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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법화경유통회 경전회상 원문보기 글쓴이: 보운법사
經典會上
법화경 일일법문 제바달다품12: 지적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묻되, “인자(仁者-문수를 가리킴)께서 용궁에 가 교화한 중생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지적보살이 문수사리에게 묻되, “인자(仁者-문수를 가리킴)께서 용궁에 가 교화한 중생의 수가 얼마나 됩니까!” 문수사리가 말하되, “그 수가 무량(無量-헤아릴 수 없음)하여 헤아릴 수가 없고 입으로 말할 것이 아니며, 마음으로 측량(測量-헤아림)한 바가 아닙니다. 잠시만 기다리면 저절로 알게 될 것입니다.”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셀 수 없는 보살이 보배연꽃에 앉아 바다에서 솟아 나와 영취산에 이르러 허공에 머물고 있었다.12-23
지적보살 문문수사리 인왕용궁 소화중생 기수기하 문수사리언 기
智積菩薩 問文殊師利 仁往龍宮 所化衆生 其數幾何 文殊師利言 其
수무량 불가칭계 비구언선 비심소측 차대수유 자당유증 소언미경
數無量 不可稱計 非口所宣 非心所測 且待須臾 自當有證 所言未竟
무수보살 좌보연화 종해용출 예영취산 주재허공
無數菩薩 坐寶蓮華 從海踊出 詣靈鷲山 住在虛空
智積菩薩이 問文殊師利하사대 仁往龍宮하사 所化衆生이 其數幾何하오 文殊師利言하사대 其數無量하야 不可稱計고 非口所宣이며 非心所測이니다 且待須臾하면 自當有證하오리다 所言未竟에 無數菩薩이 坐寶蓮華하야 從海踊出하야 詣靈鷲山하야 住在虛空하니라
1-이 글은 모두 74글자로 이루어져있다. 법화경 서품에서 용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천태보살이 풀이를 하였다. 원문, 여덟 용왕 있어, 난타용왕, 발난타용왕, 사가라용왕, 화수길용왕, 덕차가용왕, 아나바달다용왕, 마나사용왕, 우발라용왕 등이 각기 약간 백천의 권속과 함께 했으며, [有八龍王 難陀龍王 跋難陀龍王 娑伽羅龍王 和修吉龍王 德叉迦龍王 阿那婆達多龍王 摩那斯龍王 優鉢羅龍王等 各與若干百千眷屬俱]
다음으로 팔룡(八龍)을 나열한 것에 대해 살피건대, 난타용왕의 「난타(難陀-원문은 「難陀名歡喜」. 「난타」는 Nanda의 음사(音寫). 불제자에도 난타라는 이가 있어서, 역시 환희의 뜻임이 앞에서 지적되었다.)」는 환희(歡喜)를 이름이요, 발난타용왕의 「발(跋)」은 선(善)을 이름이니(원문은 「跋名善」. 발난타(跋難陀)의 「발」이 선의 뜻이라는 것. 「발난타」는 Upananda의 음사.), 이 형제가 항상 마갈제국(摩竭提國-원문은 「摩竭提」. 마갈타국(摩竭陀國)이라고도 한다. 인도의 중부에 있던 나라. 석존은 이 나라의 니련선하(尼連禪河) 근처에서 성도하시고, 포교의 중심지가 된 곳이 이 나라다. 수도는 왕사성(王舍城).)을 수호하여 때 맞추어 비를 내리므로 나라에 흉년 드는 해가 없었다. 그래서 병사왕(甁沙王-마갈제국의 왕. 흔히 빈바사라왕(頻婆娑羅王)으로 불리어진다. 죽림정사(竹林精舍)를 지어 부처님께 기증했다.)이 해마다 한 번씩 집회를 열어 사의를 표하니(원문은 「年爲一會」. 병사왕이 두 용왕을 위해 집회를 연 것은 사리불에 관한 글 속에 나온 바 있다.), 백성이 듣고 다 기뻐하므로, 이를 따라 이름을 얻게 되었다. 이는 곧 목련(目連)이 항복받은 용이니(원문은 「目連所降者也」. 도솔천에 올라가시는 부처님을 난타용왕 발난타용왕이 방해하려 하자, 목련이 그들을 항복받은 설화는 대목건련(大目 連)에 대한 전문(前文)에 이미 나온 바 있다.) 바다 속에 산다.
