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잡스럽던 한 주간을 보내고 느적거릴 하루를 선사 받았다.
하여 게으름의 극치를 만끽하기 위해 OTT를 섭렵하다 일본영화 "도쿄타워"에 시선이 머물렀다.
순삭의 시간이 흐르고 마주한 "도쿄타워"는 씁쓸함과 아련함만 남겨졌다...
부모 자식은 동질감과 이질감 사이에 어느 쪽 비중이 더 크게 와닿는가와 환경은 또 얼마나 중요하던지를 느끼겠는.
또한 부모중에 누군가의 DNA는 어느 쪽으로 발현되는가도 중요한.
***** 도쿄로 돌아가는 엄마, 엄마를 마중가는 아들...둘의 긴장감은 같은 듯 다르다.
한때 자신의 안식처이자 안락의 상징이 되었으면 하고 바랐던 도쿄는 이미 퇴색한 기억 저편이다.
그런 도쿄를 향해 가는 엄마는 삶의 마지막 끈을 아니 그나마 아름다웠을지도 모를
삶의 조각 하나를 꺼집어내기도 편편치 않다.
도쿄타워...영혼의 고향으로 대변되는 쌀겨 된장, 뒤늦게 척박한 삶이 내게로 온다는 것은 어쩌면 과거의 흔적일지도 모를 일.
아니 출생부터 지난하고 고단하며 질퍽한 삶이 주어진다는 것 또한 윗세대의 과거 흔적일 수도 있을 터.
태어나면서 부터 비루한 삶자락을 부여받게 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없을 테이지만
본의 아니게 여건 속으로 함몰되는 것 역시 과거의 흔적 여파일 것임은 말할 것도 없겠다.
자식은 부모의 품을 떠나 제멋대로의 삶을 누리거나 같잖은 제 삶을 희희낙락하며 흘려버려도
엄마의 고달픈 인생은 오로지 제 자식의 건사만을 위해 흘러간다...철부지 자식들의 모습들은 어쩌면 그리도 한결같은지.
이기적이고 소모성 하루를 보내버리면서도 그 뒤에 엄청난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엄마의 뒷바라지는 당연하게 치부하는.
아들은 자신만의 생이 중요했고 일생을 정착하지 못한 채 부유하던 아버지를 대신해 가장의 무게를 짊어진 엄마.
홀로 아들을 키우지만 그 아들은 엄마의 희생과 노력에 대한 기대치에 못미치는 생활을 전전하고
그토록 닮고 싶지 않았던 제 아버지 마냥 마치 놈팽이어도 좋을 책임감이라고는 1도 없는 그런 삶을 유지한다.
애초에 가진 게 없던 아들은 노력 따윈 해내지 못한 채 제 엄마에게 기대어 사는 삶으로 근근히 입에 풀칠을 하다
친구도 잃고 이집 저집 떠돌이 신세를 면치 못한 채 밑바닥 삶을 이어간다.
그렇게 간신히 비틀거리는 생을 이어가던 어느 날, 엄마의 발병 소식을 듣고
엄마를 도쿄로 불러들여 함께 살아갈 마음을 먹는다.
엄마의 말 한마디, "내몸은 내가 안다"는 여러 의미를 포함한다.
어쩔 수 없이 병원으로 입원하러 가기 위해 횡단보도를 건너는 엄마의 모습은 화면에 잡히는 순간 오래오래 기억에 저장되었다.
삶의 마지막을 영접하러가는 엄마의 표정, 도쿄타워 밑의 병원이 마지막 집이 되어버릴 찰나
격이 떨어지는, 질낮은 자유를 구가하던 아들은 정신을 차리고 햇볕드는 집을 구하여
아픈 엄마와 더불어 소소한 일상을 이어가며 친구들과 북적거리는 생활을 시작하면서 기억의 한켠을 저장한다.
그리고 애증의 남편과 마지막 일지 모를 소소함을 누린 후 엄마의 항암치료는 시작된다.
그 역시 끝없이 착취당한 인생의 대가이다.
치료를 하면서 살려고 애쓰는 엄마를 지켜보는 것은 고통의 끝판왕이다....당사자보다 더할? 이랄 수는 없어도.
