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두북 수련원의 아침이 밝았습니다.
새벽 기도와 발우공양을 마치고 오늘은 산 아랫밭으로 올라갔습니다. 밭에 가기 전에 물을 풀 수 있는 도구를 만들었습니다.
스님은 나무 막대기 하나를 낫으로 자른 후 금방 막대기에 바가지를 달았습니다. 산 아랫밭에 도착하자 곧이어 농사팀 행자님들도 비료를 트럭에 싣고 왔습니다.
그저께 고구마를 수확한 자리에 겨울 채소를 심기로 했는데, 그전에 오늘은 밭에다가 유기농 천연비료인 액비를 뿌리기로 했습니다. 지난 1년 동안 유기농을 하기 위해 밭에 고무통을 가져다 놓고 그 속에 다양한 유기 자원을 미생물에 의해 발효시켜 물에 적정농도로 희석했습니다. 뚜껑을 열자 액비에서 악취가 진동을 했습니다.
“아이고, 냄새야.”
혹시 물이 튀어서 옷에 냄새가 배지 않도록 비옷을 하나씩 덧입었습니다.
스님은 방금 만든 긴 막대기로 만든 바가지를 들고 액비를 퍼서 물뿌리개에 담았습니다.
스님은 악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웃으며 바가지로 액비를 펐습니다. 스님이 액비를 퍼서 물뿌리개에 담는 동안 행자님들은 먼저 유기농 비료 다섯 포대를 밭에 뿌렸습니다.
한쪽 구석에 모아둔 잡초 매트는 반듯하게 펼쳐서 햇볕에 마를 수 있게 했습니다.
스님은 계속 바가지로 액비를 퍼주고, 행자님들은 액비가 가득 담긴 물뿌리개를 양손에 들고 차례대로 밭에 골고루 뿌렸습니다. 액비의 양이 많아서 한참 동안 밭을 오가며 계속 뿌렸습니다.
드디어 고무통에 바닥이 보이자 스님이 말했습니다.
곳곳에 널브러진 호스와 작업도구들을 정리 정돈한 후 산을 내려왔습니다.
두북 수련원으로 돌아오니 문경에서 새벽에 도착한 법사님들도 울력을 마치고 정토대전 회의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오전 10시 정각에 정토대전 사상팀 회의를 시작했습니다. 먼저 불교사상팀에서 ‘팔정도’에 대해 공부하고 토론해 온 내용을 발표했습니다. 법사님들은 각자 사전적 해석, 경전 인용구, 철학적 의미, 스님의 하루에서 발췌한 법문을 준비해와서 발표하고 이에 대해 스님의 이야기를 경청했습니다.
점심 식사를 한 후 오후에는 사회사상팀에서 화합과 정의에 대해 부처님이 말씀한 내용과 스님이 법문 한 내용을 토대로 다양한 해석을 발표했습니다. 특히 맛지마니까야에 나온 내용이 인상적이어서 이에 대한 질문과 대답이 있었습니다.
아니룻다가 부처님께 말했습니다.
"세존이시여, 참으로, 저희들은 화합하고 서로 감사하고 다투지 않고 우유와 물처럼 융화하며 서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냅니다. 저희들 가운데 가장 먼저 마을에서 탁발하여 돌아오는 자가 자리를 마련하고, 음료수와 세정수를 마련하고 남은 음식을 넣을 통을 마련합니다. 마을에서 탁발하여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합니다.
그는 자리를 치우고 음료수 단지나 세정수 단지나 배설물 통이 텅 빈 것을 보는 자는 그것을 깨끗이 씻어내고 치웁니다. 만약 그것이 너무 무거우면, 손짓으로 두 번 불러 손을 맞잡고 치웁니다. 그러나 세존이시여, 그것 때문에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닷새마다 밤을 새우며 법담을 나눕니다. 세존이시여, 이와 같이 저희들은 방일하지 않고, 열심히 정진하고 있습니다.” - 맛지마니까야 ‘오염에 대한 경(M128)’
법사님들은 스님에게 궁금한 점을 자유롭게 질문했습니다. 법사님은 역할분담을 미리 할 필요가 없었다는 부처님 당시의 문화가 인상 깊었다며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경전을 읽으면서 ‘사랑스러운 눈빛으로 지낸다’는 대목에 의문이 생겼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수행자들의 문화가 먼저 온 사람이 준비를 하고, 나중에 온 사람이 뒷정리를 하는 방식으로 서로 눈빛만으로 통했다는 내용인데요. 우리는 요즘 역할 분담을 해서 딱딱 소임을 하니까 자기가 맡은 일은 차질 없이 하지만, 먼저 왔다고 먼저 준비하지는 않거든요. ‘그 일을 맡은 사람이 어련히 알아서 하겠나’ 하고 그냥 두는 게 지금 우리들의 문화인 것 같아요.”
