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최용현(수필가)
외국영화가 국내에 들어올 때 대부분의 경우 원제목을 우리말로 번역해서 영화제목을 정하는데, 간혹 원제목과 전혀 상관없는 제목을 붙이기도 한다. 흑인명우 시드니 포이티어가 열연한 ‘언제나 마음은 태양’(1967년)의 원제목은 ‘선생님께 사랑을(To sir with love)’이고,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가 콤비로 나오는 버디 무비(buddy movie) ‘내일을 향해 쏴라’(1969년)의 원제목은 미국 서부개척시대의 전설적인 두 은행강도의 이름 ‘부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이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1967년)는 ‘졸업’(1967년)과 함께 당시 미국영화를 지배하던 가치기준을 과감히 뒤엎는 뉴 아메리칸 시네마(New American Cinema)의 기수(旗手)로 꼽힌다. 이 영화의 원제목도 1930년대의 유명한 커플 은행강도의 이름 ‘보니와 클라이드(Bonnie and Clyde)’이다. 오래전에 이 영화를 TV에서 보고 ‘우리말 제목을 기가 막히게 잘 지었구나.’ 하고 생각했었다.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는 클라이드 배로우와 보니 파커의 만남과 동행, 죽음에 이르기까지의 과정을 그린 범죄영화로, 혼성 버디 무비이면서 로드 무비(road movie)이다. 1968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에스텔 파슨즈)과 촬영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국립영화등기부(NFR)에 보존되는 100편의 영화에도 선정되었다.
대공황이 맹위를 떨치던 1930년대 중반의 미국 텍사스, 교도소에서 갓 출소한 청년 클라이드(워렌 비티 扮)는 어느 시골마을의 주택 앞에 세워놓은 승용차를 훔치기 위해 차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그 집 2층 창문에서 내려다보고 있는 차주의 딸 보니(페이 더너웨이 扮)와 눈이 마주친다.
보니는 좀도둑 같은 그 청년에게 호기심을 보이며 ‘거기서 뭐해? 기다려!’ 하고 소리친 후 드레스만 걸치고 계단을 뛰어 내려온다. 카페 종업원 생활을 하며 지루한 일상에 따분해하던 보니는 클라이드가 왠지 멋져보였는데, 함께 콜라를 마시며 걸어가던 클라이드가 갑자기 총을 빼들고 식료품가게에 들어가더니 나오면서 돈뭉치를 보여주자 진한 매력을 느낀다. 클라이드 또한 쾌활하면서도 약간 엉뚱한 보니를 ‘텍사스 최고의 여자’라며 호감을 표한다.
보니와 클라이드는 차를 타고 가다가 빈집이나 여인숙에서 잠을 자고, 마음에 드는 차가 있으면 훔쳐서 타고 간다. 차 수리공 C.W.모스(마이클 J. 폴라드 扮)에 이어, 클라이드의 형 벅 배로우(진 핵크만 扮)와 형수 블랜치(에스텔 파슨즈 扮)도 합류한다. 이렇게 모인 ‘배로우 갱단’은 2년간 한 차를 타고 텍사스주, 미주리주, 오클라호마주의 은행과 주유소를 털면서 경찰관을 포함하여 12명을 살해한다. 이들의 강도 행각은 지역신문에 대서특필된다.
그러던 어느 날, 이들의 숙소에 경찰이 들이닥치며 총격전이 벌어지는데 머리에 총을 맞은 벅은 사망하고 눈을 다친 블랜치는 체포된다. 도망친 세 사람은 모스의 아버지가 홀로 사는 외딴 농가에 찾아가 상처를 치료하면서 당분간 휴식을 취한다. 그런데, 경찰의 유도신문을 받은 블랜치가 모스의 이름을 알려주는 바람에 모스의 집으로 연락이 오고, 모스의 아버지는 아들의 죄를 묻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경찰에 협조한다.
