니다. 며칠 하는 일시 취업이 있고, 9개월 가량 하는 임시취업이 있습니다. 가장 바람직한 거는 영구적으로 취업하는 독립취업이죠. 취업했다가 힘들면 다시 샘집에 와 재충전할 수도 있습니다. 이상적인 거는 며칠 하는 일시 취업을 했다가 이 사람은 정말 열심히 하고 우리 회사에 필요한 사람이다는 인정을 받아 임시 취업을 하게 되고 경쟁에 적응하여 독립취업을 하는게 좋지요. 샘집도 하나의 세계지만 작은 세계 아닙니까? 세상에 나가 더 큰 세계로 나가야지요. 보통 사람과 부딪혀 경쟁하고요."
"서비스 업종에 취업할 수도 있고, 사무 보조, 청소 등에 취업합니다."
이번에는 그 내 옆에 앉은 반장 아저씨가 눈치를 안 준다. 자기도 필기하며 듣고 있었다. 이제 한 번 돌아 보는 시간이다.
2층에는 나눔방과 후원 행정부 1, 후원 행정부 2, 정보 도서실이 있다. 계단은 두개가 있는데 3층은 식당과 조리실이다. 1층에는 안내 데스크와 사랑방, 샘집 카페가 있다. 돌아보며 부모들이 수근거린다.
"진작부터 여길 알았어요. 전에 보내봤는데 적응을 못해요. 9시까지 와야 하는데 일반인들도 힘들어요. 열흘 정도밖에 못 다니고 그만 두게 되요."
'안내하는 박영운씨와 이남성씨는 어떻게 저런 긍지를 갖게 됐을까?'
버스에서 내린 곳으로 막 뛰어 내려 간다. 공사하는 아저씨가 위험하니 걸어가라고 소리를 지른다. 도착해보니 버스가 없다. 옆 건물에 사람들이 비를 피해 옹기종기 붙어 있다. 나도 빈 곳을 찾아 들어간다. 공사 아저씨가 소리를 지른다.
"그 건물은 철거하는 건물이라 위험해요. 이리 나오세요."
선생님 한 분이 큰 길로 내려가면 버스가 있다고 소리지른다. 왜 여기에 없냐는 불평이 터져나온다. 선생님은 원래 여기까지 올 수도 없는데 무리하게 올라온 거라고 대답한다. 큰 길까지 걸어 내려간다.
버스에 올라 민정은 선생님에게 송파 정신보건센터 프로그램에 참여하겠다고 말한다. 민정은 선생님은 내 옆자리에 가방을 놓아 달라며 같이 앉자고 한다. 선생님들은 음료수 카프리썬과 바나나 하나씩을 돌리느라 분주하다. 차가 출발한다.
"할아버지, 그거 그렇게 뜯지 마시구요. 이리 주세요."
한 눈에 정신병이 심해 보이는 머리가 약간 벗겨진 할아버지다. 보기만 해도 고통이 심했다는 것을 알 수 있어 연민을 자아내는 할아버지... 카프리썬의 구멍에 빨대를 넣어 먹는 것을 모르고 뜯으려 한 모양이다.
선생님이 빨대를 꽂아 건낸다.
"오늘은 늦어서 센터로 가서 소감을 듣지는 못하겠구요. 여기서 소감을 한 마디씩 듣겠습니다. 부모님들부터 한 말씀씩 해주시지요."
"대충 이야기만 들어서 알 수 있나?"
"멀리 있어서 그렇지 참 좋았던 것 같아요. 하지만 민수가 준비가 안 돼서... 그러나 참 도움이 됐습니다."
"애들이 따라 주느냐가 문제지요. 본인이 나가려고 해야 하는데.... 애들을 어떻게 하면 밖으로 끌어낼 수 있느냐가 문제지요. 애들은 집에만 있으려고 하고 나오지 않으려고 해요. 친구도 사귀지 않으려고 하지요. 부모들끼리라도 잘 교류해서 협력해야 해요."
"다 좋은데, 애들이 나오기가... 부모가 시킨다고 하는 것도 아니고. 어려울 것 같아요."
"우리를 위해 수고해 주시는 선생님께 감사합니다. 애들이 움직여야 해요. 우리끼리도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아들이 적응하는 것이 문제인 것 같아요."
"그럼 회원분들 이야기를 듣겠습니다."
회원들의 이야기는 잘 안 들린다. 웅얼웅얼 하는 소리. 정신장애자들은 자기 입장을 뚜렸하게 주장하지 못한다. 사실 할 말도 없을 것이다. 재활을 요구하는 사회와 부모의 지당한 요구 앞에 무슨 할 말이 있을 것인가?
민정은 선생님에게 아까 듣지 못한 대답을 듣는다.
"동아리 모임이 언제 있어요?"
"한 달에 한 번 세번째 주 목요일에 있어요."
"목요일에 있는 프로그램은 없어요."
"없어요. 프로그램은 월, 화, 수요일에만 있어요."
