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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과 계시와 영감 (10.31안식일/일몰 오후5:35)
기억절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일어날 일들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알게 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언하였느니라.”(계 1:1,2)
이번주 교과주제는 계시와 영감인데 이번 한주동안 하나님의 기별이 어떤형태로 인간에게 전해지는지 그 과정을 공부하겠다.
하나님은 자연과 성경, 선지자들을 통해 자신의 뜻을 인간에게 계시하셨다.
성경은 하나님의 기별이 인간에게 전달되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선지자들을 통하여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히 1:1, 2)
▶성경을 통하여 (딤후 3:16, 계 1:19)
▶성령을 통하여 (벧후 1:21)
사도 요한은 열두 사도의 핵심 멤버였다(눅 8:51; 마 17:1; 26:36, 37).
로마 황제의 박해로 밧모섬에 유배된 요한은 각 시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전해야 할 특별한 예언메시지를 받았다(계 1:1-3, 9-11).
그 자신도 포함된 전달과정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 아버지 → 예수그리스도 → 천사 → 사도 요한 → 독자 및 청중. 이것은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거쳐 자신의 메시지를 인간에게 전하는 계시·영감의 전형적인 전달과정이다.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기별을 받고 전하는 과정에 역사하여 말과 글, 상징과 행동 등 다양한 방식으로 전달됐다.
●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하나님이 우리 인간에게 하나님 자신에 대해서 증명하기 위해 우리에게 직접 알려주시고 보여주시는 것을 계시라고 말한다.
계시가 없으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이 완전히 차단된다.
계시에는 일반계시와 특별계시, 두종류가 있다.
우주의 창조주인 하나님은 왜 이토록 우리에게 말씀하기를 원하시며 무엇을 말씀하시는가?
그 이유는 우리가 죄악세상에서 타락한 인간으로 살아가며 죽음과 고통과 시련을 겪기 때문이다.
우리가 왜 여기 있고 세상은 왜 이토록 고달픈지 그럼에도 우리는 그분의 사랑안에서 어떤 희망이
있는지를 알려 주고 싶어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것이다.[히1:1,2]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 맞으시다면, 그분이 만드신 모든 것에는 그분의 흔적이 담겨져 있을 것이다.
그분의 능력과 사랑, 품성이 그 천연계 안에 다들어가 있다는거다.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이 자연속에 드러나고 자연세계만으로는 알 수 없는 것은 성경이 알려 주고 있다.
자연에 나타난 하나님의 ‘일반계시’는 그분의 무한한 능력과 세심한 사랑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다윗왕은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시 19:1)라고 외쳤다.
사도바울은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가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핑계하지 못할지니라.”(롬 1:20)고 말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러한 창조물들이 죄로 인해서 변질되었다는 것이다.
“자연세계는 매우 아름답고 유익하지만 하나님의 능력과 사랑뿐 아니라 악의 존재도 드러낸다(창 3:14-19; 마 13:24-30).
천재지변이나 환경오염으로 인해 천연계는 자꾸 변형되고 망가지기 때문에 하나님은 특별계시를 허락하신거다.
이처럼 상반된 자연의 메시지는 오로지 하나님의 ‘특별계시’를 통해서만 즉 육신으로 오신
하나님의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을 증언하는 하나님 말씀인 성경에 의해서만 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요 5:39).
성경은 모든 시대의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메시지가 담긴 영감의 기록이다.
이 책은 세상의 창조와 비극적인 타락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계획과 지구의 최종적 회복에 관하여 말해 준다.
어떤 이야기들은 매우 간결하고 필요한 내용만 기록했는데도 성경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는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딤후 3:16; 벧후 1:19-21).
<부가설명>
나는 자연계라는 말을 잘 사용하지 않는다.
주로 천연계라고 한다.
자연이라는 말은 저절로 되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이므로 나는 천연계-하나님이 있도록 한 세계-라는 뜻으로 그렇게 사용하기를 좋아한다.
언젠가 공학을 전공하고 가계를 운영하는 분과 말씀을 나누면서 과학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자연계 자연 그런 말이 아니겠느냐 하고 말했다.
