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30년전, 남해 보리암 옆의 한 토굴에서 종단의 큰스님 제자 한분이 준제주를 외우며 깨달음을 구하였습니다. 이 준제주는 7억 부처님의 어머니로 인식되어 있는 준제관음의 진언으로, 크고 작은 어떤 재난도 침범하지 못하고 부처님과 다름없는 복을 성취시켜 줄 뿐 아니라, 이 진언을 외워 가피를 입으면 도를 통하게 된다고 하여 옛부터 널리 신봉되었습니다. 이 스님은 삼칠일(21일)을 기약하고 준제주를 외우기 시작했습니다. 14일이 지나자, 남해로부터 너무나 아름답게 생긴 여인이 연꽃을 타고 나타나 자신이 있는 토굴로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윽한 향내음에 너무나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 스님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일어나 절을 올렸습니다. 왜 그토록 열심히 나를 찾았더냐? 도를 이루고자 함에서입니다. 그렇다면 너의 신심을 보여야 할 것이 아니냐? 보살이 나타난 사실에 감격한 스님은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가지고 있넌 칼로 손가락을 하나 베었습니다. 그러자 보살은 냉소를 띠며 말했습니다. 손가락 하나 바치는 신심으로 도를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어떻게 저의 신심을 뵈오리이까? 그대의 남근(男根)을 바쳐라. 스님은 그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눈앞의 보살님은 자취를 감추었고, 피범벅이 된 스님은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느끼며 차츰 의식을 잃어갔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당시 보리암에 있던 몇 분 스님이 그곳에 왔으므로 목숨은 구할 수 있었지만 그 스님은 영영 돌이킬 수 없는 불구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한 가지, 우리 불교 집안에는 금강수보살을 열심히 외우면 금강수보살이 친히 나타나 견성(見性)을 시켜준다는 말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현재 생존해 계신 한 스님은 그 말을 듣고 금강수보살을 불렀습니다. 밤잠도 마다하고 공양도 하는 등 마는 등 열심히 금강수보살을 부르기를 50여 일, 홀연히 금강수보살이 나타나 법문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는 법문 다음에 질문을 했습니다. 계행을 잘 지키고 있느냐? 예, 잘 지키고 있습니다. 몸으로 계행을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마음으로 계행을 지켜야지. 이제보니 도를 이루기에는 멀었구나. 속에 음욕(淫慾)이 가득한데 어떻게 도를 이루겠느냐? 어려서 출가한 그 스님은 여자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끊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매력있는 여자와 대화를 하고 나면 홀로 있을 때 은근히 그리워지기도 하였고, 가끔씩은 여자와 함께 살면 어떠할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던 것입니다. 스님은 마음속의 비밀을 들킨 듯하여 금강수보살께 물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견성할 수 있습니까? 음욕의 근원이 되는 성기를 끊어버려라. 스님은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칼로 자신의 성기를 끊어버렸습니다. 순간 금강수보살은 눈앞에서 사라졌고, 스님은 견성은 커녕 불구에 정신마저 이상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금강수보살이 아니라 마구니의 유혹에 빠져든 것입니다. 다행히 그 스님은 큰스님의 지도 아래 참선을 하여 마의 장애에서 깨어났고, 지금까지도 중노릇을 잘하고 있습니다. 이 두 가지의 실화에서처럼 순경(順境)의 마구니는 역경의 마구니보나 더 크게 사람을 망쳐버립니다. 이 두 스님이 정녕 깨달음을 이루기 위해 기도를 했다면 아무리 아름답고 존경하는 보살이 나타났다 할지라도 빠져들어서는 안됩니다. 그것은 곧 순경에 대한 시험, 마음 깊은 곳에 도사리고 있는 애착에 대한 시험입니다. 참으로 마구니를 잘 극복하려면 기도나 참선 중에 나타나는 순(順)과 역(逆)의 모든 생각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그 어떠한 것도 마구니에 불과하다는 것을 확실히 알고, 임해야 합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집중의 노력 이외에는 모두가 아무 것도 아니다. 무엇이 다가오든 알 바가 아니다. 모두 터져버려라. 정녕 이러한 자세로 정진해야 흔들림 없이 깨달음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물며 앞일이 보인다고 하여, 남의 운명이 비친다고 하여 재미를 느낀데서야 어느 세월에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겠습니까? 불교 공부를 하다보면 고비가 많습니다. 그러나 이와같은 고비는 하나하나 넘겨야 합니다. 지금 넘어서지 못하면 우리는 다시 번뇌망상의 괴로운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번뇌가 없는 원래의 깨달은 자리가 아니라 끝없는 방황과 윤회의 삶 속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정녕 자신을 사랑한다면 다가서는 마구니를 극복하면서 부지런히 공부를 지으십시오. 기도를 하든 참선을 하든 염불을 하든, 삼매를 이룰 그때까지는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삼매를 이루게 되면 나고 죽음이 없는 고비를 체험할 수 있게 되고, 나고 죽음이 없음을 확실히 깨닫고 나면 이 세상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이 그대로 편안하고 행복하고 영광이 가득찬 세계로 바뀝니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것은 결코 마가 아닙니다. 우리의 공부라는 자세입니다. 자세만 바르면 마는 결코 오래 벗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어떠한 해도 끼치지 않습니다. 오히려 비슷하게 일어나는 번뇌 망상과 고비 고비에 모습을 나타내는 각종 마구니들이 우리를 출격대장부(出格大丈夫)로 만들어 줍니다. 쉬지 않으면 마침내 이루어지리다. 부처님의 이 마지막 법문을 깊이 새기셔서 잘 정진 하시기를 축원드립니다. 南無摩訶般若波羅蜜 南無摩訶般若波羅蜜
첫댓글 감사합니다
관세음보살_()()()_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_( )( )( )_
나모 땃서 바가와또 아라하또 삼마 삼붇닷서! 존귀하신분, 공양받아 마땅하신분, 바르게 깨달으신 그분께 귀의합니다.
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