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펌] Re:무상 음악교육의 위력, 베네수엘라 칸타빌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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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니 조회 9 | 09.05.11 14:38 http://cafe.daum.net/dream9221/4c2N/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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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명을 밝히기를 꺼리는 서울의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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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 수필>  무상 음악교육의 위력, 베네수엘라 칸타빌레

단 두 시간, 귀의 즐거움을 위해! 

  연초에 베토벤에 대한 잡글을 쓰면서 잠시 언급했던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이 우리나라에 와서 공연을 한다! 며칠 후 12월 14일(일) 예술의전당에서 구스타프 말러의 교향곡 1번 <타이탄>을 연주한다. 이 곡이야말로 이 악단의 특성을 아주 잘 드러내줄 수 있는 곡이라고 본다.

  지난 11월 거장이라는 칭호를 받는 사이먼 래틀이 지휘하는 베를린 필하모니 관현악단이 내한 공연을 했다. 음악애호가라는 사람들이 세계 최고의 소리라고 저마다 입이 닳도록 칭송하는 바, 과연 그 소리가 어떠한지 궁금하여 예매 싸이트를 기웃거려 보니, 프롤레타리아 전용석에 앉기는 틀렸다. 7만원에서 45만원! 아무리 음악이 좋아도 그렇지 단 두 시간의 연주회를 보려고 45만원을 선뜻 지불하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사람일까? 이런 고가의 연주회에 앉아 있는 것 자체가 투메가노믹스로 신음하는 노동·민중 계급의 현실 앞에서 예의가 아닐 터, 일찌감치 포기하고, 래틀의 브람스 해석은 별로일거야 하며 높이 달린 포도송이 밑을 지나는 여우의 심정으로 베를린 필의 CD나 들어보았다. 그러나 베네수엘라 청소년 악단의 경우는 달랐다. 보이자마자 고가의 표를 무작정 예매했다. 부디 그 날 전교조에 아무 일 없기를 바라면서……. 이들이 한국에 와 공연을 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기대하지 않았는데 이게 웬 일인가!

음악의 약속

  최근 나온 ‘음악의 약속’이란 DVD를 감명 깊게 보았다. 국가가 청소년들에게 악기를 대여하여 무상으로 음악교육을 하고 200여개의 청소년 관현악단을 육성하는 베네수엘라의 ‘엘 시스테마’에 대한 현장 취재이다. 1970년대 중반에 시도되어 점차 확대된 이 제도는 저소득층을 포괄하여 누구나 원하면 무상으로 악기를 대여 받고 관현악단에 소속되어 음악 활동을 할 수 있는 열린 음악교육 체제이다. 이를 통해 수많은 가난한 아이들도 원하면 음악 학습에 접근할 수 있다. 그렇기에 빈곤에서 오는 일탈의 위험으로부터 청소년들을 구해낸 것이 바로 음악이 가진 위대한 힘이라고 선전되고 있다.

  그런데 나에게 특히 감동을 준 것은 그들의 음악이 아니라 나이 어린 단원들의 인터뷰 내용이었다. 이 모든 것에 돈이 필요 없었다. “우리가 배운 것은 음악만이 아니라 사람들과의 유대와 사회적 책무이다, 앞으로 내가 받은 것을 똑같이 어린 후배들에 베풀겠다, 유학 중이지만 시간만 난다면 고국에 들러 봉사하고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음악인이 되어도 꼭 우리나라에 돌아 올 것이다, 오늘의 나를 있게 한 이 사회에 감사한다, …….” 입에 발린 립 서비스라면 몰라도 우리 사회에 진정으로 이런 생각을 가진 음악인이 얼마나 있었던가? 음악으로 성공하고 나서 그들은 누구에게 감사하고 있는가?  음악으로 이 사회에 뭔가 봉사함을 자신의 입신양명과 돈벌이에 앞서 고민하는 음악인이 얼마나 있을까?

베토벤 바이러스

   우리 사회에서 클래식 음악이란 영어와 마찬가지로 귀족 계급의 필수 장식품이요, 허망한 교양의 상징이다. 자신이 가진 음악문화란 것이 노래방에서 기계의 힘을 빌려 악을 써서 점수 올리는 것이 전부이면서도 - 물론 노래방 문화의 민중적 가치를 폄하하자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 자기 아이에게는 값 비싼 공연 티켓을 사주며 제발 공연 보고 감동 먹어주기를 기도하고 클래식에 제발 눈 뜨기를 빌고 빈다. 억지로 피아노 학원 보내놓은 아이가 어쩌다 악보 없이 선율 몇 자락이라도 두드리면 자기 자식이 모차르트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떨고 자랑거리 삼는다. 베토벤을 죽도록 안 듣는 학교장은 그래도 음악교육이라면 모름지기 ‘크라아~씩’를 가르쳐야 한다고 설파한다. 음악 공부란 곧 클래식 공부요, 음대란 곧 클래식 음대이다. 클래식 음악 공부가 돈 없이는 안 된다는 것을 모두가 잘 알기에, 우리 사회에서 음악가는 곧 부유한 사람으로 통한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피아노, 플룻 배우기는 교양인 대접 받기 위한 코스일 뿐, 진정한 음악 사랑은 보기 드물다. 음악은 배우되 음악에 너무 빠지지는 말라! 베토벤을 좋아하세요? 와아아~~ ! 베토벤을 듣지 않을 뿐 아니라 사실은 매우 싫어하면서도 한 편으로는 베토벤에 주눅 든 사회. 인간을 위한 음악은 없고 음악을 위한 인간이 있다. 이것이 ‘베토벤 바이러스’의 한국적 돌연변이다.

