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생각 ................................................................ 마광수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무기여 잘 있거라』를 써서 크게 성공했
다. ‘무조건 전쟁은 싫다’가 주제인 셈인데, 그래서 이 소설의 주인공은 탈영병이 되어 애
인과 함께 스위스로 도망친다. 그런데 그 뒤에 헤밍웨이는 일종의 변절을 했다. 2차 세계
대전 중에 발표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가 『무기여 잘 있거라』와는 정반대의
내용으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 내전을 소재로 한 이 소설에서, 주인공은 자유를 위해 싸우다가 장렬하게 죽어간
다. 평론가에 따라 이 작품에 대한 가치평가가 엇갈리고 있는데, 어떤 이는 이 소설을 헤
밍웨이의 대표작으로 치기도 한다. 하지만 나는 이 소설이 헤밍웨이의 작품 가운데 가장
졸작이라고 본다. ‘명분을 핑계로 한 마조히즘으로서의 자기 희생’을 주제로 내세우고 있
기 때문이다. ‘싸운다는 것’ 자체가 미화되어서는 절대로 안 될 터인데도, 헤밍웨이는 그
뒤에 다시 대어(大魚)를 잡으려고 사투하는 늙은 어부를 찬양한 『노인과 바다』를 썼다.
아니, 물고기가 대체 무슨 죄가 있나?
명작으로 정평이 나 있는 앙드레 말로의 장편소설 『인간의 조건』도 이와 비슷한 내용으
로 되어 있다. 이 작품 역시 ‘끊임없는 싸움’과 ‘고난의 의미’를 주제로 삼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조건』은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관철하기 위해 용감하게 싸우다가 자살하는 혁
명가의 얘기를 담고 있는데,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나 『인간의 조건』이나 쓸데
없는 테러리즘을 옹호한 소설이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무리 좋은 명분을 갖다 대더라도,
남을 죽이거나 자기를 죽이는 것은 테러리즘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중국에서는 예부터 ‘삼십육계 주위상계(三十六計 走爲上計)’라는 말을 좋아했다. 싸울 때
쓰는 서른여섯 가지 계책 가운데 도망가는 게 제일 상책이라는 뜻이다. 이런 ‘삼십육계’의
정신을 소설화한 『무기여 잘 있거라』가 ‘용감하게 싸우기’나 ‘고난을 참고 받아들이기’
를 주제로 한 작품들보다 훨씬 더 한 수 위라고 나는 생각한다.
나는 이 점에 착안하여 「평화」라는 제목의 시를 쓴 바 있는데, 그 시의 전문을 한번 소개
해 보겠다.
두 나라가 서로 전쟁을 한다
이쪽 군대가 비겁하게 도망간다
저쪽 군대도 비겁하게 도망간다
한쪽은 용감하게 싸우고
다른 쪽은 도망가면
그쪽은 비겁한 군인이 되지만
두 편 다 도망가면 둘 다 비겁하지 않다
용감해져라 용감해져라 하지 말라
용감보다는 비겁이 평화주의자
서로 다 도망가면
두 쪽 다 비겁해지면
전쟁은 없다
(마광수 에세이집 <생 각>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