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로부터 민간에서 "산후바람 평생간다."는 말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흔히 산후바람을 산후풍이라고 하지만 산후풍은 정식 병명이 아니고 한의학에서는 산후 혈풍증(血風症)이라고 한다.
혈풍증이란 임신과 출산으로 산모가 혈허(血虛) 혹은 어혈(瘀血)이 형성되어 있는 상태에서 부적절한 환경에 노출되면 풍한습(風寒濕)의 사기가 인체의 경락과 근육과 관절에 침습하여 발병하게 된다고 하여 붙여진 병명이다.
한의학적으로 산후풍의 원인은 크게 혈허유화(血虛有火)와 심비허손(心脾虛損)으로 분류할수 있다.
1) 혈허유화 혈허유화는 임신과 분만으로 기혈이 부족하여 허화(虛火)가 생긴 상태를 말한다. 증상은 어지럽고 번열이 생겨서 가슴이 답답하고 식은땀이 비오듯 흐른다. 땀구멍이 벌어진 상태에서 찬바람과 접촉하면 바람이 경락과 근육과 관절로 들어가서 온몸이 쑤시고 저리고 시린 증상이 생긴다. 이것이 산후풍의 전형적인 증상이다.
2) 심비허손 심비허손은 임신과 출산과정을 통하여 기혈이 허손하거나 어혈이 생기는 등 생리적 변화에 적절하게 적응하지 못하면 심비(心脾)의 기능이 문란하여 저서 아기를 낳았다는 환희보다는 오히려 임신과 출산이 스트레스로 작용하여 피로, 우울, 불면, 식욕감퇴, 불안감 등이 생기며 심하면 임신전의 정상생활로 복귀하는데 장애를 가져오기도 한다.
이상의 산후증후군을 한의학에서는 산후풍이라 하여 적절한 치료를 하고 있다. 서양의학에는 산후풍이라는 병명이 없기 때문에 환자가 산후풍이라고 하면 서양의사들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를 못한다. 그래서 물론 치료대책을 강구하지도 못한다.
일반적으로 서양사람들은 출산후에 바로 목욕하고 에어컨을 쏘여도 아무렇지도 않다고 생각하며 서양에는 마치 산후풍이라는 질병이 없는 것 같이 알고있는 경우가 많다.
본인은 미국이나 유럽에 거주하는 우리 교포 중에 그곳에서 선진국의 의료체제하에 분만을 하고도 소위 산후풍이 생겨서 그곳 유명하다는 병원에서 치료를 하여도 치료가 되지 않아 고생 고생하다가 결국은 귀국하여 본인에게 치료를 받으러 오는 경우를 흔하게 보아 왔다.
수년 전 본인이 경희대학에 근무할 당시 독일의사 한 분이 본인의 진료실에서 약 6개월간 연수를 한 일이 있다. 그때 그 독일 의사는 소위 산후풍환자가 많은 것에 놀랍다고 했고 더욱이 그런 증상을 한약과 침으로 치료하는 것에 대하여 크게 흥미를 나타내는 것을 본 일이 있다.
이상의 상황으로 미루어 서양의학에서는 지금까지 소위 산후풍에 해당하는 출산후의 후유 증상을 질병으로 인정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최근 휴스턴에서 "안드레아 예이츠"라는 산모가 자녀 5명을 살해한 엽기적 사건이 발생한 이후 미국사회에서는 산후 우울증에 대한 인식이 갑자기 높아지고 있는 듯 하다.
최근 한국판 뉴스위크(2001년7월11일자 발행, 통권487호)에 보면 <산후 우울증 평생 갈 수도 있다>라는 타이틀 밑에 "미국 산모들 중 20%정도가 이 질환을 앓고 있는 것으로 추정하고, 산모가 절망감 죄의식 등의 증상을 보일 때는 즉각적인 치료를 받아야 한다."고 경고하고 있다.
산후우울증은 한의학적으로 보면 위에서 언급한 산후 심비허손의 한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산후우울증은 1980년대 중반부터 의료계에 널리 알려졌었지만 미국사회에서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다가 최근 에이츠사건으로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사료된다.
이에 뉴스위크의 기사를 중심으로 산후 정신장애의 개요를 정리하여 일반의 이해를 돕고자 한다.
