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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여행], 농다리,초평호.........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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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진천 농다리(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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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땅에 가면 쌀 좋기로도 유명 하지만 천년의 풍파를 이겨낸 농다리는 여전히 사람과 사람을 때로
는 사랑과 사랑을 잇고 있는 유명한 돌 다리 하나가 있다. 건교부가 선정한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
중 17번째로 뽑히기도 한 진천 농다리는 독특한 다리 모양 때문에 많은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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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을 들어본 적은 있는가?, 이 이야기인즉슨 살아
서는 진천땅이 좋고, 죽어서는 용인땅이 좋다 라는 뜻을 품고있다. 그런데 사실은 자기 혼령으로 남의
육신을 살아가야 했던 추천석을 바탕으로 옛 말이 생겼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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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 사자성어의 의미는 충청북도 진천군은 물이 좋고(풍수적) 살기 좋다는 뜻이고, 경기도 용
인시는 죽어서 묻힐 때에(지리적) 명당으로 낫단 말로도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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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박하지만 정교한 돌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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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4백여 년 전,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한 사람이 살았다. 부모도 친척도 없는 사람으로
남의 머슴살이를 하였으나 워낙에 정직하여 마을 사람들에게 신망을 얻었다. 마을 사람들은 나이 삼
십이 되도록 장가를 못 간 총각이 안타까워 그와 처지가 비슷한 여자와 혼례를 치러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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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화전을 일구며 살았다. 부인은 매일 남편을 위해 십 리나 떨어진 산골짜기로 점심을 갖다 주
었다. 남편이 점심을 먹는 동안 아내는 고생하는 남편을 돕기 위해 화전을 일궜다. 그 사이 피곤한 남
편은 점심을 먹고 낮잠을 잤다. 그런데 갑자기 천둥번개가 치더니 산 밑으로 돌이 굴러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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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란 아내는 서둘러 산 아래로 내려갔지만, 이미 남편은 돌에 치어 죽은 뒤였다. 아내는 대성통곡하며
“우리 남편을 살려 달라.”고 울었다. 이 소리를 듣고 마을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수천 근이나 되는 돌
을 치울 수가 없어 돌 밑에 남편을 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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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정 (천년의 숨결을 간직한 농다리의 뜻으로 천년정으로 이름 붙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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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정에서 바라본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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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남편은 저승에 갔다. 저승의 최참판이 나이가 몇 살이냐고 묻자 아무개 몇살이라 했더니, “너는
아직 죽을 때가 안 됐다. 그러니 다시 내려가 살아라.” 하였다. 그리하여 명령을 받고 내려왔으나 시
신이 큰 바윗돌에 치어 죽어 있으므로 접신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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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사람은 할 수 없이 전국을 떠돌아다니다 충청북도에 있는 진천의 오백 석 부잣집 앞을 지나게 되
었다. 마침 그 집 아들이 사십이 안 돼 후사를 잇지 못하고 죽자, 그 집 어머니가 혹시나 아들이 살아
날까 하는 마음에 일주일이 되도록 장례를 치르지 않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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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신을 못하고 있던 용인사람은 죽은 진천 사람의 신체에 가서 접신하여 살아났다. 살아난 용인사람
은 매일같이, “용인군 이동면 묘봉리에 내 처가 몇 살이고, 아무 아무 해에 장가를 들었습니다.”라는
말만 반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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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개의 화려한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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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이상히 여긴 어머니가 인마를 거느리고 용인 묘봉리를 찾아갔더니, 그곳에 소복을 입은 여자가
울고 있었다. 어머니는 부인에게 물을 한 바가지 떠달라고 하여 마신 후, 우는 자초지종을 물었다.
