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꽃잎은 떨어져도 향기를 풍긴다 >
현대불교 논단 10월 20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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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스님이 입적하기 며칠 전 병상에 있을 때이다. 미황사 전 주지인 금강스님이 동백꽃과 매화를 꺾어서 병실에 보냈다. 스님께서 그 꽃을 받고, 한 송이 한 송이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꽃들아, 올라오느라고 수고 많았다. 내가 보러 가야 하는데….”
법정스님은 어느 글에서도 “청도 운문사에 ‘세월의 자취를 간직한 세 분이 계시다.’ ”라고 운을 띄운 뒤, 비로자나불ㆍ은행나무ㆍ처진 소나무라고 언급했다.또 법정스님이 불일암에 머물 당시, 봄 날에 출타를 하면서 도량에 피어있는 매화에게 “혼자 있게 해서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떠났다.이렇게 법정스님은 꽃과 나무에게도 사람을 대하듯 존칭을 썼다. 조선시대, 자비慈悲 스님도 그러했다. 스님은 성질이 곧아 재상이나 벼슬아치를 만나도 굽실대지 않았고, 어떤 물건이든지 누군가가 주면, 받아서는 그것을 남이 달라고 하면 모두 주었다. 어떤 물건을 일컬을 때도 ‘돌님’ㆍ‘나무님’ㆍ‘사자님’ㆍ‘토끼님’ 등으로 반드시 ‘님’ 자를 붙였다.
송나라 때, 소동파(1037∼1101)는 황룡파 동림 상총(東林常總, 1025∼1091)의 법맥을 받은 사람이다. 소동파가 처음 상총스님을 만났을 때의 일이다.
“스님, 제가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을 해결하고자 찾아왔습니다. 스님께서 이 미혹한 중생을 제도해 주십시오.”
“거사님은 이제까지 어느 스님을 만나셨습니까?”
“저는 여러 고을을 전전하며 스님들을 많이 만났지만, 아직도 공부가 되지 못했습니다.”
한참 뜸을 들이던 상총이 말했다.
“거사님은 어찌 무정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고, 유정설법만을 청하십니까?”
소동파는 상총스님의 ‘왜 무정설법은 들으려 하지 않느냐?’는 말씀에 의문을 품고 집으로 가는 길녘에 마침 폭포 앞을 지나갔다. 이때 폭포수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 깨달은 뒤에 “시냇물 소리가 곧 부처님 설법이요, 산의 풍광 그대로가 부처님 법신이로다.” 오도송을 읊었다. 동파는 선사의 말(화두)과 씨름하던 중 정각의 시절인연이 도래한 것이다.
불교에서는 꽃ㆍ풀ㆍ나무 등을 ‘무정無情 중생’이라고 하고, 지각력을 가진 생명을 ‘유정중생[有情, 동물ㆍ사람]’이라고 한다. <열반경>에서는 “초목국토인 무정물도 다 성불한다[草木國土 悉皆成佛]”고 하였고, <아미타경>에서는 “물새와 수목樹木이 설법을 해준다.”고 하였다. 무정이 법을 설한다[無情說法]는 것은 실제로 무정이 설법하는 것이 아니라 수행자가 그 물체와 동화된 마음자리, 물아일체物我一切ㆍ심경일여心鏡一如의 측면을 말한다. 부처님만이 위대한 진리를 설하는 것이 아니라 초목들도 사람들에게 법을 설해준다는 뜻이다. 이 세상의 그 어떤 무정물이든 부처님만큼 존귀하지 않은 존재는 없다. 이런 만물의 존귀함에 마음을 열고 귀 기울일 때, 그들로부터 진리를 배운다.
만물이 결실을 맺는 계절이 왔다! 수많은 초목이 여름의 무더위ㆍ폭풍ㆍ바람 등 고통을 감내한 뒤에 가을을 맞이했다. 꽃은 져도 향기를 남기는 법, 붉은 단풍과 노란 은행나무, 군자라 불리는 국화 등이 가을의 낭만을 뽐내며 화장세계를 이루고 있다. 이렇게 무정중생이 우리들에게 좋은 진리를 설해주고 있건만 어찌 수목에 감사하지 않으랴?!
마음 기울여 무정중생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바라보라. 바로 부처님 회상會上이 그곳에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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