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 DC 캐피털 원 아레나에서 진행된 47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의 취임 축하 집회 도중 일론 머스크(53)가 대선 승리의 기쁨을 청중과 나눈다며 오른손을 높이 들어 무솔리니식 경례를 한 것이 후폭풍을 낳았다. 한 차례만 한 것이 아니라 몸을 정반대로 돌려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한 뒤 "내 가슴은 여러분과 함께 한다. 미래 문명을 보장해준 데 대해 여러분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2020년 대선 패배를 부정하기 위해 의회 의사당에 들어가 폭동을 일으킨 1600명 가까이를 취임 첫 날 사면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는 등 가뜩이나 트럼프 대통령의 전체주의적 사고나 통치 위험성이 거론되는 마당에 그의 두 번째 대선 승리에 큰 공로를 세운 머스크의 정신 나간 듯한 행동에 미국인들과 세계인의 우려가 깊어질 것이다.
머스크는 자신이 소유한 엑스(X)에 "솔직히 그들은 더 나은 더러운 술책을 필요로 한다. 이런 '모두가 히틀러' 공격은 너어무(sooo) 지겹다"고 적었다.
앞서 CNN, 정치매체 폴리티코, PBS 뉴스아워를 비롯해 다양한 국내외 매체들이 '의도적으로 파시스트 경례를 한 것으로 의심된다'는 식으로 보도했는데 몇 시간 만에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GA) 진영에서는 머스크가 청중에게 '가슴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를 표하기 위해 가슴에 손을 갖다 댄 것일 뿐 그런 의도가 아니었을 것이라고 일제히 반박했다. 게중에는 이른바 진보 매체들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괜한 트집을 잡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었다.
하지만 위 사진에서 보는 것처럼 아돌프 히틀러 나치 총통 못지 않은 전쟁범죄자 베니토 무솔리니를 추종하는 이들이 맹목적인 충성을 다짐하기 위해 했던 경례를, 그것도 미국 대통령 취임식 도중 따라 했다는 점은 양대 세계대전의 피해를 고스란히 입은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꼿꼿이 선 자세에서 오른손을 꼿꼿이 펴 가슴팍으로 나란히 든 다음 손등을 위로, 손바닥은 아래로 두며 "지크 하일(Sieg Heil, 승리 만세)"이나 "하일 히틀러(Heil Hitler, 히틀러 만세)"라고 외치며 동시에 발뒤꿈치를 모아 "쿵" 소리를 냈다. 손의 각도, 왼손의 위치 등은 나치당도 사람들에게 획일적으로 강제하지 않아 제각각이었다. 물론 주요 인사들은 팔의 곧음 정도나 왼손을 배나 가슴에 대는 것 모두 엄격하게 지키는 편이었다.
아주 오래 전 로마제국에서 유래했다는 얘기가 전해지지만 문헌으로 확인된 것은 없다. 1 8세기 후반 '호라티우스의 맹세' 그림이 그려진 뒤로 로마 황제들이 군중의 환호에 답하며 팔을 뻗었던 것으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때의 그림을 봐도 팔의 각도는 곧게 뻗은 것이 아니었다. 로마에서 이런 경례가 유행했다는 사실도 일반에 널리 알려져 있지 않았지만 신고전주의가 유행하며 알려지기 시작했다.
무솔리니는 로마 제국의 부활을 내걸며 국가파시스트당의 경례 방식으로 도입한 뒤 집권 후에 이탈리아 왕국군의 경례 방식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이탈리아 밖에서는 이를 잘 알지 못했다.