자연은 여호와라는 뜻이다.
그들이 자연, 자연하고 말할 때 마다 전혀 의식하지 못하면서 여호와를 부르는 것이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천연계는 창조주를 보게 한다.
그런데 죄로 세상이 어두워졌고 땅이 저주를 받아 가시와 엉겅퀴 곧 악한 것들을 드러내기 때문에
사람들이 하나님의 창조와 그 사랑을 보지 못하게 방해를 받는다.
그러나 특별 계시인 성경말씀으로 우리 눈은 천연계를 바르게 볼 수 있게 하셨다.
그래서 창조의 아름다움을 깨닫고 사람도 그 창조 때의 상태로 돌아갈 길을 깨닫게 되었다. 감사만만이다.
● 영감의 과정
일반계시보다 특별계시가 더 탁월하고 더 선명하게 하나님을 나타내주는 이유는 말그대로 특별한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다.
그 특별함은 바로 하나님의 영감이 그 속에 담겨져 있다.
일반계시는 점점 흐려지거나 훼손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특별계시는 훼손되지 않는다.
오랜 세월 전해 내려온 책과 글은 성경 외에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한다.
성경은 어떤 면에서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것은 하나님의 영감때문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딤후3:15-17)
어느 성경주석가는 이렇게 설명한다.
“여기서 바울은 성경전체를 염두에 두고 있으며 성경구절 하나하나가 아닌 성경전체가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했을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G. W. 나이트 3세, 『목회 서신-그리스어 주석 The Pastoral Epistles: A Commentary on the Greek Text』, 445).
그렇다면 성경을 필두로 한 영감의 과정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예언적 영감이란 하나님의 메시지가 신뢰할 만한 방식으로 전달되도록 성령께서 참된 선지자들을 돕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메시지를 받을 때뿐 아니라 받은 메시지를 사람들에게 명확히 전달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은 함께한다.
성경이 어떤식으로 영감받아 기록되었는지, 하나님의 감동은 어떻게 일어나는지에 대해서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많지만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영감어린 기록(영감의 말씀)이라고 믿어야 한다.
<부가설명>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지혜가 재림성도들에게 필요할 것이다.
성경에 관하여 전적으로 불신하는 사람에게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이라는 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나는 이 문제에 관해서 고민을 많이 한 때가 있었다.
나는 3대째 장로교회에 다닌 집안사람으로서 그때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하면 명확하게 대답할 지식이 없었다.
믿고 보라는 밖에 못했다.
그것을 안 믿고 못 믿는 사람에게 이 대답은 대답이 아니고 그냥 주장을 말하는 것뿐이다.
내가 재림교회에서 가르치는 말씀을 배울 때 특히 다니엘 계시록 통신과목을 줘서 공부해보라고
했을 때 그것을 공부하며 역사책을 찾아 대조하여 확인하면서 예언과 역사적 성취를 확인했을 때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을 증명할 말씀을 깨닫게 되었다.
예수님도 친히 말씀하셨다.
“지금부터 일이 일어나기 전에 미리 너희에게 일러둠은 일이 일어날 때에 내가 그인 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로라”(요13:19).
개역에는 “일이 이룰 때”라고 번역했는데, 이 번역이 더 좋다.
예언과 그 예언이 역사 현장에서 이루어지는 것을 볼 때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고 하셨다.
또 “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요14:29, 개역).
이것은 성경전반의 예언과 그 성취가 믿게하는 것이라고 하신 것이다.
처음부터 종말을 아시는 하나님(사46:10)이 아니시면 어떻게 이렇게 정확하게 미리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예언과 그 성취는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과 계시의 말씀이라는 것을 확인하는 재료다.
이 재료를 먼저 자신에게 확인시키고 다른 사람에게도 증거하는 도구가 되기를 바란다.
● 말로 전한 메시지
특별계시는 구술(벧후 1:18-21)과 기록(요 20:30,31)과 극적연출(겔 4:1-8)등 크게 세가지 방식으로 전달되기도 했다.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가 타락하기 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그들에게 말씀하셨고(창 2:16, 17; 3:9-19)
타락하기 전이나 후나 그들은 그분의 말씀을 이해했다.
