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울푸드의 어원은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먹던 전통 음식에서 비롯됐다. 미국에 노예제도가 존재하던 시절, 백인 농장주가 먹지 않고 버리는 음식을 흑인 노예들이 가져다가 먹을 만하게 만든 것을 소울푸드라 불렀다. 원래 소울푸드는 미국 남부 노예들의 고단함과 슬픔이 배어있는 음식을 뜻하지만, 현대인들 사이에서는 ‘내 영혼의 음식’으로 통용된다. 단순히 허기를 채워줄 뿐만 아니라 먹는 이의 영혼까지 감싸주는 음식. 저마다 간직하고 있는 ‘고향의 맛’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몇 년 전 미국 CNN에서 흥미로운 조사를 했다. 한국인의 대표적 소울푸드 40가지를 선정한 것. '한국인들은 이 음식을 먹지 않고는 살 수가 없다'라는 소제목이 붙은 이 기사에는 외국인 눈에 비친 한국인의 보편적 소울푸드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먼저, 여름 디저트의 대명사인 팥빙수가 40위를 차지했다. 꽉 막힌 고속도로에서 먹었을 때 제맛인 뻥튀기가 38위, 언제 먹어도 든든하고 맛있는 김밥이 25위에 올랐다. 매콤하고 달콤한 맛으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겨먹는 떡볶이는 11위, 짭조름한 밥도둑 간장게장이 10위에 선정됐다. '후루룩 쩝쩝' 맛있는 라면이 7위, 막강의 하모니를 자랑하는 '치맥(치킨+맥주)'이 6위, 궁극의 블랙푸드 자장면은 5위에 올랐다.
그 뒤를 '국민 회식 메뉴' 삼겹살(4위)과 칼칼하고 담백한 반전 매력의 순두부찌개(3위)가 이었고, 한국인의 매운맛을 상징하는 김치가 2위를 차지했다. 대망의 1위는 음주 후 쓰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이 선정됐다. 비록 외국에서 나온 조사이지만, 한국인이 즐겨 먹는 소울푸드가 대거 포함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떡볶이-삼겹살-라면-김치-치맥 '영혼의 음식'
하지만 기사를 접한 한국인들은 다소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떡볶이가 10위권에 들어오지 못한 점이나, 치맥, 라면 등의 순위가 비교적 낮은 점, 순두부찌개와 해장국의 순위가 의외로 높은 점 등이 현실과 차이가 있다고 지적한다. 그렇다면 실제 한국인이 생각하는 '소울푸드 톱5'는 무엇일까. 기자가 댓글 속 여론을 수렴해 가상으로 재구성해보았다.
5위 떡볶이. 떡볶이는 태초에 궁중에서 탄생한 고급요리이면서 오늘날 길거리음식의 대명사가 된, 재밌는 스토리를 가진 음식이다. 떡, 어묵, 계란, 고추장, 설탕 등 몇 가지 재료로 이토록 훌륭한 맛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매콤하고 달달해 남녀노소 누구나 사랑하는 소울푸드이다. 최근에는 맵기를 조절해 먹을 수 있는 브랜드가 늘면서 인기를 더하고 있다.
4위 삼겹살. 소고기보다 저렴해 든든하게 먹을 수 있는 돼지고기, 그중에서도 삼겹살은 한국인의 '국민 회식 메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솥뚜껑 불판 위에서 지글지글 소리를 내며 익어가는 삼겹살 냄새에 먹지 않고 버틸 자 누가 있을까. 말 그대로 '침샘 폭발 타임'이다. 퇴근길에 먹는 노릇노릇 잘 구워진 삼겹살 한 점과 소주 한 잔은 하루의 시름을 씻을 만큼 강렬한 맛이다. CNN은 "삼겹살과 소주를 마시며 캬~하고 탄성을 내지르는 한국인들의 모습이 인상적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3위 라면. 빠르게 조리해서 간편하게 먹을 수 있는 라면만큼 한국인이 사랑하는 음식이 또 있을까. 주식으로, 간식으로, 밤참으로 언제 먹어도 맛있는 라면. 한때, '웰빙' 바람이 불면서 나트륨 함량이 높은 인스턴트 라면이 몸에 해롭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기도 했지만 여전히 라면은 한국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울푸드다. CNN은 라면을 "한국의 독신이나 학생들이 주로 먹는 소울푸드"라며 "그들은 라면에 계란, 치즈 등을 곁들여서 즐긴다"라고 소개했다.
2위 김치. 대한민국 식탁의 밑반찬으로, 각종 찌개의 재료로 모든 음식의 기본이 되는 김치. 김치 한 쪽에 밥 한 숟가락은 한국인의 힘이요, 김치의 매운맛은 한국인의 저력을 말해준다. 외국인들조차 "소금에 절인 고추와 생강, 젓갈, 마늘 등으로 만드는 김치는 한국인들의 사랑스러운 친구"라고 말했다. 김치는 주재료에 따라 배추김치, 열무김치, 깍두기, 파김치 등으로 다양하게 변신해 골라먹는 재미가 쏠쏠하다. 위에서 언급한 모든 한국인의 소울푸드와도 절묘하게 조화를 이루니 긴 설명이 필요 없는 우리나라 대표 음식이다.
1위 '치맥(치킨+맥주)'. 우리나라에 관광 온 외국인들이 반드시 먹는 음식이 되었을 정도로 '치맥'은 먹을거리를 넘어 하나의 한국 문화로 자리 잡았다. 바삭하게 튀긴 닭고기에 각종 양념 소스를 더해 맛의 변주가 자유자재로 이뤄지는 요리. 맛은 물론이요, 전화 한 통이면 그곳이 어디든 먹을 수 있으니 세상에 이보다 편리한 진미가 또 있을까. 파견군인, 유학생들이 꼽는 '가장 그리운 고국 음식'도 바로 '치맥'이다. 치킨과 맥주 각각은 평범한 음식이지만, 이 둘을 함께 먹는 순간 환상의 하모니를 경험하게 된다. 이를 "대단히 영광스러운 조합"이라고 CNN은 평하고 있다.
◇해장국, 왜 '한국인 소울푸드' 1위에 올랐을까
여기서 궁금증이 생긴다. CNN이 선정한'한국인이 사랑한 소울푸드'에서 순두부찌개나 해장국 등 다소 의외의 음식들이 높은 순위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국인들이 우리에게 익숙한 김치찌개나 된장찌개보다 순두부찌개에 더 많은 점수를 준 이유는 무얼까. CNN은 순두부찌개를 가리켜 "부드러운 두부와 매운 국물을 가진 인기 있는 스튜"라며 "고전적이면서도 예상하지 못한 맛을 자아낸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고추기름으로 인해 무척 매워 보이는 국물 속에 고소하고 부드러운 순두부가 들어가 있어 반전매력을 선사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선짓국, 뼈 해장국, 설렁탕, 콩나물국 등 해장국도 조금 의아한 메뉴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보면 음주를 사랑하는 한국인에게 해장국은 절실한 음식이다. 뚝배기 속 시원하고 얼큰한 국물로 쓰린 속을 달래는 한국인의 모습은 외국인들의 눈에도 포착되었을 터. CNN은 해장국을 "숙취 해소를 도와주고 두뇌를 움직이게 하는 신기한 기능을 하는 수프"라고 설명한다. 아무리 술을 많이 마셔도 다음날 다시 오뚝이처럼 일어나 치열하게 살아가는 한국인의 비밀이 이 해장국에 있다고 믿은 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