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주의와 집단주의
동서양의 문화를 비교할 때 가장 먼저 그리고 자주 거론되는 것 가운데 하나가 개인주의 (individualism)와 집단주의 (collectivism)일 것이다. 서양에서는 개인주의가 발달해온 반면 동양에서는 집단주의가 발달해왔기 때문이다. 개인주의는 '나'를 내세우며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중시하고, 그 반대편에 있는 집단주의는 '우리'를 앞세우며 집단의 화합과 조화에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데, 미국은 개인주의 성향이 매우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이고, 한국은 전통적으로 집단주의 성향이 가장 강한 나라 가운데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물론 동양에서든 서양에서든 개별적으로는 누구든지 개인주의와 집단주의 성향을 어느 정도 함께 지니고 있겠지만, 시대와 사회 환경의 변화에 따라 크게 차이가 날 것이다. 예를 들어 비교문화학자들의 조사에 따르면,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체로 나이가 적은 사람들이 많은 사람들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크며, 교육 수준이 높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들이 낮은 사람들보다 더 개인주의적이다.
개인주의는 자신과 개인을 우선시하고 중시하기 때문에, 사회나 국가 같은 집단을 개인의 자유와 권리 또는 이익이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으로 간주하는 경향이 크다. 인간은 태어나면서부터 자유와 평등의 권리를 가지며 이 권리를 확보하기 위하여 서로 계약을 맺어 사회나 국가를 구성할 필요가 있다는 사회계약설과, 인간은 어느 무엇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신의 안녕과 행복을 보장하기 위하여 자유롭게 생각하고 행동할 수 있는 존재가 되어야 한다는 자유주의 사상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정치적으로는 자유민주주의의 바탕이 되었고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의 토대가 되었다. 또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발달에 따라 개인주의가 크게 발달했다고 할 수도 있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자본주의는 '개인'의 재산권 보호에 최대의 가치를 두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개인주의에서는 개인의 독립성과 자립성을 중시하기 때문에 집단 구성원들 사이의 관계가 대체로 느슨하다. 그리고 자신의 가치와 욕구 또는 목표 등을 성취할 권리를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다른 사람의 자유와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한, 개인의 자유와 선택권이 사회와 국가 같은 집단이나 그 제도에 의해 제한받거나 통제되는 것을 꺼린다. 따라서 개인주의가 지나치게 발달하면 자유방임주의로 빠질 수 있을 것이다.
이와 반대로 집단주의는 개인의 자유와 권리보다는 집단의 화합과 사회의 조화를, 사익보다는 공익을, 개인으로서의 생활보다는 집단 속에서의 생활을 더 중시한다. 공동체주의나 민족주의의 바탕이 되고, 사회주의나 공산주의의 토대가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의무와 국가에 대한 충성을 강조하기 때문에, 극단적으로 또는 부정적으로 발달하면, 전체가 있으므로 개인이 존재한다는 논리에 따라 국가이익을 우선으로 하는 전체주의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집단주의에서는 가족이나 직장 그리고 사회와 국가 등 자신이 속한 집단에서 구성원으로서의 역할을 적극적으로 하고, 구성원들 사이의 화합을 강조하며, 개인의 권리와 신념보다는 집단이 요구하는 의무와 규범을 중시한다. 개인의 이익이나 목표보다는 집단의 이익이나 목표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집단을 위해 개인이 손해를 보거나 희생을 하는 것을 미덕으로 삼는다. 이러한 집단주의에서는 자신의 집단 (우리)과 남의 집단 (그들) 사이에 분명한 경계선을 긋고, '우리 집단' 안에서는 똘똘 뭉쳐서 '그들 집단'과 대립적 관계를 만들기 쉽다.