“사실 저는 어려서 조실부모하고 이 집에 시집왔는데 불과 일 년도 안 돼서 남편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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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살 사람이 없어 이렇게 매일같이 웁니다.” 이 말을 들은 진천 어머니는, “그러면 당신은 내 며느
리요. 당신 남편이 저승에 갔다가 우리 아들한테 접신을 했으니 우리 집으로 같이 갑시다.” 하고는 가
마에 태워 진천으로 데리고 갔다. 진천에 도착해 보니, 남편의 얼굴은 다르지만 음성은 틀림없이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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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서 용인사람은 진천사람이 되어 진천부인과 용인부인을 데리고 살게 되었다. 진천 본 부인
에게 두 아들을 낳고 용인 부인 에게서는 세 아들을 낳고 칠팔십 년을 살다가 죽었다. 아버지가 죽자
진천아들과 용인아들 사이에 아버지의 혼백을 서로 모시겠다고 분쟁이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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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황당 가는길 살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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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고개 성황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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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명관으로 이름난 진천군수한테 가서 송사를 하게 되었다. “살아서는 어디서 살았느냐?”고 진천
군수가 물어 보자 아들들은 한 목소리로 “진천서 살았습니다.” 하였다. 그러자 진천군수는, “그래? 그
럼 생거진천했으니 사거용인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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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을 때는 진천에서 살았으니 죽어서는 용인에 살라는 판결이었다. 그래서 혼백을 용인아들이 모
시게 되었다. 이로부터 “생거진천 사거용인”이란 말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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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이 이야기가 다양한 변이 형태를 가지며 용인 지역의 대표 설화로 정착된 데에는, 진천은 옥
토로 쌀이좋고 용인은 자연환경이 수려하고 풍수적으로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는 지역적 자부심
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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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았을 때는 진천에 살 것이요, 죽어서는 용인에 묻힐 것’이라는 뜻을 가진 이 ‘생거진천 사거용인(生
居鎭川 死居龍仁)’이라는 말은 잘 알려진 설화이자 속담이다. 이 구절에서 알 수 있듯 충청북도 진천
은 사람이 살기에 매우 적합한 지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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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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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인지 이 곳 진천에는 수많은 문화유적이 있다. 그 중에서도 유난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문백면 구
곡리 앞을 흐르는 세금천(미호천)에 놓인 ‘진천농교(籠橋)’. 일명 ‘농다리’라는 이름이 더욱 정겹다.
중부 고속도로를 이용해본 사람이라면 상행선 오창을 지나 진천 IC 가기전 우측으로 미호천 강변에
생거진천(生居鎭川) 이라는 진천을 선전한 대형 입간판을 보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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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은 ‘대추나무 사랑걸렸네’, ‘장희빈’, ‘모래시계’ 등 드라마 속 장면에서 이 돌다리를 한번쯤 봤을지
도 모른다. 순식간에 스쳐가는 풍경이기에 사람들이 별 관심을 갖지 않지만 이 다리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다리다. 고려 때 만들어져 천년의 풍상을 버텨낸 다리로서 지금은 충청북도 지방 유형문화재
제 28호로 지정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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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정(籠岩亭:~상산팔경중 제1경으로 농다리에 쌓인 눈의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하여 농암모설(籠岩募雪)
이라는 이름으 로 불려왔으며 이 이름의 뜻을따 농암정으로 붙여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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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는 오늘 장모님 기일에 택해 대전을 다녀 오다가 이 농다리에 들렀다. 물론 갠적으로는 3번째
다. 요즘 코로나때문에 답답한 나머지 시원 스러운 농다리와. 벚꽃, 그리고 초평호의 아름다운 산책
길을 좀 걸어 보자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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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 IC를 나와 냇가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일요일이어서 인지 상당한 차들이 주차장을 메우고 있었
다. 한켠에 주차를 한 유랑자는 곧장 농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눈부시게 발달한 현대 과학기술도 건
축 원리를 완벽하게 설명할 수 없는 미스터리한 농다리는 언제 보아도 그저 신기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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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암정에서 바라본 초평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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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대충 돌을 쌓아 만든 것 같지만 거센 물살을 1.000년 이상 버텨 내며 지금도 견고함을 자랑
하고 있으니 말이다. 이 지구상에서 현대 과학의 어떤 교량 구조물이 1.000년을 버틸 수 있을까. 우리
나라 교량 가운데 1000년 이상을 버티고 있는 것은 농다리가 유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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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이곳에 몰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1.000년이 넘은 다리!. 많은 관광객들이 과학적으로 만든
농다리를 건너며 조상의 지혜를 느껴 보면서 그 신기함에 한 장의 추억을 남기려 사진 찍기에 바쁘다.
