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이시카와현 노토반도에서 일어난 새해 첫날 지진에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고 잠을 설쳤다.
아들네가 도쿄 처가에 간 이유때문에 확인을 하면서도 가슴을 쓸어내린다.
하여 어차피 못잘 바에는 OTT나 시청하자 싶어 프로그램을 고르려던 순간 첫눈에 들어온 제목이 "태풍이 지나가고"였다.
"아베 히로시" 주연의 태풍이 지나가고는 일상적이지만 소소한 일상의 이야기는 아니다.
한때 소설가로서 촉망받던 "료타"지만 대기만성형이 아닌 인생 대기자로서 존재한다.
물론 가족들은 그런대로 대기만성형으로라도 아들이거나 아빠이거나 남편이거나 남동생으로도 살아내길 바라지만
그의 삶은 그들의 희망사항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우선적으로 그는 이혼한 돌싱남이자 나름 소설가로서 15년 전에 한번 맛본 궁극의 목적지로 주어지는 상이라는
울타리와 굴레에서 헤어나오지 못한다.
"사람이 없는 식탁"으로 출간도 하고 나름 시작점은 성공한 인생살이를 향해 가는 듯 하였으나 역시 인생사는 쉽지 않다.
하여 소설감의 소재를 찾는다는 명목으로 사립탐정 노릇을 하고 있지만 그또한 충실한 인간의 표본은 아니다.
그런 면면을 보건데 책임지지 못하는 결혼생활이란, 자유의지로 살고픈 인간들이란
제도권에 들어선다는 것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 같긴하다.
비열하다고 느껴야 할지 본래 직업적으로 그런 뒷거래 일들은 다반사로서 눈감고 지나가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저런 야료는 기본이요 그런 양심에 털난 군상들의 찌질한 탐심은 결국 도박이라는 족쇄를 선사하고
일확천금의 꿈을 꾸게 하거나 혹시나 싶은 비루하고 남루한 자들의 탐심은 숱하게 꼬꾸라지고 넘어지며 되돌려받음이 없음은 당연지사.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나지 못할 욕망의 끈은 처절하다 못해 비아냥 거리고 싶을 지경이다.
하다하다 고등학생에게 조차 뜯어내는 야비한 노략질은 정말 인생 밑바닥의 끝판왕을 보는 듯하여도 가엽다는 생각이 들긴한다.
와중에 "그렇게 쉽게 원하는 어른이 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라며 훈수를 두신다.
그래도 허세작렬이라고 모처럼 찾아든 부모님의 집에서 아버지의 유품을 뒤지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마구잡이 손끝을 움직여대도 혼자 남겨진 엄마를 위해 푼돈이나마 용돈으로 드릴 일말의 양심은 남겨져 있다.
와중에 본심인 족자를 찾다가 아버지의 유품을 모두 버렸다는 엄마의 말에 "오십년을 같이 살았는데 어떻게 그래?"
"오십년이나 같이 살아서 그래"...라는 엄마의 말이 묘한 대비로 각인이 된다.
같은 "오십년"이라도 생각의 차이는 너무나 현격해서 듣고 보는 순간 아, 대단한 언어법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오십년을"과 "오십년이나"의 극명한 대비는 부모님의 골이 깊었던 지나간 세월을 제대로 인지하게 한다.
어쩌면 '지긋지긋했을 일이나 그래도 살아는 간다' 는 뉘앙스 말이다.
본업이 소설가 라는 자부심보다는 소설리서치 취재원으로 전락하는 중이어도 보잘 것 없는 자존심은 챙겨가며
사립탐정이라는 직업으로의 전환은 거부하는 자이지만 그래도 아들과의 만남은 포기하지 못한다.
그러나 소장의 이 한마디는 참으로 뇌리에 박혔다.
"누군가의 과거가 될 용기를 가져야 남자는 진정한 어른이 된다"는 것...헤어진 전처의 일거수 일투족을 눈여겨보며
자신의 자유분방한 삶의 의지를 탓하기 보다는 책임은 못질지언정 끝까지 질척거리며
가족관계를 유지하고픈 또다른 욕망의 발현에 자신을 제어하지 못한다.
