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은 아름다워(988) - 최강한파 물러가다
설 지나며 맹위를 떨친 한파가 물러가고 포근한 날씨가 돌아왔다. 한반도에 올겨울 최강한파를 몰고 온 북극의 찬 공기가 동해로 빠져나가면서 영상의 기온을 되찾은 것, 주말이면 입춘이 다가오니 움츠린 생명들 기지개 펴라.
최강 한파로 얼어붙은 무심천
강추위 속의 청주 최저기온은 영하 16도, 영하 10도 안팎으로 오른 낮에 두툼한 옷차림으로 산책길에 나섰다. 귀마개에 목도리와 장갑을 끼고 걷는 발걸음이 경쾌하다. 영하 16도면 떠오르는 추억, 고등학생이던 1960년대 초의 어느 겨울아침에 신촌에서 아현동 지나 효창공원에 이르는 한 시간 넘는 거리를 단출한 교복차림에 귀마개나 장갑도 없이 꿋꿋이 걸었다. 도착 후 라디오에서 나오는 기상통보는 영하 16도. 겁 없는 소년의 혈기가 강추위를 이겨냈을까?
추위를 견디는 것도 상대적인 듯, 아열대의 타이완에서는 평소보다 5도 가량 낮은 영상 8도 내외의 이번 추위에 146명이 사망하였다는 뉴스가 낯설다. 기상청의 예보, 중국 상하이 부근에서 한반도 남쪽으로 이동하는 고기압의 영향을 받아 상대적으로 따뜻한 남서풍이 들어오고 맑은 날씨가 이어지면서 목요일까지 기온이 점점 올라가는 경향을 보일 것이란다. 가정마다 날아온 난방비 폭탄에서 벗어날 따뜻함이 그리워라.
한파가 찾아온 대만의 모습. 아열대 기후지만, 시민들은 목도리 등 방한용품을 착용했다. [사진=연합뉴스]
때마침 지인이 보내온 박남규 시인의 시, ‘구들목’이 따스함을 안겨준다. 우리 세대가 겪었던 아름다운 정경이어라.
구들목
박남규
검정 이불 껍데기는 광목이었다.
무명 솜이 따뜻하게 속을 채우고 있었지
온 식구가 그 이불 하나로 덮었으니 방바닥만큼 넓었다
차가워지는 겨울이면
이불은 방바닥 온기를 지키느라
낮에도 바닥을 품고 있었다
아랫목은 뚜껑 덮인 밥그릇이
온기를 안고 숨어있었다
오포 소리가 날 즈음, 밥알 거죽에
거뭇한 줄이 있는 보리밥
그 뚜껑을 열면 반갑다는 듯
주루르 눈물을 흘렸다.
호호 불며 일하던 손이 방바닥을
쓰다듬으며 들어왔고
저녁이면 시린 일곱 식구의 발이 모여 사랑을 키웠다.
부지런히 모아 키운 사랑이
지금도 가끔씩 이슬로 맺힌다
차가웁던 날에도 시냇물 소리를 내며
콩나물은 자랐고,
검은 보자기 밑에서 고개 숙인
콩나물의 겸손과 배려를 배웠다
벌겋게 익은 자리는 아버지의 자리였다.
구들목 중심에는 책임이 있었고 때론 배려가 따뜻하게 데워졌고
사랑으로 익었다
동짓달 긴 밤, 고구마 삶아 쭉쭉 찢은
김치로 둘둘 말아먹으며 정을 배웠다.
하얀 눈 내리는 겨울을 맞고 싶다.
검은 광목이불 밑에
부챗살처럼 다리 펴고
방문 창호지에 난 유리 구멍에
얼핏 얼핏 날리는 눈을 보며
소복이 사랑을 쌓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