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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 금동대향로는 백제에서 만들어진 금동제 박산향로다.
1993년 12월 12일 충청남도 부여군 능산리 절터의
목곽 수로 안에서 발견되었으며 국보 제287호로 지정되었다.
시대: 백제
정보: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 정보
종목: 국보; (1996년 5월 30일 지정)
주소: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금성로 5, 국립부여박물관
(동남리, 국립부여박물관)
이 유물이 특히 유명한 이유는 각잡고 발굴해낸 것이 아니라
엄청난 우연 때문에 발굴된 물건이라 더욱 그렇다.
1993년 12월 12일, 능산리 고분군을 방문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주차장 공사를 하기 위해 본래 있던 논을 갈아엎은 뒤, 터를 파던 도중
물이 고인 진흙 웅덩이 속에서 금동으로 된 향로가 발견되었다.
처음에는 무려 천 년을 넘는 세월 동안 땅 속에 묻혔음에도 불구하고
진흙에 잠겨 산소가 차단된 덕에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였다.
이와 더불어 바닥에서는 기와와 토기 조각 등이 함께 발견되었다.
주변에서는 섬유 조각도 발굴되었는데,
대향로를 감싼 천이 세월이 지나 삭은 것이라고 추정한다.
이후 발굴 결과 대향로가 발굴된 곳이 원래는 사찰 내에 부속된 대장간 자리였다.
국보 제288호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扶餘陵山里寺址石造舍利龕)에 새겨진 명문으로 미루어 보아,
해당 사찰은 아들 위덕왕이 아버지 성왕의 명복을 빌고자 왕실 차원에서 세운 원찰인 듯하다.
처음 발견되고 11일이 지난 1993년 12월 23일,
여러 주요 일간지에서 일제히 국보급 백제 유물이 발견되었음을 대서특필하였다.
백제금동대향로(이하 '대향로')는 1993년 12월 12일(일)
충청남도 부여군 부여읍 능산리에서
주차장 공사를 하던 중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이후 조사 결과 해당 향로가 발견된 주차장 공사 현장이
백제 시대 왕실의 사찰이 있었던 곳으로 밝혀졌다.
대향로를 언제 제작했는지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대략 6세기 말-7세기 초라고 추정한다.
고구려에게 한강 유역을 빼앗긴 이래 내정의 혼란을 거듭하던 백제가
안정을 되찾고 꽃피운 문화를 상징하는 유물이다.
연꽃은 물론 도교에서 등장하는 상상의 동물 혹은 신선이 조각되어
도교와 불교적 요소가 모두 들어가 있다.
무엇보다도 그 조형 솜씨가 워낙 훌륭하고 뛰어난 수준이라
백제 문화의 정수라고 손꼽을 수 있는,
능히 세계에 자랑할 만한 우리 조상들의 걸작품이다.
신라라고 하면 떠오르는 금관처럼
일반 대중들이 백제라고 하면 딱 떠올리는
멋진 상징적 유물이 없던 차에 그 자리를 차지했다.
명칭과 관련된 논란
초기에는 도교와 불교의 사상이 모두 반영된 유물이라는 주장에 근거하여
'용봉봉래산향로(龍鳳蓬萊山香爐)' 라는 명칭으로 전시가 되었다.
대향로의 윗부분이 도교에서 말하는 신선세계 봉래산(蓬萊山)이라고 본 것으로,
도교 사상의 영향을 강조하는 명칭이었다.
불교계에서는 불교미술사학계는 절터에서 발견된 데다
3단으로 장식되어 새겨진 연꽃무늬나 산봉우리가 불교의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로
수미산(須彌山)을 연상케 한다면서 '수미산향로'라고 부르자고 주장하였다.
불교계는 국립중앙박물관이 백제금동대향로를 굳이 '도교의 유물'이라고 하면서
불교의 영향력을 애써 부인하려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후에도 대향로가 도교 유물로 전시되거나 소개됨을 두고
불교계 일각에서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 대향로 관련으로
불교 관련단체나 인물들이 꾸준히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중국 학계는 향로 윗 부분의 새가 봉황이 아닌 천계(天鷄)이고
금마산(金馬山)에서 건국한 백제의 것이라는 의미로
'금동천계금마산향로'란 명칭을 제안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란에 국립중앙박물관 문화재위원회에서는
임시 명칭이었던 '백제금동대향로(百濟金銅大香爐)'를
그대로 정식 명칭으로 사용하기로 결론내렸다.