그분의 음성은 시내산에서도 뚜렷하게 들렸고(출 20:1-20)
예수께서 침례받으실 때도 변형되실 때도 그러했다(마 3:17; 17:5).
우리는 상대방의 말을 잘못 알아들을 때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이 누군가에게 말씀하실 때는 잘못 알아듣거나 속을 일이 전혀 없다.
성경은 하나님이 직접 모세에게 “나는 여호와이니라”(출 6:2)라고 말씀하셨다고 분명히 기록한다.
성경기록자 중에는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었다고 고백하는 이가 많다.
예를 들면 이사야(사 8:1, 11), 예레미야(렘 1:4, 9, 11), 에스겔(겔 3:16; 6:1) 등이다.
베드로는 거룩한 산-변화산-에 있을 때 하늘로부터 나는 소리를 들었다. 그 소리는 하나님의 말씀의 소리였다.
당연히 하나님의 영감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듯 선지자들도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말했다.
예를 들어 노아는 하나님의 참선지자였고 충실하게 “의를 전파하는” 사람이었다(벧후 2:5).
그는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지만 정경선지자들의 기록과 동일한 영감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동시대 사람들에게 말로 전했다.
나단, 엘리야, 엘리사, 침례 요한 등 다른 여러 선지자 역시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고 입으로 기별을 전했다.
예수 그리스도는 말씀만으로 전하셨는데도 “권위있는 자”(마 7:29)와 같았다.
심지어 그분의 청중가운데는 “그 사람처럼 말한 사람은 이때까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요 7:46, 쉬운)라고 고백한 이도 있었다.
복음서에는 그분이 지상에서 사역하실 때 “손가락으로 땅에 쓰셨다”고만 언급되었을 뿐이다(요 8:6, 바른).
예수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무엇보다 말로 전하신 분이다.
단순히 그분이 성경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 메시지의 권위나 구속력이 떨어지지는 않았다.
<부가설명>
오늘을 살아가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리, 음성을 직접 듣지 못했다.
예수님도 직접 보지도 못했다.
그런데 성도들은 그것을 믿는다.
베드로는 “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벧전1:8)라고 기록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가?
그 들려준 소리를 기록해서 성경이 되어 우리가 읽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께서 하신 모든 말씀과 행한 일을 기록해서 우리에게 성경책으로 전해 줬기 때문에 우리는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이 기록이 없으면 녹음되지 않은 그 소리를 우리가 어떻게 들을 수 있고 알 수 있겠는가?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했다.
“내가 주의 성전을 향하여 예배하며 주의 인자하심과 성실하심으로 말미암아 주의 이름에 감사
하오리니 이는 주께서 주의 말씀을 주의 모든 이름보다 높게 하셨음이라”(시138:2)라고 기록하셨다.
이 구절은 하나님의 이름과 그 말씀의 권위의 우열을 비교하는 표현이 아니다.
이것은 기록한 말씀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것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우리는 기록한 말씀을 가지고 있는 것이 얼마나 큰 은혜요 특권인지 깨달을 필요가 있지 않을까?
● 기록된 메시지
아담때부터 계속 구전으로 전해오던 하나님의 말씀은 모세때 이르러 드디어 기록하게 된다.
모세가 백성을 이끌고 출애굽할 때 하나님이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신거다.
법을 세우고, 모세를 지도자로 세우면서 드디어 하나님의 백성들로 구성된 국가가 탄생했다.
성경이 모세때 부터 쓰여진 것은 철저히 이스라엘 국가라는 역사속에서 쓰여지게 됨으로 성경이
사실적 배경 속에 기록된 역사책이 되게하려는 하나님의 섭리였던 것이다.
그후 성경은 이스라엘 국가가 마지막으로 존립하던 시기에 사도 요한을 통해 마지막 책 계시록이 쓰여지면서 마무리 된다.
철저히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쓰여졌다는 것이다.
출애굽 한 이스라엘이 아말렉을 쳐부순 직후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명하셨다(출 17:14).
