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죽으면 무언가를 남기게 마련이다. 고인이 떠난 집 안에 들어가면 그가 신던 신발이나 운동화 등이 맨먼저 눈에 들어온다. 22일(현지시간) 미국 일간 워싱턴 포스트의 자네이 킹스베리는 남편 마이클이 세상을 떠난 뒤 며칠 안돼 그의 신발부터 정리해야 했다고 털어놓는다.
킹스베리는 이런 것들을 “슬픔의 뭉치(the stuff of grief)”라고 했다. 우리 고통의 핵심을 두드리는 잔류물이란 것이다. 조금 더 희망적으로 얘기하면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소품이라고 했다.
자네이는 지난 연말에 소셜미디어에서 유라(Jula, you-lah로 발음)의 동영상 '돌아가신 아빠의 레코드 컬렉션을 듣는 날이 또 하루 시작돼 환영해요'를 발견하고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동영상은 유라가 침실에 있는 목재 서가에서 어떤 레코드를 꺼낼까 손가락으로 고르는 것으로 시작해 블론디의 'Parallel Lines'(1978)를 집어내 턴테이블에 올린 뒤 침대에 누워 고개를 까닥까닥하다 춤추는 모습을 보여준다. 반려묘도 잠깐 카메오 출연한다.
스물네 살의 폴란드계 캐나다인 유라가 동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9월이다. 매일 인스타그램과 틱톡 @soundwavesoffwax에 동영상을 올리며 “청취 파티”를 벌이고 있다. 그의 부친 리처드는 펑크와 디스코, 팝, 재즈, 테크노, 뉴웨이브, 1960년대 사이키델릭 록까지 장르를 가리지 않고 레코드를 모아 1만장을 훌쩍 넘긴 컬렉션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20대 젊은 여성이 60년 전 유행했던 음악을 담은 레코드들을 들려주니 많은 이들이 좋아라 한다. 팔로워만 46만명을 넘겼다.
그녀는 아주 추운 날, 앨버타 집에서 “모두에게 들려주고 싶다”고 말문을 연 뒤 “내겐 음향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아름다운 경험을 안기고 있다”고 털어놓았다. 신문과는 안전 상의 문제로 라스트 네임을 공표하지 않기로 합의했다고 했다.
유라는 “공동체를 만드는 것은 내가 이 프로젝트로부터 원한 모든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들을 보면 팔로워들이 사랑하는 사람과 연결짓는 것을 볼 수 있다. 음악인들이나 생존하는 가족이 감사를 표시하는 것도 확인할 수 있다. 오디오 마니아들은 자신의 분석과 통찰을 제공하고 있다.
유라를 보며 1980년대 MTV의 비디오저널리스트(VJ) 마사 퀸과 닮았다고 보는 이도 있다. 하지만 유라의 Z세대 감성은 아주 도드라져 보인다.
물론 잘 모르기 때문에 실수도 한다. 예를 들어 데이비드 번(David Byrne)을 “By-run”이라고 잘못 발음하거나 노래를 들으면서 영화 '슈렉 2'를 슬쩍 시청하거나 레코드 손질 방법을 잘 모르는 것에 대해 아량을 베풀거나 참을성있게 들어준다. 음악인인 유라는 생각 깊은 성찰과 젊음의 열정을 조화시키려 애쓴다고 했다.
음악인 겸 문학 교사였던 아버지 리처드는 음악에서 시를 찾아 읽곤 했다고 딸 유라는 돌아봤다. 그는 좋아하는 아티스트가 좋아했던 아티스트를 찾아내는 일을 좋아했으며 싱어송라이터들에 특별히 끌렸다. 자신의 음악을 작곡하기도 했다. 디스크자키(DJ)가 되고 싶었다고 했다. 친구들에게 주려고 CD 믹스테이프들을 만들었다. 결혼식과 폴란드인 회관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기도 했다. 유라의 부모는 저녁 만찬에 손님들을 초대하곤 했는데 항상 끝은 같았다. 누군가 음악 얘기를 꺼내면 리처드가 층계를 뛰어 내려가 지하실에서 레코드 두 장이나 석 장을 가져와 들려주곤 했다. 물론 그 노래에 대해 재잘재잘 떠들곤 했다.