이 농다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돌다리 이지만 역학적이고 물에 대한 내구성까지 고려된 교
량 건축의 백미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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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전체 길이는 93.6m, 폭은 3.6m, 교각은 1.2m다. 교각과 교각 사이는 0.8m 정도다. 상판으로는
폭이 채 1m도 안 되는 평평한 돌을 한 개씩 올려 사람이 건널 수 있게 했다. 교각은 총 28개다. 편마암
의 일종인 붉은색 돌이 사용됐는데 모양이 제각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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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듬지 않은 원형 그대로의 돌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크기가 다른 돌을 적절히 배합해 서로 맞물리
게 했다. 멀리서 보면 돌무더기 같아 보인다. 석회석 등을 바르지 않고 자연석을 그대로 쌓았는데도 견
고하기가 이를 데 없다. 장마가 져도 유실되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다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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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농다리가 엉성해 보여도 매우 과학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 선조들은 거센 물
살의 충격을 분산 시키기 위해 교각을 일직선으로 배치하고 않고 유선형으로 세우는 등 물이 교각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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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에서 보면 다리가 언뜻 일직선 같지만 높은 곳에서 보면 다리가 지네처럼 구부러져 있다. 또한 교각
역할을 하는 기둥들이 타원형이라 소용돌이가 생기는 것을 막는다. ‘농다리’라는 이름에 대해서는 여
러 설이 있지만 이 가운데 농다리의 특수한 견고함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전해지는 전설이 가장 설득
력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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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 문화관광해설사의 말을 빌리자면 “농다리의 ‘농’(籠) 자가 대바구니를 의미하는 것”이라면서
“날실과 씨실이 결합해 튼튼한 대바구니를 이루는 원리를 이용해 다리가 만들어졌다고 해서 농다리
라는 이름이 붙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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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28개의 교각이 하늘의 별자리 28수를 응용했다고 해 하늘다리, 장마 때면 물을 거스르지 않고
다리 위로 넘쳐흐르게 만들었다고 해 수월교라고도 부른다”고도 한다. 더불어서 풍수지리학자들은 농
다리와 세금천에 ‘혈’(穴)이 숨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혈이 기운을 좋게 하고 돌들을 서로 끌어
당겨 견고하다고 설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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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상류쪽 징검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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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검다리에서 바라본 농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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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과학적으로 만들어진 농다리를 언제, 누가 만들었지는 확실하지 않다. 까마득한 옛날에 축조
돼서인지 고서와 전설을 통해 전해지고 있을 뿐이다. 농다리가 처음 등장하는 책은 1900년대 초 발간
된 인문지리서인 조선환여승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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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농다리는 세금천과 가리천이 합류하는 곳에 고려 초엽 시대 임연 장군이 음양을 배합해 붉
은 돌로 축조했다. 수문을 28칸으로 축조하고 칸마다 1개의 돌로 이어 하나의 활이 뻗쳐 있는 것 같다.
노한 파도와 물결에도 하나의 돌도 달아나지 않았다”고 적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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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비꽃(오랑캐꽃,장수꽃):봄날 우리나라 산과 들에 가장 흔하게 피는 꽃이 제비꽃이다. 제비꽃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올 무렵에 피는 꽃이라서 붙여진 명칭으로, 양지 혹은 반음지의 물 빠짐이 좋은 곳에서 잘 자란다.
키는 10~15㎝로 작은 편이다.(꽃말은: 나를 생각해 주세요, 순진한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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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말은: 사랑의 신탁, 불사신, (노랑민들레는 행복, 감사하는 마음,)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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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 장군은 당시 지역에서 막강한 힘을 가졌던 호족으로 추정된다. 전설에 따르면 임 장군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세금천을 건너려는 여인을 위해 용마(龍馬)를 타고 부하들을 지휘하며 다
리를 놓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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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상산으로 불렸던 진천 지역에는 ‘상산 임씨’들이 많이 거주했었다. 이 전설이 사실일까??. 농다
리를 건너 초평저수지 쪽 용고개 방향으로 20m쯤 올라가면 큰 바위에 사람 발자국과 말발굽 모양의
홈이 있다. 마을 사람들은 이것을 임 장군과 용마의 발자국으로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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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들레(금잠초, 金簪草)효능:주로 소화기 질환 및 해독과 해열에 효험이 있으며, 건강 생활에도 유용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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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에 대한 마을 사람들의 애정은 대단하다. 농다리가 굴티마을과 세금천(미호천) 건너에 있던 죽
정내마을의 가교 역할을 하는 등 조상들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였기 때문이다. 당시 굴티마을 주민
들은 논과 밭이 죽정내마을에 위치해 있어 농다리가 없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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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주민들은 죽어서도 상여를 타고 농다리를 건너 이웃 마을에 묻혔다고 전해진다. 이제는 농다리
는 지역 축제로까지 승화됐다. 농다리를 지키기 위해 객지 생활을 청산하고 1998년 귀향한 임영은씨
의 노력이 결실을 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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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비 등 300만원을 들여 농다리향토문화축제를 시작했다. 이는 진천군이 해마다 5월에 개최하고
있는 생거진천 농다리축제의 모태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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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독특한 농다리를 보러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고 있다. 주말에만 5000여명이 찾을 정
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전국의 우수한 지역 자원 100선과 한국의 아름다운 길 100선에도 선정됐다.