본적(本迹)에 입각해 해석컨대 본지(本地)에서 볼 때는 환희지(歡喜地-보살의 위계(位階)인 십지(十地)중 초지(初地)를 이르는 이름. 보살이 처음으로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해 환희를 느끼는 단계.)에 머무는 터이나 수적(垂迹)하여 바다 사이에 사는 것이요, 관심(觀心)에 입각해 해석할 때는 삼관(三觀)이 곧 중도(中道)여서(원문은 「三觀卽中道」.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도관(中道觀)은 서로 다른 듯하나, 원교(圓敎)에서 볼 때는 삼관이 바로 중도관이요, 중도관이 바로 삼관이라는 것. 곧 삼관은 하나의 진실을 삼면(三面)에서 분별한 것 뿐이어서, 공관 속에 가관 중도관이 포함되고, 중도관 안에 공관 가관이 포함된다는 것. 「一心三觀」의 주 참조.) 법희(法喜-「難喜」라는 이름이 소승의 수지를 뜻하는 것은 「환희」라는 이름이 출생의 인연과 관련되어 있어서, 「생멸사제(生滅四諦)」의 단계에 있는 삼장교(三藏敎)와 일치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난타(難陀)를 환희(歡喜)의 뜻으로 해석하는 취지와 관련된다.)를 낳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사가라용왕의 「사가라(娑伽羅-사가라는 Sagara의 음사. 원문은 「娑伽羅 從居海受名」. 보주(補注)에 의하면 사가라는 「짠 바다」의 뜻이라는 것.)」는 바다에 사는 것을 따라 이름을 받음이니, 화엄경에서 일컬은 바 있었고(원문은 「華嚴所稱」. 화엄경에서 사가라용왕이 갖가지 비를 내린다고 칭찬한 것을 말한다. 신역화엄 15, 구역화엄 11 참조.), 옛사람은(원문은 「舊」. 광택(光宅)을 가리킨 것.) 이르기를 「나라에 말미암아 이름을 얻게 됨이다」 하였다(원문은 「因國得名」. 법화의기(法華義記)에서 사가라국에 살기에 사가라용왕이라 한다고 해석한 것을 말한다.). 본지(本地)는 지도(智度)의 대해(大海-원문은 「智度大海」. 지혜바라밀다를 대해에 비유한 것. 「지도」는 지혜바라밀다.)에 머물어 있고, 수적(垂迹) 해서는 바다에 산다고 보아야 한다.
화수길용왕의 「화수길(和修吉-Vasuki의 음사. 구두룡(九頭龍)이라 번역한다.)」은 이곳의 말로 다두(多頭)라 하고 또 보칭(寶稱)이라 하기도 하니 수중(水中)에 산다. 본지는 보현색신삼매(普現色身三昧-갖가지 몸을 나타내 온갖 중생을 교화하는 삼매.)에 머물고, 수적해서는 다두(多頭-화수길용왕의 머리가 아홉 개인 것을 가리킨다.)임을 보이는 터요, 관심(觀心)에 입각해 해석하면 입가(入假)의 관법(觀法-원문은 「入假之觀」. 모든 것을 공이라 보는데 매이면 허무에 떨어지므로, 공 또한 공하다 하여 그것으로부터 나와 현실의 차별적 세계로 들어가 현실에 적절히 대처하는 것을 이른다. 가관(假觀) 가제(假諦)라고도 한다.)에서 무량한 법문(法門-원문은 「無量法門」. 중생의 근기에 맞추어 설하는 무량한 방편의 가르침.)을 분별한다고 할 수 있다…….
