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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헤브론선교회 원문보기 글쓴이: 빛으로
본문 : 에스겔 1장1~14절
제목 : 하늘 보좌의 하나님
주전 597년 제1차 유배 때 바벨론으로 끌려간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놀라운 환상을 경험하고 예언자로 부름을 받습니다.
에스겔의 환상 경험은 유다를 굴복시킨 바벨론이 여호와의 통치 아래 있음을 극적으로 보여줍니다.
5년이 지난 뒤, 하나님은 그를 선지자로 삼으시고 장차 될 일을 환상으로 보여주십니다.
1. 선지자로 부르심(1~3절)
1) 때와 장소(1절)
“[1] 서른째 해 넷째 달 초닷새에 내가 그발 강 가 사로잡힌 자 중에 있을 때에 하늘이 열리며 하나님의 모습이 내게 보이니”
서른째 해 - 어느 때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1) 구약에서 제사장들이 삼십 세에 그의 직무를 수행한다는 점에서 볼 때(민 4:23, 30, 39, 43) 선지자요 제사장인 에스겔이 소명 받은 나이를 가리킨다.
(2) 희년에서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3) 요시야의 종교 개혁이 시행된 즉위 18년부터(왕하 22:3-23:23) 삼십 년이 지난 때(B.C. 593년)를 가리킨다.
특히 칼빈은 요시야 왕 18년에 유월절 의식이 실행되어진 점으로 미루어(왕하 23:23) 이때가 희년으로 추정된다고 언급하면서 이를 지지합니다.
(4) 바벨론 제국이 세워진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말한다.
(5) 본서가 편집된 후 삼십 년이 지난 때를 가리킨다.
그러나 이중에서 (4), (5)는 거의 타당성이 희박하며 (1) 또는 (3)이 가능하다 하겠습니다.
넷째 달 - 바벧론식 이름으로는 담무스월로서 오늘날 태양력의 6, 7월에 해당합니다.
그발 강가 - 일반적으로 이는 유프라테스 강에서 흘러나와 닙불(Nippur)을 남동쪽으로 거쳐 다시 에렉(Erech)이라는 도시 근방에서 유프라테스 강에 합류하는 거대한 운하로 봅나다
하늘이 열리며 - 마 3:16;요 1:51;행 7:56;10:11;계 4:1 등에도 나오는 이 표현은, 하나님이 성도의 영적 눈을 밝히사 천사의 비밀에 속한 초월적 사실을 특별히 보게 하시는 것을 나타냅니다(Calvin).
하나님의 모습 - '모습'의 히브리어 '마르아'는 '보다' 등을 뜻하는 '마르에'의 여성형으로서, 히브리어 '하존'과 더불어 하나님의 여러 계시의 수단 중 하나를 가리키는 말입니다(단 2:19;슥 1:18-21 등).
2) 때의 연대기적 정보(2절)
“[2]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그 달 초닷새라 ”
여호야긴 왕이 사로잡힌 지 오 년 - 바벨론의 2차 침입(B.C. 597년, 왕하 24:6-17)이 있은 지 오 년째 되는 해인 B.C. 593년을 말합니다.
3) 에스겔의 소개(3절)
“[3] 갈대아 땅 그발 강 가에서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갈대아 땅 - 바사 만에서 티그리스 강, 유프라테스 강 사이에 있는 메소포타미아 남부 지역입니다(창 11:31;느 9:7).
이는 바벧론 왕 나보폴라살과 그의 아들 느부갓네살에 의해 바벨론 제국의 중심 지역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부시의 아들 제사장 나 에스겔에게 특별히 임하고. - '에스겔'이란 뜻은 '하나님이 강하게 하시다', '하나님께서 단련시키시다'의 뜻입니다.
이는 포로 기간 중에 유다의 죄악성과 심판, 예루살렘의 파괴 및 회복 등을 전한 그의 사역적 특성과 잘 어울립니다.
한편 에스겔처럼 제사장 가문 출신이면서 선지자 사역을 감당한 자는 구약에서 사무엘(삼상 2:35;3:20;7:9;16:2-13), 예레미야(렘 1:1), 스가랴(느 12:16;슥 1:1;7:3) 등이 있습니다.
또한 본 구절의 '특별히 임하고'의 히브리어 '하요 하야'는 '하야'의 반복적인 표현으로서 그 의미를 강조해줍니다.