엄재권, 화조도(천계天鷄), 161X50cm(8폭 중 1폭) 2020.
지상과 하늘 연결해주는 신비한 존재…천계와 뽕나무 신화
대한경제 2021-07-07
[엄재권의 민화이야기] 화조도(천계天鷄)
생명에 기운을 더해주는 태양은 뽕나무에도 튼실한 열매를 가득 맺게 한다.
이를 가장 반가워하는 이 중 하나가 닭인가 보다.
닭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순간부터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어김없이 새벽을 깨우며 해가 떠오르기를 도와 왔다.
작은 윤회의 한 장면을 보는 듯하다.
그런 닭 한 쌍이 풍성하게 잘 익은 오디를 매단 뽕나무에 올라
한낮의 평화로움을 즐기고 있다.
한 쌍의 새와 자연을 조화롭게 그려낸 그림이 화조도(花鳥圖)다.
그림의 주연인 새는 전반적으로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을 말해준다.
민화적인 문법에 따라 작품을 살펴보면,
우선 풍성한 열매를 맺고 있는 나무는 사랑의 결실을 의미한다.
이 그림에서는 태양과 뽕나무, 닭이 특별한 다른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해 새롭다.
먼저 닭은 인류에게 길들여진 대표적인 가축 조류다.
사람의 처지에서만 보면 닭은 분명히 많은 이로움을 주어왔다.
반면 닭은 날개를 잃어 하늘을 나는 기능을 상실하게 되었으며,
자의에 따라 언제나 울 수 있는 자유도 빼앗기고 말았다.
새끼를 번식할 수 있는 알은 물론 털과 몸도 인간에게 내줘야만 했다.
그럴 뿐만 아니라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듯 한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
사람들의 입맛대로 이미지화되며 난전의 상품이 되었다.
현대에 와서는 그나마도 부지런함의 상징으로 한결같이 새벽을 알렸던 외침을
알람시계와 휴대 전화에 빼앗기고 말았다. 그야말로 토사구팽이 연상되기까지 한다.
더 큰 의미와 소중함으로 인간과 공생했던 과거의 닭에서,
한갓 사람들의 식탁에서나 겨우 인정받는 가엾은 존재로만 취급되는 듯해 씁쓸하다.
작품에서는 그나마 잃어버린 닭의 최소한의 권위와 품격이 느껴지는 듯해 반갑기까지 하다.
한편, 옛 동양 신화를 보면 천계(天鷄)가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신화 속에서 천계는 상서로운 복숭아나무에서만 살며, 모든 닭의 왕으로 추앙된다.
그가 울면 모든 닭이 따라 울었고, 지상과 하늘을 연결해주는 신비한 존재로 여겨졌다.
따라서 사람들은 천계를 그려 정초에 대문이나 집안에 붙여 벽사초복(辟邪招福),
즉 사악한 것을 물리치고 복이 오길 염원하기도 했다.
이 작품 속 닭이 오른 것은 천계가 살았다는 복숭아나무가 아닌 뽕나무다.
그러나 이 뽕나무는 그냥 뽕나무가 아니다.
동쪽 먼바다에 있었다는, ‘신화 속 뽕나무’인 부상(扶桑)을 연상케 한다.
부상은 열 개의 태양이 머물다가 교대로 떠오르며 세상을 비추던 장소다
그래서 특별할 뿐만 아니라 상서롭다.
이런 의미로 인해 뽕나무에는 신성한 가치가 채색처럼 입혀졌다.
우리 민족에게 이런 뽕나무는 예로부터 늘 가까이에 있었다.
약제로 차(茶)나 술로, 또는 종이와 가구의 재료가 되어주었으며
고급옷감인 비단을 얻기 위한 누에의 먹이로도 필요했다.
이유야 어떠했건 ‘부상’의 기운이 서린 뽕나무와 함께해온 우리 민족은
또 얼마나 고귀한 존재였던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현대에 와서 뽕나무는 문학이나 영화 속배경으로도 곧잘 다뤄지기도 했다.