그렇게 자신의 자존감과 궁핍은 별별 이유로 적당한 선에서 타협을 하고 이뤄나가지 못하는 현실의 삶은
그렇게 뒤죽박죽 대책 없이 흘러만 가도 끊임 없이 재결합을 원하는 자신과 엄마는 희망의 끈을 놓지는 못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집에서 돈이 될만한 것들을 추려내고 슬쩍 움켜쥐곤픈 욕망도 여전하다...남겨진 유품이라고는
그야말로 쥐뿔도 없는 삶을 유지하던 아버지의 과거는 또 그렇게 슬며시 현실을 잠식한다.
"왜 남자들은 현재에 충실하지 못하는지, 도대체 언제까지 잃어버린 것을 쫓아가고 이룰 수 없는 꿈을 꾸고...
그렇게 살면 하루하루가 즐겁지 않은데, 행복이란 무언가를 포기하지 않으면 손에 받을 수 없는 거란다"
오랜 세월 현실감각이 없는 남자, 나와 다름의 남편과 살아내고 터득되었을 세월을 간파한 엄마의 말이 의미심장하다.
그러면서도 아들의 부조리한 삶은 어쩌면 눈감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고 아들 만큼은 자신이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한다.
하지만 부모 입장의 아들과 가장이자 남편으로서의 아들은 하늘과 땅 차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모르쇠인 엄마를 보면서 일방적인 부모들의 속내임을 간파하겠다.
그러던 어느 날 손자가 아아들과 찾아들고 그 손자는 할머니를 존경한다고 말하지만
더 유명한 사람을 존경하라면서도 내심은 뿌듯해 하고 먼기억으로나마
따듯한 사람으로 기억되는 할아버지의 과거는 아름다워 보이기 까지 한다.
암튼 굳이 이혼으로 각자의 영역권에 있는 아들네의 재결합을 원하며 태풍이라는 핑계로
며느리와 손자를 한 집에 머물게 하고 또다른 속내를 암시하지만 거기까지가 전부다.
그리고 그들은 슬그머니 자신들의 실제와 실체를 파악하면서 절대 재결합의 의지를 불태우지 않는다.
아마도 거기까지가 맞지 않을까 싶다.
본인은 책임감을 운운하나 실제적으로는 책임감은커녕 제 삶자락을 날건달 신세로 만들고서도 별 의지가 없어 보이니 말이다.
그래도 아빠 노릇은 해보겠다며 의지를 표명하지만 그 역시 그 정도 일 뿐....정답은 없다.
하면서도 제 아버지의 흔적과 체취는 오롯이 받아들이고는 있다.
그의 과거가 그를 행복케 하지는 않았을지라도.
아마 그 역시 그런 의미로라도 제 아들에게 아빠 노릇을 하고 싶은지도 모를 일이겠다.
인생이란 선택의 순간 이미 방향을 찾아가고 있고 그 방향이 정답인지는 그 누구도 알 수 없는 법.
후회할 일 만들지 말자고 맹세를 하여도 숱한 우여곡절의 후회는 남겨지는 법이기도 한
그런 삶자락을 대면하는 일은 쉽지 않을 일.
하였어도 인간이란 자신이 가고자 하는 길을 정하였으면 묵묵히 그 길을 향해 나아가야 하지 싶다.
OTT 웨이브 일본영화 "태풍이 지나가고"는 늘 그렇듯이 무미건조 한 듯 흘러간다.
특별히 구성이나 음악적인 매력이나 앵글의 조합이 유니크하지도 않다.
단지 흘러간다...라는 듯이 화면이 움직이고 있을 뿐이고 대단한 감동을 주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조금이나마 인생, 삶자락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케 하는 매력은 있는 듯하다.
어찌보면 허술하다 싶은데 그 변변찮은 듯한 구석에 또 가끔씩 명대사가 울컥 가슴으로 들어온다.
혹자는 짜증이 날 장면도 있을 터이지만 그것이 또 현실이지 싶다.
어쨋거나 신새벽에서야 잠이 들었다.. 일본의 지진여파는 여전하다.
첫댓글 아들 걱정하는 얘긴줄 알았드만 그런 영화였군요.
ㅎㅎㅎㅎ
도쿄는 별 이상 없다고...해도
걱정이 되어 날밤을 새우면서 들여다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