次列八龍者.難陀名歡喜.跋名善.兄弟常護摩竭提.雨澤以時 國無饑年 甁沙王 年爲一會.百姓聞皆歡喜.從此得名.卽目連所降者也.居海中.本迹解者.本住歡喜地.迹居海間.觀解者.三觀卽中道 生法喜也.娑伽羅 從居海受名.華嚴所稱.舊云 因國得名.本住智度大海.迹處滄溟.和修吉 此云多頭.亦云寶稱.居於水中.本住普現色身三昧.迹示多頭也.觀者.入假之觀.分別無量法門也(云云).
덕차가용왕의 「덕차가(德叉迦-Tak aka의 음사. 현독(現毒)이라 번역.)」는 이곳의 말로 현독(現毒)이라 하니, 또 다설(多舌)이라 하기도 하고, 혹은 양설(兩舌)이라 하기도 한다. 본지(本地)는 요설무애변(樂說無碍辯-중생의 바라는데 따라 막힘 없이 법을 설하는 능력. 사무애(四無 )의 하나.)의 법문에 머무는 터이나, 수적(垂迹)하여 다설(多舌-말이 많은 것.)을 보이는 것이다.
아나바달다용왕의 「아나바달다(阿那婆達多-Anavatapta의 음사. 무열(無熱)이라 번역.)」는 거처하는 못을 따라 이름을 얻음이니(원문은 「從池得名」. 「아나바달다」라는 못에 살기에 이름이 아나바달다용왕이라는 뜻.), 이곳의 말로는 무열(無熱)이라 한다. 무열지(無熱池)에 관해 장아함경(長阿含經) 18에서는 이 같이 말했다.
「설산(雪山) 꼭대기에 못이 있으니 이름을 아뇩달지(阿耨達池-아뇩다라(阿·多羅)로 흔히 음사되는 anuttara와 anavatapta를 혼동한 것이어서, 정확한 표기는 아니다.)라 한다. 거기에 오주당(五柱堂-무열지에 있는 집. 기둥이 다섯 개이므로 이리 부르고, 아나바달다용왕이 거기에 산다는 것.)이 있으니, 아나바달다는 못을 따라 이름을 삼은 것이요(원문은 「從池爲名」. 이것은 앞뒤와 연결이 부자연하므로 연문(衍文)이라 지적되어 온다.), 용왕(龍王)이 항상 거기에 산다. 염부제(閻浮提-Jambu-dvipa의 음사. 수미산 남쪽에 있는 대륙. 수미산을 중심으로 중심으로 인간세계를 동서남북의 사주(四洲)로 구분하는데, 그 남방의 대륙이 염부제다. 그러므로 인도(印度) 일대를 가리키던 말이나 뒤에는 이 인간세계 전체를 일컫는 말이 되었다.)의 모든 용에는 세 가지 근심이 있으니, 첫째는 뜨거운 바람과 뜨거운 모래가 몸에 붙어 피육(皮肉) 골수(骨髓)를 태우기에 괴로워하는 일이요, 둘째는 모진 바람이 사납게 일어 그 궁전에 불어닥쳐 보식의(寶飾衣-보배로 장식된 옷.) 따위를 잃고 용의 몸이 스스로 나타나게 되기에 괴로워하는 일이요, 셋째는 용들이 즐길 때 금시조(金翅鳥-원명은 garuda. 인도의 신화에 나오는 상상적인 새. 금빛의 날개가 3백 36만 리나 되어 하늘을 날으고, 수미산 하층(下層)에 살면서 용을 잡아 먹는 새.)가 궁전에 들어와 새로 태어난 용의 새끼를 덮쳐서 잡아먹기에 두려워하고 괴로워하는 일이다. 그러나 이 못에는 그 같은 세 가지 근심이 없으니, 만일 금시조가 해칠 마음을 일으켜 가고자 생각할 때에는 바로 그 순간에 목숨이 끊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무열뇌지(無熱惱池)라 하는 것이다.」