스님은 부처님 당시에 수행자들이 어떻게 생활했는지 이야기하며 오늘날 우리가 배웠으면 하는 점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수행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고 스님께서 늘 얘기하셨는데, 경전의 이 대목을 보면서 ‘아, 이런 게 바로 수행 문화구나’ 싶었어요.”
“경전을 보니까 이어지는 이 대목도 인상적이었어요. ‘맨 나중에 돌아오는 자는 남은 음식이 있으면, 그가 원한다면 먹고, 그가 원하지 않는다면 풀이 없는 곳에 던지거나 벌레 없는 물에 가라앉게 한다’ 이런 구절도 참 인상적이었습니다.”
법사님들의 질문과 스님의 대답이 오고 가는 사이 한 법사님은 옛날에 읽었던 책의 내용이 기억난다며 소개해 주었습니다.
“저는 아난존자의 얘기가 나온 책을 읽다가 감동을 받은 적이 있어요. 부처님의 10대 제자에 해당되는 최고의 장로들이 제일 앞에 오고 제일 뒤에 오는 역할을 주로 했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승단이 이동을 하거나 무슨 일이 있을 때 장로들이 늘 앞과 뒤를 지켰다는 거죠. 늑대들이 이동할 때 앞에도 리더가 있고, 맨 뒤에도 리더가 있어서 무리를 지키는 것과 똑같아요. 가장 힘센 늑대가 전체를 위해서 항상 살피듯이, 승가도 제일 오래된 장로들이 항상 모범이 되었다는 겁니다. 청소를 해도 장로들이 제일 먼저 일어나 청소를 했고, 또한 자신이 청소를 했다는 티도 내지 않았다고 해요. 뒷정리를 해도 마찬가지였다고 하고요. 그런 것이 대중들 사이에 조금씩 알려지게 되니까 저절로 수행 문화가 잡히게 되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수행공동체는 어떤 문화를 만들어가야 하는지 알게 되어 마음이 훈훈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스님과 질의응답을 계속하다가 오후 3시가 되어 정토대전 회의를 마쳤습니다. 법사님들은 긴 시간 동안 질문에 답해 준 스님에게 삼배로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곧이어 오후 4시부터 공동체 법사단회의를 화상으로 진행했습니다. 법회 운영 방안, 10차 천일결사 목표 수정, 법사 교육 수련 프로그램, 문경 수련원 cctv 설치 건 등 여러 가지 현안에 대해 스님의 조언을 구하고, 의결을 한 후 회의를 마쳤습니다.
해가 지고 저녁 7시 30분부터는 수행법회 생방송을 시작했습니다. 400여 명의 저녁반 정토회 회원들이 생방송에 접속한 가운데 스님이 여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행, 보시, 봉사하는 정토회 회원
이어서 스님은 지난 주말에 각 으뜸절과 실천 장소마다 봉사를 하러 와 준 정토회 회원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했습니다.
그리고 봉사자들의 활동 모습이 담긴 영상을 함께 본 후 즉문즉설을 시작했습니다. 사전에 세 명이 질문을 신청하고 스님과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중 한 명은 아이가 잠자기 전에 양치를 하지 않았거나 잠을 늦게 자면 화내고 짜증을 내게 된다며 어떡하면 좋을지 걱정스러운 마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아이가 일찍 잠들지 않으면 짜증을 내게 됩니다
“저는 밤에 잠을 잘 자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제가 잠이 들려고 하는데 11살 아이가 양치를 하고 있지 않으면, 양치를 빨리 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아이를 재촉하게 되고, 아이가 양치를 하고 눕기까지 내내 신경을 곤두세워요. 처음에는 ‘짜증이 올라오는구나’ 이렇게 알아차리지만 나중에는 놓치고 화를 낼 때도 많습니다. 그래 놓고 또 아침이 되면 미안해지고요. 제가 잠에 대한 집착을 조금 내려놓아야 할 것 같은데, 어떻게 하면 좋을지 궁금합니다.”
“현재 저희 집 형편상 방이 하나여서 한 방에서 같이 자요. 내년에는 어떻게든 아이의 방을 분리하든지, 아이가 자든 말든 제가 잠이 오면 자야겠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네, 일을 하고 있어요.”
“스님께서 저를 잘 타이르듯이 말씀해주셔서, 제가 아이한테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방향을 잡을 수 있었습니다. 방금 스님에게 도움을 청했듯이 아이에게도 제 어려움을 얘기하고 지혜롭게 잘 지내보겠습니다. 스님 말씀을 듣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외에도 다음과 같은 질문이 있었습니다.
대화를 마치고 나서 사홍서원으로 수행법회 생방송을 마쳤습니다. 밤 9시가 넘었습니다. 운동장으로 나오니 보름달이 휘영청 밝아 있었습니다.
내일은 새벽에 봉화 수련원으로 이동하여 찾아온 손님들과 만나 낙동강 상류 지역 협곡 사이에 난 길을 산책하며 대화하는 시간을 가질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