이 또한 해 뜨는 곳을 의미하는 부상의 그 강인한 생명력을
복선에 깔고자 했던 기획자의 의도가 내재한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해보게 된다.
그리 크지 않는 한 폭의 민화는 이처럼 다양한 이야기들을 수수께끼처럼 배접하고 있다.
여름의 절정인 칠월이다. 이 무더위에도 해가 뜨는 곳에서 태양을 반기며
목청껏 울었을 천계의 위풍당당함을 보며, 그 주체적인 의지와 힘이
고스란히 우리에게 깃들어 벽사초복 하길 염원해본다.
엄재권 한국민화협회 명예회장
백제 나성과 능산리 무덤들 사이 절터 서쪽의 한 구덩이에서
450여점의 유물과 함께 발견된 백제의 향로이다.
높이 61.8㎝, 무게 11.8㎏이나 되는 대형 향로로, 크게 몸체와 뚜껑으로 구분되며
위에 부착한 봉황과 받침대를 포함하면 4부분으로 구성된다.
뚜껑에는 23개의 산들이 4~5겹으로 첩첩산중을 이루는 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피리와 소비파, 현금, 북들을 연주하는 5인의 악사와 각종 무인상, 기마수렵상 등
16인의 인물상과 봉황, 용을 비롯한 상상의 날짐승, 호랑이, 사슴 등
39마리의 현실 세계 동물들이 표현되어 있다.
이 밖에 6개의 나무와 12개의 바위, 산 중턱에 있는 산길,
산 사이로 흐르는 시냇물, 폭포, 호수 등이 변화무쌍하게 표현되어 있다.
뚜껑 꼭대기에는 별도로 부착된 봉황이
목과 부리로 여의주를 품고 날개를 편 채 힘있게 서 있는데,
길게 약간 치켜 올라간 꼬리의 부드러움은 백제적 특징이라 하겠다.
봉황 앞 가슴과 악사상 앞뒤에는 5개의 구멍이 뚫려 있어
몸체에서 향 연기를 자연스럽게 피어오를 수 있게 하였다.
활짝 피어난 연꽃을 연상시키는 아래의 몸체는 하나하나의 연잎의 표면마다
불사조와 물고기, 사슴, 학 등 26마리의 동물이 배치되어 있다.
받침대는 몸체의 연꽃 밑부분을 입으로 문 채 하늘로 치솟 듯
고개를 쳐들어 떠받고 있는 한 마리의 용으로 되어 있다.
이 향로는 중국 한나라에서 유행한 박산향로의 영향을 받은 듯 하지만,
중국과 달리 산들이 입체적이며 세부의 동물과 인물상이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다.
백제시대의 창의성과 뛰어난 조형성을 바탕으로 당시 도교와 불교가 혼합된 종교와 사상,
공예기술 및 미술 문화를 종합적으로 파악하게 해주는 백제 금속공예 최고의 걸작품이다.
중국 초한지(기원전 3세기) 곳곳에 등장하는 박산대향로
도교이념을 구현하기 위한 정신이 깃들어 있는 향로
인간과 자연과의 조화롭고 밀접한 관계를 표현하였음
영원불멸의 우주의 도, 즉 이상세계 구현을 향한 종교로 발전
첫댓글 와아아~
자료 탐색의 절정입니다.
잘보고갑니다.^^
전에 한번 올렸던 글입니다
오랜 기간 모은 누적된 자료입니다
도반님께서 극찬하셨길래
참조하시라고 다시한번 올렸습니다
즐감하시기 바랍니다 ^^*
정말 귀하고귀한 보물입니다.
자칫 땅속에 영원히. 잠들어 있을뻔 했네요.
상세히 설명 곁들여 있어 많은 지식이 됐습니다,,,,감사.
네 이제 백제시대를 대표하는 유물이지요
백제하면 이 백제금동대향로입니다
감사합니다
겉모양만 대충 봣었는데 상세그림보니 깊은 의미가 있었군요
귀한 자료입니다
네 많은 의미가 들어있는 향로입니다
가히 백제를 상징하는 유물이지요
정말 귀중한 우리의 문화재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