성령께서는 성경의 첫 다섯 책과 시편 90편, 욥기를 남긴 모세와 같은 정경 선지자들을 이끄시어
오늘날 66권으로 이루어진 성경을 기록하게 하셨다.
후세 사람들이 읽고 하나님의 뜻을 분명히 깨닫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생의 생명을 얻어
기록된 말씀 따라 살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출17:14, 요20:30,31, 고전10:11,계1:19]
영감받은 메시지를 처음에는 말로 전한 뒤 자신 또는 믿을 만한 동료가 나중에 그것을 기록한 경우도 있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죽기 전에 이스라엘 백성에게 전한 마지막 연설을 글로 남겼다.
사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지상사역기간에 설교하고 가르치신 많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영감받지 않은 말(행 17:28; 고전 15:33; 딛 1:12)과 심지어 사탄의 말(창 3:1-5; 마 4:1-11)을 선지자가 인용한 사례도 있다.
선지자들이 다른 이들의 감정과 소망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인간적 반응도 표현했다는 사실 또한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단 8:27; 계 22:8, 9).
또 성경에는 본받아야 할 여러 좋은 모본뿐 아니라 피해야 할 나쁜 사례도 기록되어 있다(고전 10:1-11).
성경을 읽을 때는 이 책이 비록 완벽한 언어로 기록되지는 않았어도 시대를 초월하여 그릇됨 없는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부가설명>
신학계에는 성경 영감설에 여러 견해가 있다.
대표적인 것이 기계 영감설, 축자 영감설, 사상 영감설이다.
이외에도 몇 가지 있지만, 별로 주의할 필요 없는 것들이다.
기계 영감설은 성령께서 단어 하나하나를 불러주고 사람은 그것을 그대로 기록했다는 설이다.
지나친 주장이 아닌가?
축자 영감설은 성경에 기록한 모든 문자마다 다 영감으로 선택되어 사용했다는 주장이다.
보수주의 계통의 신학자들이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사상 영감설은 성령께서 성경 기자의 사상을 영감하시고 그 받은 영감을 자기의 자질과 지식에 따라 바르게 기록하는 것이라는 주장이다.
재림교회가 이것을 따른다.
과연 그럴까? 성경에는 성경이 영감되었다고 기록했다(딤후3:15~17).
우리는 이 말씀을 그대로 믿는다.
그것이 어떻게 영감되었는지 베드로는 이렇게 기록했다.
“먼저 알 것은 성경의 모든 예언은 사사로이 풀 것이 아니니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라”(벧후1:20,21).
이 말씀은 성경이 어떻게 기록되었는지 영감은 어떻게 역사했는지 대단히 분명하게 계시한 말씀이다.
이 말씀은 기계, 축자, 사상 영감이 아니고 사람 영감이라고 분명히 기록했다.
성경은 영감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한 것이다.
나는 성경대로 사상 영감설이 성경이 계시한 영감의 방법이라고 믿는다.
● 극적 연출, 상징, 비유
특별계시인 성경의 3가지 대표적 가치를 다시 정리하면,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신 구전내용이 기록되어 소중하고,
성경기록들은 역사적 배경속에 쓰여진 실제사건들이기에 믿을만하며,
그 기록된 말씀중에 우리가 표상이라고 말하는 극적연출과 상징 그리고 비유가 있기 때문이다.
표상은 쉬운 말로 그림자이다.
표상을 먼저 보여주는 이유는 실체를 더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함이다.
성경에는 갖가지 생생한 묘사와 은유가 풍부하다.
예를 들어 부조시대의 제단, 모세의 성막, 예루살렘 성전 등 구약의 희생 제도 전체가 그리스도의
대속적 십자가 희생과 그분의 하늘 제사장 직무를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히 8:1-6).
다니엘의 예언에서 세상왕국과 권세들은 거대한 신상의 각 부분(단 2:31-45), 짐승과 뿔들(단 7-8장), 두 왕(단 11장)으로 묘사됐다.
비슷한 상징들이 요한계시록에도 등장하는데 요한계시록 13장의 두 짐승이 그런 경우다.