그런데 히틀러가 이끄는 국가사회주의 독일 노동자(나치)당에서 따라 하기 시작했다. 나치당의 산하 조직인 히틀러유겐트, 돌격대, 슈츠슈타펠에서도 모두 쓰였다. 히틀러 집권 후에는 독일 국방군의 경례로 정착했고, 히틀러 암살 시도가 실패로 돌아간 뒤 국방군 총사령관 대리를 맡고 있던 빌헬름 카이텔이 '당과 군대의 단결을 위하여'라는 이유를 내걸어 제식 경례로 채택했다. 물론 거수 경례와 함께 사용하는 모습이 심지어 나치의 선전 영상에서도 보이듯 획일적으로 시행된 것은 아니었지만 2차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에 벌써 본고장을 제치고 '독일식 경례'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됐다.
영국 BBC는 머스크의 행동에 대한 전문가들의 다양한 분석을 소개했다. 미국에서의 나치즘을 전문으로 연구하는 역사학자 클레어 오빈은 X에 글을 올려 그의 제스처가 "지크 하일"이나 나치식 경례라고 단언하며 그 제스처의 근원을 나치에서 찾는 이들을 향해 "내 전문적인 견해로는 여러분이 맞다, 여러분은 자신의 눈을 믿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러스 벤기앗 뉴욕대 역사학과 교수는 "파시즘 역사가가 여기 있다. 그것은 나치식 경례였고 역시나 아주 호전적인 것이었다"고 지적했다. 안드레아 스트로파는 머스크를 이탈리아 극우 지도자인 조지아 멜로니 총리와 연결시킨 핵심 참모인데 이탈리아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머스크 사진을 올리고 "로마식 경례로 로마 제국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스트로파는 나중에 이 글을 삭제한 뒤 다시 글을 올려 "일부가 나치식 경례로 오해한 그 제스처는 그저 자폐증을 갖고 있는 일론이 느낀 그대로 '내 가슴을 여러분께 드리고 싶다'고 말하고자 한 것"이라고 비호한 뒤 "이것이야말로 그가 마이크에 대고 소통했던 것이었다. 일론은 극단주의자들을 좋아하지 않는다!"라고 덧붙였다. 스트로파는 맨마지막 문장을 대문자로 도드라지게 표시했다.
널리 알려진 대로 머스크의 정치적 견해는 갈수록 오른쪽으로 옮겨갔다. 그는 최근 독일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 당(AfD)와 영국에서 이민을 반대하는 영국개혁(Reform UK) 당을 지원하는 행보를 보였다.
스위스 다보스에서 매년 열리는 세계경제포럼에 등장한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는 자국에서 금지된 나치식 경례와 비교해달라는 주문에 "유럽과 독일에서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면서 "우리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극단적인 우파 입장을 지지하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되풀이해 말하고 싶지 않은 대목"이라고 단언했다.
반유대주의에 맞서기 위해 창립된 반명예훼손 리그를 비롯해 일부에서는 머스크를 두둔하기도 했다. 이 단체는 X에 글을 올려 "일론 머스크는 열정적인 순간에 뜨악한 제스처를 했지만 나치식 경례는 아니었던 것처럼 보인다"고 두둔했다.
파시즘은 생각을 앞세우지 않고 행동으로 모든 것을 판단하고 좌우하는 전체주의 행동양식을 통칭한다. 민주적인 제도와 사법 절차를 좇아 발부된 윤석열 구속영장 집행에 항의하느라 "분을 참지 못해"라거나 "열불이 나" 법원 건물 안에 난입해 시설과 집기를 파손하고 구속영장을 발부한 판사를 색출하려 했던 이들도 무솔리니가 이끌던 돌격대 대원들의 '생각 없는 좀비' 행태와 닮았다.
얼마 전 무솔리니의 증손자가 유럽 축구 경기 도중 골 세리머니를 한다며 할아버지의 경례를 그대로 따라 해 유럽인들의 트라우마를 일깨운 일이 있다. 그만큼 유럽인들은 여전히 2차 대전과 파시즘의 악령이 남긴 트라우마에 강하게 사로잡혀 있다.
역사에 대한 성찰 없이 '강하고 멋지게 보이면 그만'이란 생각으로 머스크가 그런 행동을 했다면 유럽인과 세계인 앞에 진정 반성하고 사과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