여호와의 권능이 내 위에 있으니라 - '권능'(야드)이란 원어상 '손'(the hand, NASB)을 가리키는 말로서 하나님의 권능, 능력을 나타내는 신인동형동성론(神人同形同性論)적인 표현입니다(3:22;8:1;33:22;37:1).
2. 북쪽에서 오는 폭풍우(4절)
“[4] 내가 보니 북쪽에서부터 폭풍과 큰 구름이 오는데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그 불 가운데 단 쇠 같은 것이 나타나 보이고”
북쪽에서부터 - 이에 대해서는 그 의견이 분분하며 어느 것 하나를 단정적으로 지지하기 힘듭니다.
(1) 렘 1:13, 14와 같이 북쪽의 바벨론 제국이 이스라엘을 침략해 오는 것을 암시한다(G.C. Anlders).
(2) 흔히 북쪽이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으로 묘사되어진다는 점에서(욥 37:22;시 48:2;사 14:13), 하나님께서 임하시는 것을 암시한다(Plumtre, Carley).
(3) 이는 단순히 하나님의 초월성을 암시한다(Wycliffe).
폭풍과 큰 구름 - 이에 관해서도 하나님의 심판을 암시한다는 견해와(Anlders, Calvin), 단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는 현상으로 보는 견해(출 19:9, 16, 18;삿 5:4;왕상 19:11;시 18:10;슥 9:14, Carley, Plumtre, Wycliffe)로 나뉩니다.
그 속에서 불이 번쩍번쩍하여 빛이 그 사방에 비치며 - 이는 27절과 연관되는 구절로서 하나님의 임재, 특히 '소멸하는 불'(히 12:29)이신 하나님의 임재의 한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단 쇠(하하쉬말)란 일반적으로 금과 은의 혼합물 또는 분광성(分光性) 금속을 가리키며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을 표현한 말입니다.
‘폭풍과 큰 구름’가운데 오시는 하나님의 표상은 이스라엘의 전통적인 신현 묘사에 속합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셔서 당신 모습을 드러내실 때 산과 땅이 흔들리고 폭풍우나 구름과 불이 함께 합니다(참조 출19:16~18, 20:18, 삿 5:4~5, 욥38:1, 시50:3, 104:32, 144:5)
하늘이 열리고 계시된 환상임에도(1절) 방향이 별도로 ‘북쪽에서부터’로 언급됩니다
지리적 방향보다는 신현의 신학적 의미를 내포한 표현 같습니다.
신현 사건은 주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고 민족들을 심판하는 문맥에 등장하는데, 그발 강가에서 에스겔이 경험한 신현 사건은 이스라엘의 심판과 관련됐음을 시사해 줍니다.
이스라엘이 경험한 적(아람, 앗수르, 바벨론)은 거의 예외 없이 북쪽에서 침략해 오기에 북쪽은 자주 심판의 방향으로 사용됩니다(렘1:13~15, 4:5~6, 6:1, 22~23, 겔9:2, 38:6,15)
3. 네 생물(5~14절)
1) 사람 형상의 네 생물(5~8a절)
(1) 사람의 형상을 한 네 생물(5절)
“[5] 그 속에서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그들의 모양이 이러하니 그들에게 사람의 형상이 있더라”
네 생물의 형상이 나타나는데 - '네 생물'이란 9:3;10:1, 3 이하에 나타나는
'그룹들'과 동일한 존재들입니다.
'넷'이란 숫자는 하나님의 무소부재(無所不在)하심 혹은 피조물의 완전수를 가리킵니다(14:21;창 2:10;계 7:1, 4).
본 구절은 하나님의 온전한 피조물로서 네 생물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수종, 보좌하고 하나님의 임재하심과 함께 나타난 것을 암시합니다.
(2) 저마다 네 얼굴과 네 날개를 갖고 있었습니다(6절)
“[6] 그들에게 각각 네 얼굴과 네 날개가 있고 ”
각각 네 얼굴 - 계 4:7, 8에 언급된 네 생물들이 각기 하나님의 얼굴로 묘사된 것과는 달리 한 생물이 네 개의 얼굴 모습을 지닌 것을 나타냅니다.
이는 곧 존재의 특성을 나타내줍니다(10절 참조).
네 날개가 있고 - 사 6:2의 '스랍'이나 계 4:8의 '네 생물'이 여섯 날개를 가진 것과 비교됩니다.
(3) 곧은 다리와 송아지 발바닥 같은 발바닥은 광낸 구리 같이 빛났습니다(7절).
“[7]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그들의 다리는 곧은 다리요. - '곧은'의 히브리어 '야솨르'는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옳은', '정직한' 등의 뜻을 내포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존전에 수종드는 천사들의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가를 암시합니다.
