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는 대학의 순기능마저 마비시켰다. 언제부터인지 대학은 더 이상 학문과 지식을 추구하는 상아탑이 아니라 취업을 위한 전진기지로 변했다. 한창 캠퍼스에서 누려야 할 낭만은 취업을 준비하는 청년들에게는 사치일 뿐이다. 치솟는 물가와 금리에 경제적 부담감을 크게 느끼는 요즘, 대학가에서는 아침식사를 자주 거르는 학생들에게 든든한 한끼를 1000원에 제공하는 ‘천원의 아침밥’ 사업이 인기를 끌고 있다. 정부가 주도하는 이 사업은 쌀 소비문화 촉진과 학생들의 식비 절감을 주 명분으로 내세웠다. 그러나 더 철저하고 근본적인 대책 없이 청년들이 가진 불안감을 제대로 해소할 수 있을지 다소 의문이다. 실업과 비싼 주거비, 가뜩이나 지독한 학벌 사회로 몸살을 앓는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에도 악영향을 미치는 가난의 대물림 등으로 이 땅의 청년들이 몹시 속앓이를 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사랑 실천은 사회적으로 곤궁에 처한 이들과 빈곤한 이들을 지체 없이 도울 만큼 자발적이고 이타적이었다. 이 사랑의 실천은 점차적으로 시대의 질서를 변화, 개혁시키고 새로운 제도를 만들어 내기에 이르렀다. 전주교구가 운영하는 청년들을 위한 식당 ‘청년식탁 사잇길’이 지난 달 전북대학교 맞은편에 문을 열었다. 카페 이용은 무료이고 메뉴는 김치찌개로 3000원에 한 끼를 해결할 수 있다. “자,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사 먹어라. 와서 돈 없이 값 없이 술과 젖을 사라”(이사 55,1). 국고 지원 없이 후원을 통해 밥집을 운영하는 후배 신부는 주교님의 지향에 따라 지난 1년 동안 수도권 청년 밥집과 익산 요셉의 집 무료급식소 등에서 현장실습을 하며 성실하게 준비해 왔단다. 교회의 순수 이상에 따라 설립된 ‘청년식탁 사잇길’은 ‘저마다의 인생 여정을 떠나는 사람과 사람, 세대와 세대 사이에 맞닿은 길’을 지향한다. 그는 올해 교구 사목 방향인 ‘사랑의 실천’에 따라 이 밥집이 여러 가지 이유로 힘들어하는 청년 세대와 기성세대가 함께 어우러진 따뜻한 ‘식탁’이며 ‘길’이 되길 희망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시대에 ‘만남의 문화, 대화의 문화, 환대의 문화’ 나아가 ‘돌봄의 문화’를 강조하신다. “‘버리는 문화’와 정반대인 ‘만남의 문화’는 인류 가족이 나아가야 하는 유일한 방도입니다. 이는 다양성을 존중하고 미래를 바라보며 초월의 지평 안에서 살아가는 문화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 순전히 이러한 ‘만남의 문화’를 위하여 일해야 합니다. 그저 보는 것만이 아니라 눈여겨보고, 그저 듣는 것만이 아니라 귀담아들으며, 사람들을 그저 스쳐 가는 것만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 멈추어 서야 합니다. ‘불쌍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고 말하는 것만이 아니라 연민으로 기꺼이 그들을 보듬어야 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를 어루만지고 그에게 ‘울지 마십시오’ 하고 말하며 생기를 북돋우는 작은 성의를 전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돈과 권력」, 미켈레 찬추키 편저, 175) “풍요로운 삶을 위해서는 주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만약 자신을 내어 주는 행동이 따르지 않는다면, 돈은 구원이 아니라 단죄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의 경제, 가난한 이들, 젊은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 존경과 겸손의 형제애와 삶의 희망입니다. 돈은 그 다음입니다”(같은 책, 178).
교회의 미래인 청년들이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회에서는 더 이상 꿈의 날개를 펼쳐 볼 희망을 찾을 수 없다. 코로나19로 가장 힘들어하는 세대가 바로 미래를 이끌어나갈 청년들이다. 끊임없는 노력에도 불구하고 도무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미래는 그들의 책임이 아니라 우리 사회 모두의 책임이다. 열정이 넘치는 후배 신부에게 힘찬 격려의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