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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삶의 이야기 방 역사가 숨 쉬는 백마강은 흐르고
마초 추천 0 조회 223 24.04.19 18:14 댓글 29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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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4.04.19 18:39

    첫댓글 지난주말에
    저도 다녀왔는데
    조금은 실망했어요
    주변환경이ᆢ

  • 작성자 24.04.19 19:16

    암울했던 그 시절에 비하면
    실망도 할만하지요
    옛 선인들을 조금이라도 생각했다면
    저렇게 초라하지도 않고 홀대하는 역사의 모습을
    보여주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흔적 감사드립니다

  • 작성자 24.04.19 19:11

    말로만 들어오던 백마강.강폭은 적당히 넓으며
    수량은 생각보다 많았다 그런데 강물은 맑고 파라치가
    않고 혼탁하다.우리나라 강물 중에 이런 강물은
    처음이다 마치 여름 홍수 때 팔당댐을 떠난 흙탕물이
    한강에 이르러 혼탁해진 물 같다.목숨을 스스로
    끊어야 했던 三千宮女 들의 피눈물이 물들어

    오늘날에도 그곳에 이르면 혼탁해지는 모양이 아닌지?
    역사는 승자 독식의 역사(歷史)입니다.백제는 망했고
    신라는 백제는 망하지 않으면 안 될 나라라는 것을
    적극 선전해야만 했기 때문에 의자왕은 방탕(放蕩)하여
    정사를 돌보지 않았으며 三千宮女와 더불어
    음주가무(飮酒歌舞)로 세월을 보냈고 그로 인해
    나라가 망했다 시나리오 좋잖아요 낙화암(落花巖)이
    三千宮女가 죽을 자리인가요? 내가 보기에는
    뛰어내려도 죽을 것 같지도 않더구먼요.
    푸하하하 이상 마초 생각입니다

  • 24.04.19 21:15

    동감입니다
    아무리내려다봐도
    삼천궁녀가 저기서
    죽었다는건 믿어지지않아요 ᆢㅋ

  • 24.04.19 21:26


    저는 고딩 수학여행때
    고란사 낙화암 백마강을
    다녀왔는데...
    삼천궁녀가 빠져 죽었
    다는게 믿기지가 않드만요
    낙화암이 너무 낮던데요
    ㅎㅎㅎ
    백마강도 깊지도 않고
    깨끗하지 않고..

    삼청궁녀가 빠져 죽었다는
    것은 전설인가봐요..ㅎ

  • 작성자 24.04.19 22:40

    그래요 마초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3천 궁녀는 납득
    이 어렵고 어떤 문헌에도 찿아볼수가 없었지요
    한번 파헤쳐 본결과 유적을 통해 궁궐의 규모를 보면
    그들이 지낼 공간도 없었고.삼국사기 어디에도 그 기록이
    없고.그냥 궁인들이 떨어져 죽었다는 기록만 있다.
    조선 초기의 왕들은 나라를 통치하기 위해 여러 이야기를
    하다가 방탕한 생활로 망한 의자왕에 대해 술과 여자를
    좋아하다 망한 폭군이며 그 음란이 나라를 망쳤다고
    궁녀 숫자도 마구마구 부풀렸고 여기서도 3천이란 숫자는
    언급이 없지요

    조선 명종 때 학자인 민재인이 쓴 백마강부'에서 의자왕의
    방탕한 생활을 말하며 3천 즉 구름처럼 많다三千其如雲'는
    표현이 처음 나오지요.그러니 문학적으로 3천 궁녀다
    이말씀 입니다요 ㅎㅎ
    여기에 대중가요로 인해 사람들은 사실인 것처럼 믿었고.
    3천 궁녀는 문학 작품으로 대중가요로 인해 점차 사실인양
    정착되었지요
    .분명한 것은 역사는 강자의 편이다는 것 그들이 유리한
    쪽으로 적지요.패자는 얼빵한 멍청이가 된다는
    사실을 누구나 다 아실 것입니다 ㅎㅎㅎ
    참고가 좀 되었는지요 ㅎㅎ
    감사드리며
    굿밤 되소서

