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트는 이해하기가 결코 쉽지 않지만,
이것이 분명 그의 매력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여러분이 정말 위대한 철학자가 되고자 한다면,
단연코 여러분 마음속에 담아둔 생각을 삼척동자도
알아들을 만큼 명쾌하게 말하지 말아야 한다.
(아마도 이것만으로는 불충분하겠지만,
이렇게만 해도 멋진 출발을 한 셈이다).
만일 사람들이 여러분이 말하는 것을 읽고
곧장 이해할 수 있다면, 여러분이 쓴 작품을 다루면서
여러분이 말하려는 의미를 설명하는
철학박사 학위논문을 쓸 사람도 없을 것이며,
여러분이 정말 말하려는 취지가 무엇인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지는 일도 전혀 없을 것이다.
칸트는 이 충고를 새겨들었음이 분명하다.
실제로 그의 철학을 다룬 책이 수십 권,
아니 어쩌면 수백 권은 될 것이며, 그가 말하려 했던
의미를 둘러싼 논쟁도 끝없이 이어지고 있다.
- 앨빈 플랜팅가, <지식과 믿음>
칸트에 대한 이 짧은 평가.
가슴을 울리는 명문이지 않은가!
오래 전 전도사 시절,
방학을 맞아 수요 예배 설교를 전한 후
한복 곱게 입은 노(老) 권사님
“뭔 말인지 못 알아듣겄어.” 말씀하셨는데,
이미 그때 나는 칸트와 비견할 만한
자질을 갖추고 있었던 것이다.
아쉽게도 그 재능을 발전시키지 못해
그럴싸한 글 하나 남기지 못했지만,
여전히 설교를 전하고 나면
그 적은 무리의 성도들께서,
마치 칸트의 책 한 권을 읽은 듯 반응하시니
아직 가능성은 완전히 사라진 것이 아니리라!
사실 칸트만 아니라 플랜팅가의 글도
쉬운 편이 결코 아니어서 꾸역꾸역 삼켜 가며
겨우 겨우 읽어가는 편이지만,
칸트를 평하는 그의 글에 힘입어 감히 용기를 내본다.
과거 권사님을 혼란스럽게 하고
현재 성도들을 오리무중에 빠지게 하는
이 재능, 이 능력을 기필코 붙잡아
언젠가 글 하나 남겨야겠다.
‘흥, 뭐 칸트가 별건가.’
책 한 권 제대로 읽지 않은 자의
만용을 부리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