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 짜 : 2020. 06. 26.(금) * 날씨 : 흐림, 최저 20℃/최고 27℃, 바람 11km/h
* 장 소 : 경남 거제시 남부면 저구리, 장목면 대금리, 옥포동 일원
* 코 스 : 06:00hrs 광주 승용차→곤지암TG→10:50hrs 저구항 주차장 도착→수국길→물레방아 한정식→매미성→
옥포대첩기념공원→통영오미사꿀빵→광주
참 코로나19가 대단하긴 하다.
내 생활의 리듬이 완전히 깨지고 바뀌었다. 한동안 복지관을 다니며 이것저것 새로운 것을 배우고 특히 탁구에 빠져서
등산에도 소홀해 졌었다.
복지관이 폐쇄 된지 반년이 다 되어가니 별달리 할 것이 없어져서 다시 산으로....!
또 외손주 둘이 학교를 못 다니게 되니 갈 곳이 없어 거의 날마다 우리 집으로 온다.
아내는 나보고 싸돌아다니다가 코로나라도 묻어와 아이들이 옮으면 어쩌느냐고 좋아하지 않지만, 난 집에서 이삼일만
들어앉아 있으면 병난다.
어제 갑자기 목요일인데 아이들이 오지 않는다고 한다.
사위 회사에 확진자가 나와서 재택근무 들어간다고 출근을 안하게 되어서 그렇다고 한다.
어제는 신립장군 묘소를 다녀와서 내일은 모처럼 우리 가족들이 자유시간을 갖게 되었다.
한동안 아이들에게 묶여 꼼짝을 못하고 있었으니 어디로 바람이나 쏘이러 갈까 생각을 해 봤다.
그런데 아무데나 갈 수 없는 것이 코로나 상황이 좋지 않거나 폐쇄된 곳이 많고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은 가기가
꺼려지니 갈 수 있는 곳이 많지를 않다.
산행을 한다면 갈데가 많지만 걷는 것 좋아하는 가족이 별로별로 없으니.....!
나 같이 요일에 구애를 받지 않는 사람들은 구태여 주말에 움직이려고 할 필요가 없다.
참을성조차 부족하여 차 막히는 꼴을 보지 못한다. 아니 차 막히는 것 정도는 어떻게 참아볼 수 있지만 주차하기
어려운 것은 뚜껑이 들먹거리도록 참 신경 거슬린다!
이것저것 찾아보다가 천안 살 때 따라다니던 '야우리산악회' 카페에 들어가 봤다.
이번 6월 정기산행으로 거제도 망산을 갔다가 하산 후 저구항을 들렀다는데 수국 사진이 많이 올라와 있다.
그림 참 좋다. 순간 ‘이거다!’하고 마음이 끌렸다.
나 아직 이렇게 많은 수국이 한데 모여 있는 것 못 보았다.
가족들에게 얘기하고 다음날 새벽 5시경 출발하기로 급 결정 했다.
저구항은 매물도 들어가는 배를 타는 곳이라면 아시는 분들이 많으리라!
가서보니 실제로 그렇게 넓은 면적은 아니나 수국이라는 식물이 줄기와 잎사귀가 풍성하여 빈틈이 없어서 땅을 모두
가려서 좋다. 꽃의 색깔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또 토질의 산성, 알칼리성 성분에 따라서 변하고 꽃송이가 크며 한번
피기 시작하면 한 달 이상을 계속 새로운 꽃송이를 피워 올리기 때문에 오래도록 보기가 좋다.
가는 길 옆에도 많이 심어져 있고 이웃 마을에도 수국은 적지 아니 발견이 된다.
좁은 나라 땅 덩어리 탓인지 어느 한 곳에서 무슨 특색 있는 것을 내 놓으면 전국적으로 따라 하기가 흔한데 이것
역시 머지않아 전국적으로 수국동산 조성 광풍이 불게 될지도 모르겠다.