  • 24.04.19 21:38

    저 역시 부여 8 경이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오래전에 고란사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전설이 남아있는 고란초 이야기가 어렴풋이 기억납니다. 실제로 보면 별것 아닌
    풀인 것을 사람들이 탐하다니 낙화암은 삼천궁녀 전설 때문에 어디서 뛰어내렸을까
    궁금하여 절벽을 내려가보기도 했답니다.ㅋㅋㅋ백제의 멸망~~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정세에 어두운 지도자의 리더십 부재가 나라의 멸망을 가져온 것이라 생각합니다

    읽는 사람에게 자신의 생각이 분명하게 전달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출 수 있도록
    독창적인 글을 멋지게 표현하셨군요 수려한 삶 속의 지혜가 가득한 멋진 글이에요
    덕분에 저의지혜가 늘어만 가네요 해박한 설명으로 부여 백마강 기행문
    잘 읽었습니다.
    늘 건 행 하십시오~^^*

  • 작성자 24.04.19 22:46

    님의 댓글은 언제나 마음속에 좋은 여운을
    남겨주고 있군요
    늘 꼬리글을 올리신 님의 글 솜씨도 심상치가
    않군요 솔직히 잘 써진 본론보다 편안히.
    속마음을 털어내신 님의 글에 더
    친근감과 공감이 가는군요
    많은 분량의 과찬에 감사함을 표합니다
    편안한 밤 행복하게..
    보내소서

  • 24.04.20 05:04

    전 비록 서울 토박이지만 하남에 살면서 백제위 한성백제가 진정 어디인가를
    늘 궁금히 여기며 이글을 읽고 있습니다.
    보고온 지 한참된 고란초가 반갑습니다.

  • 작성자 24.04.20 07:08

    학문(學問)의 신에 대한 이야기는 접어두고 역사(歷史)적으로 보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의해 백제가 멸망한 뒤에도 왜는 백제에
    구원 군을 파병하지요 금강에서 백제 왜 연합군과 나 당 연합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백촌강 전투는 왜의 구원 군이 모두
    전사하면서 참담한 패배로 끝나고 말았지요
    이로써 치열한 백제 부흥운동도 사실상 막을 내리게 된 것이지요
    백제 비운의 역사가 백마강에 숨어 있지요.
    마초의 생각입니다
    오늘도 따뜻한 미소가 생각나는 저에게 살가운
    멘트에 감사를 드립니다
    늘 강건하시고요

  • 24.04.20 09:20

    맨처음 낙화암 관광시 몹시 실망했었던 생각이 떠오릅니다.
    아무리 살펴봐도 낙화암 & 백마강이 3천궁녀가 뛰어내려 자살 할 정도가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

  • 작성자 24.04.20 09:33

    그래요 역사는 늘 강자 편이죠
    동안 역사 문헌을 조사해 본 결과 어는 곳에서도
    삼천궁녀가 뛰어내릴 자리가 기록에 나와 있지를 않습니다
    또한 그렇게 큰 숙소도 없어요 없어 ㅎㅎ
    위에 밤새 연구해서 올린 댓글에 충분한 설명이 되어 있으니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그 당시 부여 인구가 얼마나 된다고 ㅎㅎㅎ
    주신글 감사드리며 오늘 주말입니다 멋진 기분으로
    힘차게 고고 렛츠고입니다

  • 24.04.20 14:05

    아주 재밌습니다
    공부도 많이 했구요. 댓글마다
    알알이 재밌고 좋습니다
    마초님 글 또 기다려 집니다.감사합니다 건강한 하루 되세요

  • 작성자 24.04.20 14:29

    백마강 물길 따라 백제의 길을 더듬어 본다
    4월의 산야는 초록 전에 덮여 흙빛조차 찾아볼 수 없다
    세상이 온통 초록빛이니 강물 또한 짙푸르다.
    말없이 흐르는 돛배가 시간을 거슬러 세월 저편으로 흘러간다.
    백제의 슬픈 역사가 서린 곳
    백마강 물속에는 물만 있는 것이 아니다 패망한 나라의 역사와
    꽃다운 여인들의 혼이 깃들어 있다.
    제국의 꿈이 사라진 땅 부여 백제 여인들이 흘린 피로
    붉게 물들었다는 낙화암 아픈 전설조차 세월 속으로 흘러
    보낸 듯 4월의 백마강은 푸르기만 해야 되는데 왠지
    모르게 흙탕물로 외지인을 반기고 있다
    졸작을 재밋게 읽어 주셨다니 이런 영광이 어디 있으리오
    성은이 망극 하나이다ㅎ
    감사드리며 주말을 굿럭으로요