"월요일에는 무슨 프로그램이 있어요?"
"2시에 정신건강교육이 있어요."
"화요일에는요?"
"인지재활훈련이 2시에 있어요."
"수요일에는요?"
"1시에 종이접기가 있어요."
"저 다 해도 돼요?"
"한꺼번에 다 하시려면 힘드시니까 월요일 정신건강교육과 화요일 인지재활훈련만 해보세요. 박공린씨에게는 클럽하우스 활동도 맞을 것 같은데... 가까운데 강남에도 있어요. 수서 태화 해뜨는 집이라고."
"돈 들잖아요?"
"일년에 30만원인데 그것도 힘들어요?"
"얼마전에 입원해서 돈이 많이 들어가 당분간은 힘들어요."
"그래요. 그렇겠네요."
민정은 선생님은 피곤하다며 눈을 감는다. 오래 놔두지 못하고 또 말을 건다.
"요양소는 어떤 곳이예요?"
"요양소는 중증 장애인들이 가는 곳이예요. 생각하지 말아요."
"정신장애자들은 늙으면 어떻게 살아요?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그룹홈이라고 뜻이 맞는 장애우들끼리 2명 내지 3명 또는 4명이서 모여 살아요. 영구 임대 아파트 받아서. 아까 비디오에서 봤지요? 사회복지사 선생님이 정기적으로 방문해줘요."
'그룹홈으로 살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돈은요?"
"일을 해야지요. 아주 어려운 사람들은 나라에서 보조를 해주지만 아까도 말했듯이 정신장애인도 최저 임금 이상을 받아요. 나라에서 정한 최저 생계비가 75만원인데 정신장애자들도 80만원, 90만원 받아요. 몇천만원씩 저축도 해요. 내가 아는 사람은 7~8년간 근무한 사람도 있어요."
"몇 천만원 가지고 노후보장이 되요?" "그래도 일 하지 않고 놀고 먹는 것과 일하는 것과는 달라요.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 하고 뭐 할 거예요."
"일본에는 그런 마을이 있데요. 정신장애자들이 모여서 사는 마을인데 거기서는 모든 것을 회원들이 회의로 결정한데요. 신입회원을 받는 일에서부터 누구를 퇴소시키는 일까지요?"
"선생님은 없어요?"
"물론 사회 복지사 선생님이 함께 계시지요."
"호주에는 어떤 팔 다리 없는 장애자가 셔핑 보드를 탄데요. 몸만 있는 트루소인데. 넘어져도 스스로 일어나고. 신체 장애자들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정신 장애자들은 몸이 멀쩡하잖아요?"
"정신장애자들이 일하기가 힘든 것은 대인관계 문제가 커요. 자신을 자랑스러워 하지 않고 자신을 좋게 생각하지 못하니까 갈등이 생겼을때 견디질 못하는 거죠."
'그래, 그게 문제이다. 자기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하지만 민정은 선생님의 열정은 작은 감동을 주었다. 진짜 이상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왜 이렇게 목이 뻣뻣하죠?"
민정은 선생님이 하소연해온다.
"그거 뇌졸증의 위험이 있데요."
"진짜요?"
"머리가 아프고, 잘 토하고, 목이 뻣뻣하고."
"내가 그런데? 그럼 어떻해야 하죠?"
"병원에 가야죠?"
"뇌졸증이라면 중풍인가요?"
"..."
"뇌졸증이면 마비가 오고 죽어요?"
"어머! 아이 참. 공린씨도."
'증세별 종합병원 내몸 DiY'를 보고 공부한 보람이 있었다. 뇌졸증인지 달달 외우지는 않았지만 뇌졸증이 맞는 것 같다. 집에 가서 책을 다시 봐야지. 의학을 공부하니까 더 잘 먹힌다. 어렸을때는 책에서 본 이야기하면 너무 이상적이라고 먹히지 않았는데.
운전사 아저씨가 잠실역에서 버스를 세워 주셨다. 내려서 비를 피해 달리다 보니 아침에 나와 같은 버스를 탔던 부인이 보인다. 무시하고 그냥 달린다. 호감이 가는 부인인데 좀 아쉽다. 잠실역에서 종합운동장으로 가려고 전철을 탄다. 아까 5단지 아파트를 봤으니까 하고 보지도 않고 계단을 내려가 전철을 탄다. 잘못 탔다. 5단지 아파트를 끼고 돌아 우회전을 하여 세워준 것이 아니고 센터 가는 방향으로 좌회전을 하여 세워준 것이다. 성내역에서 내려 바꿔 탄다.
종합운동장 전철 입구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오래 기다리지 않아 3417번이 온다. 빈좌석에 앉는다. 삼전우체국 앞에서 내려 횡단보도로 걸어간다. 어짜피 횡단보도에서 기다려야 하니까 뛸 필요가 없다. 집 앞으로 다가가자 엄마가 우산을 받혀들고 뛰어 오신다. 날 위하여 하이포크를 사러 가는 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