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드버즈가 해체되자 지미페이지는 야드버즈를 되살려 보려는 꿈을 안고 신선한 모습의 세 실력파를 모아 그룹을 재건하려는 계획을 세?m다..지미는 이러한 구상에 알맞는 인물로 베이스/키보드 주자 존 폴 존스와 런던의 클럽가에서 명성을 날렷던 보컬리스트 테리 리드에게 그룹 결성의 뜻을 비추엇다..
존은 이를 수락햇지만 테리는 클럽과의 계약문제로 자신의 친구인 로버트 플랜트를 대신 소개시켜 주었다. 말할 나위없이 로버트는 예전에 밴드 오브 조이 시절 부터 함께 한바 잇는 드러머 존 보넴을 지미에게 추천하여 4인조의 골격을 갖추게 된다..
지미 페이지. 존 폴 존스. 로버트 플랜트. 존 보넴의 4인조로 그룹이 제 모습을 찻게 되자 이들은 다섯번째 멤버라 할 수 잇는 피터 그랜트를 매니저로 맞이 하여 뉴 야드버즈란 이름으로 재 출발한다..
차분한 리허설과 세션 레코딩을 통해 새 그룹으로서의 팀웍을 다지고 모든 준비를 빈틈없이 갖춘 이들은 스칸디나비아 공연까지 마치고 무사이 런던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야드버즈의 영광을 되살려 보자는 뜻에서 지어진 뉴야드버즈란 그룹명이 도저이 맘에 들지 않았다..
그리하여 새 이미지로 활기찬 출발을 시도하는 것이 더욱 바람직하겟다고 결정한 후 적당한 새 그룹명을 짓기 위해 고심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날 더 후(THE WHO)의 드러머이 키드 문이 납으로 만든 대형 기구인 리드 벨룬의 이름을 따서 그룹명을 짓자는 제의가 잇었다..이 말을 듣고 지미는 리드의 철자를 레드(LED)로 고치고 1차대전 당시에 세상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독일의 비행선 제플린호의 이름을 따서 그룹명을
LED ZEPPELIN
으로 확정지었다..
새출발의 준비를 이렇게 마친 이들은 레드제플린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캐리어를 낚기 시작한다..이들의 초창기 레퍼터리는
STANEINFG THERE>등이엇으며 런던 일대의 클럽무대를 중심으로 팬들을 늘려 가고 잇엇다..
허나 그때 까지만 해도 아직 레드제플린이라는 존재는 팬들에게 생소했으므로 이들의 출현을 알리는 포스터에는 언제난 이전의 야드버즈라는 달갑지 않은 주석이 따라 다녔다..
그러는 사이에 매니저는 아틀란타 레코드사와 레코딩계약을 하는데 성공했다..그러나 당시의 영국측 프로모터들과 팬들은 레드제플린에 그다지 깊은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해서 매니저는 모국측의 냉담한 반응에 환멸을 느껴 기수를 미국으로 돌려 1969년 2월 대망의 데뷔앨범과 이 앨범에서 나온 싱글 "GOOD TIMES BAD TIMES를 각각 미국 시장에 선보엿다..
당시 비틀즈 크림 지미핸드릭스 제니스 조플린 사이먼 앤 가펑클을 송두리째 잃은 팬들은 록의 르네상스시대가 최후를 고하고 있는 문턱에서 그들의 거대한 공허를 메워줄 그 무엇을 찻고 잇었다..그들의 텅빈 가슴에 처절한 충격으로 파고든 장본인이 바로 레드제플린인 것이다..
레드제플린의 데뷔 싱글은 당시 80위 ..앨범은 50만장의 판매고를 순식간에 돌파하며 챠트 10위의 기록을 세웠다..
이것으로 레드제플린은 대형그룹으로 성장하기 시작한다.
이렇게 지미 페이지가 주축이 된 레드제플린은 과거 야드버즈시절의 동료였던 제프ㅡ벡이 이끄는 제프벡 그룹보다 8개월 가량 앨범이 늦게 발매된다..그런데 이들 두 그룹은 모두 데뷔앨범에서 윌리 딕슨의 고전인 를 수록하고 있다 ..거의 비슷한 시기의 같은 곡을 두 그릅이 부른 것이다..레드제플린은 로버트 플랜의 끈적한 보컬을
제프ㅡ벡 그룹에서는 로드 스튜어트의 허스키한 보컬을 들을 수 잇다..
데뷔앨범으로 큰 센세이션을 불러 일으킨 레드제플린..
이들에게 무관심 했던 영국의 제작자들은 이들을 과소평가한것을 후회하게된다.부와 명성 그리고 화려한 인기를 목표로한 위선적인 테크니션으로서가 아니라 음악 속에 살아 잇는 순수한 정열을 바탕으로 진실된 인간애로 뭉쳤던 레드 제플린...
드러머인 존 보넴의 사망후...새드러머의 영입은 고인에 대한 도리가 아니다..
우리가 보넴을 위해 제플린을 해산하겟다는 감동어린 이야기를 남긴 후 12년간의 비행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