  • 24.04.20 17:58

    몇년전 백마강 고란사라는 절에 다녀 왔는데 젊어지는 샘물이 있더라구요
    정자에 앉아 삼천궁녀의 넋도 기려보고 잠시 풍경에 매료 되기도 했지요

  • 작성자 24.04.20 20:27

    작지만 아늑한 천년고찰 고란사.(皐蘭寺)
    皐蘭寺 약수 고란초는 보이지 않았다.
    예전엔 위쪽 바위틈에 동그란 잎의 고란초가 분명히
    있었는데 지금은 유감스럽지만
    없었다 왜 그럴까 그것도 지금 마초가 연구 중입니다ㅎㅎ
    저 아랫부분이 우리나라 최초로,
    하강 점프가 이루어 진곳이다.
    마초가 특전사 출신인데 공수부대의
    시초는 삼천궁녀가 아닐까 하며
    지금 연구 중에 들어갔습니다 ㅎㅎㅎ

    백마강 물속에 오색채엽(五色綵葉) 있으니
    자연에 어울리는 고란사(皐蘭寺) 천녀사찰의 숨결이
    느껴지는 곳 내 무슨 인연으로 여기에 오게 되었는가?
    이것 또한 연구 대상 감이 아니든가 ㅎㅎ
    귀한 걸음 고맙습니다

  • 24.04.21 08:24

    오래전에 고란사 여행 하며
    절 뒷편 바위에 작은 잎들이 신기 했는데 고란초 였군요
    그렇게 귀한식물인걸 오늘 배웠네요 자기만 좋으라고
    다 캐갔다니 참 사람의 욕심은 어쩔수 없는지...

  • 작성자 24.04.21 09:04

    고란사(皐蘭寺)와 낙화암(落花巖)의 부여 여행 중에
    둘러보았던 궁남지 지금도 잊을수는 없지요
    고란사의 고란초(皐蘭草)가 많이 유실되었기에 한국의
    문화인이 겨우이 정도이니ㅎ

    가야인의 백제 정벌이 또다시 시작되지는 않을는지요ㅎㅎ
    참으로 안타까운 마음입니다ㅎㅎ
    사연 깊은 고란사(皐蘭寺)를 잘 다녀오셨군요
    부티나는 흔적에 고마움을 표합니다

  • 24.04.21 10:17

    @마초 마초님
    때문에 역사공부 확실히
    하고갑니다
    어찌 글을 맛깔스럽게 잘쓰고 일일이 답해주시는지 존경스럽습니다 ᆢ
    마초 닉을 기억할것같아요
    휴일 즐겁고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랄께요ㆍ

  • 작성자 24.04.21 10:34

    @채송
    어쿠 채송님 허접스런 글에 역사 공부라
    이렇게 가혹한 칭찬을요 ㅎㅎ
    오늘 이 글을 읽고 백년지기 같은 친근감이 듭니다
    어디 댓글뿐이겠습니까?
    자신이 갖고 있는 생각들을 몇 줄의
    문장이라도 님들과 함께 나누는 한 편의.글이야
    말로 서로의 간극을 좁히는 연연한 줄이라고 생각합니다.

    글이란 어떤 언어의 화려함이 아니라 진실함에 달려있다고...
    늘 잊지 않고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답니다
    여긴 비가 오지만 님의 환한 방문으로 햇살 머금은..
    하루를 보내게 되었군요
    감사드리며 오늘도 굿럭으로요

    .

  • 24.04.21 10:45

    @마초 혹여나 글쓰시는 작가님이 아닐까요?

