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5월 29일 금요일 (홍)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2마카 6,18.21.24-31; 요한 12,24-26
제1독서 <나는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남기려고 합니다.> ▥ 마카베오기 하권의 말씀입니다.6,18.21.24-31 그 무렵 18 매우 뛰어난 율법 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21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하였다. 24 “우리 나이에는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 많은 젊은이가 아흔 살이나 된 엘아자르가 이민족들의 종교로 넘어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25 또한 조금이라도 더 살아 보려고 내가 취한 가장된 행동을 보고 그들은 나 때문에 잘못된 길로 빠지고, 이 늙은이에게는 오욕과 치욕만 남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지금은 인간의 벌을 피할 수 있다 하더라도, 살아서나 죽어서나 전능하신 분의 손길은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27 그러므로 이제 나는 이 삶을 하직하여 늙은 나이에 맞갖은 내 자신을 보여 주려고 합니다. 28 또 나는 숭고하고 거룩한 법을 위하여 어떻게 기꺼이 그리고 고결하게 훌륭한 죽음을 맞이하는지 그 모범을 젊은이들에게 남기려고 합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서 그는 바로 형틀로 갔다. 29 조금 전까지도 그에게 호의를 베풀던 자들은 그가 한 말을 미친 소리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마음을 바꾸고 악의를 품었다. 30 그는 매를 맞아 죽어 가면서도 신음 중에 큰 소리로 말하였다. “거룩한 지식을 가지고 계신 주님께서는, 내가 죽음을 면할 수 있었지만, 몸으로는 채찍질을 당하여 심한 고통을 겪으면서도 마음으로는 당신에 대한 경외심 때문에 이 고난을 달게 받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아십니다.” 31 이렇게 그는 젊은이들뿐 아니라 온 민족에게 자기의 죽음을 고결함의 모범과 덕의 귀감으로 남기고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밀알이 땅에 떨어져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12,24-2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 25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이 세상에서 자기 목숨을 미워하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도록 목숨을 간직할 것이다. 26 누구든지 나를 섬기려면 나를 따라야 한다.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 누구든지 나를 섬기면 아버지께서 그를 존중해 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말씀의 씨앗 Semina Verbi:5.29 복자 윤지충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기념
순교자들의 증언과 우리의 일상적 충실함
복자 윤지충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을 기념하는 오늘, 말씀은 복음의 가장 깊은 중심으로 우리를 이끌어 줍니다. 마카베오 하권에서 율법학자 엘아자르는 목숨을 살리려고 거짓으로 타협하라는 권유를 받습니다. 그러나 그는 겉으로만 신앙을 저버리는 척하는 삶이 결국 마음까지 무너뜨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나이에 그런 가장된 행동이 합당하지 않습니다”(2마카 6,24)라고 말합니다. ‘가장된 행동’이란 내면과 삶이 갈라진 상태를 뜻합니다. 그는 거짓된 생명보다 진실한 죽음을 선택합니다. 이것이 바로 참된 충실함입니다. 주님을 따른다(ἀκολουθέω)는 것은 단지 교리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손해와 두려움 속에서도 그분 뒤를 걸어가는 삶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12,24)라고 말씀하십니다. “밀알”은 작고 보잘것없는 씨앗을 뜻합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바로 그 자기 내어줌 안에서 열매가 시작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오늘날 세상은 자신을 지키고 드러내며 손해 보지 않는 삶을 성공이라 말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우리는 때때로 조용하고 안전한 믿음만을 원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성을 내려놓지 않는 신앙은 결국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한국 순교자들의 증언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오늘 우리의 미지근함을 비추는 거울입니다.
아씨시의 프란치스코 역시 이 복음의 길을 깊이 살아낸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부유함과 명예를 내려놓고 가난하신 그리스도를 따르기를 선택했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에게 신앙은 절반만 살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병 환자를 껴안고, 버려진 성당을 고치며,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은 채 살아갔습니다. “섬긴다”(διακονέω)는 것은 실제로 자신을 내어주는 삶을 말합니다. 순교자들과 프란치스코 성인은 모두 신앙이 단순한 종교적 장식이 아니라 존재 전체를 바꾸는 길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 시대의 구체적인 삶에도 깊이 연결됩니다. 경쟁과 성과 중심의 사회 안에서 많은 이가 끊임없이 자신의 가치를 증명하려 애씁니다. 그러나 복음은 땅에 떨어지는 밀알의 길을 보여줍니다.
가족 안에서 먼저 사과하는 것, 이익을 위해 양심을 속이지 않는 것, 외로운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 가난한 이들과 시간을 나누는 것, 조롱받더라도 복음의 가치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바로 오늘의 순교입니다. 순교는 특별한 죽음 이전에 자기중심성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순교자들의 피는 오늘도 교회를 살아 있게 만드는 씨앗이 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기념은 단순한 역사적 추억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있는 곳에 나를 섬기는 사람도 함께 있을 것이다”(12,26)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 계신 자리, 곧 가난한 이들 곁과 진실함과 겸손의 자리 안에 머무는 것이 제자의 길입니다.
오늘 우리는 드러남보다 숨은 충실함을, 성공보다 복음적 사랑을 선택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성인과 한국 순교자들처럼 자신을 조금씩 내어놓을 때, 비로소 다른 이들을 살리는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기경호프란치스코 of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