중부고속도로 진천IC를 이용하면 쉽게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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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다리 입구에 농다리의 모든 것을 알아볼 수 있는 전시관이 만들어져 있다. 주변에 초평호, 보탑사,
길상사, 진천 종박물관 등 볼거리도 많아 가족끼리 찾아가도 좋다. 이 농다리를 벗어나면 초평호로
가는 언덕길 ‘용고개’다. 때가 때인만큼 벚꽃으로 가득한 고갯길 화려함의 극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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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비스 야외 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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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고개에는 용의 분노가 서려있다. 옛날 피서대에 살던 부자마을 사람들은 어떤 중으로부터 "용날 같
은 산을 닦으면 더 큰 부자가 된다"고 말했다. 마을 사람들은 중의 말대로 용의 허리에 해당하는 이곳
에 산을 뚫고 길을 닦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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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자 이곳에서 피가 솟구치고 살이 튀어올랐다. 부자 마을은 망했고 아래쪽으로 튄 피와 살은 바위
가 되었다. 그래서 용고개는 '살고개'로 불렸고 튄 바위는 살미기바위로 불린다. 피가 튄곳은 피가 나
온 곳이라 해서 '피서대'라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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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모비스 야외 음악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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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크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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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태공....과연 큰 뜻을 품은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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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이곳에는 '용코'라는 곳이 있다. 이곳은 용의 코에서 뿜어져 나오는 더운 입김 때문에 아무리 추워
도 그곳은 얼음이 얼지 않는다고 전해진다. 고개를 넘어서면 아름다운 초평호가 화려한 벚꽃뒤로 나
타난다, 벚꽃속에 핀 초평호수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이 어려울 정도로 이름난 경승지(景勝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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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천군의 대표 저수지인 초평저수지는 충청북도에서 가장 큰 저수지이고 낚시터 이기도 하다. 이 초
평저수지는 1942년 공사를 시작하였고 1958년 한미합작으로 공사를 준공한 명실상부한 국제적인 호
수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용수량이 부족해지자 1986년 댐을다시 축조하여 지금에 이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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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인근 곡창지대에 물을대는 농수로로써의 역할이 컸지만 지금은 주변에 농공단지가 들어서
면서 원래의 기능을 잃어가고 있다. 하지만 농수로로써의 역할만으로는 이곳의 매력을 알아보는 이
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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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한해동안 20여만명의 관광객들이 찾아 올정도로 매력적인 관광지 이기도 하다. 특히 초평호
수의 백미인 하늘 다리는 모든 사람들이 좋아하는 곳중 한곳이다. 이 하늘 다리를 거너면 작은 노상
카페가 있는데 이곳에서 호수를 바라보면서 커피 한잔하는 여유는 마치 오스트리아 잘츠캄머구트,
트라운 호수가 부럽지 않을 정도로의 여유와 아름다움의 극치를 느낄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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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상공에서 바라보면 초평저수지는 용이 또아리를 튼모양으로 전체적으로 굴곡이 심하지만 자연
스럽게 어울지는 주변 풍광과 저수지의 매력이 어우러져 관광객들을 유혹하며 다시찾게 만드는 곳이
다. 이렇게 유랑자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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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수지 주변은 낮은산에 병풍처럼 둘러쌓여져 한껏 운치를 뽐내기도 한다. 또한 저수지 안에 크고작은
섬들이 있어서 다른 저수지에서 느낄 수없는 매력적인 공간이되기도 한다. 전체 저수지 둘레는 29km
이며 데크및 산책로가 마치 한폭의 그림처럼 펼처지며 잘 정리되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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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못지않게 탁 트여있어 시원하고 깊이감이 느껴 지면서도 조용하고 평온한 느낌과 언제가더라도
친숙한 느낌이 전해주는 친근함도 함께 배어있는 호수가 아닌가 싶다. 근방에 여러가지 이야기가 전
해지는 볼거리들이 더해져 더욱 매력적인 호수로 충청북도를 대표하는 낚시터로도 유명하여 전국의
강태공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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잉어,가물치,붕어,뱀장어등 다양한 어종을 볼수 있으며 특히 겨울에 할 수 있는 얼음낚시는 가히 최
고의 즐거움을 선사해 주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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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저수지는 그윽한 평온함을 느낄 수 있으면서도 가슴 뜷리는 시원함을 가진 호수 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바다만큼 시원한 기분을 느끼게 해주는 호수인지라 진천에 사는 주민들은 바다를 부러워