  • 작성자 24.04.21 11:07

    @채송
    당치않은 소리를요 작가라니요 ㅎㅎ
    그 무슨 당황스럽게 황당안 말씀을요
    글을 쓰는 문학도들은 아름다운 상상의 나래 속에서
    유희를 하며 영혼의 소리를
    아름다운 색을 입히고 덧칠을 하면서
    또 하나의 작품이라는 침묵의 유희 언어를
    그려가는 마술사 이기도하지요

    하지만 마초는 낙서에 불가한 허접스럽 글재로
    뜸이들든 밥처럼 뜸이 들게끔 몇줄씩 이어가고 있음을 참고했으면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칭찬을 주심에 그저
    몸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감사드리며 오늘도 고고렛츠고로요

  • 24.04.21 15:17

    @마초 시를 좋아하고
    책보는걸 좋아해서
    글 잘쓰는사람이 부러워요

  • 24.04.22 01:36

    백마강 노래를 흥얼 거리며 선배 님의 글을 읽습니다.
    의자왕에 대한 역사평이 잘못되었다는 설이 있습니다.
    삼국유사는 오늘날 새롭게 재조명 하여야 할 것 같아요 사대주의 사상에
    우리의 역사가 너무 왜곡 된 것 같다는 설 ㅎㅎㅎㅎㅎㅎ
    삼천궁녀의 한이 백마강을 타고 흐르는 것 같은 선배 님의 글의 흐름속에
    같은 동질의 아픔을 겪습니다. 외세를 끌어 들인 위정자들 그리고 한을 안고
    세상을 등져야 했던 아픔이 ......
    공수부대의 시조라는 말씀에 빵 터지며 아픔의 글을 희석시켜 봅니다.
    좋은 글 담으며 선배님의 건강할 글을 기다려봅니다^^

  • 작성자 24.04.22 08:26

    백제의자왕과 같이 거론되는 三千宮女 는 진짜삼천명이 아니라
    그만큼 많은 宮女를 거느렸다는 표현이라고 겹 처지면서
    많이 와전된 것이 아닌가 하는 마초생각 입니다 그렇게 알고 있고요 ㅎㅎ
    그 당시 부여인구가 얼마인데 정말로 웃겨 푸하하하
    더불어 삼국사기(三國史記)를 통해 널리 알려져 있는 백제멸망
    내용은 당시 승자였든 신라입장에서 쓰인 내용이라 신라가
    백제를 멸망시길수밖에 없었던 당위성을 보여주는데 치중을
    했지를 않나 합니다 歷史란 늘 강자편에서 기록을 했기에
    분명한 것은 올바른 결론은 우리 민초들이 歷史를 알아야 하는
    가치의 지혜가 너무 순진해서 낙후가 되었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라 감히 말씀드려 봅니다 푸하하하
    가만히 보면 일본이나 한국 歷史왜곡의 달인들이여ㅎㅎㅎ
    아우님 부연설명 감사혀 ㅎㅎ
    건 필하시고

  • 24.04.22 09:44

    정절을 여인의 최고의 미덕으로 여기던 옟날엔
    열녀문까지 세워서 여인들을 성의 감옥에 가두었지요
    요즘 세상은 '처녀'가 부담되어 아무에게나 줘 버렷다고 할만큼 성 개방시대죠
    수원역에 가면 벌건 대낮에 젊은 남녀가 키스하는 장면은 수백군데서 목격할수 잇습니다
    첨엔 당황했으니 하도보니 얘사롭고 시선만 살짝 피하게 되더군요

  • 작성자 24.04.22 10:05

    이 시대의 뒤죽박죽인 이 염량세태(炎凉世態)를
    맑게 씻겨 주는 청량한 댓글입니다.
    감사합니다

  • 24.04.22 16:43

    잘 읽고 갑니다.
    많은 생각을 하게 됩니다.
    백마강은 비온 뒤에 찍은 것 같네요.

  • 작성자 24.04.22 17:44

    너무나 가슴 아픈 암울한 역사 속의 사연을 귀가
    따가울 정도로 들은 전설이지요 백제의 멸망 앞에 수많은?
    궁녀들이 슬피 울면서 적군에게 몹쓸 짓을 당하느니 깨끗하게
    죽는 것이 옳다 하여 부소산 높은 절벽에서

    공수 교욱도 받지 않고ㅎㅎㅎ 높은 절벽에서 띄어 내린
    그 정신이야말로 길이길이 후손에게 사실인지는 몰라도ㅎㅎㅎ
    전설이 된 이야기로 바로 낙화암이라 하지요 다 아시는
    사실이지만 늘 그렇치만 패자의 역사 실록은 정말로 비참 한
    것이라는 걸 우리모두는 알아야 할 것입니다
    선배님 관심 주심에 감사합니다
    ~단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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