예수는 자신을 생명의 떡(요 6:35, 41-58), 세상의 빛(요 8:12; 9:5), 참포도나무(요 15:1-8)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 13:1-9, 18-23)와 기타 여러 비유에서(마 13:24-52) 하나님 나라의 본질과 성장에 관하여 설명하셨다.
성경에는 여러 특이한 사건들도 많이 있다.
아담과 하와에게 가죽옷을 입히신 일, 노아방주 사건, 유월절에 어린양의 피를 바르라고 하신 사건 등 다양하다.
또 아주 충격적이고 극적표현과 명령들이 있다.
호세아에게 창녀 고멜과 결혼하라고 명하신 일,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을 작은 모형으로 만든 다음 이스라엘족속에 해당하는 390일 동안은 왼쪽으로
눕고, 유다족속에 해당하는 40일 동안은 오른쪽으로 누우라고 지시하신 일등...
이런 극적연출로 그들이 하나님의 경고를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지를 분명히 일깨워 주어야 했던 것이다.
선지자들의 경고를 대놓고 거부하던 시대에(대하 36:15-21)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자비의 행동으로
사람들이 자신들의 형편을 극적으로 깨닫게 하여 참된 회개로 이끌고자 하셨다.
<부가설명>
하나님은 말씀으로 에스겔이나 호세아에게 지시하셨다.
그들은 그 지시하신 사실을 그들의 글로 기록했다.
그들은 영감 받은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지시하신 내용은 하나님께 받는 것이었다.
그렇게 영감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기록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하신 언약의 돌판이 있다.
우리가 십계명이라고 말하는 그 돌판이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신의 손가락으로 친히 기록하셨다.
이보다 더한 영감의 글이 어디 있겠는가?
우리는 그 돌판을 보지 못한다.
그러나 거기 새긴 글은 읽는다.
하나님은 형상들을 보여주셨다.
다니엘에게 부여주신 우상, 단 7,9장의 짐승들, 계시록의 짐승들. 그것을 ‘사자다 곰이다 표범이다’라고 그 이름을 말씀하시지는 않았다.
그러나 영감 받은 사람이 그 모양을 보고 자기가 아는 대로 그 짐승 이름을 사용했다.
다니엘이 잘 모르는 짐승은 무섭고 놀라운 짐승이라고 썼다.
그가 그렇게 본 것이다.
영감받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은 그대로 기록했고 보여주신 것들은 그들이 보고 이해한 대로 묘사했다.
만일 잘못됐으면 성경께서 고쳐주셨을 것이다.
성경에는 마귀의 말도 있고 이방 왕들이나 심지어 점쟁이 말도 있다.
그래도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다고 한다.
그것은 그 모든 것을 기록하도록 영감하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 말들이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성경에 포함 될 때부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표현을 듣게 된다.
그러나 구체적으로 그 구절을 인용할 때는 뱀이 말했다고 말하고 아합이 말했다고 말한다.
이런 사실을 올바르게 구별하는 지혜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고 깨닫도록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한다.
마무리
재림교회에서는 화잇이 하나님의 영감을 받았다고 믿는다.
그녀의 저술, 생애, 사역은 참선지자의 요건을 충족한다.
화잇은 성경 선지자들과 동일한 종류의 영감을 받았지만 자신의 글을 성경과 동급으로 간주한 적은 한 번도 없다.
오히려 그는 언제나 성경을 드높였다.
화잇은 언제나 성경을 하나님의 권위 있고 그릇됨 없는 계시로 여겼다.
하나님이 메시지를 주시면 선지자는 그 기별을 자신의 말로 전달하는 것이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1).
환상과 예언적 꿈과 관련해 엘렌 G. 화잇은 ‘사상 영감’을 하나님의 계시와 인간 경험의 결합으로 이해했다.
“하나님이 주신 진리가 인간의 언어로 표현된 성경은 신성과 인성의 연합을 나타낸다.”(가려 뽑은 기별 1권, 25)라고 그는 진술했다.
하나님은 여러 방식을 사용해 기별꾼의 마음에 자신의 메시지를 이해시키셨다.
[26.4기.5과 안교교과/부가설명 김명호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