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많은 만년필이 있다. 명성과 품질에 어떻든 몽블랑 만년필은 남자의 로망이다.
어느 해 2월의 밤을 보내고 최명희는 긴 작업을 끝내고 서지문교수에게 메모를 팩스로 보낸다.
만년필 사랑에 있어서는 혼불 작가 최명희다.
“많이 쓰고 빨리 쓸 수 있고 정보를 입력할 수 있으며 얼마든지 수정이 가능하다고 사람들은 나한테 컴퓨터 쓰기를 권한다(…)그러나 문득 한번만 돌이켜보면 그렇게 '많이' 쓰고 '빨리' 써서 무엇을 남길 것인가 사뭇 의아해진다.”
작가 최명희가 경향신문에 쓴 칼럼 「만년필을 쓰는 기쁨」(1995년 5월 20일자)에 쓴 ‘만년필 예찬’의 한 대목이다. 이 글에서 그의 만년필은 단순히 글을 쓰는 도구만이 아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나를 황홀하게 사로잡는 것은 만년필의 촉끝이다. 글씨를 쓰면서도 흘리어 순간순간 그 파랗게 번뜩이는 인광에 숨을 죽이게 하는 촉끝은, 한밤중에도 눈뜨고 새파란 불을 밝힌다(…)나는 때때로 내가 본 이 세상의 모든 것 가운데 가장 아름다운 것이 이 만년필 눈이 아닌가, 찬탄을 금치 못한다.”
만년필에 내려앉은 푸른빛이 “만년필 등에서 날렵한 촉끝으로 쏟아지며 또 다른 불꽃을 일으킬 때, 나는 우주와 만년필의 교감에 전율하였다.” 이 순간, 만년필은 변신하며 글쓰는 도구에서 확장되어져 결국에는 작가 자신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혼불』도 한 글자, 한 글자, 작가 자신 그 자체가 되었다.
혼불이 유명해졌으나 작가 최명희는 고독했다.
자신의 진심이 통하는 고려대학교 서지문 교수에게 최명희는 자신의 밤샘 작업 내용을 팩스로 보냈다.
그 내용을 품고 있던 서지문 교수는 내게도 품게 보내주었다.
만년필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최명희.
그의 <나의 혼, 나의 문학>의 원고 초안, 교정쇄와 인쇄본을 함께 볼 수 있으니
그이의 정신을 대하니 기쁘지 아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