유라의 말이다. “아빠는 늘 음악에 대해 얘기했다. 우리가 연결돼 있거나 얘기하는 것까지 내 평생 늘 첫 번째였다. 예를 들면 여덟 살 때인데 아빠는 내게 가사를 읽어주며 이중 의미(duble entendre)를 설명했다. 나이를 먹으며 난 그에게 내가 좋아하는 음악을 보여주기 시작했고 그의 말년까지 이어졌다.”
리처드가 몇 년 전 50대 나이로 세상을 떠났을 때 유라는 아빠가 어릴 적부터 이웃들의 허드렛일을 해주고 번 돈으로 모아 온 컬렉션을 유지하고 싶어했다. 대다수 비닐 레코드들은 박스들에 들어간 채로 친척들과 친구들이 갖고 있어서 유라가 조금씩 집에 가져왔다. 2주 동안 컬렉션을 알파벳 순서로 정리했다. 그리고 그 컬렉션이 현재 자신의 인생에 주는 의미를 곱씹는 데 몇 년이 걸렸다.
유라의 말이다. “그가 떠난 뒤 난 레코드로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난 당분간 (음악) 방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엄마 집에다 컬렉션을 차렸으니 참 운이 좋았다. 그 집에서는 그냥 앉아 아무 것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어린 시절을 보냈던 집으로 돌아와 리처드의 음악 방에 머물기로 했다. 그녀의 침대 위에 레코드 서가가 들어서 있다. 반려묘 세 마리가 함께 한다.
매일 아침 다른 레코드를 골라 들려주는데 그것에 대해 얘기하는 것을 얼마나 그리워했는지 깨닫는다고 했다. 한 친구가 소셜미디어 페이지를 만들라고 얘기했을 때 잘해야 “두세 명” 관심 있어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첫 포스트를 본 사람이 1400만명을 넘겼다. 한 누리꾼은 댓글로 "아빠가 당신에게 믿기지 않는 선물을 남겼군요. 그의 청음 족적을 따라 가 바늘이 레코드 각각을 파고들어 내는 그루브를 함께 하는 경험을 할 수 있게 됐군요”라고 적었다.
가끔 음악을 들으면 감정이 소용돌이치기도 해 눈물이 샘솟기도 한다. 그녀는 몸소 아빠들에게 바치는 추모 노래를 만들었다. 스크래치가 많이 나는 앨범을 들으면 마치 아빠를 따라 가는 것 같다고 느끼기도 한다. 때로는 아빠에 대한 강렬한 기억은 레코드들과 연결돼 있다. 아빠가 폴 사이먼을 좋아했다는 사실을 들려주며 지난해 9월 세상을 떠난 크리스 크리스토퍼슨을 추모하다 유라의 목소리는 갈라졌고 침묵에 빠져들었다.
유라의 말이다. “그 비디오는 아마도 내가 촬영하기 가장 힘들었던 것이다. 내가 진짜로 많이 얘기하고 싶었던 이유다. 난 그의 음악을 들으며 자라났고 그것이 내게 진짜로 감정적인 일이었다.”
아빠의 음악과 아빠 록(dad-rock) 클래식을 알면 알수록 유라의 청음 여정은 늘 그녀를 놀라게 한다. 배트맨 만화와 영화에 나올 법한 음악을 담은 레코드도 있었다. 해서 그녀가 레코드를 끄집어낼 때 아빠가 어두운 방안에 조용히 앉아 들으며 죄책감 같은 것을 느끼지 않았을까 궁금해하기도 한다.
결국 @soundwavesoffwax는 유라의 말마따나 아버지에 대한 추억과 그가 늘 원했던 대로 수많은 이들이 함께 듣는 음악 공유를 보호하는 행위로 보인다. "그의 정신이 이 시간 날 붙들고 있다. 그리고 그가 남긴 것으로 내가 하는 일 때문에 즐겁고 춤을 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