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침에 읽는 오늘의 詩 〈1378〉
■ 밤길 (박남수, 1918~1994)
개구리 울음만 들리던 마을에
굵은 빗방울 성큼성큼 내리는 밤
머얼리 산턱에 등불 두셋 외롭구나.
이윽고 홀딱 지나간 번갯불에
능수버들이 선 개천가를 달리는 사나이가 어렸다.
논둑이라도 끊어져 달려가는 길이나 아닐까.
번갯불이 스러지자
마을은 비 내리는 속에 개구리 울음만 들렸다.
- 1940년 첫시집 <초롱불> (삼문사)
*인적이 드문 시골에서의 여름밤은, 도시와는 완전히 다르다는 걸 살아보니 실감하게 됩니다. 대부분의 가정이 이른 저녁에 잠자리에 들어 불빛이 없는 데다, 드문드문 서 있는 가로등들도 짙은 어둠으로 인해 부분적으로만 빛을 발하는 실정입니다.
여기에 가로등마저도 농작물의 성장을 위해 밤 12시 이전 소등하면, 주변은 적막한 어둠에 휩싸여서 가끔 휘이 휘이 하는 호랑지빠귀 소리나 개구리 소리만 들리더군요.
1940년대 초반에 써진 이 詩를 읽어 보면 요즘의 농촌 풍경과 별반 다르지 않음을 알 수 있는데, 그만큼 농촌사회가 격변하는 시대적 흐름에서 소외되었다는 반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詩는 일제 강점기 한적하고 평화로운 농촌마을의 비 오는 밤 풍경을 감각적으로 묘사하고 있는 작품입니다. 비가 쏟아지거나 번개가 치고 사나이가 달리는 등 농촌의 고요를 깨뜨리는 순간의 위기가 있긴 해도, 곧 평온을 되찾으며 이전의 고요한 여름밤으로 돌아가는 농촌의 모습을 평이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詩에서는 ‘밤길’이라는 제목과 함께, 평화로운 농촌을 전반적으로 무겁고 어두운 분위기로 표현한 점이 다소 이색적이라 하겠습니다. 아마도 그것은 이 작품이 써진 시대가 암울하던 일제강점기 상황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만.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