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양사람 가나이상 최 건 차
찌는 듯한 6월 하순이다. 올해의 한국수필국내심포지엄이 지리산 자락에 있는 함양에서 열린다. ‘함양’이라는 지명 때문에 오래된 기억의 빗장이 열린다. 함양사람 ‘가나이상’과 우리 집에 얽힌 내력 때문이다. 그때의 한 토막 즐거웠던 사연들이 시공간을 초월하는 것 같다. 전국으로 여행을 꽤나 했지만 아직 함양 땅을 제대로 밟아보지 못했는데 이참에 잘 됐다 싶어 마음은 벌써 함양에 가있다.
태평양전쟁이 한창이었을 때 우리 가족은 일본에서 살았다. 동경 근교의 군수공장에서 함바(食堂)를 운영하는 우리 집에는 체력이 우람하게 큰 사람이 일꾼으로 함께 살고 있었다. 우리는 그를 ‘가나이상’이라고 불렀다. 부모님은 그를 함양 산청 사람이라고도 했다. 그의 고향은 분명 함양의 지리산 자락이라고 했다. 함양과 산청이 맞붙어있고 그때는 내륙의 오지여서 그렇게 불렀던 것 같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근육질의 인상에 힘이 장사인 그는 우리집 청지기로 어린 나를 보살펴 주었다. 해방 후 함께 귀국하여 부산에서 헤어져 고향으로 간 후로 소식이 끊겨버렸다.
수필가들은 태운 버스가 함양읍내에 도착했다. 일본에서 살던 때가 아지랑이처럼 솔솔 피어오른다. 어디엔가 그의 가족들이 살고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에 마음의 눈을 번득이며 주변을 살핀다.
일본에서 가나이상은 총각이었고 우리 삼촌도 총각이었다. 주말이면 주변 공장에서 일하는 동포 처녀들이 우리 집을 찾아 들었다. 공장에서 주는 밥이 적어 늘 배가 고프다며 우리 집에서 일을 거들어주고 주린 배를 채우고 가곤 했다. 식당은 어머니가 주로 가나이상을 데리고 경영하시고 아버지는 트렁크를 들고 일본 경찰의 눈을 피하여 교토와 동경으로 나들이 하셨다.
어느 날 우리 집에는 큰 잔치가 벌어졌다. 가나이상과 삼촌의 합동결혼식이 거행됐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양가의 혼주가 되고 주례도 아버지가 하셨다. 우리 집은 열 명이 넘는 대가족으로 늘어나고 찾아드는 사람이 많았다. 가나이상의 신부는 순임이라는 이름의 아담하고 예뻤는데 부엌일을 잘했고 가나이상에 비해 키와 몸집이 작은 작은아버지의 신부는 키가 크고 인물이 서글서글한 서구형의 미인으로 거제도 출신이었다. 가나이상은 살구나무가 있는 쪽으로 별채를 짓고 살았다.
아버지의 은밀한 나들이는 일반 사람이 쉽게 먹을 수 없었던 귀한 소고기를 몰래 내다 파는 것이었다. 우리 집 가나이상과 일꾼들이 산속에서 몰래 잡은 소고기를 동경의 긴자 고급 식당에 비싼 값으로 내다 팔았다. 우리는 남들이 못 먹는 소고기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었다. 어떤 날은 말을 잡았다며 가마솥에 삶고 있었다. 소고기에 맛을 드린 형 누나와 나는 고기가 먹고 싶은데 말고기라서 젊은 여자들과 어린아이들은 절대로 먹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어두운 밤 형과 누나가 나를 앞세워 부엌으로 들어갔다. 아직 부엌일을 하고 있는 순임이를 만났는데 그녀는 우리 편이 되어 할머니에게 들키지 말라며 잘 익은 고기 덩어리를 꺼내 주었다.
우리는 가나이상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집을 비운 별채로 갔다. 아직은 십대로 우리와 잘 어울리는 작은어머니도 함께 했다. 뒤 따라 순임이도 들어와 다섯 명이서 말고기를 맛있게 다 먹어 가는데 느닷없이 할머니가 방문을 열고 들어오셨다. 모두들 심하게 야단을 맞고, 작은어머니는 작은아버지가 문을 안으로 걸어 잠그고 열어주지 않아 우리랑 같이 있다가 어머니가 간신히 진정을 시켰다.
할머니는 물론 부모님과 작은 아버지께서도 벌써 천국에 가셨다. 부모님 세대의 마지막 주자였던 작은 어머니마저 지난해 막차로 떠나셨다. 십대의 꽃 같은 소녀들이 일본군위안부정신대를 피하기 위해 근로정신대를 지원하여 일본으로 건너와 군수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 집에 드나들던 많은 처녀들 중에서 선택받은 두 사람은 우리 작은어머니가 되신 분과 가나이상의 처였다. 생전에 작은 어머니는 나를 참 좋아하셨다. 가나이상 부부는 할머니와 부모님 우리 4남매를 위해 열심히 일을 했고 작은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사방으로 놀러 다녔다.
함양읍내의 문화회관에서 행사를 마치고 지리산 휴양림에서 일박을 했다. 아침 일찍 산행을 하고 조반을 먹으러 버스를 타고 내려 갈 참이지만 나는 미리 걸어가기로 했다. 셋이서 계곡을 따라 걷다가 산딸기를 신나게 따먹고 좀 더 내려가다가 눈이 번쩍이며 길가 계곡으로 쏠렸다. 단내가 진동하는 누런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바닥에도 잔뜩 떨어져 깔려있는 커다란 살구나무를 발견한 것이다. 분명 야생살구였지만 그 맛은 개살구가 아니라 단맛이 진한 참살구였다. 어떻게 이런 살구나무가 있을까 하고 살펴보니 오래전에 누군가가 살았던 흔적이 있었다.
일본에서 살 때 우리 집 마당에서 따먹었던 살구 맛이었다. 동행들도 즐거워하며 살구를 따먹고, 나는 양쪽 호주머니에 가득 넣고 내려오는 버스에 올랐다. 가나이상이 이곳에 살면서 심었던 살구나무였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나이상의 부리부리한 눈처럼 크고 순임의 예쁜 모습 같은 살구를 지인들에게 나누어 주니 모두들 어디서 땄냐며 달고 맛이 좋다고들 한다.
함양에서 가나이상의 가족들을 만날 수는 없었지만 잘 익은 살구를 따먹으면서 그들의 모습을 그려보게 됐다. 2014년 7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