하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 초평저수지 덕분이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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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 데크 둘레길을 걷다보면 낚시꾼들이 배를 타고 낚시하는 모습들을 볼수 있는데 그 덕분인지
인근 붕어찜 요리를 하는 식당들도 있다, 또한 낚시를 생각하면 한편으로는 죽여주는 어죽이 연상 되
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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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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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죽이란 민물고기를 솥에 넣고 끓인 다음 살만 발라내 육수에 쌀과 함께 넣어 다시 끓인 것으로 내
륙의 향토음식이다. 민물고기의 담백함과 고추의 매운맛은 식욕을 돋우며, 단백질과 무기질을 보충
하여 육체의 활동성을 높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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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씻어서 물에 불려놓고 민물고기는 내장을 제거한 후 물에 식초를 약간 넣어 깨끗이 씻어 삶은 다
음 살과 뼈를 분리해서 살만 걸러 내고 양념 등을 넣어서 끓여내는 것이 어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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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다리에서 바라본 카페 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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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 주변에는 데크 500㎡와 주차장 800㎡, 진입로 보수 500m, 편의시설 등을 조성해 농다리, 초평
호 둘레길과 연계한 힐링관광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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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수련원에서 초평면 화산리 붕어마을까지 길이 2㎞의 '초평호 탐방로 조성사업'을 통해 조성해
이곳을 찾는 많은 사람들에게 아주 극진한 사랑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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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에서 청소년수련원까지 들어가는 길은 넓지는 않지만 길이 만들어져 있다. 나름 겨울에 가도
풍광도 즐기면서 들어갈 수 있는 트래킹길이며 드라이빙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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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를 바라볼 수 있는 전망대에 올라오면 한반도 지형에 주변에 중국과 일본, 제주도를 연상케 하
는 지형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다음에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이곳 전망대까지 올라 소개해 보고
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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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부부의 다정한 점심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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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와 민들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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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평호 데크 산책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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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랑자 여행기 이어보기
http://cafe.daum.net/b2345/9to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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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6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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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이게 정부자료인지 지자체자료인지 모르겠습니다만 농다리는 진천 초평 거주하는 어떤 훈장님이 개발 반대하신덕에 딱 저 폭 30미터 돌과 허접한 주차장 가대에서 파는 칡차 말곤 암것도 없습니다. 초평호는 하루 6-12만원 낚시섬?집? 을 구매하지 않고 낚시가 불가능하며 저 좋게 나온 사진과 달리 낚시섬이 너무 많아 풍경이 별루입니다.
아~~아시다 시피 농다리가 생긴지는 1000년이 되었다는 사실은 역사 자료가
이를 뒷 받침 하고 있지요. 역사 깊이만큼 이어온 우리의 다리를 인정해 주어야 겠지요?
암튼 대단한 우리 선조님들의 과학입니다.
@유랑자1 비꼬는것 아닙니다만 그렇게 따지면 우리집 지표면이 45억년이나 되었다는 역사적 사실이 더 가치있지 않나 봅니다. 허울좋은 돌다리에 인공 폭포 만들고 건축학자와 인근 거주자 김모 훈장님이 반대해 농다리 근처 아무것도 없고 200미터 인근 인공입구와 아스콘주차장, 커피숍만 즐비한것이 무슨 관광지이며 가치가 있는것일까요????
@오태식짱 짱님.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 드리면 됩니다.
이런거 가지고 스크레스 받을 필요 없다는 이야기 입니다.
아 다른 일도 많은데 그냥 너그러히 이해 하시고 편하게 보시면 됩니다.
이러면 어떻고 저러면 어떻습니까? 학자들은 그들만의 존시밍 있고 우리는
어~ 그려? 그려 그러면 그렇게 받으면 된다는 것입니다.
뒤에서 아니라고 할망정 말입니다.
자고로 글이란 재미있어야 하고 실감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때로는 과장 되기도 하고 때로는 비 현실적이기도 한다는 것이지요.
아무렴 어떻습니까. 우리가 좌파 우파 싸우는것을 보고 뭐라고 이야기를 합니까?
정신나간 칭구들 같으니라구 하잔아요. ㅎㅎㅎ
아 일본 아베놈한테 가서 무릅꿇고 사과 하라고도 하잔아요.
한마디로 정신나간 년.놈들이지요.
편한밤 되세요.
좋은 각도에서 찍은 사진으로 일반인 현혹시키는 자료라 판단됩니다.
ㅎㅎ 아닙니다. 이다리는 과학으로 이루어진 우리의 순순한 다리 입니다.
외국에서도 그 유래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과학적이죠
그 당시에 어떻게 이런 다리를 놓게 되었는지는 진천군에서도 인정을 하고 있으니
공식적으로 인정을 해야만 할것 같습니다.
저도 건설을 하는 한 건설 인으로서 대단한 자부심을 느끼고 있답니다.
감사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