이 영화의 마지막 부분은 영화사상 가장 잔인한 결말 중의 하나로 꼽힌다. 마을 가게에서 햄버거를 사오던 클라이드는 경찰이 보이자 급히 보니를 차에 태우고 도망치는데, 저만치 앞 길가에 모스의 아버지가 트럭의 타이어를 갈아 끼우는 것이 보인다. 클라이드가 차를 세우고 걸어가서 도와줄 일이 없는지 묻는 순간, 근처 나무에서 새들이 후루룩 날아오른다.
모스의 아버지가 재빨리 트럭 밑으로 몸을 숨기자, 클라이드는 함정에 빠졌음을 직감하고 차에 있는 보니를 쳐다보는데, 그 순간 나무 덤불 뒤에 잠복해있던 경찰들의 기관총이 일제히 불을 뿜는다. 차 밖과 안에서 무자비한 총알세례를 받고 참혹하게 죽어가는 클라이드와 보니의 모습을 차례로 보여주면서 영화가 끝난다. ‘대부’(1973년)에서 제임스 칸이 상대방 조직원들에게 난사당하는 장면은 이 모습을 오마주한 것이다.
실제로 보니와 클라이드는 1934년 5월 23일 루이지애나주 고속도로에서 경찰들이 발사한 130여발의 총알세례를 받고 현장에서 즉사했다. 25세인 클라이드는 운전석에서 한 손에 총을 든 채, 23세인 보니는 양 무릎 사이로 머리를 수그린 채 죽었다. 장례식은 따로따로 치러졌는데, 클라이드의 장례식에는 1만5천여 명이, 보니의 장례식에는 2만여 명이 참석했다고 한다.
이들이 2년간이나 잡히지 않고 활동할 수 있었던 이유는 관할구역 문제로 추격이 힘든 주 경계를 이동하면서 다녔고, 클라이드의 운전 실력이 카레이서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났기 때문이었다. 또 대 공황기에 서민들을 착취하는 은행을 터는 보니와 클라이드를 영웅시하는 당시 미국의 사회분위기도 일조를 했다.
반전시위와 히피문화가 횡행하던 1960년대 말, 젊은이들은 공권력을 조롱하는 ‘배로우 갱단’의 화끈한 질주와 강도 행각에 대리만족을 느꼈다. 당시 젊은이들은 베레모, 긴 머리, 브이 넥 스웨터 등 1930년대 패션을 즐겨 입었고, 특히 ‘보니 파커 룩’은 여성 패션잡지의 핫한 소재가 되었다.
이 영화의 남자주인공 워렌 비티는 할리우드의 바람둥이로 명성이 자자했는데, 그가 여주인공 보니 역의 페이 더너웨이가 못생겼다며 다른 여배우로 바꿔달라고 요구했다가 아서 펜 감독에 의해 좌절된 에피소드는 두고두고 호사가들의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
첫댓글 실화를 모티브로 한 영화로 알고 있는데, 마지막 장면(물론 영화이기에)을 보면, 미국이,중국의 인권을 성토 할만치, 인권을 생각하는 민주국가가 맞느냐에, 의문 보다는 분개를 느낄 정도 입니다. 비무장 범인을 얼마든지 생포 할수 있는 현장에서, 여자 까지 무참하게 난사해 죽인 다는건, 너무 잔혹한, 아니 있을수 없는 공권력의 또 다른 범죄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게 또 현재 진행형으로,며칠전의 흑인경찰 다섯명의 흑인치사사건 같은게 심심찮게 되풀이 되는 현실에, 한해, 총기 사고로 죽는 사람이 수 만명을 해아리 면서, 중국 인권 들먹이는 건, 똥 묻은게가 겨묻은게 나무라는, 아니면 숯이 검정 나무라는 식이라는 생각이 듭니다.ㅎㅎㅎ
저도 같은 의견입니다. 동의합니다.
실제로 무자비한 총탄세례를 퍼부어 둘다 현장에서 즉사시켰다고 하네요.
이들이 이동하면서 경찰을 몇 명 죽인 것 때문에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끝장을 낸 것이겠죠.
하여튼 미국이란 나라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