이미 이곳 외에 이웃 고장 통영 연화도, 제주 애월, 해남 땅끝마을, 부산 태종대 등지에도 수국을 집단적으로 심어놓은
곳이 있다고 한다.
당일치기이지만 간 김에 요즘 거제도의 핫 플레이스라고 하는 매미성과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 자료를 모으고
있는 중인 내가 꼭 가보고 싶었던, 연전연패하던 임진왜란 최초의 조선군 승전지이자 이순신장군의 첫 승전지인 옥포만을
돌아봤다.
한 곳에 ‘옥포대첩기념공원’이 조성되어 있어서 들렀는데 가족들은 이미 걷기에 피곤해 하여 나만 한 바퀴 돌아봤다.
오늘 돌아본 곳은 걷기 싫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딱 좋은 곳이다.
대충 본다면 일이십 분이면 되고 찬찬히 살펴 본다해도 삼사십 분이면 된다.
사진 발이 잘 받는 곳이기도 하다.
<저구항 수국길>
▼ 저구항 입구 : 저구항은 매물도 가는 배가 떠나는 항구
▼ 내 평생에 지금까지 봐왔던 수국을 모두 합친 것보다 더 많은 수국을 보게 되었다.
이것을 보자고 새벽에 일어나 장장 5시간 정도를 차를 끌고 왔지만 별로 후회되지는 않았다.
▼ 뭐니뭐니 해도 꽃 중에 꽃은 어린아이다! 이 아이 표정이 꽃의 아름다움에 감동 먹었나? 시선을 살며시 내리깔고.....!
▼ 내 아내는 하나도 이뿌지 안타! 그런데 이렇게 아름다운 꽃 속에 있으니 어느 게 꽃인지 사람인지, 영화배우보다 더 입뿌네! ㅎㅎ
▼ 처음 피어날 때는 하얀색에 가깝다가 이렇게 점점 분홍색또는 보라색으로 변한다.
<거제시내 점심>
▼ 1만5천원 짜리 한정식 : 생선회가 빠진 것이 섭섭하지만 가성비로는 그럭저럭. 맛도 그럭저럭. 5천원을 더 보태면 생선회 약간과 오리구이, 1만원을 더 보태면 거기에 장어까지 더 나온다고 하는데 오리는 평상시 많이 먹는 것이고, 장어는 내가 싫어한다.
<매미성>
▼ 매미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나라에서 쌓은 성이 아니다. 태풍 매미에 연유한 매미성.
전문가가 아닌 보통 사람이 설계도도 없이 이런 중세의 성같은 건축물을 쌓아 올렸다는 것이 놀랍다!
▼ 매미성 입구 풍경, 바다 저 쪽 거가대교!
▼ 매미성의 전체적 풍경
▼ 직업적인 전문가가 쌓은 것이 아니다 보니 여기저기 허술해 보이는 곳이 눈에 띄기도 한다.
혹시 성이 허물어지지는 않도록 역학적 관계도 고려하여 쌓은 것인지?
▼ 매미성이 위치한 지리적 조건은 매우 우수하다. 멀리 거가대교가 보이며 해변 바닷물이 맑고 몽돌이 깔려있고 풍광도 좋다!
<옥포대첩기념공원>
▼ 이순신 장군은 우리나라가 결코 망하지 않는다는 각본에 딱 맞게 맞춤 탄생을 하신 분이다.
각본을 만든 절대자는 이순신 장군을 등장시키지 않고는 우리나라를 망하지 않게 역사를 꾸밀 방법이 없었을 것이다!
(사족(蛇足) : 역사 기록에 임진왜란 3대첩은 '이순신의 한산도대첩, 권율의 행주대첩, 김시민의 진주대첩'이며 이순신 장군의 삼대첩은 '한산도대첩, 명량대첩, 노량대첩'을 꼽는다. 옥포해전은 첫 승전으로서 그 의의는 크지만 거제시에서 대첩으로 다소 부풀린 것이 아닌가 한다.)