그들의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 이는 송아지 발바닥처럼 둥글고 원만하여 안정되게 서는 것을 암시하는 듯합니다.
또 한편으로 송아지가 정결한 짐승으로 인정되었던 사실(레 11:3)을 상기시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광낸 구리 같이 빛나며. - 이는 주 예수님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계 1:15)라고 한 말씀과 유사하며, 네 생물들이 불로 연단된 구리처럼 흠과 부정함이 없는 존재로 하나님 앞에 서 있고 행하는 자들임을 암시합니다.
(4) 그들의 날개 밑에는 사방으로 사람의 손이 보였습니다(8a절)
“[8] 그 사방 날개 밑에는 각각 사람의 손이 있더라”
이는 네 생물이 하나님의 뜻을 성실히 수행하고 봉사할 준비가 되어 있음을 암시합니다.
2) 날개와 얼굴(8a~11절)
(1)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습니다(8a,9절)
“[8a]그 네 생물의 얼굴과 날개가 이러하니 [9]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갈 때에는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날개는 다 서로 연하였으며 - 네 생물들이 상호 연합함으로써 독자적으로 행하지 않고 서로 일치하며 동역함을 나타냅니다.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 이들이 하나님의 뜻과 일을 수행할 때 다른 길로 가거나 서로 분열하지 않고 일사 분란하게 움직이는 것을 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종들이 하나님의 사역을 수행 할 때에 서로 일치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을 보여줍니다(수 1:7;행 1:14).
(2) 네 얼굴의 모양이 각기 달랐습니다(10절)
“[10] 그 얼굴들의 모양은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
⓵ 넷의 앞은 사람의 얼굴이요. - 여기에서 '사람'이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자로서 영적, 인격적 존재임을 암시하면서(창 1:26, 27) 특히 지혜를 사용하는 총명한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⓶ 넷의 오른쪽은 사자의 얼굴이요. - 사자는 짐승 중 가장 강인하고 사나운 존재로서 힘과 권능, 또는 왕의 주권을 상징합니다(창 49:9;잠 30:30).
⓷ 넷의 왼쪽은 소의 얼굴이요 - 소는 열심히 일하는 짐승으로서 충성 또는 봉사를 상징합니다.
⓸ 넷의 뒤는 독수리의 얼굴이니 - 독수리는 하늘 높이 힘 있게 비상하는 존재로서 민첩함 또는 고상함을 상징합니다.
(3) 날개의 기능입니다(11절)
“[11] 그 얼굴은 그러하며 그 날개는 들어 펴서 각기 둘씩 서로 연하였고 또 둘은 몸을 가렸으며 ”
둘은 몸을 가리웠으며 - 이는 네 생물들이 거룩하고 위엄 있으신 하나님을 수종들고 섬기는 자들로서 하나님 앞에서 자신들의 연약함과 제한됨을 겸손히 인정함을 암시합니다(사 6:2 참조).
3) 움직임(12~14절)
(1) 곧장 앞으로 영이 가려는 쪽으로 갔습니다(12절)
“[12]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그 생물들도 그대로 가되 돌이키지 아니하고 일제히 앞으로 곧게 행하며 ”
영이 어떤 쪽으로 가면 - '영'(루아흐)은 원어상 '바람', '호흡', '영'(Spirit)을 뜻하는 말로서, 네 생물의 영을 뜻한다고 보는 견해도 있으나(Aalders) 그 보다는 이들을 통제하고 주권적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가리키는 것으로 봄이 더 나을 것 같습니다(Alexander, Dyer).
이 '영'은 에스겔을 인도하시는 분으로도 자주 언급되고 있습니다(2:2;3:12, 24;11:24).
(2) 불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에서 번개가 나왔습니다(13절)
“[13]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그 불이 그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 하며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또 생물들의 모양은 타는 숯불과 횃불 모양 같은데 - '숯불'과 '횃불'이란 생물 사이에서 오르락내리락하는 '불'로 말미암아 나타나는 외적 현상으로서, 불이 붙었으나 사그러지지 않는 호렙 산의 '떨기나무'(출 3:1-4)의 현상과 유사합니다.
그리고 본 구절은 네 생물들이 위엄과 권위로서, 소멸하시는 불(히 12:29)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는 존재임을 암시합니다.
그 불은 광채가 있고 그 가운데에서는 번개가 나며. - 소멸하시는 불로서 임재하시는 하나님의 위엄과 권위를 암시합니다.
