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옷이 촌스럽게 그게 뭐야? 화장은…. 그럴 거면 학교에 오지 마.”
대기업에 다니는 이지현(여.37.가명) 씨. 그는 얼마 전 월차를 내고 딸아이 학교 행사에 참석했다가 핀잔만 들었다.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평상시 정장을 많이 입습니다. 학교 행사가 있어 월차를 내고 아무 생각 없이 편한 차림으로 학교에 갔죠. 그런데 아이가 옷차림이 이게 뭐냐며 버럭 화를 내더군요. 그래서 요즘엔 아이 학원 마중 나갈 때도 차려입고 갑니다. 남편도 아닌, 딸아이가 엄마 외모 탓을 하니….”
엄마들의 말 못할 고민이 늘고 있다. 직장맘들은 자녀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게 되면 급식, 녹색어머니회(등.하굣길 교통봉사), 환경미화 등 엄마의 손길이 필요한 일도 많아진다. 이른바 ‘슈퍼맘’이 되지 않으면 아이키우기 어려운 세상이다. 여기에 고민이 하나 더 늘었다. 바로 외모다. 급식 봉사를 위해 학교를 갈 때나, 학원 마중을 나가면서도 옷을 차려입고 화장을 해야 하는 세상이다. 대충 집에서 입던 차림으로 나갔다간 아이의 날카로운 눈초리를 피할 수 없다.
어린 시절로 되돌아보자. 우리 엄마가 다른 엄마보다 예쁘기를 바라는 마음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본 적 있을 터. 누군가는 학교에 온 젊고 세련된 엄마 덕분에 어깨가 으쓱했던 기억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외모에 관심이 많아진 요즘 우리 아이들 눈높이 맞추기는 쉬운 일이 아니다. 더욱이 초혼 연령이 높아져, 나이 많은 엄마들은 아이의 눈치를 보며 “성형수술이라도 해야 하는 것 아닌지”라며 한숨을 내쉬고 있다. 슈퍼맘도 모자라 아예 ‘출동’할 때마다 옷도 차려입어야 하니….
▶놀이방 차 올 때도 화장하고 나가야 하나요?
안애란(35.가명) 씨는 얼마 전 다섯 살 된 딸 때문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놀이방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마중을 나갔는데 아이가 심통을 부리더군요. 알고 보니 급하게 나가느라 화장도 하지 않고 집에서 있던 차림 그대로 나간 모양새가 친구들 보기에 부끄러웠다네요.” 바로 집 근처에 나가는 것인데도 외모에 신경을 써야 하니 아닌 말로 시집살이도 이런 시집살이가 없다.
서울 상도동의 한 어린이집에서 미술교사로 일하는 박선진(29) 씨는 “아이를 데리러 오는 엄마들을 보면 그냥 있는 대로 하고 나온 엄마들도 있지만, 주위 시선을 의식해 예쁘게 꾸미고 오는 엄마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박씨는 “아이들끼리 너희 엄마는 나이가 몇 살이냐, 우리 엄마보다 늙어보인다, 이런 말을 주고받는 것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예전에 비해 아이를 마중 나가는 일이 많아지면서 엄마들의 외모 비교는 더욱 수월해졌다. 연일 들리는 아동 대상의 흉흉한 범죄 소식에 아이의 안전도 걱정이려니와, 방과후 각종 학원에 데려다주기 위해 하교 시간에 맞춰 학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엄마들의 풍경은 이제 흔한 일상이 됐다. 또 급식봉사, 교통지도에서 시작해 학교의 각종 행사가 늘어나다 보니 엄마의 학교 방문은 더욱 잦아졌다. 이 때문에 민감한 아이들은 아예 엄마 대신 젊은 이모한테 대신 오라고 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통계청에 따르면 여성의 초혼 연령은 2007년 28.1세로 10년 전인 1997년 25.7세에서 빠르게 증가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결혼이 늦어져 30세 이후에 하는 경우도 흔한 일이 됐다. 이 경우 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갈 즈음이면 40세가 다 되기 때문에 젊은 엄마들과는 외모에서 경쟁이 안 되는 게 현실이다. 직장인 김현구(45.가명) 씨는 “아내가 시간이 안 돼서 처형이 학교를 방문한 적이 있는데 아이가 나이 많은 이모가 창피했는지 할머니라고 둘러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성형수술까지 고민하는 엄마들
요즘 아이들이 외모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엄마들의 시름은 더욱 깊어간다. 한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중에서 벌써 성형을 고민하는 아이들이 8% 남짓 있으며, 예쁘고 날씬한 연예인이 장래희망 1위를 차지하는 상황이다. 이런 아이들에게 자신의 외모만큼이나 엄마의 외모도 중요하다. 남루한 부모님이 부끄러워 모른 척하고 지나간 어린 시절의 일이 마음에 걸린다는 유명인들의 흔한 고백은 이제 우리 일상에서 더욱 잦아질지도 모를 일이다.
직장인 하수진(33) 씨는 “친구가 성형수술을 고민하고 있는데 그 이유가 다른 것도 아니고 아이 때문이라고 해 놀랐다”며 “아이가 엄마의 외모를 부끄러워한다는 것이 엄마들에게는 성형수술을 고려할 정도로 큰 상처가 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로 늦둥이 등 어린 자녀 때문에 성형외과를 찾는 이들도 종종 있다는 것이 병원 관계자의 설명. 내년에 학교에 들어가는 딸을 둔 임세희(43.가명) 씨 역시 ‘너희 엄마는 할머니 같다’는 말을 듣기 싫어 안간힘이다. 임씨는 나이 들어보이는 눈 밑 지방 흡입을 받는 것을 진지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임씨는 “우리 아이 기죽지 않게 하려면 꾸밀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 같다”고 말했다.
비단 아이 때문이 아니더라도 요즘 엄마들의 외모 경쟁은 치열하다.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을 둔 김윤심(37) 씨는 “엄마들 사이에서도 누구네 엄마는 이번에 새로 나온 명품가방을 들고 나왔던데…. 이런 식으로 말이 많다. 차림새가 궁색할 경우 기죽는 것은 당연하다. 내가 기죽는데 우리 아이더러만 당당하라고 말하는 건 무리가 아닌가”라고 털어놓았다.
서울 강남의 한 영어유치원 교사 나혜영(35.가명) 씨는 “아이들을 어떻게 꾸며서 내보느냐로 자존심 경쟁을 하는 것도 있지만 엄마들의 접촉이 많아지면서 엄마들 간의 은근한 대결 분위기도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첫댓글 나~참!! 살기 힘들어요.
힘들다고 하면 더 힘들지요.. 힘들든 힘들지 않든 시간은 흐르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