▼ 이 기념관에는 이순신 장군 관련 전시실 2개가 운영되고 있다.
▼ 여기 거북선의 단면은 이층구조로 되어있다. 다른 자료에서는 3층 구조를 주장하기도 한다. 이렇게 설계한 거북선은 이층에서 노를 젓는 격군과 포를 쏘는 병사가 같은 공간을 공유해야 하는데 이것은 매우 불합리하다는 주장이다.
▼ 이 거북선 모형 역시 믿기 어렵다. 하기야 모든 거북선이 다 믿기 어려운 것이다. 실물의 사진이나 설계도 등을 (터무니 없는 얘기지만)컴퓨터에 저장해 놓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거의 기록이 없다시피하다. 그래서 만드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이층으로 된 덮개와 총구, 포문에 설득력이 떨어진다. 포문이 앞면에 2개, 옆면에 적어도 4개 이상은 되었을 것이다.
어떤 학자는 또 거북선이 분명히 있기는 있었지만 알려진 것과 달리 위력이 대단치 못했을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왜냐하면 일본 수군이 막강한 후방 지원과 전력에도 완벽히 패배한 이유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면 아무도 모르는 거북선의 위력을 과장할 필요가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 이 판옥선은 거북선 보다는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이순신 장군 이전에도 있었던 배이고 매우 여러척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옆면에 포문이 5개, 전면에 2개가 있다는 것에 주목한다. 이것 조차 맞는 지는 모르지만....!
▼ 효충사의 정문인 외삼문.
▼ 효충사 : 사당의 본전에 해당하며 이순신 장군의 영정과 명조팔사품 그림이 있는 병풍 등이 보관되어 있음. 후문 밖에서 바라본 풍경
▼ 난 옥포루에 올라 옥포만을 내려다 본다. 430년전 주변의 백성들도 이 근처 산에 올라 잠시도 눈을 떼지 못하고 옥포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순신 장군의 전투 장면을 애간장을 태우며 실시간으로 생생히 지켜 보았을 것이다. 피아간에 비슷한 50척 정도의 전함에서 왜군은 26척이 침몰되고 우리는 모두 건재하며 수장된 왜군의 수는 4,600명 정도에 우리 수군 전사자는 0명, 부상자만 한명 정도였다고 한다. 4600 : 0(사천육백 대 빵) 전세계 인류역사상 어느 누가 이런 승전 대기록을 세운 장군이 있을까?
이후 백성들은 이순신 장군에게 절대적인 신뢰를 보이며 당연히 적극 협조하게 된다. 빨리 퍼져나간 소문에 백성들은 자꾸자꾸 모여들었을 것이다. 군사들은 말할 것도 없이 무조건 장군을 따르면 죽지 않을 확률이 높고, 승전했을 때 솟아오르는 엄청난 양의 엔돌핀 맛을 충분히 보았을 것이다.(그때도 엔돌핀이라는 말이 있었던가? ^^)
▼ 승전기념탑 : 전함의 방향타를 상징한 것이라 한다.
▼ 저곳이다. 대우 옥포조선소 있는 곳이 왜수군이 머물러 있었던 곳이다.
저기서 만들어진 배는 이순신 장군의 정신을 담아 세계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간다.
▼ 옥포만 밖의 외해 : 나중에 다시 이순신 장군에 대하여는 할말이 있지만 지금 한마디만 하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통제한 삼도 수군만이 당시 전사한 모든 사람(심지어 천민인 노비들 까지도)의 이름이 기록에 남아 있으며, 현재 여수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난중일기도 물론이지만 이 얼마나 엄청난 기록인 것인가? 전시에 온 신경이 전투에 쏠려 있었을 것인데 세세한 기록을 남기다니.....!
그 후손들은 자기들의 조상이 임진왜란 시 확실하게 다른 많은 관리나 군사들처럼 도망치지 않고, 이순신 장군과 함께 싸우다 전사한 사실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그 덕으로 나라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게 된 것에 대하여 얼마나 자랑스러워 할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