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에 가려면 반월당역에서 갈 수도 있지만 청라언덕역에서도 갈수 있는데, 걸어가야 할 거리는 비슷한 것 같아서 청라언덕역 9번출구로 나가서 동산병원 남문으로 올라 보기로 했다.
남문을 조금오르면 박태준의 '동무생각'노래비를 만날 수 있는데 동무생각 노래를 한번 부르면 계성학교를 다니던 박태준이 사랑한 여학생 유인경을 생각을 할 수 있느데 안내소에서 팸프랫을 한장 얻어서 보니 청라언덕은 푸를청(靑) 담쟁이라 라고 하니 푸른담쟁이 언덕이란 뜻인데 여기서 스윗즈, 블레어, 챔니스의 선교사 주택이 있는데, 지금은 선교박물관, 의료박물관, 역사박물관이 되었다. 코로나 19 때문이 문이 잠겨져 있어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청진기, 이제강접기의 세균배양기 등은 볼 수 없다. 길잡이 안내판을 보고 돌아 보면 서도 코로나를 원망하며 섭섭한 마음이 든다.
이들 선교사 주택의 기초가 된 돌들이 대구 읍성돌이라고 해, 아하 하고 다시 한번 가슴이 뭉클해 졌는데 해설을 듣고 있던 중학생들도 깊은 생각에 빠지는 듯 했다. 선교사들의 주택을 보고 대구사과가 있게한 시조목 그의 3세목 사과나무도 여기서 볼 수 있다. 3세목이긴 하지만 대구사과나무의 조상을 본듯한데 열매는 아주 작은 꽃사과 같이 작았다. 선교사 들이 안장된 은혜정원이 있었는데 마펫 선교사는 '대구는 나의 집' 이라고 했다니 이들 선교사들이 세상을 떠나는 날 까지 대구를 그리워 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사과나무를 보고 1919년 3월 1일 서울파고다공원에서 시작된 삼일운동이 대구에서는 3월 8일 역사적인 만세운동이 일어 났다. 3월 8일은 서문밖 장날이었는데. 기미독립선언문에 서명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대구출신 이갑성을 비롯해 대구지역 기독교계가 중심에 있었던 이만집 목사 김태련 조사, 그리고 백남채, 김영서, 이재인 등 교사들이 만세운동을 주도 했다.
당시는 만세운동길이 울창한 소나무 숲이었고 집결장소를 이어주는 지름길 즉 비밀통로 역활을 했다. 90계단길 이길로 집회장소로 갔다고 하니 나도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농문문학(2019년 봄호)에 기미 삼일운동 백주년 기념 특집에 실린 졸시 '만세운동길 그길' 시 한편을 읽으며 그날을 회상해 본다
첫댓글안 영선 선생님!, "청라 언덕길" 안내문은 우리 문지회의 카페란의 단골 Menu 입니다. 글 올리기의 첫 단추를 어떻게 사용 하신것 인지는 '전' 잘 모릅니다만... 실제 내용물 보담 ' HTML"의 문자판이 먼저 올라와 있기에 문서 자체가 몹시 지저분 해 보입니다. 이런 類의 글 들은 주체이신 '안 영선'님께서 직접 삭제 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운영자인 저 에게도 ' 削除權'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만. 글쓴이가 직접 들어오셔서 다시 지워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본 문장과 사진만 필요합니다. 카페지기나 운영자의 고유 권한은 잘못 된 부문은 수정이나 삭제가 제일 이고요..이미 올려놓은 본문 자체에서도 only 기록자의 특권으로 기록자만이 지을 수 있고ㅡ, 삭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기에... 위 경우는 안 선생님께서 직접 들어와 주셔서 지워 주시면 좋겠습니다.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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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선생님!, 저의 建議를 받아 주셨습니다. 얼마나 단정한 글 올림 입니다. 깔끔해서 보기가 넘 좋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