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세우신 청지기의 삶"
[마태복음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현승원 의장님의 간증입니다.
지난번 간증 이후 많은 분들이 어린 시절에 어떤 교육을 받고 자랐는지 궁금해하셔서 오늘은 그것에 대해 나누고자 합니다.
다섯 살 때 어머니께 경제교육을 처음 받았습니다.
어머니는 50만원이 든 농협통장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 당시에는 엄청난 거금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명절이나 특별한 날 제가 받았던 돈을 다 모아두신 것이었습니다.
그때 저는 어머니의 저축하시는 모습을 보고 저축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고, 제가 나중에 돈을 벌어서 어머니께 맡기면
잘 모아 주실거라는 믿음이 생겼습니다.
언젠가 아버지가 피아노를 사셨는데 아버지는 피아노 가격 150만원중 40만원을 보태라고 요구하셨습니다.
아버지의 자세한 설명을 통해 건전한 소유에 대한 개념을 정립하였습니다.
그리고 손님들이 올 때마다 아버지께서는 그 피아노의 지분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건반 여기서부터 저기까지는 승원이의 것이니 허락을 맡아야 합니다.’
그 때 돈을 열심히 모으고 인정해 주는 곳에 쓰게 된다면 그 가치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학교 때에 드디어 아버지께서 용돈을 주셨습니다.
한 달에 1만 5천원을 주시고는 용돈 기입장을 6년간 검사하셨습니다.
아버지는 용돈기입장의 원단위까지 다 확인하시고 나서 다음 달 용돈을 주셨습니다.
그 당시 하루에 지출을 1/n 이상 하면 안 된다는 개념이 투철해져서 만 오천 원을 오백 원씩 쪼개 쓰기 시작하였고,
그것을 아낄 때 마다 조금씩 늘어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회사를 운영해보니 그 용돈 기입장은 영수증만 붙지 않은 지출 결의서나 다름없었습니다.
회사에 남은 유보금과 법인세가 얼마나 되는 지에 대한 감이 그 때 생긴것 같습니다.
대학생 때는 재정에 대해 배운 대로 3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기쁘게해 드리는 것, 생필품을 사는 것, 돈을 버는 것이 아니면 쓰지 않는다는 원칙이었습니다.
당시 사귀던 여자친구는 왜 바지가 세 벌 밖에 되지 않냐며 물었습니다.
그 때 저는자신을 꾸미는 일은 하나님을 기쁘게 해 드리는 일도 아니었고, 생필품도 아니었으며, 돈을 버는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고차를 파는 일을 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중고차를 통해 선교사님들을 섬기셨습니다.
그 때 자동차의 시세를 알게 되었고, 유지비 때문에 자동차를 끌면 안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대학생 때 과외를 하게 되면서 차가 있는 편이 더 많은 재화를 창출할 수 있겠다는 계산이 들었습니다.
문제는 차에는 감가상각이었습니다.
사는 순간부터 가치가 하락하는 것이 뭇내 마음에 들지 않아 감가가 없는 차를 찾아달라 하였더니
아버지께서는 99년식 200만원짜리 카렌스를 추천하셨습니다.
너무 싸면 위험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하자 돈이 있는 사람이나 위험을 논한다고 하셨습니다.
(그 차는 사이드를 올려도 차가 밀렸고, 결국 그 해 보험사를 여섯 번이나 불렀습니다.)
가족간의 재정 원칙은 몹시 깐깐하였는데, 가족간에 돈을 빌려주는 것, 파는 것 사는 것 등에 대해 철저하게
따지고 계산하였습니다. (이는 유태인들의 재정원칙보다 더 깐깐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아버지께 배운 것 중에는 ‘빚이 있을 때는 굶는 것’이었습니다.’
이는 생활에 필수적인 것을 제하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었습니다.
학자금 대출이든, 주택담보 대출이든 엄마한테 빌린 돈이든, 어떤 종류의 빚이든 다 같은 빚이라고 배웠습니다.
결혼하고 처음에 1억원가량을 빚을 졌는데 당시 벌이가 월 1500정도 하였습니다.
그 정도 벌면 1억 빚은 빚도 아니라고 생각할 법 한데.
500원짜리 커피를 사 먹을 때에도 벌벌 떨었습니다.
그렇게 1억이라는 빚을 8개월만에 최선을 다해 갚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부분이 적은 것에 충성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재정에 대한 큰 시련 중 하나는 십일조에서 왔습니다.
십일조의 기준을 어떻게 할 것인가, 어디에 어떻게 낼 것인가에 대해 다양한 조언들이 있었지만 스스로 원칙을 세웠습니다.
정확히 번 돈의 1/10을 교회에 내고, 기타 구제는 따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습니다.
[말라기 3: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하나님이 돈이 없어서 이를 달라 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작은 것들을 원하여 우리를 시험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지금까지 이러한 원칙에 입각해 십일조를 드렸고, 결과적으로 매년 단 한번도 십일조가 줄어들지 않게 되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본인에게 지극히 작은 곳에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많은 선교사님을 후원하고 1500명이 넘는 아동들에게 매달 수천만 원을 아동에게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늘 ‘내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다.’는 말씀을 늘 새기며
‘내 주변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나’를 늘 고민하였습니다.
친구가 제3금융권까지 대출을 써서 이자와 원금을 갚느라 허덕이며 살아가고 있던 것을 발견했습니다.
너무 안타까워 아내와 상의해서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기로 했습니다.
다만 생필품을 사는 것 이외에는 원금을 상환하는데 쓰라고 조건을 달았습니다.