본적(本迹)에 입각해 해석하면, 본지(本地)는 청량(淸凉)의 상락아정(常樂我淨-원문은 「淸�常樂我淨」. 청량(淸凉)은 열반(涅槃)의 형용. 따라서 열반의 상락아정을 가리킨 것. 상락아정은 열반의 사덕(四德)이다.)에 머물어 있으면서 수적(垂迹)하여 양지(陽池-시원한 못이니 곧 앞의 무열지(無熱池)를 이름이다.)에 거주함이요, 관심(觀心)에서 해석할 때는 삼관(三觀-공제(空諦) 가제(假諦) 중제(中諦). 모든 것은 연기(緣起)한 것이므로 실체(實體)가 없다 하여 공으로 보는 것이 공제요, 이런 공에서 나와 실체없는 존재〔假有〕의 차별상(현실)을 긍정하여 대처해가는 것이 가제요, 공도 가도 일면적이라 하여 둘을 다 부정하고, 공에도 가에도 안 매이는 것이 중제다. 중제는 중도제(中道諦), 중도제일의제(中道第一義諦)라 하기도 한다. 삼제의 하나 하나를 거치면서 진리를 구하는 것, 이것은 삼제의 하나 하나를 별개의 것으로 보는 태도다.)의 묘혜(妙慧)가 오주(五住)의 번뇌(煩惱-원문은 「五住煩 」. 오주지혹(五住地惑)의 준말. 중생을 삼계(三界)에 묶어두는 다섯 가지 번뇌다. 삼계의 견혹(見惑)인 견일처주지혹(見一處住地惑). 욕계의 사혹(思惑)인 욕애주지혹(欲愛住地惑). 색계의 사혹인 색애주지혹(色愛住地惑). 무색계의 사혹인 유애주지혹(有愛住地惑). 삼계의 무명인 무명주지혹(無明住地혹).)를 정화(淨化)하여 이사(二死)의 열사(熱沙-원문은 「二死之熱沙」. 이사는 분단사(分段死)와 변역사(變易死). 이사(二死)의 비유인 열사(熱沙).)를 면하게 함이라 할 수 있다…….
德叉迦 此云現毒.亦云多舌.或云兩舌.本住樂說無 辯法門.迹示多舌.阿那婆達多.從池得名.此云無熱.無熱池.長阿含十八云.雪山頂有池.名阿뇩達池.中有五柱堂.從池爲名.龍王常處其中.閻浮提諸龍 有三患.一熱風熱沙著身.燒皮肉及骨髓 以爲苦惱.二惡風暴起吹其宮殿 失寶飾衣等.龍身自現 以爲苦惱.三諸龍娛樂時.金翅鳥入宮.搏撮始生龍子食之.怖懼熱惱.此池無三患.若鳥起心欲往 卽便命終.故名無熱惱池也.本住淸량·常樂我淨.迹處량池.觀者 三觀妙慧.淨五住之煩 .免二死之熱沙(云云).
마나사용왕의 「마나사(摩那斯-Manas의 음사.)」는 이곳의 말로 대신(大身)이라 하고, 혹은 대의(大意) 대력(大力) 등으로 번역하기도 한다. 아수라(阿修羅)가 바다를 떠밀어 희견성(喜見城-도리천의 꼭대기에 있는 궁전이니 제석천의 거처다. 희견궁(喜見宮) 선견성(先見城)이라고도 한다.)을 잠기게 하려 하니, 이 용이 몸을 돌려 바다물을 막아냈다. 본적(本迹)에 입각해 해석하면 본지(本地)는 무변신(無邊身-가가 없는 몸이니 불신(佛身)을 이른다.)의 법문(法門)에 머물되 수적(垂迹)해 큰 몸을 나타낸 것이요, 관심(觀心)에서 볼 때는 중도(中道)의 정관(正觀-원문은 「中道正觀」. 공관 가관의 어느 것에도 안 매인 채, 그 둘을 아울러 쓰는 입장. 공관 가관은 공제(空諦) 가제(假諦)라고도 하며, 「제일의제」는 최고의 진리의 뜻. 결국 중도를 이른 것이 된다.)은 그 본성이 광박(廣博)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발라용왕의 「우발라(優鉢羅-Utpala의 음사. 청련화(靑蓮華)라 번역. 우발라(優鉢羅)로 표기하기도 한다.)」는 이곳의 말로 대색연화지(黛色連華池)라 하니, 용이 이곳에 의지해 살므로 못을 따라 이름을 얻은 것이다. 본적(本迹)에 입각해 해석하면, 본지(本地)는 법화삼매(法華三昧-법화경의 취지에 입각한 삼매. 