그러면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특성은 어떠할까? 한민족은 오랫동안 농경생활을 함으로써 집단주의 문화가 잘 발달하였다. 농기계가 크게 발달하기 전까지는 모내기할 때든 추수할 때든 여러 사람이 함께 일하지 않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농민들은 마을 단위로 '두레'라는 조직을 만들어 바쁜 농사철에 일을 공동으로 했다. 부모부터 손자에 이르기까지 3대가 한 집안에 사는 게 보통이었고, 특히 농촌에서는 방 한 칸을 3-4명의 식구가 공동으로 쓰는 게 예사였다.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잘못을 저지르면 일시적으로나마 집 밖으로 내쫓았는데 집단주의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집단주의 문화에서는 집단으로부터 소외시키거나 이탈시키는 것이 벌이란 말이다. 이와 대조적으로 서양에서는 잘못을 저지른 아이를 방 안에 가둠으로써 벌을 준다. 개인주의 문화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제한하거나 박탈하는 것이 벌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 사회에서 집단주의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나는 분야는 언어가 아닐까 생각한다. 개인주의가 발달한 미국에서는 '우리'보다 '나'라는 말을 자주 쓴다. 예를 들어, '나의 가족', '나의 집', '나의 선생님', '나의 학교'라고 부른다. 심지어 '나의 나라'라고 부르는 것도 쉽게 들을 수 있다. 반대로 우리 사회에서는 '나'보다 '우리'라는 말을 즐겨 쓴다. 가족이 아닌 사람에게도 '우리 집'이라고 말하고, 소속이 다른 사람에게도 '우리 학교'라고 부른다. 사람을 가리킬 때는 더욱 심하다. 형제가 없는 사람조차 남에게 '우리 부모'라고 말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말하는 사람과 듣는 사람이 씨가 다르거나 배가 다른 형제가 되지만 이를 어색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이보다 심한 경우도 있다. '우리 남편'이나 '우리 마누라'라는 말이다. 아무리 가까운 가족이나 친구라도 함께 관계를 가져서는 안되는 남편이나 아내에조차 '우리'라는 말을 붙이는 것이다. 내가 다른 여자에게 말만 걸어도 못마땅해 하는 '내 아내'도 남들에게 나를 소개할 때 '우리 남편'이라고 말하니 얼마나 큰 모순인가. 냉정하게 따져보면 일부일처제 (一夫一妻制) 사회에서는 절대 있을 수 없고 도저히 쓸 수 없는 말이지만, 우리는 이를 자연스럽게 쓰고 있으니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문화가 얼마나 뿌리 깊이 자리 잡고 있는지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요즘 사원이나 직원을 모집하는 광고에 같이 일할 '식구'나 '가족'을 구한다는 문구가 자주 사용되는 것도 우리 사회의 집단주의 성격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이렇게 강한 집단주의 특성을 지닌 우리 사회가 근대화를 이루면서 점차 개인주의 특성을 갖게 되었다. 정치적으로 개인의 자유를 중시하는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고, 경제적으로 개인의 재산권 보호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문화적으로 개인주의 특성이 매우 강한 미국의 영향을 받아왔으니 당연한 변화다. 또한 가족 규모가 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바뀌고 주거 형태가 방이 많은 아파트로 변하면서, 아이들도 방 한 칸씩 독차지하며 개인적으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됨으로써 개인주의가 발달한 측면도 있다.
그러나 집단주의가 오랫동안 뿌리내려온 우리 사회가 개인주의화하는 과정에서, 앞에서 얘기했듯이 병적인 이기주의 현상이 나타나기도 하고 가치의 혼란을 일으키는 모습이 보이기도 한다. 예를 들어, 1988년 서울올림픽 입장식 때 미국선수단이 줄을 맞추지 않고 행진한 것에 대해 우리 사회에서 반미감정이 일어나기까지 했다. 운동선수들의 자유스러운 행동을 '무질서한 태도'라고 비난한 것이다. 한편, 남쪽 사람들이 단체로 북녘을 방문해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려면 안내원들이 시간을 지정하며 줄을 지어 모여달라고 하는데, 시간을 잘 지키지도 않고 줄을 잘 맞추지도 않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다. 북녘 사람들로부터 너무 '자유주의적'이라는 핀잔을 받으면서도 말이다. 또한 북녘의 집단체조에서 수백명 또는 수천명이 일사불란하게 기계처럼 움직이는 모습을 보며 환상적이라고 환호하는 사람도 많지만, "고대 노예들 같다"며 혀를 끌끌 차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전통에 따른 집단주의적 성격을 지닌 채 변화에 따른 개인주의적 행동을 지향하는 우리의 이중성을 드러내는 게 아닐까.
같은 한민족이지만 남쪽에서는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사회의 다양성을 추구하고 개인주의를 확산시켜온 반면, 북녘에서는 인민민주주의와 사회주의를 지향하며 사회의 획일성을 강조하고 집단주의를 강화해왔다. 여기서 주제에서 조금 벗어나지만, 남쪽의 국민은 개인주의적으로 바뀌고 북녘의 인민은 집단주의적으로 된 것이 매우 역설적이라는 점을 밝히고 싶다. '국민'은 국가를 이루고 있는 백성이라는 뜻으로 국가라는 집단을 중시하는 말이므로 전체주의를 비롯한 집단주의 사회에 잘 어울리고, '인민'은 개별적인 사람들이 모인 백성으로서 어떠한 집단에 소속된 상태를 내포하지 않으므로 자유방임주의 같은 개인주의 사회에 적합한 말이다. 영어의 'people'을 정확하게 우리말로 옮기면 '인민'이다.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1863년 게티스버그에서 한 말로 널리 알려진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을 "인민의, 인민에 의한, 인민을 위한 정부"라고 번역하듯이 말이다. 이렇게 좋은 말을 북녘에서 널리 쓴다는 이유로, 남쪽에서는 일제의 잔재가 묻어있고 국가우월주의 냄새를 풍기는 '국민'이라는 말을 억지로 써오고 있으니 속좁고 맹목적인 반공정신에서 언제쯤 벗어나게 될지 안타깝다.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받아들이며 개인주의를 발달시켜온 터에 이제는 그에 걸맞은 '인민'이란 말을 사용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
출처: 이재봉의 평화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이재봉
첫댓글 인민...공감합니다~
좋읍니다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