그렇게 친구는 고리의 고통으로부터 자유해졌고, 일년 반 만에 원금을 갚게 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토대로 천여명의 직원들에게 빚이 있다면 무이자로 빌려주고 원금을 상환하게 하는 산타클로스 사업을 하려고 했는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젊은이들은 대출 원금을 상환하는 것에 대해 심리적 저항감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20대의 대부분은 번 돈의 60~70%를 쓰면서 즐기며 살아가고 싶어하며 그동안의 소비생활을 줄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어차피 한번 사는 것이며, 아껴봐야 그걸로 집을 사지도 못할 것 그냥 즐기자는 것입니다.
얼마 안 되는 돈 가지고 궁상을 떨어봐야 어차피 집도 못사고 좋은 차도 못 삽니다.
하지만 세상적인 원리와 관계 없이 성경은 우리에게 작은 것에 충성하라는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적은 것에 충성할 때 비로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것을 맡기십니다.
다른 시련도 찾아왔습니다.
주변에 돈이 많은데도 어려운 사람들을 돕지않고 사는 친구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니
‘너는 돈이 많으니까 돕지’ 하면서 제가 아끼면서 돕는 것을 모르고,
펑펑 쓰고도 남아 돌아서 돕는 것으로 오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또 아무리 주변을 섬기고 복을 흘려보내도 뭐 하나 잘못하면 그것을 꼬투리삼아 비난하고 핍박하기 때문에 별로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적지 않은 돈으로 선교사님을 도왔는데 한마디 감사가 없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서운하고 속상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그 돈이 내 것이지 너의 것이냐?’며 반문하셨습니다.
우리는 청지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의 재능과 시간과 재물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다만 맡겨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건물 관리인일 뿐입니다.
건물 수리를 다 해줘도 세입자가 고마워 하지 않을 때 분노할 권리는 건물주인의 것이지 관리인이 아닌 것입니다.
어떠한 분들에게 좋은 대접을 하고 감사하지 않더라도 서운해 하지 않기로 하였습니다.
마음에 오히려 자유함이 생겼습니다.
매년 학교를 짓고 청소년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한다는 생각으로 자산을 관리했습니다.
국내 유수의 PB들과 상의하여 천억 원이 넘는 자산을 분산 투자해 두었습니다.
그 이자를 가지고도 학교 사업을 하는데 지장이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3개월만에 코로나가 찾아왔습니다.
안전한 것이 한 군데에도 없었고 위험해 졌습니다.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고백하며 기도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많은 돈을 아무리 잘 안전하게 둔다 하더라도 하나님이 후 불으시면 한 순간에 날아가는 것인데,
그 자산과 구조가 안정감이라고 생각한 것에 대해서 회개하였습니다.
많은 젊은이들이 경제적 자유를 꿈꿉니다.
그러나 그 허점은 젊어서 돈을 아무리 잘 벌어놓고 재정 설계를 해 두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후 불으시면
아무것도 없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에서 하나님이 없다면, 우리의 안정을 책임져 주실 분이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의 안정을 책임져주는 것은 사둔 빌딩이나 아파트, 우리의 깔끔한 포트폴리오나 시스템도 아니고 오직 주님이십니다.
모든 안정감은 하나님께 돌리시길 바랍니다. 어차피 내 삶에 내가 가진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회사에서의 예배도 많은 어려움과 아픔이 있었습니다.
직장에는 샤이(shy) 크리스챤이 많습니다.
크리스찬임이 밝혀지면 사람들의 기준치가 높아지게 되고 남들보다 두배 세배 더 열심히 살아야 하기 때문에 숨김니다.
원래 십자가의 길은 쉽고 인정받는 길이 아니라 좁고 힘든 길이 맞습니다.
하나님께 기도드리다가 오히려 본사 이외에 전국의 모든 학원 직원들과 예배드리자는 마음이 생겼고,
직장안에 샤이크리스천들과 예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그리하여 직장인 신우회 유투브를 하게 되었습니다.
CEO로써 크리스찬으로써 직장인의 삶이 주는 여러 애환에 대해서 청년들과 깊이 있게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목사님도 아닌데 매주 말씀을 준비합니다. 잘 감당할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청지기의 삶을 돌이켜보고 나의 모든 소유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하고 살아온 결과 그간 기부했던 돈이 150억이 넘는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다양한 포상이 있었지만 어떤 상보다도 하나님이 주시는 상급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청지기의 삶은,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많이 가졌지만 그럼에도 가진 것보다 적은 것으로 자족하고 살면서,
주님께 원하시는 모든 것을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흘려 보내고,
이 모든 것이 내 것이 아니라는 것을 날마다 철저히 인정하며 사는 삶입니다.
매사에 열심히 사는 삶은 다 자기의 것이라 생각하기 쉽습니다.
열심히 살면서 성취했기에, 온전히 하나님의 것임을 기쁨으로 순종하며 내려놓는 것이 너무나도 어려운 일인 것입니다.
5달란트 받은 종은 그것을 10 달란트로 불렸고 주인이 왔을 때, 그것이 아까워서 그 일부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에게 모두 드렸을 때 주인이 했던 말씀이 있습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모든 소유가 주님의 것임을 인정하며, 내 모든 삶이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주님의 것임을 삶을 통해 드러내며,
그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기를 바랍니다.
🛐제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
저의 모든 것, 우주 만물이 하나님이 주인임을 인정하고, 청지기의 삶을 살게 하소서.
주인의 즐거움에 동참하는 삶을 살게 하시고, 제가 받은 복을 흘려보내게 하소서.
모든 일에 최선을 다하고 가진 것이 적어도 자족하고 살면서 주님께 칭찬받고 인정받는 삶,
주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게 하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감사합니다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