법화경에 의거해 실상중도(實相中道)의 진리를 관(觀)하는 것. 여기서 법화삼매와 결부시킨 것은 「우발라」가 푸른 연꽃의 뜻이어서, 법화경의 구명(具名)인 묘법연화(妙法蓮華)와 상통하는 까닭이다.)에 머물되 수적(垂迹)하여 이 못에 살게 됨이요, 관심(觀心)에 입각해 해석할 때는 삼관(三觀)은 곧 수인(修因)이며, 인(因)은 곧 연화(蓮華)라 할 수 있다.(원문은 「三觀卽修因 因卽蓮華」. 깨달음에 도달하는 원인이 되는 수행이 수인(修因)이요, 수행에 의해 얻어진 깨달음이 득과(得果)다. 이런 견지에 서면 삼지(三智)는 득과요 삼관은 수인인 것이 되는데, 이 수인을 비유하면 연화가 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연꽃이 피어나는 것이 원인이 되어 그 열매가 생겨나는 까닭이다.) 정법념경(正法念經-구명(具名)은 정법념처경(正法念處經). 선악의 업보(業報)를 밝힌 경이다.)에 이르기를, 「용이 제천(諸天)을 위해 경계를 지키매, 아수라가 군사를 일으켜 나아가 용과 싸운다.」
고 하니, 그러므로 용이 제천(諸天)에 의해 지배받음을 알 수 있다.
摩那斯 此云大身.或大意 大力等.修羅排海 淹喜見城.此龍·身以·海水.本住無邊身法門.迹爲大體.觀者 中道正觀 其性廣博(云云).
優鉢羅 此云黛色蓮華池.龍依住 從池得名.本住法華三昧.迹居此池.觀者 三觀卽是修因.因卽蓮華也.正法念經云.龍爲諸天保境.修羅興兵 前與龍· .故知爲天所管也.
2-문자가 있는 곳에는 문명이 있기 마련이고, 문명이 있으면 부처님의 가르침이 유통이 될 수밖에 없다. 따라서 축생이든 귀신이든.. 그 어떤 중생이든 문자와 문명을 가진 곳이 있다면 문자를 통해 부처님의 가르침이 전파 될 것이고, 문자에 의지하여 불도를 닦아 미묘한 경지에 이르게 마련이니.. 어찌 문자여래가 계시지 않으시랴!
3-법화경에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이 법화경에는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의 비밀장이 담겨있다.”하셨고, 또 법화경을 베껴 쓰고 읽고 외우면 나와 나의 제자와 다보여래와 시방세계에서 찾아오신 나의 모든 분신여래를 뵐 수 있다고 말씀을 하셨다.
4-따라서 문자가 곧 여래이시라면 여래는 곧 문자이기 마련이니, 지금 우리들은 경전회상에서 문자즉여래(文字卽如來)와 여래즉문자(如來卽文字)에 의지하여 불도를 닦고 있음이 분명하다.
智積菩薩 問文殊師利 仁往龍宮 所化衆生 其數幾何 文殊師利言 其數無量 不可稱計 非口所宣 非心所測 且待須臾 自當有證 所言未竟 無數菩薩 坐寶蓮華 從海踊出 詣靈鷲山 住在虛空
-偈頌-
우리들은 문자여래에
의지하여 불도를 닦고 있는
부처님의 제자임이 분명하다.-1
따라서 부처님이 이르시길,
“법화경에 공양을 드리는 일은
시방삼세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을 드리는 공덕이다.”
말씀을 하신 것이다.-2
-寶雲地湧 文殊合掌-
一乘妙法蓮華經 一切諸佛神通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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