산후의 정신장애는 대체로 1) 베이비 불루스, 2) 산후 우울증, 3) 산후 정신병의 3단계로 분류된다. 대부분의 산모는 분만 후 약간 침울해지는 경향이 있지만 심한 우울증과 정신병으로까지 발전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그러나 일단 절망감, 죄의식 등 우울증이나 정신병 증상을 보일 때는 즉각적인 치료가 요구된다.
1) 베이비 불루스 모든 산모의 약 80%가 분만 후 3-14일에서 일시적으로 침울해지며 가벼운 우울증이나 혹은 과민증상을 나타내고 쉽게 눈물을 보이고 좌절감, 피로감에 침습되는데, 이런 증상을 베이불루스라고 한다. 이시기에 보호자는 산모에 대하여 자세한 관찰과 따스한 보살핌을 줌으로써 환자로 하여금 자신이 분만을 계기로 특별한 지원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게 하여 안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산후 우울증 베이비 불루스와는 달리 산후 우울증에 걸리면 지속적인 불안감, 절망감, 죄의식, 불면증, 의욕상실 증상이 나타난다. 또 자해를 하거나 심지어는 아이를 해치는 생각이나 망상에 시달릴 때도 있다.
발생비율은 산모의 약 10-20%가 산후 우울증에 걸린다고 알려저 있다. 증상은 항상 우울한 기분이 들고, 일상생활에서 기쁨을 느끼지 못하며, 수면장애, 집중력감퇴, 불안, 공포감 엄습 등에 시달리게 되고, 원인 없는 죄의식에 사로잡혀 스스로 쓸모 없는 사람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살충동을 느끼게 되고, 아이를 해칠까봐 불안해 진다. 그러나 소아정신과 의사인 "엘리자베스 버거"는 " 산후우울증으로 아이들을 질식시키거나 자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하였다.
산후 우울증은 대체로 분만 후 시작되어 2주 이상 지속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환자는 자세한 신체검사와 함께 지원단체 등에 가입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치료는 항우울제와 항불안제를 투여하고 정신요법을 실시한다.
3) 산후 정신병 산모 1천명당 1명꼴은 산후 정신병을 앓게 되는데 그 증상은 우울증에 비하여 매우 심각하다. 초기증상은 조병(躁病)증상을 나타낸다. 활동이 필요이상 과다해지고 불면증에 시달리고 아이를 외면한다.
그 증상에는 환영, 편집증, 망상, 횡설수설하며 자살 및 살인 충동을 느끼게 되며, 심지어 아이를 해쳐야 하겠다는 생각 등으로까지 발전 할 수 있다. 산후 정신병은 분만한지 몇 주 내에 발생하며 치료를 하지 않으면 증상이 계속되고 악화한다.
그래서 예이츠 처럼 실제로 자녀를 살해하는 산모들은 단순한 산후 우울증이 아니라 산후 정신병 환자라고 보고 있다. 치료는 조증 치료용 안정제를 포함해 즉각적인 정신요법을 쓰는 것이다.
그러면 산후 우울증은 왜 생기나? 대부분의 산모들은 출산이 일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마이애미대의 산부인과 및 정신과 의사인 "라파엘 굿"은 "출산은 사망을 제외한 어떤 경우보다 더 뚜렷한 변화를 초래한다"라고 피력하였다.
임신중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의 수치는 높이 치솟았다가 분만 후 임신전의 수준으로 일시에 급강하한다. 이러한 생리적 요인이 산후 우울증을 유발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 의사들은 호르몬의 감소속도를 늦추기 위해 에스트로겐 패치를 사용하기도 한다.
산후 우울증과 정신병은 이외에 부부문제, 불면증, 기존의 정신질환 같은 다른 스트레스 요인들로 인하여 악화되기 때문에 이럴 때는 산모의 기운을 북돋아 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 이런 방법은 한의학의 산후 보양요법과 매우 흡사하다.
산후 우울증은 대부분 치료를 하지 않아도 보통 6-8개월 후면 자연 치료된다고 알려져 있다. 그렇더라도 이는 비참한 상태로 지나기는 너무 긴 시간이며 또 우울증이 반드시 사라진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마이애미의 임상심리학자 "알랜 휴스먼"은 "때로 산후 우울증은 평생 갈 수도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