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월은 아름다운 계절이고 축복의 달이다.
그래서 혼사가 많다.
금년 가을에도 예외는 아니었다.
한 주에 평균 2-3건씩이다.
정신없다.
시월 첫째 주에도 두 건이 있었다.
10월 3일에 한 건, 5일에 한 건이었다.
전자는 대학친구 아들, 후자는 고교친구 딸의 결혼식이었다.
경향각지에서 친구들이 많이 왔다.
그런데 잠시만 생각해 보자.
'전라도'나 '경상도'에서 친구들이 하객으로 왔다가 짧으면 2-3시간, 길면 3-4시간 남짓 시간을 보낸 뒤에 다시 내려가는 것이 어디 쉬운 문제던가?
절대로 쉬운 일이 아니다.
역으로 내가 지방까지 갔다가 곧바로 돌아오는 일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일이었다.
원근을 막론하고 애경사에 자주 다니는 사람이라면 그 심정을 잘 헤아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돈도 돈이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참 많이 드는 일이었다.
그래서 왕왕 나는 나만의 방식을 사용하곤 한다.
모임을 같이 하는 친구들에게 물었다.
"이번 혼사에 참석하니?"
여러명이 "예스"라고 대답했다.
서울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 강원, 충청까지는 당일 왕복이 그런대로 이해되지만 전라, 경상은 솔직히 버거운 거리였다.
그래서 친구들에게 말했다.
"내가 기다릴 테니 차라리 전날 밤에 상경하라고".
"단, 모두 트레킹 복장으로 오라"고 했다.
혼주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했다.
정장차림이 아니더라도 이해하라고.
그렇게 금요일 밤에 '수원역'에서 다섯 명이 만났다.
간만에 소주 한 잔 하고 일찍 숙면을 취했다.
다음날 새벽에 기상하여 해장국을 먹고 지하철을 탔다.
우리의 목적지는 '신갈호수'였다.
나를 빼고 그 호반길을 경험해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공기도 맑고 호젓한 호숫길을 함께 걸으며 많은 대화를 나눴다.
시월 초순의 날씨는 트레킹 하기에 더없이 신선했고 좋았다.
'상갈역' - '호수일주' - 다시 '상갈역'까지 총 15K였다.
거리도 딱 적당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기에 편안한 마음으로 노래도 불렀고 사진도 많이 남겼다.
트레킹 후에 예식장 부근에서 단체로 사우나까지 하고 결혼식에 참석했다.
우리들만 캐주얼이었고 나머지 친구들은 죄다 정장차림이었다.
하지만 상관 없었다.
복장이 문제겠는가.
'동참'하는데 의의가 있는 법이니까.
점심식사를 끝내고 자리를 이동해 커피까지 마시며 한참동안 정담을 나눴다.
모두가 돌아가야 할 시간.
특히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전라도, 경상도 쪽 친구들과 한번씩 더 진한 포옹을 나눴다.
'고마운 우정'과 '한결같은 의리'에 다시 한번 진한 감사를 전했다.
친구들을 모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작년 생각이 났다.
절친 딸이 대구에서 결혼식을 치렀다.
나는 토요일 새벽 04시에 대구로 차를 몰았다.
점심 무렵에 거행된 2-3시간의 예식을 빼고, 주말 오전과 오후에 대구시내 곳곳을 참 많이도 걸었다.
가보고 깊은 곳에 대한 자료를 미리 준비했던 까닭에 계획한 대로 파워풀한 트레킹을 잘 마쳤다.
저녁이 되자 나는 차를 몰아 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1박2일간 혼자였지만 정말로 즐겁고 신명나는 시간이었다.
대구까지 갔는데 예식만 보고 그냥 올 순 없었다.
'우포늪' 트레킹을 꼭 해보고 싶었다.
창녕 읍내에서 하룻밤을 자고 그 다음 날, 아무도 없는 이른 아침에 우포늪으로 갔다.
고요했다,
태고적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천혜의 '우포늪'을 걸으며 자연이 주는 가슴 벅찬 찬탄과 진미를 온몸으로 흠향했다.
감동과 감사가 차고 넘쳤다.
그때도 결혼식 복장은 '캐주얼'에 '트레킹화'였지만 혼주에게 사전에 양해를 구했던 터라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내 생각은 이렇다.
내가 먼 곳에 가든, 누가 멀리에서 오든, 단지 2-3시간만 머물다 가기엔 시간과 에너지가 너무 아깝다고 생각했다.
내가 '혼주'는 아니지만 멀리에서 오는 친구들을 위해 기꺼이 '호스트' 역할을 하고 있고,
앞으로도 하나님이 내 건강을 허락해 주시는 한 그렇게 할 작정이다.
술 마시고 노래방 가고, 카드하는 그런 만남이 아니라, 자연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를 친구들과 같이 엮고 싶을 뿐이다.
적당히 땀도 흘리고, 자연 속에서 다정한 대화도 많이 나누며, 서로를 격려하고 위로할 수 있기를 바란다.
평상시에도 그렇게 기도하며 살고 있다.
'신갈호수'의 사진 몇 장을 올려본다.
지금은 준설공사, 수변공원 조성공사로 물을 많이 뺀 상태라 만수위 때의 깊은 멋과 정취를 느껴보지 못한 것이 무척 아쉬웠다.
하지만 여전히 '신갈호'는 그만의 품격과 낭만을 잔뜩 머금은 채 탐방객들을 향해 예쁘게 손짓하고 있었다.
아직 가보지 않은 사람들은, 이 아름다운 가을에 잠간 짬을 내서 한번 방문해 보기를 강추한다.
아름다운 가을의 서정이 호반 위로 잔잔하게 물결칠 것이다.
자연은 우리네 영혼의 영원한 '양식'이자 최후의 '치유자'임을 믿는다.
친구 자녀들의 행복한 새출발을 다시 한번 뜨겁게 축복한다.
인생은 아름답다.
브라보.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첫댓글 그렇네요.
결혼식을 가야하니 트래킹은 안된다는 생각을 버려야 했는데...
과연 무엇이 소중한가를 다시 한번 생각해봅니다.
멋진 가을날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