일러스터인 아들은 결국 항암치료를 포기한 엄마를 그림으로 남기면서 새로운 환경을 조성한다.
남편과의 병원에서의 마지막 밤, 아들이 들려주는 "키사스 키사스"는 남편과의 첫만남을 이어준 음악이자
그와 함께 두손잡고 춤추던 기억과 함께 잊지못할 음악을 스치듯 뇌리에 담고 세상과 이별을 한다.
제 엄마가 한평생 고단했던 삶을 뒤로 하고 세상과 작별을 하는 순간에도 이어지는 아들의 현실은
웃기는 칼럼을 써내야 하는 칼럼가로서 숨진 엄마 곁에서 서글프지만 고통스러울 웃긴 칼럼을 써내야 하는 아이러니와
와중에 엄마에게 보여줄 것이 그것밖에 없다는 자괴감이 충돌하지만 현실을 이어가는 것이
엄마에 대한 애정에 대한 보답이라 생각되므로 그는 불꺼진 영혼을 함께 하며 글을 쓰고 휘청거리면서 남겨진 삶자락을 이어간다.
이후 엄마가 남겨둔 추억과 편지를 보며 늦었지만 엄마의 위패를 들고 도쿄타워 전망대로 가서
엄마에 대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하며 작별을 한다....뭉클함이 몸과 마음 사이로 번져온다.
철이 든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 이라는 것인지, 시기와 때 라는 것은 언제 알게 되는 것인지.
부모라고 해서 죄다 부모는 아니라는 것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는 것 같다.
한결같음으로 내리사랑을 쏟아부어도 자식은 부모의 보살핌을 알지 못하고 내리닫이를 당연하다로 여긴다.
부의 존재는 부재중인 채 외벌이 엄마의 힘으로 자식을 건사하여도 가족이라는 공간이 비고
채워지지 않는 심리적 부족함은 늘 온전하지 않아 흔들거리며 비틀거리는 삶을 마주하게 한다.
사실 살아내면서 일방적 견딤으로 자신을 채찍질하고 내어몬 결과물이란 언제나 뻔하다.
뒤늦게 철드는 자식들을 보며 회한에 젖을 일들만 무성한....하여 "도쿄타워"를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
단순한 삶자락이 결코 단순하지 않은 채 복잡해진다는 것이 그렇고 죽은 자는 그렇게 떠나가고
살아 남겨진 자는 다시금 되돌아온 일상과 마주하게 되는 것, 그렇게 우리의 시간은 흘러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루하지 않게 이어지는 면면은 희노애락을 동반하고
그런대로 번잡하지 않은 스토리와 출연진들의 소박한 연기를 기반으로 하므로 볼만은 하다.
하였어도 일본인들의 엄마로 대변되는 여주인공-키키 키린-이나 아들-오다기리 죠-의 연기는 무덤덤하더라는.
아마도 자극적이지 않은 연기로 이어지는 스타일이 소소한 일상을 드러내는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가도
역시 질퍽거리지 않고 심심하게 전개되는 흐름을 보면서 무미건조하다를 느끼겠더라는.
"도쿄타워"는 그렇게 우리가 아는 부모와 자식의 실타래는 엮여지다가 풀려지다가 덤덤하게 끝이 나버렸다.
"나의 첫사랑 그리고 마지막 사랑 어머니......" 회한의 시간이 주어진다.
하여 도쿄의 상징일 붉은 색 "도쿄타워"는 일본인들에게 실체가 없는 상징적 의미 일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향한 꿈의 정착지 일지도 모를 일이겠다.
그렇게 앞으로 나아가는 삶이란 꿈의 실체에 닿을 듯 말 듯 하지만 말이다.
첫댓글 영화를 안보고도 본듯하네요.
오래전 올라가본 도쿄타워도생각나고...
그럴 수도 있을 듯....
부모란 참 내리사랑으로 죄다 퍼주어도 부족한
일방적 사랑의 최대 수혜자는 자식일 터.
@햇살편지 ㅇㅇ 왜? 아닙니까~!