베네수엘라 칸타빌레

  클래식 음악을 타고 전염되는 ‘베토벤 바이러스’의 돌연변이 증후군에서 아직도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우리에게 베네수엘라에서 불어오는 신선한 음악 바람은 우리 음악 문화에 대한  반성적인 눈을 열어주는 해독제와 같다.

  ‘엘 시스테마’가 배출한 각광받는 젊은 지휘자 구스타보 두다멜과 베네수엘라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는 지금까지 4종의 음반을 내어 놓았다. 베토벤의 교향곡 5·7번, 차이코프스키 교향곡 5번, 말러의 교향곡 5번, 그리고 남미 관현악곡집 ‘피에스타’이다. 이들의 연주에서 빈 필하모니나 암스테르담 콘써트헤보우 관현악단의 고색창연하고 깊이 있는 울림을 기대하기는 힘들다. 그들의 소리는 확실히 거칠고 투박하다. 그러나 생동감이 있고 자신감에 넘친다. 음반만 들어도 그들이 진정으로 음악을 즐기는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연주회 말미에는 베네수엘라 국기 모양의 유니폼으로 갈아입고 자기네 남미의 관현악을 신나게 연주하기도 한다. 콘트라베이스를 팽이처럼 돌리고 딴따라 풍으로 트럼펫을 이리저리 돌려 연주하는 동작은 일본 코믹 드라마 ‘노다메 칸타빌레’보다 더 흥겹다. 

  음악을 위해 인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을 위해 음악이 있음을 보여주는 그들의 음악 행위는, 인간이 수단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이어야 한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주는 듯하다. 이들의 존재가 던지는 메시지는, 좋은 클래식 음악이 청소년을 선도하는 효과가 있다는 식상한 기능주의나 신비주의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의 위대함이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인간의 위대함에 주목할 것을 요구한다.

공짜가 만드는 세상

   여기서 무상교육을 다시 생각한다. 받은 것이 있어야 고마워할 것이 있다. 자라나는 세대의 모든 이들에게 차별 없는 배움의 기회를 제공하는 것, 부자 집안이나 가난한 집안이나 배움에서 차별 없는 완벽한 무상교육은 의식 또는 무의식에 사회적 유대감과 책임 의식을 심어줄 것이다. 볼리바르 청소년 관현악단 단원들의 인터뷰는 한 마디 한 마디가 감동이다.  사회의 도움으로 이렇게 성장했기에 이 사회에 다시금 도움을 베풀겠다는 그들의 마음가짐은 무상교육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이 볼펜은 누가 주었지요?” 부모님도 장군님도 아닌, “우리 사회가 주었다”는 대답 한마디에서 그 사회의 밝은 미래를 예견해도 좋을 것이다.  

  이 악단이 자랑스럽게 걸고 있는 이름, ‘시몬 볼리바르’는 19세기 전반기 라틴아메리카 독립과 통일을 지도한 혁명가이다. 미국의 뒷마당이 아닌 새롭고 당당한 라틴아메리카를 꿈꾸는 베네수엘라 변혁의 한 축, 차베스 정부는 이 무상 음악교육 시스템을 적극 후원하고 있다 한다. 신자유주의의 극단에서 빈익빈 부익부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자 급기야 봉기와 변혁이 사회를 휩쓸게 된 베네수엘라에서는 여러 가지 사회적 프로그램들이 빈자를 위해 복무하는데, 무상 음악교육 프로그램인 ‘엘 시스테마’ 역시 예외일 수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민영화가 살 길이라 하는데, 베네수엘라에서는 석유회사 국유화가 살 길이었다.

  시몬 볼리바르 유스 오케스트라가 지구 반대편 우고 차베스의 베네수엘라에서 실어 와 폭포처럼 쏟아놓는 소리로부터 ‘베네수엘라 바이러스’가 널리 전파되어, 교육 단계에서부터 심화, 고착되는 계급 간 불평등으로 깊이 병든 우리 사회를 치유하게 된다면, 그것은 아마도 ‘음악의 힘’이 아니라 ‘사회 정의의 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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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민영석의 재즈 스터디 원문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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