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연<제19편 영별그날>④영별하던 그날-1
천복은 세상만물의 생멸소장 이치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경산이 다른 생명을 가진 만물과 같이 숨을 거두고, 그 유체가 예외 없이 땅속에 묻히더라도, 다시금 부활하여 생존할 거라 믿었다.
그것은 반드시 생각의 오류를 범하는 착각에 지나지 않으나, 그는 그렇게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는 태어나면서부터 경산이 꼬챙이처럼 야위어 쪼글쪼글한 얼굴과 피골이 상접하여 풍만하지 못하던, 노년기의 모습을 보면서 거기에 정들여 자랐기에 젊은 날의 아리땁던 미모의 경산은 본적도, 상상한 적도 없었다.
하기에, 그에게 할머니는 영원한 노년기의 할머니이었다. 그처럼 노골한 할머니는 그가 세상에 태어나 사십 세의 초로에 이르는 나이에까지 임박하였는데도 불구하고, 백수에 다다랐기에, 그는 그의 착각으로 얻은 보편타당한 상식과 그 연민을 선뜻 떨쳐버리지 못하는 거였다.
그러한 그는 점룡이 경산의 임종을 예견하고, 도흥별천을 지목하면서 명당을 말하고, 게다가 보덕은 천일기도를 감행하는 데에서 경산께서 반드시 세상을 뜨신다는 사실을 일깨었고, 그렇게 되면, 보고 싶어도 다시는 볼 수가 없게 된다는 엄중한 현실이 비로소 다가온다는 임박함을 느끼면서 이따금 견디기 어려운 비통이 일어나 허우적거리고는 하였다.
‘부르릉 부르릉... 부르르릉...’
‘흠, 점룡거사가 오는군!’
그는 뜨거워진 눈시울을 손으로 훔치면서 거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다가 꿈에서 깨어나듯, 오토바이소리를 의식하면서 현관문을 박차고, 잔디정원으로 나아가 보는 거였다.
지난초여름 천복은 점룡에게 오토바이 한 대를 사주었다.
그런데 벌써 은행나무, 느티나무들이 싱그러운 잎들을 떨구고, 그 길섶으로 조락하여 바스러지어 쌓인 낙엽들이 스산한 바람결에 흩날리고 있었다.
점룡은 넉 달쯤 오토바이를 타고, 이따금은 혜영을 뒤에 태우고 달려오곤 하였다. 모르지만, 오늘도 혜영을 태우고 올지 모르는데, 그때마다 집에 두고 온, 어린 복회와 용회 형제가 외로이 쓸쓸하게 남아있을 거라는 생각을 하면, 뜨악하기까지 하였다.
점룡은 오토바이를 몰고, 바깥마당에 불쑥 올라서 도착하였다.
혜영이 천복을 보더니, 추파를 던지는데, 그때 어디선가 튀어나온 옥희가 점룡이 오토바이에서 내리기도 전에 달려들어 얼싸안고 있었다. 그런 사이에 혜영도 불같이 오토바이에서 내려서는 대로 천복에게 안기었다.
그네는 그렇게 엉긴 채, 경산의 방으로 들어가 경산의 안후를 살펴보면서 석순과 함께 코보를 기다리는 인순도 만날 수가 있었다.
코보는 이제 홍윤자까지 세 여인의 남자이었다. 석순은 경산을 늘 모시는 마당에 인순과 함께 있게 된 것을 좋아하였다. 코보는 으레 저녁을 먹으면, 석순과 인순 두 여인과 경산의 방에서 지내었다.
봄여름보다 해가 짧아지면서 밤이 길어지자, 그네는 즐거운 비명을 올렸다.
“신령님, 인순이 와서나 좋아라오. 둘이 할무니 모심서 코보랑 놀아라오!”
“석순 씨도 하늘이 돕는군요.”
천복은 그녀의 말에 하늘이 그녀를 돕는다고 하자, 그녀도 인순과 얼싸안고, 즐거워하였다.
경산은 점룡을 알아보았다. 거의 날마다 찾아오는 점룡이 친정조카의 맏아들이라면서 만날 적마다 그의 아비 좌경의 안부를 묻고는 하였다.
그네는 경산의 방을 나와 이층 소파로 가서 학습장에 그림을 그리면서 풍수학 가운데 장법을 강설하였다.
그런 동안 옥희는 점룡에게 매달리고, 혜영은 천복에게 매달려있었다.
“장법은 혈장으로 들어오는 맥을 잘 짚어서 그에 상응하게 시신과 맥을 일치시켜 접맥(接脈)이 되도록 맞추는 거야. 말하면, 시신을 씨앗이라 생각하고, 생기맥에 연결시켜 모시면, 사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후손들이 번성하게 되는데, 생기를 일으키려면, 모두 정확하게 일치시켜야하네!”
“선생님, 제 비유가 맞는지 모른데요. 여자의 음부에 남자의 정수를 쏘는 것과 같다는 말씀 아니겠어요?”
천복이 정맥을 찾아서 정확하고 정밀하게 시신을 모셔야한다고 하자, 점룡이 남녀의 교구를 들어 비유하자, 천복이 웃음을 터뜨리고 대꾸하였다.
“아하하, 바로 그걸세. 남녀는 생체지만, 시신은 사체 아닌가? 그렇다면, 맥을 잘 짚어서 사체에 생기를 불어넣으면, 사체가 생기를 받아 동기매체인 후손에게 미치는 거야. 그러면, 후손들이 강한 정력이 살아나 자손이 버글버글 번성하는 것 아니겠어! 접맥에 심혈을 기울여야하네!”
천복이 말하자, 옥희가 점룡의 허리춤에 손을 꽂고, 조몰락거리는데, 혜영도 따라서 천복의 허리춤에 손을 찌르자, 그네는 이내 신당으로 몰려 들어간 거였다.
첫댓글 잘하면 장법도 배우겠습니다~
지난 초여름에 오토바이 한 대를 사줬나봐요. 워낙 깊은
산중 지장골에서 상등성이를 타고, 종주로, 천복의 집을
다닌다는것은어렵죠. 그리하여 점룡거사가 오토바이를
타고 여름내 거의매일같이 찾아와 천복에게 장법이나마
배웠나보죠. 그래서 차츰 눈이 떠지는데, 실은 고모할머
니 장사모시겠다고 배우지만 평소에 뜻을 두었던가봐요.
아무튼 뽕도 따고 임도 보고 신나게 혜영이 뒤에 태우고,
공부하러 다니는군요.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