특히 '번개'란 거룩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 나타나는 것으로, 이것 역시 불의와 부정을 소멸하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엄위하심을 표현해줍니다(출 19:16;단 10:6;계 4:5;8:5).
(3) 생물들은 번개가 치는 모습처럼 나갔다 들어갔다 했습니다(14절)
“[14] 그 생물들은 번개 모양 같이 왕래하더라”
네 생물들이 하나님을 수종하고 그분의 뜻을 수행함에 있어서 신속하고 민첩함을 암시합니다.
한편 예수께서는 당신의 재림이 번개처럼 순식간에 임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바 있습니다(마 24:27).
*마24:27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고대 근동에서 ‘네 날개’는 원래 사방의 우주적 바람을 기리켰고, 둘 또는 네 날개를 가진 생물은 신적 존재로 하늘을 떠받들거나 운반하는 신들이었습니다.
에스겔의 환상에서 네 날개의 생물은 신적 지위를 상실합니다.
이들은 단지 여호와의 보좌가 놓여 있는 궁창을 떠받들고 있는 존재로, 여호와의 영에 따라 움직입니다.
날개의 기능에도 변화가 주어집니다.
진행하는데 두 날개만 사용하고, 다른 두 날개로는 자신의 몸을 가립니다(11절).
궁창이 그 위의 신적 영역과 그 아래의 세속적 영역을 엄격하게 구분하지만, 네 생물의 생명을 안전하게 지키기에는 충분하지 못했습니다.
여호와의 파괴적, 배타적, 절대적 거륵함 앞에서 그분의 보좌를 운반하는 생물마저 제 몸을 가려야 했습니다.
궁창 위 보좌에 앉으신 여호와와 궁창 아래 네 생물 사의의 간격은 목숨을 담보로 하는 절대 간격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1-3절 황량한 이방 땅의 하늘을 열고 찾아오십니다.
갈대아 땅 그발 강가 유대 민족의 유배지에 있던 에스겔에게 찾아오셔서 앞으로 될 일들을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은 그분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에게 보이지 않고는 결코 행하지 않으시기에(암 3장 7) 에스겔에게 환상을 통해 보여주십니다.
훗날 사도 요한도 같은 방식으로 장차 일어날 일을 보았습니다(계 4장 1).
에스겔이 죄악으로 무너진 조국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다면, 요한은 핍박받는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계획을 보았습니다.
현실은 강한 나라가 역사를 주도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그들은 모두 하나님의 계획을 이루는 도구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 한 분이십니다.
4절 영광스런 모습으로 나타나십니다.
하나님의 임재는 폭풍과 구름, 불과 빛으로 묘사됩니다.
성경에 나타난 전형적인 하나님의 현현(顯現)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언약을 맺으시려고(창 15장 17절; 출 3장 2절; 19장 9,16절), 혹은 구원하시기 위해서(시 18편 7-9절) 자기 백성을 찾아오셨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자기 백성을 심판하기 위해 오십니다.
북쪽은 바벨론의 영역인데, 하나님이 북쪽에서 오신 것은 바벨론을 도구로 삼아 유다와 예루살렘을 징벌하신다는 뜻입니다.
시내산의 빽빽한 구름과 불꽃 가운데 오셔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되어주신 분이(출 19장 16절) 이제 그들을 심판하는 분으로 오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같은 분이지만, 우리가 행한 일에 따라 그분을 뵙는 일이 기쁨의 교제일 수 있고 두려운 심판이 될 수도 있습니다.
5-14절 보좌에 앉아 세상을 통치하시는 분입니다.
빛 가운데 나타난 네 생물은 성소의 보좌를 받드는 그룹(천사)으로 보입니다. 이들이 날개를 펴서 영이 이끄는 대로 곧게 나아가는 것은 성소가 언제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곳으로 옮겨갈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소는 예루살렘에 고정된 장소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은 어디나 성소입니다.
후에 하나님의 영광이 예루살렘 성전을 떠나서(10장 18절) 바벨론으로 옮겨가는 것(11장 23-24절)도 이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건물이나 공동체도 그 자체로 하나님의 임재를 보장해주지 못합니다.
정의롭고 정결한 공동체에 그분의 영광이 함께할 것입니다.
[기도]
공동체-날마다 하늘 문을 열고 오시는 하나님과 교제하는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열방-인도 그리스도인들은 정부의 교육, 취업, 복지 혜택에서 배제되고 있다. 인도 정부가 그리스도인에게도 정부의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